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쩌다 게릴라전으로 조금 피해를 준다고 해도 사실 당시 프랑스군이 맘먹고 포병화력및 병력운용 했으면 조선군이야 뭐.. 우리가 적을 얕보면 절대 안된다는건 만고불변의 진리이지만 지금도 현장전선의 군대 병사들은 엄청난 고역과 타향살이까지 하면서 미션이 주어지면 쉽고 빨리 끝내려고하지 그런 냉철함을 유지한다는게 불가능하죠. 그런데 프랑스군은 이미 오랜기간 제국주의에 익숙해서 일개 병사들도 목숨걸고 고생해서 식민지 획득하면 지들도 뭔가좀 자신의 고생댓가로 좀 챙긴다는 약탈주의도 상당했을겁니다. 나중 신미년 미군들은 그런 식민지전쟁에 길들여진 군대는 아니었으니 민폐는 훨 적었던것 같구요. 그런데 당시 강화에 출병한 미군과 프랑스군 둘중 누가 더 강했을가요? 해군은 아무래도 프랑스군같은데 지상군은 개인화기인 미니에와 미군 롤링블락부터 포병화력, 화기수준은 뭐 비슷해 보이고 질적으로도 유럽국지전및 식민지전을 줄곧 치뤄온 프랑스군이나 남북전쟁과 인디언전을 치뤄온 미군들 정규전이나 각개전투 실전경험노하우도 뭐 양측다 충분할것 같은데..
나라 위해 헌신한 모든 영령들 특히 전력의 현격한 열세 속에서도 감투 정신이 뭔지를 보여준 조선군 전사들을 추모합니다. 삼천리 금수강산을 자신들의 선혈로 붉게 물들인 그들이 있었기에 오늘의 우리가 우리인 것입니다. 이미 이기기 힘든 막강한 적을 맞아 아낌없이 자신을 던진 영웅들을 우리 역사는 언제나 기억하고 또한 추모할 것입니다. 자주국방... 내 손으로 지켜내지 못하면 어떤 일이 벌어지는가... 지나간 역사는 보여주고 있지 않습니까. 절대로 남들이 함부로 넘보지 못하는 나라.. 그 나라 만들어서.. 영웅들의 희생이 헛되지 않았음을 보여줬으면 합니다. 강화도에서 순국하신 조선의 전사들께 감사합니다.
이 당시 조선은 사실상 나라가 아님. 그냥 핵폐기물이지. 이 때부터 강제로 개항해서 재무장을 해도 늦은 판국에 저런 원시시대 굿판을 벌이고 있었으니 망하는건 말 그대로 시간문제였음. (놀랍게도 정확하게 병인양요 터지면서 양반 상놈 놀이 할 때 일본에서는 메이지 유신 시작하면서 폭발적으로 성장 하였음. 이 단계에서 부터 이미 비극적 미래는 결정된 것이나 마찬가지임.)
이런 개념부터 버려야 합니다 저시대에 유럽의 문물을 받아들인다고 무조건 근대국가가 된다는 개념부터 버려야 합니다. 근본적으로 조선의 전통적인 국가 통치제도와 기준과 법령과 제도가 있는데 전혀 다른 개념의 국가통치개념과 법령 제도와 기준을 바꿔야 하는 부분인데 이걸 하기 위해서는 국내에서 지지하는 여론도 필요하고 바꿔야 하는 법령과 제도를 이해하고 받아들려야 하는데 500년 전통의 조선이 이걸 쉽게 받아들리고 자국내에 정착시키고 제도화 시키는건 절때 쉬운 일이 아님니다 설령 개혁해서 제도화를 만들고 법령을 만들었다고 해도 이것이 조선 전국으로 행정력이 미치고 안전화가 되기 위해선 당시 일반 백성들과 지배계층인 사대부들의 받아들이고 이해해야하는 단계가 필요한 부분입니다.
@@MoonbomSunny 먼소리야;;긍까 댁말은 지도부층이나 백성들이 받아들일 시간이 없었다 이 말이잔음? 그럼 일본은 머 넉넉하게 있었음? 하긴 일본은 조선처럼 자국민 절반 이상을 노예로 부리고, 사대부니 양반이니 하는 쓰레기들이 백성을 악독하게 착취한진 않았으니. 그런 논리가 글쓴이가 조선은 나라가 아니였다라는 얘기하는거잔아? 조선은 애초에 탄생했으면 안된 나라였어. 영화니 드라마처럼 각색하고, 판타지로 만든 역사를 배우니 참.. 이러면서 역사를 잊은 민족은 미래가 없다라고 주장들하고. 아니 판타지가 역사야?ㅋㅋㅋ 참..
@@MoonbomSunny 자기 조상이 소수 개화파가 아닌 이상 사실 누워서 침뱉기다. 반상을 막론하고 척화와 무관한 사람은 거의 없다. 역사란 정답지를 보면서 당시엔 왜 몰랐냐고 비난할 때 할아버지의 할아버지는 왜 모르셨을까 하고 이해해 보거나 비난 받던 개화파는 얼마나 참담해 했을까 하고 반성해 보는 것도 필요하다.
@@김동균-t8u5j 자기 조상이 소수의 개화파가 아니면 누워서 침뱉기다 라고 하시는데 그건 님의 혼자만의 헛소리죠 제가 말하는거는 당대에 조선이라는 나라가 가지고 있는 전통적인 통치이념과 법령, 제도등이 있는데 이걸 하루 아침에 전혀 다른 통치이념과 법령, 제도를 개혁하는 것은 단순히 문물만 받아들린다고 쉽게 바뀌는게 아니다 라는 걸 말하고 있는건데 뭘 헛소리인지 모르겠네요 물론 본인이 말하는 것 처럼 역사는 결과물을 보고 다방면으로 다양한 시각으로 보면서 당대의 상황을 이해하고 오늘날과의 상황도 비교분석도 하면서 답을 찾는 경우도 있지만 자기 조상이 개화파가 아니라면 말 해봤자 의미없다는 식에 말은 헛소리로 보여짐니다.
조선 후기는 안타까운 일이 많기는 하지만 기존의 선입견마냥 이 시대의 조선이 마냥 문제만 있었다 보기는 어렵습니다. 특히 이 시대의 조선이 왜 개화와 서구화에 대해서 부정적이었을까 생각해보면 답이 나옵니다. 조선은 고종이 즉위하기 전부터 이미 오랜 시간동안 천주교도에 대한 박해가 있었습니다. 조선은 전제군주정이었기 때문에 천주교가 내걸었던 인간평등사상을 용인하기 어려웠을 겁니다. 이 시기의 천주교를 주로 믿었던 사람들은 식자층이었던 양반이 다수였고 초기 조선의 천주교 박해는 역모나 정치적 이유로 연루되어서 죽은 사람이 많았습니다. 그 뒤에는 일반 백성들에게도 천주교 사상은 퍼졌지만 이때까지도 대다수의 사람들은 천주교에 대해서 거부감이 있었고, 천주교도들이 저지른 잘못된 일들이 문제가 되어서 서양인과 서양인들이 믿는 종교에 대해서 극도의 반감이 키워졌습니다 신유박해와 황사영 사건이 결정적으로 조선은 천주교와 서양 학문에 대해서 용인하기 어렵다고 생각했습니다. 특히 황사영 사건은 청나라 황제에게 조선을 청나라의 한 지역으로 삼아주십시오. 대신 북경과 같이 천주교 포교가 자유롭게 이루어지도록 해주십시오 라는 내용이었습니다. 이는 오늘날에도 누가 이런 식으로 말한다면 굉장히 비판 받을 내용이 아닙니까? 거기다가 정조는 서양의 기술에 대해서 어느 정도 관심은 있었지만 이는 청나라를 통해 신하들이 검열하며 "검증된" 기술과 물건에 대해서 관심이 있었을 뿐이지 모든 서양 문물에 대해서 개방적인 왕은 아니였습니다 최초의 천주교 박해가 일어난 것도 정조시대 였습니다. 오히려 정조는 성종 이후 최고의 성리학적 군주로 칭송 받은 적이 있었던 만큼, 이후에 있을 천주교도의 행태를 봤다면 정조는 오히려 뿌리 뽑을 정도의 처벌을 했을겁니다. 가톨릭과 그에 기반한 종교을 믿었던 서양은 천주교 전파 이래 오랜 시간 동안 종교를 기반으로 정치를 해왔지만 중세시기부터 점점 종교와 정치의 분리가 심화되었습니다. 근세에는 종교는 종교, 정치는 정치로 완벽하게 분화되었습니다. 반면 동아시아 왕조들의 경우 정교분리가 이루어진 역사가 길지 않았습니다. 오늘날에 흔히 유교는 종교인가? 이념인가? 이렇게 생각하는 이유가 정교분리 시기가 늦었기 때문이라고 볼 수 있을겁니다. 유교는 정치적 이데올로기이자 절대 다수의 사람들이 믿고 있는 기본 신념이었기 때문에 천주교라는 새로운 종교는 아시아에서는 새로운 이데올로기로 받아들일 경우 정부의 정통성이 없어지는 결과를 낳게 됩니다. 조선과 일본의 서구화를 비교해보면 서구화를 하기 위한 단계부터가 너무나도 다릅니다. 일본은 전국시대에 이미 서양 문물을 받아들였고 이는 오다 노부나가가 일본을 통일한 기반이 되었으나 노부나가 이후의 일본의 통치자들이 서구에 대해서는 정반대의 반응을 했습니다. 특히 이에야스와 그 후손들은 일본을 통일한 이후에 기존에 있던 서양과의 교류를 차단하고 데지마 한 곳만 열어두었을 정도로 서양 세력은 도움은 되는 세력이지만 나아가 그 위험성에 대해서 깨닫았을 겁니다. 거기다가 일본의 경우 천주교도를 조선보다 더 심하게 박해 했고 유명한 시마바라의 난을 진압할 때 일대의 주민을 학살했습니다. 일본은 오늘날까지도 천주교가 기를 못쓰는 곳으로 오히려 수차례 박해를 받고도 천주교와 기독교가 뿌리를 깊게 박은 오늘날 한국이 이례적으로 볼 일입니다. 일본의 경우 근 300년 가깝게 서양인들을 살게 하고 좀 더 깊이 연구하고 배워왔다면, 조선은 서양인의 대한 연구를 할 준비조차 되어있지 않았습니다. 벨테브레이 같은 인물도 있었지만 그건 일시적인 사건에 가깝습니다. 오히려 막부가 무너지고 무분별하게 서구 문물을 받아들이고 그걸 잘못 융합한 결과가 모두가 잘 아시는 일본 제국의 행태입니다. 또한 고종시기에 이르러서 조선도 서구 문물을 받아들였지만 고종의 경우 최신식 서양 무기를 지나치게 다양하게 많은 종류를 사들였고 무기만 최신식에 화려한 군대였지 보급이 지나치게 난해했고 그걸 사용하는 군인들의 질이 떨어졌습니다 서구 문물이 달콤하기만 한 무안단물이었을까? 라고 생각해 볼 법한 내용입니다 그리고 대원군이 개화에 대해서 극도로 부정적으로 만든 사건이 병인양요 2년 후에 일어나게 됩니다. 이 사건이 그 유명한 오페르트 도굴사건입니다. 안타깝게도 조선의 개화는 지도층의 무지에 대한 것도 있었지만, 첫 단추부터 잘못끼게 만든 일련의 사건들도 큰 연관이 있다고 볼 수 있을겁니다.
천주교의 평등 사상 때문에 천주교가 박해 받았다는 주장은 논리적으로 문제가 많을수밖에 없지요 기독교 천주교를 국교로 성립되거 전성기였던 고대 로마 중세 유럽에서는 철저한 신분차별이 자행된 것을 보면 천주교가 인간 평등을 추구한다는 할수가 있습니까? 천주교는 예수그리스도의 말씀에 복종하기 위한 종교조직이지 천부 인권설에 근원한 평등을 추구하는게 아니지요 천주교가 평등을 추구하는 종교라면 고대 로마와 중세서양의 권력자들이 무엇때문에 국교로 삼고 우대하려고 하겠나요 중세 서양의 억압적인 신분 차별만 보더라도 말이 안되며 천주교가 박해받은건 다른 사상 종교의 존재를 인정못하는 유교의 배타적 성격 때문이고 무엇보다 천주교의 천당 지옥설 같은 사후세계적 교리가 불교의 교리와 유사한 측면이 있었기에 불교의 일부 종파라고 조선 위정자들은 그렇게 생각하여 배불숭유하는 조선의 국가체제의 성격에서 불교와 유사한 종교의 부상은 위협일수밖에 없지요 그리고 천주교는 선교사들의 일방적 전파로 전해진게 아니라 조선내 진보적인 학자들의 자발적인 노력으로 도입된 것이고 정조는 천주교를 금지하기만 했지 주로 서적 소각이나 배교 권유 같은 온건적인 탄압만 추구했지요 순조 이후의 대규모 체포 처형 같은 가혹한 탄압을 한것도 아니어서 후대의 천주교 탄압과 비교하기에 금물이 많고 천주교로 지목된 이가환 정약용 같은 시파인사들을 두둔한게 정조였지요 그리고 신유박해는 황사영 사건 이전에 일어난 최초의 대규모 탄압이며 정치인 뿐만 아니라 일반 신자들 여성 신도들까지 잡아다 처형할 정도롤 정치 사회문화적인 복합적 성격으로 작용한게 천주교 탄압이었고 황사영은 이런 가혹한 신유박해에 분노하여 청의 힘으로 천주교 탄압을 멈추려는 차원에서 백서 사건을 일으킨 것입니다 조선 정부가 야만적인 탄압을 자행하지 않았다면 황사영이 백서사건을 일으킬리가 있습니까? 그리고 수원화성 건설때 기기도설 같은 서양의 과학기술 서적을 중심으로 건설공사를 추구한게 정조였지요
@@타짜-c5e 이렇게 독해력이 떨어져서 ㅋ 결론은 당신이 내려야지 ...원댓글은 그시대상황을 설명하는데 뭔 결론타령인지 내가 내려주면 그시대 조선 기득권세력들은 이미 천주교로 인해 서양문물에 대한 반감이 있었는데 프랑스의 만행으로 더더육 쇄국을 길을 걸었다 ...이말이지
병인 양요 와 신미 양요 도 영화 의 소재로 훌룽한 소재가 될 수 있다 임진왜란의 이야기를 영화 소재로 해서 를 보았고 병인양요 와 신미양요 를 역사적 사실에 입각해서 영화 화 하면 좋겠다 교육적으로 좋고 흥행 에 도움이 될 것이다 배경이 세계적인 국가와 동양의 이름 없는 국가의 전쟁 이 흥미로운 일이다
이런 개념부터 버려야 합니다 저시대에 유럽의 문물을 받아들인다고 무조건 근대국가가 된다는 개념부터 버려야 합니다. 근본적으로 조선의 전통적인 국가 통치제도와 기준과 법령과 제도가 있는데 전혀 다른 개념의 국가통치개념과 법령 제도와 기준을 바꿔야 하는 부분인데 이걸 하기 위해서는 국내에서 지지하는 여론도 필요하고 바꿔야 하는 법령과 제도를 이해하고 받아들려야 하는데 500년 전통의 조선이 이걸 쉽게 받아들리고 자국내에 정착시키고 제도화 시키는건 절때 쉬운 일이 아님니다 설령 개혁해서 제도화를 만들고 법령을 만들었다고 해도 이것이 조선 전국으로 행정력이 미치고 안전화가 되기 위해선 당시 일반 백성들과 지배계층인 사대부들의 받아들이고 이해해야하는 단계가 필요한 부분입니다.
@@MoonbomSunny 무기 급 자체가 달랐는데 안받아들이면 이길 수 있냐? 말이 되는 소리를 해야지 이런 국뽕인 애들 역겹네 당장 임진왜란 때의 비극을 보고도 이런 생각을 하나? 임진왜란 및 정유재란은 그나마 이순신이라는 위인 한명이 화포로 일본의 보급로를 끊는 변수가 생기면서 막은거지만 병인양요, 신미양요 때는 조선은 여전히 활 칼 창이나 쓰는데 프랑스와 미국은 신식조총과 더불어서 근대무기들로 무장되어 있었는데 조선이 서양의 좋은 문물을 받아들였다면 되도 않는 전통 지키려다가 나라 먹히는 비극이 안일어났겠지 스스로 고립되어놓고 피해호소하는거 극혐
프랑스군이 조금만 더 많았으면 조선을 정복 할 수도 있었고, 그랬으면 우리가 야만과 미개함에서 벗어나 좀 더 빨리 문명화가 되었을 텐데, 안타깝네요. 그래도 프랑스가 참교육을 좀더 해줄 수 있었는데, 조센이라는 나라(나라라고도 할 수도 없지만) 워낙 별 볼일 없었으니 그럴 가치도 못 느꼈겠죠 ㅋ 어쨌거나 창피함은 후손들의 몫 ㅠㅠ
조선이라고 하는 나라가 미개하고 야만적이다는 개념이 어디서 나오는지 모르겠네요? 조선도 나름 중세시대 기준에서 보면 문명국이고 나름에 독자적인 문화도 있는 국가입니다 단지 18세기 19세기 넘어오면서 근대사회에는 수준에는 뒤처진 국가였던거지 야만적이고 문명국이 아닌건 아니죠 그리고 프랑스군이 조금만 더 많았으면 조선을 정복하고 조선이 근대화가 될 수 있을꺼라는 말 같은데 지금 당신이 말하는 거는 일제강점기 때 일본 극우세력들이 주장하는 식민지근대화론이랑 같은 수준으로 말하는거에요 역사를 알여면 제대로 된 시각부터 갖추고 보세요
@@MoonbomSunny 역사를 모르시는군요. 병인양요 당시 런던 사람들은 지하철을 타고 다녔는데, 조선은 지하철은 고사하고 신발을 만들 능력도 없어서 풀로 만든 걸 신발이라고 신고 다녔죠 ㅋ 다른 나들이 삼권분립을 하고 있을때 조선은 재판이라는 개념도 없어서 무작정 잡아다가 '네 죄를 네가 알렷다!'하고 고문하고 죽이는 수준이었죠. 또 다른 나라들이 신식 총과 증기기관을 쓸 때 조선은 몇 백년째 쓰고 있는 조총이 전부였고, 배는 아직도 노를 저어야 가는 나룻배같은 것들 뿐이었죠. 다른 나라들도 그랬다면 그러려니 하겠죠 ㅋ 이런 미개함은 야만성에서 나오는 겁니다. 당시 조선인들을 찍은 사진도 못 보셨나요? 완전히 더러운 거지들꼴입니다. 사진인데도 구리내가 진동을 할 정도죠 ㅋ
야만이라 말하는것은 현대 시점이라 잘못 설명한 것이고, 전쟁에서 약탈과 방화 민간인 학살은 당연한거 아닌가. 그걸 갖고 비난하고 안타까워하는 것은 비현실적인 관점이라고 지적하고 싶다. 내가 지금 당장 전쟁에 있는 군인이라면 강간, 살인 방화 약탈은 당연하게 저지르고 다녔을 것이다. 그리고 정당하다. 전쟁은 개인에게 너무나도 스트레스를 주고 정신적 고통을 주기 때문에 파괴적 행위는 전쟁에서 정당화 할 수 있는 것이다.
조선의 그지 같은 외교정책 떄문에 나라가 거지가 되었지 아무튼 그 당시 왕, 양반 같은 권력자들의 모습을 보고 우리는 깨달아야 함, 무능한 위정자들은 현재도 존재하고 있다고 더듬어당 같은 국익을 위한 것은 생각도 안하고 지들 안위만 생각하는 인간들 별반 당시 조선 위정자들과 다르지 않다. 역사를 알아야 미래를 바꿀 수 있다. 나라를 지키기 위해 헌신하는 이름모를 민초들에게 감사하다. 무능한 위정자 때문에 희생하신 분들에게 애도를 표하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