딱 한 번 가봣던 절. 그러나 언제나 가보고 싶은 살아있는 심중사찰. 이젠 병든 다리 때문에 다시는 가볼 수 없는 영원한 기억 속의 절로 남을 수밖에 없어 아쉽기만 합니다. 이렇게 영상으로 마주하니 더없이 반갑고 인생의 회한이 뒤따릅니다. 힘들여 올라가던 그 해 여름에 비오듯한 땀방울 훔치면서 들어온 석축 아래 메리골드인지 뭔지 키작은 국화 모양의 금빛 꽃이 지금도 선연하다. 또 한 번 가보고 싶습니다.
시조가 퇴계선생님이시고 친정이 저기인데 부모님이 다 돌아가셔서 산소에 갈때나 가보려나.나도 이제 나이가 드는지 어린시절이 자주 생각도 나고 세월의 무상함에 가슴이 아리고 눈물이 난다.북곡초 다닐때 소풍은 항상 청량산 및 모래밭으로 갔었는데 그땐 모래밭이 아주 넓고 모래는 또 어찌나 부드럽고 반짝거렸던지... 중학교 다닐때 청량산 밑 버스정류장서 어떤 아저씨가 내게 말을 하길 "내가 등산을 좋아해서 전국 유명한 산은 거의 다 가봤는데 여기가 젤 좋은것 같다"했지.외지인도 별로 안오던 시절이어서 부끄러워 아무말도 못했었는데.., 지금은 내 뿌리가 어디인지도 잊은채 ,,,모든게 다 가슴아프다.객지에서 힘든인생 삶의 마무리는 어디에서 해야할까.
@@eternitykoch2412 그곳은 사찰보다 경치좋은 곳 도교의 근본이 있는 곳임ㆍ 왜 대웅전이 없을까요ㆍ 님ᆢ청량산은 바위산이 아니지요ㆍ언듯보면 바위지만 사실은 해저가 융기된 사암 즉 모래 자갈이 굳은 암석ㆍ 밤에가보면 음침해서 ㆍㆍ 그런 기운은 사찰로는 어려워요ㆍ 모든 산속의 사찰은 밤에 다 평온해요ㆍ 청량사는 음기가 너무 강해서 일반 스님들 수행처는 금물ㆍ 그냥잠시 ᆢ
@@std3786 님의 주장,이해하기가 힘드네요.청량산은 해발 870m 이며 태백산맥 줄기에 속해 있으며 주변에 기암괴석이 솟아 있고,사찰의 역사는 신라 원효 스님까지 거슬러 올라가며 최치원,공민왕,김생,이황이 머물렀었던 유서깊은 곳인데,산의 기반이 사암이라서 사찰이 있기엔 부적당하고 또 밤엔 음침한 기운이 돈다 하니,님의 말에 동의 하기가 어렵군요.
창원 문화원 박물대학57기 답사 갔다 온 청량사 가을 갔다 왔는데 자연 풍경이 너무 아름 다워서 내려 오기가 싫었던 경북 청량사 절 입니다 현판식 글씨체는 공민왕 쓰신걸로 알고 있어요 방송 해 주셔서 고맙습니다 나무아미타불관세음보살 나무아미타불관세음보살 나무아미타불관세음보살 소나무 설화 지도교수님께서 말씀 해 주셨습니다 스님 고맙습니다
옛날절들은 하나같이 풍광이 수려한곳에 있네 옛날이면 호랑이도 살고 늑대도 살았을텐데 저 깊은 오지에 어떻게 저런터를 만들었을고 옛날사람들의 안목과 자연과 어우러지고 건물기술에 참 감탄을 아니할 수가 없네 불교는 한국의 종교적 기능보다는 정신적 기둥에 해당하는 문화의 한축에 해당되지 기독교가 번성할려면 대중을 포용하는 자세는 가질필요가 있슴 그리고 도시 한가운데 어울리지도 않은 천박한 건물좀 짓지 않고 문화적으로 가치있는 건축을 할필요가 있슴
절(節) 이란? 명절.삼일절. 제헌절.광복절.개천절.성탄절. 을 뜻하며 모두가 홀수날자요. 홀수는 하늘과 사내를 뜻하며 탑(塔)도 홀수요. 부처님(父妻恁) 은 나의 어머니 성모임 입니다. 천지인은 하늘의땅 태극의자리에 다시온 사천왕이 천지인이며 세분은 하늘로 가시고 이땅에 남은 하나는 신라 풍류도의 성자 대보공 금알지 입니다.
절에 가서 스님께 인사하는데 모자도 안 벗네요 다 같이 공양할 때도 혼자서 모자를 쓰고 있네요 가장 기본적인 예절도 모르고 절에 가서 취재를 합니까?? 사진 작가는 불자 맞나요?? 많은 사람들이 보는 방송입니다 작은 실수도 보는 사람 불편할 수 있습니다 사진 찍는데도 기본 예절은 잊지요? 절에서도 당연히 지켜야 하는 기본 예절이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