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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5회full] '위안부' 공개 증언 30주년 - 김학순, 다시 우리 앞에 서다 (재업로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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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송일시 : 2021년 8월 13일 금요일 밤 10시
“우리가 강요에 못 이겨, 했던 그 일을 역사에 남겨두어야 한다”
- 故 김학순 할머니 -
1991년 8월 14일 종로의 한 사무실에서 충격적인 이야기가 터져 나왔다. 일본이 부정해오던 ‘위안부’ 강제 동원에 대해 누군가 증언을 한 것. 피해 사실을 증언한 사람은 바로 故 김학순 할머니였다. 일본군‘위안부’는 존재하지 않았다는 일본의 주장은, 김학순의 증언을 기점으로 뒤집혔으며, 숨어있던 더 많은 피해자들의 증언을 끌어내는 단초가 되었다. 모두가 위안부 운동의 위기를 말하는 지금, 《시사직격》은 30년 전 김학순 할머니의 ‘위안부’ 최초증언이 오늘의 우리에게 어떤 의미인지 다시 꺼내본다.
■ 김학순과 윤정옥
김학순 할머니의 ‘위안부’ 피해 사실 증언은 갑자기 이뤄진 것이 아니다. 김학순 할머니의 증언이 있기 전, 일본군‘위안부’ 강제 동원을 입증하기 위해 떨쳐 일어섰던 윤정옥 교수. 윤 교수는 자신이 운이 좋아서 일본군‘위안부’에 끌려가지 않았을 뿐이라고 했다. 그때 끌려 갔다가 돌아오지 않았던 소녀들의 억울함을 알리는 것이 평생의 과업이라고 생각했던 윤정옥 교수는 이후 한국과 국제사회에 일본군‘위안부’ 문제를 알리기 위해 평생을 바쳤다.
“내가 위안부라는 말은 알지도 못했는데,
어떤 강제징용 나갔던 어떤 아저씨한테 들은 얘기거든
...
내 질문은 위안부가 뭐냐였다가, (그 다음에는) 사람이 사람한테 이럴 수가 있나? ”
- 윤정옥 前 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 공동대표 인터뷰 中-
■ 김학순과 함께 싸웠던 사람들
1988년 윤정옥, 김혜원, 김신실 세 사람은 강제동원 된 일본군‘위안부’ 피해자들을 찾기 위해 일본으로 떠났다. 일본 곳곳을 돌아다녔지만, 막상 그들이 찾은 피해자들은 마음의 문을 닫고 만나주지 않았다. 피해사실을 입증하려면 당사자의 증언이 꼭 필요했던 상황에서 드디어, 최초의 증언자가 나타났다. 김학순 할머니였다.
1991년 8월, 김학순 할머니는 일본군‘위안부’ 피해 사실에 대해 낱낱이 증언하였고, 이에 용기를 얻어 숨어있던 다른 피해자들도 목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시사직격》은 윤정옥 교수를 비롯한 1세대 활동가들을 통해 ‘위안부’운동의 알려지지 않은 탄생과정과 분투기를 들었다.
“최초증언자가 정말 중요하다고 생각하거든요.
김학순 할머니가 최초증언자였기 때문에
이 운동이 초기부터 굳건하게 설 수 있는 큰 영향을 미쳤다, 라고 저는 믿고 있습니다.”
- 이미경 前 국회의원 인터뷰 中-
■ 최초공개, 가해국에서의 증언
피해자의 증언을 통해 가해국과 가해자의 인정과 반성을 이끌어 내고자 했던 활동가들.
김학순 할머니의 최초증언 4개월 후 1991년 도쿄의 한 강연장은 뜨거운 열기로 가득했다. 정원이 200명이었음에도 400명이 넘는 사람들이 찾아왔었다고 하는데. 이들은 대부분 김학순 할머니의 이야기를 듣기 위해 모인 ‘일본’사람들이었다. 가해국 그리고 가해국민 앞에서 일제의 모든 만행을 고발한 김학순. 당시 현장에 있던 양징자 대표는 김학순의 증언에 사람들은 충격과 죄책감을 느끼는 분위기였다고 한다. 당시의 분위기가 생생히 담긴 '도쿄에서의 김학순 할머니 증언 영상'이 30년 만에 《시사직격》을 통해 공개된다.
김학순 할머니가 가해국에서 피해 사실을 증언하고 가해 국민에게서 열띤 반응을 받을 수 있었던 데는 또 다른 일본군‘위안부’피해자, 배봉기 할머니의 영향이 있었기 때문이다. 해방 후, 오키나와에서 체류하기 위해 어쩔 수 없이 ‘위안부’ 피해 사실을 말해야만 했던 배봉기 할머니. 《시사직격》은 배봉기 할머니가 유일하게 마음을 열었던 김현옥 씨와 배봉기 할머니를 취재했던 작가 가와다 후미코를 만나 이야기를 들어보았다.
“일본뿐 아니라 어디에도 가서, 내 이 증언은 꼭 하고 싶어요.
좋아질 때까지, 언제든지, 내가 살아있을 때까지, 언제까지라도 내가 이것을 하겠어요. ”
1991년 12월 9일 김학순 할머니 증언 中
“일본이 과거에 이런 일을 행했다는 사실에 충격을 받거나
피해 당사자를 보면서 크게 죄책감을 느끼는 분위기였어요“
- 양징자 일본군‘위안부’ 문제 해결 전국행동 공동대표 인터뷰 中-
■ 일본 천황에게 유죄를 선고한다
2000년 12월, 도쿄 구단회관에서 일본군 성노예 전범에 대해 열린 국제법정이 열렸다. 남한과 북한, 일본 그리고 국제 사회까지 공조하여 히로히토 일본 국왕에게 일본군의 강간과 성노예제에 대한 책임을 물어 유죄를 선고하였는데. 이 판결은 민간법정이었기에 법적 강제력을 가지지는 않았지만, 국제연대를 통해 시민의 힘으로 일본군'위안부' 문제를 법정에 올리고, 전시 하에서 발생한 여성에 대한 폭력을 단죄할 필요성을 확립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큰 사건이었다.
”히로히토 유죄, 했을 때 뭐 으악 구단 회관이 떠나갔죠.
이건 국제법에 기초해서 봤을 때 범죄다, 는 걸 완전히 알게 한 거죠“
정진성 서울대 교수 인터뷰 中
그로부터 21년이 흘렀다. 그러나 일본군‘위안부’ 문제해결은 아직도 앞으로 많이 나아가지 못한 듯하다. ‘위안부 운동’ 방식에 대한 문제가 제기되었고 심지어 위안부의 역사적 진위 논쟁까지 다시 살아나고 있는 상황. 이제 그만하면 됐다고, 잊을 건 잊어야 한다고 말하는 사람들도 늘어나는 지금. 30년 전 시대의 금기에 맞서서 인권의 가치를 세우기 위해 피해자와 운동가들이 보여줬던 불굴의 용기를 다시 소환하여 일본군‘위안부’ 운동이 앞으로 가야할 방향에 대해 얘기한다.
'위안부' 공개 증언 30주년 - 김학순, 다시 우리 앞에 서다 편은 KBS1TV 금요일 10시 《시사직격》에서 방송된다.
탐사 보도의 노하우와 정통 다큐멘터리의 기획력을 더했다! 《시사직격》
일본 강제동원 손해배상사건과 제주 4.3 군사재판 희생자들의 재심사건 담당.
거대한 국가 폭력에 항거하는 피해자의 곁을 묵묵히 지켰던 임재성 변호사와 함께합니다.
매주 금요일 밤 10시, KBS 1TV 방송
✔ 제보 : 010-4828-0203 / 시사직격 홈페이지 / betterkbs@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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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 авг 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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Комментарии : 52   
@user-lo6kw8oh4u
@user-lo6kw8oh4u Год назад
대단한 용기입니다 잊지 않겠습니다 거짓은 진실을 이길수 없습니다 함부로 지껄이면 천벌받아요
@rorobrothers21
@rorobrothers21 3 года назад
우리가 몰라주면 누가 알아주나 산증인이 있는데도 믿어주질 않고 극우가 판치는세상..정치적으로만 이용하려는 사람들 너무 안타깝고 슬프고 화가납니다
@MJ-kt1td
@MJ-kt1td 3 года назад
너무 가슴이 아프고 참담한 현실입니다 피해자는 있어도 가해자는 없는 상황이 어이가 없습니다
@ovors
@ovors 2 года назад
얼굴 대놓고 드러내면서 반대 시위 하는 사람들은 역사를 인지하고 있는 건가 ? 무식한 놈들이 신념 가지면 이래서 무섭다
@user-tw8mm9dn6u
@user-tw8mm9dn6u 9 месяцев назад
위안부는 우리나라 여성뿐 아니라 다른 나라 여성들도 있어요. 이게 알려져야 해요. 가슴이 너무 아프고 슬프네요ㅜㅜ
@FGLJK
@FGLJK Год назад
처음부터 끝까지 시청했습니다. 결국 역사교육, 시민사회, 최종적으로는 정치의 역할이 중요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BYOUN890418
@BYOUN890418 3 года назад
참 가슴 아픈 일이다. 일본에도 저렇게 좋으신 분들도 많군아
@setokisara230
@setokisara230 2 года назад
일본 자국민들도 마찬가지로 전쟁터에 끌려갔고,특히 내선일체라는 명목하에 일본 황족이던 이방자를 통보도 없이 일방적으로 영친왕과 강제결혼 시킬 정도로 자국민 역시 예외없이 도구와 소모품 취급했으니...더 그렇겠지요
@tv2573
@tv2573 2 года назад
역사란 사실만 기록하는 것이다.
@user-cx7rx3rs7h
@user-cx7rx3rs7h 4 месяца назад
시대를 잘못 만나서 고생 많이 하셨습니다..국회의윈 감이십니다...
@jayli2793
@jayli2793 2 года назад
정의연 논란에는 침묵하고?
@4-tr4sk
@4-tr4sk 2 месяца назад
대단하고 존경스럽 네요. 일본은 하루빨리 위안부 피해자한테 사죄를 하면 좋겠네요
@user-yt7gr7sngw
@user-yt7gr7sngw 3 года назад
故심미자 위안부 할머니 “ 정의연, 위안부 피해자 감별 엿장수 맘대로” 정의연 전횡 고발 생전 자필 일기장 입수 “정확한 기록·조사 없이 자의적 방법으로 정대협 125명 위안부 판정” 불편함 토로 남산 ‘기억의터’조형물 ‘대지의 눈’ 기록엔 정대협 의견과 다른 할머니들 이름 빠져 회계의혹 이어 ‘단체 중심주의’ 논란 예고
@user-gy1xn9qc5f
@user-gy1xn9qc5f 3 года назад
백세 어른에게 물으면 잡혀가지 않기 위해 15세도 결혼 하였다 말해
@jadoomom
@jadoomom 2 года назад
위안부 반대 시위 하는 사람은 역사를 제대로 아는 사람인가? 아니면 가짜 뉴스에 취한 사람들인가?
@user-sx1tn4vo2n
@user-sx1tn4vo2n 5 месяцев назад
장소는 일본 도쿄입니다
@csb0177
@csb0177 8 месяцев назад
30% 는 무엇때문에 ?
@user-ss8zb6dg7d
@user-ss8zb6dg7d Год назад
고노담화 전에 1993 1992 미야자와 총리 한국국회 방문 사과가 있었다.
@Romansoo303
@Romansoo303 2 года назад
드러운 것들 저따위로 하면서 일본한테 뭘 바라냐???? 하기는 뭘해 그냥 다 떄려쳐라
@user-sx1tn4vo2n
@user-sx1tn4vo2n 5 месяцев назад
조선위안부 할머니들은 애국자입니다
@user-uf8lh2qh2i
@user-uf8lh2qh2i 2 года назад
2000년에 최종재판할때 히로히토는 죽은지 꽤됐는데ㅠㅠㅠ 그때 유죄선고하면뭐함...
@user-gi9qy8rp4b
@user-gi9qy8rp4b 3 месяца назад
자기들 일 아니니까 쉽게 생각하는데 저분들은 자기 인생을 망친거야 일본 군인들이
@user-sx1tn4vo2n
@user-sx1tn4vo2n 5 месяцев назад
2000년12월12일 미치노미야히로히토는 유죄판결을 받았습니다
@daphnekhang7577
@daphnekhang7577 3 месяца назад
여명의눈동자. 한국 최고의 드라마. 전반부에 위안부, 마루타731, 조선인학도병 다 드러나 있다. 그때도 그렇고 지금도 일본정계는 한국식민지를 정당화하는 무리들이 계승하고 있다. 지금도 여전히 일본은 한국에게 도움이 되는 나라가 아니다. 한국은 과거 그들의 죄악을 알리는 일을 멈춰서는 안된다.
@user-lp8tq7eb3f
@user-lp8tq7eb3f 3 года назад
앙톡 영상 왜 내리셨어요? 민주당 황영선 의원과 관련된 은엄폐인가요?
@yhj606
@yhj606 2 года назад
🐶🐶
@swlee4903
@swlee4903 3 года назад
윤정옥 교수
@tv2573
@tv2573 2 года назад
KBS란 방송 수준이 이정도라니 한심하다.
@cJeremy
@cJeremy 3 года назад
아직도 "한국엔 친일이 애국이다".. 라는 놈들 깔렸지... 에휴
@mrHwang-mn4pu
@mrHwang-mn4pu 3 года назад
지금의 좌파보단 낮죠 일본도 안좋지만 이런일은 해결하면서 좌파는 없어야하죠
@TV-ix7kq
@TV-ix7kq 2 года назад
내가 수양딸로 간 집은 평양부 경제리 133번지였다. 그 집에는 나보다 먼저 온 양딸이 한 명 더 있었다. 나는 그 집에서 금화라고 불렸다. 그 언니하고 나는 평양 기생권번에 같이 다녔다. 그 권번은 2층집이었는데 대문에 큰 간판도 있고 생도도 300명이나 있었다. 나는 2년 정도 권번에 다니면서 춤, 판소리, 시조 등을 열심히 배웠다. 권번에서 졸업증을 받게 되면 정식 기생이 되어 영업을 할 수 있었다. 그런데 나이가 열아홉 살이 되어야 관에서 기생 허가를 내주었다. 졸업하던 해 내 나이가 열일곱 살이라 졸업을 하고도 영업을 할 수 없었다. 그래서 양아버지는 나를 데리고 여기저기 쫓아다니면서 허가를 받아보려고 애를 많이 썼다. 내가 나이보다 몸이 성숙하여 양아버지는 나이를 늘려 이야기했지만 관에서는 실제 나이가 열일곱 살이라 안 된다고 했다. 국내에서 우리를 데리고 영업을 할 수 없었던 양아버지는 중국에 가면 돈을 벌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그래서 그 집에서 함께 수업을 받았던 언니와 나는 양아버지를 따라 중국으로 가게 되었다. 그때가 1941년, 내가 열일곱 살 나던 해였다. 양아버지는 중국으로 떠나기 전에 어머니에게 연락을 하여 중국으로 가는 것을 허락받았다. 떠나는 날 어머니는 노란 스웨터를 사가지고 평양역까지 나와서 배웅해 주었다. 일본군에게 끌려갔다고? 거짓말 하지 마라!
@Grace-tq5tm
@Grace-tq5tm 4 месяца назад
이러면 벌받아요
@kijinkid2000
@kijinkid2000 2 года назад
할머니들 자체가 가짜.
@rru3734
@rru3734 3 года назад
지겹지도 않나, 또 선거철 왔는갑다. 위안부가 무슨 정치 도구도 아니고, 쯧
@jungoo6746
@jungoo6746 3 года назад
이 모질난 자식아 선거랑 저게 무슨 상관이니. 내용의 본질을 좀 알어라
@MJ-kt1td
@MJ-kt1td 3 года назад
선거랑 무슨 상관인가요??님의 말 한마디에 할머니들 가슴에 상처 받아요 얼마나 아프고 외롭고 서럽고 힘든 시간을 버티시고 애를 쓰고 살았을지 한번 생각을 해보시고 말을 내뱉으세요 입에서 나온다고 다 말이 아닙니다
@user-fr3lm3um2c
@user-fr3lm3um2c 3 года назад
정치병 도진애들 나오는거보니 선거철이 오긴 왔나보네
@illusion1490
@illusion1490 2 года назад
네가당한일이 아니라구 함부로 지겹다는둥 떠들지마라 . 8월 14일이 무슨날인지도 넌 모르지?
@user-wi3il4xc2r
@user-wi3il4xc2r Год назад
ㅋㅋ 끌려갔냐 부모들이 팔아서 매춘부로 돈벌러간것 ⁉️
@user-pt6ip7bn1m
@user-pt6ip7bn1m 4 месяца назад
낭자들이 없다 이게 여자들 만의 문제인가
Далее
Разоблачение ушные свечи
00:28
Просмотров 504 ты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