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샤이닝스타-h1r 해태기아타이거즈의 역사와 광주의 역사를 모르시는 분들은 그렇게생각할 수 있습니다. 사람들은 원래 불편한것은 알려고하지 않지요. 하지만 이를 직시하는 사람들이 필요하고 이를 표현해주는 것은 미학입니다. 그에대한 관점에서 캐스터의 발언은 현대미술작품과 같습니다. 그러나 미술작품의 표현대상에 관심이 없다면 그것은 그냥 불편한 시청각물이 될 뿐이죠. 어떻게 느끼는지는 자유이나 우리나라 국민으로서의 역사와 긍지를 잃지는 마시기 바랍니다.
김응용 감독이 야구의 신을 이긴 것이 아니라, 포스트 시즌에 김응용 감독이 김성근을 이기고 난 후에, '마치 야구의 신과 싸우는 듯 했다' 고 인터뷰를 해서, 매체들이 김성근 감독을 '야신'이라고 칭하기 시작. 실상은 김응용 감독이 김성근 감독을 신으로 불러주고, 최고의 존중과 존경을 보이면서, 자신은 그 신 위의 위치임을 말한 것일텐데...기획 의도는 충분히 이해하지만, 뭘 좀 잘 알고 만들길 바람. 괜히 숟가락 얹을 생각은 마시고.
최태성 선생님 별의별 역사까지 다루시더니 야구역사를 가르치려는 좀 선넘은것 같습니다. 박정희가 머 조명탑을 세워줘서 직장인들이 퇴근하고 야구장에 간다느니 여름경기 가능했다느니... 이런 소리를 하시는데 박정희는 고작 동대문 야구장 하나에만 조명탑을 만들었고.. 또 거기에서 프로야구 창설때까지 야간 경기는 몇개의 시범경기에 불과했습니다. 또한 유신정권은 어떤 종목이든 야간경기를 제한했습니다. 야구장 조명탑은 프로야구 시행을 위해 81년도에 정부가 기부채납방식으로 국민에게 돈을 빌려 프로야구장에 조명탑을 세웠고.. 프로야구 시행후부터 직장인이 퇴근하고 야구장에 간다느니.. 이런게 가능했고. 야구가 흥행했던 것입니다. 아는 역사만 가르칩시다. 점점 이상한 길로 빠져들고 계시네요.
최태성 선생님은 역사 전문가라도 하지 넌 아니잖아 당연히 선수 출신이거나 협회 관계자가 아니기 때문에 세세한 흐름까지는 잘 모를 수 있고 전문분야도 아닌데 본인이 아는 범위 안에서 최대한 자세하게 설명을 하려고 한 게 대단한거지 너한테 선을 넘는다는 말 들으려고 저걸 하신게 아니라고
그렇습니다. 최초의 야구장 야간조명은 1963년에 야구대표팀이 아시아선수권대회에서 일본을 이긴 뒤 박정희가 '선물'해준게 맞지만 실제로는 시범경기 몇번하고 방치됐고 70년대 오일파동 당시 에너지절약이 전국민적인 과제였기 때문에 제대로 쓰여지지 못했죠. 프로야구 태동과 관련해서 얘기 하려면 5공 전두환 정부 또는 70년대 중반에 프로야구 출범시키려 했던 민간 단체를 언급하는게 맞습니다. 박정희 당시 정부는 오히려 프로야구 출범을 막는 입장이고 실제로 그렇게 관철시켰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