한옥위에 일본식 집이 올라와 있어 신기하기도 하고 묘한기분이긴 하지만 집은 분위기가 밝고 상당히 좋은 집이네요. 저런 집에서 커피한잔하면 정말 멋질거 같습니다. 비가 와도 멋지고 햇살이 비춰도 밝고 좋은거 같네요. 젊은 부부가 아이랑 같이 지냈던 저집은 느낌이 좋네요. 증축하느라 돈도 많이들었고 부자였을듯. 근데 나선형 계단은 정말 불편해 보임 . 어릴적 제가 살던 시골집도 한옥과 일본 양옥집이 섞인집이라 2층은 다락방이 있는 그런 한옥집이 생각나서 추억에 젖게 하네요.
아픔을 덮는다고 낫지않는다. 오히려 그 아픔이 반복되지 않도록 남겨둬야 된다고 본다. 지난 아픔을 잊지않기 위해서. 적의 재산이니 없애는게 아니라 적의 재산이지만, 우리의 아픈 역사이고 그 역사를 잊지 않기 위해 우리는 보존한다. 적산가옥을보며 다시는 다른 나라의 지배를 받지않겠다. 나라 잃은 슬픔은 두번다시 겪지 않겠다는 다짐을 하며 두고두고 지켜내야 된다고 생각합니다. 나라를잃었던 역사도 우리의 역사이고, 나라를 되찾은 역사도 우리의 역사입니다. 역사를 잊은 민족에겐 미래가 없다는 말이 있듯이 적산가옥을 잘 보존해서 다시는 같은 역사가 반복되지 않도록 노력해야 된다고 생각합니다.
요즘 순살자이 같은 부실시공 아파트들을 보면서 100년 가까이 된 저 일본식 집들이 여전히 버티고 서있는걸 보면 건축업계도 좀 뭔가 반성을 했으면 좋겠네요. 대충짓고 비양심적으로 남겨 먹을 생각만 하니까 문제가 발생함.. 그런데 부실 시공의 원인중에 건축주도 한몫하고 있다는 점입니다. 정당하게 건축비를 지급할 생각하지도 않으면서 더 싸면서 집은 더 좋게 지을려고 하고 있는것도 문제죠. 건축비 대비 너무 과도한걸 서비스로 요구하는 사람들이 너무많음. 돈은 제대로 지급하고 요구좀 하시길..
인천 중구네요. 동인천역에서 내려서 자유공원방향으로 올라가다가 뒤쪽으로 돌아가거나 신포시장을 통해서 진입이 가능할겁니다. 인천 배다리쪽을 시작해서 저기까지 옛날과 현대식 집들이 복잡하게 뒤섞여있는 재미있는 곳이었습니다 근데 뭐 지금은 상당수가 재개발 구역으로 지정되어서 아마 다 밀리고 있지 싶어요
그 악랄하고 잔인무도 했던 ,... 순수?전쟁이 아니라... 민족말살까지 하려했던 ... 저들에게도 엄마가 누이가 딸이 있었을텐데... 짐승만도 못한 용납 못할 짓을 해 놓고 사과는 커녕 더욱더 더럽고 천박한 행위를 끝없이 이어가는데.. 어찌 편안한 마음으로 그들의 흔적을 응시 할 재간이 있겠는가? 물론 사람은 다 두루두루 갖가지 성향이 있어 사람이 저지를 수 있는 잘못 된 행위의 끝까지를 할 수 있다 하자 그리하여 이해와 용서를 못할 것이 없지만 잘못을 시인 못하는 인간이 아닌 짐승만도 못한 이들을 어찌 가만히 바라보며 덤덤한 생각이나 하고 있을 수 있겠는가 말이다
@@user-kr8fd7yu7p 남들이 왜 감동 못 느끼는 이유에 대해 정확하게 파악이 안 되나요? 님은 ‘공감’ 도 못 하는거 같은데요. 원댓글자가 무슨 말을 하는지 이해는 하고요? 일제 강점기의 잔재에 대한 역사적 ‘아픔’ 을 말하고 있고 다들 공감하는 분위기 인데, 님은 무슨 뜬금없이 건물 튼튼한거 가지고 말하고 있는거죠? 남들과 대화 가능해요? 상대방이 말하는 요점 파악 잘 되냐구요? 원댓글 다시 잘 읽어보세요
저런 집을 지을 때는 일본이 영원히 한국을 식민지로 지배할 줄 알았던 것이죠. 오래 전 아버지에게 들은 말은 일본이 싱가포르 함락하고선 전국 초등생들에게 공을 하나씩 나누어 주었다고. 모두 일본이름으로 창씨개명하게 하고. 동남아에서 승승장구하니 기고만장이었던 것이죠. 역사는 역사대로 현재는 현재대로 역사를 절대 잊지 말고 한편으로는 우호를 다지면서 서로 협력도 하고 견제와 경쟁도 하면서 국제관계에선 그렇게 가야 하겠죠. 어쨋든 내가 힘이 없으면 평화도 우호도 없습니다.
@@채플린-c8j 이미 세월도 20여년이나 흘렀고. 이러거나 저러거나 조선땅에서 그들은 군림하는 입장이거나 갑이었으며 갑자기 해방되는 바람에 부동산 두고 황급히 귀국한 사람들도 있었겠지만 그것도 조선이 그리하라 한 것도 아니었고 무엇보다 그들로 인해 조선인들이 많은 피해를 본 것은 사실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