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선미-c7gㄷㄷㄸㅈㄷㅈㄸㅈㄷㄷㄷㄷㄸㅈㄷㅈㄸㅈㄷㄷㄸㅈㄷㅈㄸㅈㄷㄷㄷㄷㄸㅈㄷㅈㄸㅈㄷㄷㄸㅈㄷㅈㄸㅈㄷㄷㄷㄷㄸㅈㄷㅈㄸㅈㄷㄷㄸㅈㄷㅈㄸㅈㄷㄷㄷㄷㄸㅈㄷㅈㄷㄷㄸㅈㄷㅈㄸㅈㄷㄷㄷㄷㄸㅈㄷㅈㄸㅈㄷㄷㄸㅈㄷㅈㄸㅈㄷㄷㄷㄷㄸㅈㄷㅈㄸㅈㄷㄷㄸㅈㄷㅈㄸㅈㄷㄷㄷㄷㄸㅈㄷㅈㄸㅈㄷㄷㄸㅈㄷㅈㄸㅈㄷㄷㄷㄷㄸㅈㄷㅈㄷㅈㄸㅈㄷㄷㄸㅈㄷㅈㄸㅈㄷㄷㄷㄷㄸㅈㄷㅈㄸㅈㄷㄷㄸㅈㄷㅈㄸㅈㄷㄷㄷㄷㄸㅈㄷㅈㄸㅈㄷㄷㄸㅈㄷㅈㄸㅈㄷㄷㄷㄷㄸㅈㄷㅈㄷㄷㄸㅈㄷㅈㄸㅈㄷㄷㄷㄷㄸㅈㄷㅈㄸㅈㄷㄷㄸㅈㄷㅈㄸㅈㄷㄷㄷㄷㄸㅈㄷㅈㄸㅈㄷㄷㄸㅈㄷㅈㄸㅈㄷㄷㄷㄷㄸㅈㄷㅈㄸㅈㄷㄷㄸㅈㄷㅈㄸㅈㄷㄷㄷㄷㄸㅈㅈㄷㅈㄸㅈㄷㄷㄸㅈㄷㅈㄸㅈㄷㄷㄷㄷㄸㅈㄷㅈㄸㅈㄷㄷㄸㅈㄷㅈㄸㅈㄷㄷㄷㄷㄸㅈㄷㅈㄸㅈㄷㄷㄸㅈㄷㅈㄸㅈㄷㄷㄷㄷㄸㅈㄷㅈㄷㄷㄸㅈㄷㅈㄸㅈㄷㄷㄷㄷㄸㅈㄷㅈㄸㅈㄷㄷㄸㅈㄷㅈㄸㅈㄷㄷㄷㄷㄸㅈㄷㅈㄸㅈㄷㄷㄸㅈㄷㅈㄸㅈㄷㄷㄷㄷㄸㅈㄷㅈㄸㅈㄷㄷㄸㅈㄷㅈㄸㅈㄷㄷㄷㄷㄸㄸㅈㅈㄷㅈㄸㅈㄷㄷㄸㅈㄷㅈㄸㅈㄷㄷㄷㄷㄸㅈㄷㅈㄸㅈㄷㄷㄸㅈㄷㅈㄸㅈㄷㄷㄷㄷㄸㅈㄷㅈㄸㅈㄷㄷㄸㅈㄷㅈㄸㅈㄷㄷㄷㄷㄸㅈㄷㅈㄷㄷㄸㅈㄷㅈㄸㅈㄷㄷㄷㄷㄸㅈㄷㅈㄸㅈㄷㄷㄸㅈㄷㅈㄸㅈㄷㄷㄷㄷㄸㅈㄷㅈㄸㅈㄷㄷㄸㅈㄷㅈㄸㅈㄷㄷㄷㄷㄸㅈㄷㅈㄸㅈㄷㄷㄸㅈㄷㅈㄸㅈㄷㄷㄷㄷㄸㄸㅈㅈㄷㅈㄸㅈㄷㄷㄸㅈㄷㅈㄸㅈㄷㄷㄷㄷㄸㅈㄷㅈㄸㅈㄷㄷㄸㅈㄷㅈㄸㅈㄷㄷㄷㄷㄸㅈㄷㅈㄸㅈㄷㄷㄸㅈㄷㅈㄸㅈㄷㄷㄷㄷㄸㅈㄷㅈㄷㄷㄸㅈㄷㅈㄸㅈㄷㄷㄷㄷㄸㅈㄷㅈㄸㅈㄷㄷㄸㅈㄷㅈㄸㅈㄷㄷㄷㄷㄸㅈㄷㅈㄸㅈㄷㄷㄸㅈㄷㅈㄸㅈㄷㄷㄷㄷㄸㅈㄷㅈㄸㅈㄷㄷㄸㅈㄷㅈㄸㅈㄷㄷㄷㄷㄸㄷㄷㄷㅊㅌㄸㅈㄷㄷㄸㅈㄷㅈㄸㅈㄷㄷㄷㄷㄸㅈㄷㅈㄸㅈㄷㄷㄸㅈㄷㅈㄸㅈㄷㄷㄷㄷㄸㅈㄷㅈㄸㅈㄷㄷㄸㅈㄷㅈㄸㅈㄷㄷㄷㄷㄸㅈㄷㅈㄷㄷㄸㅈㄷㅈㄸㅈㄷㄷㄷㄷㄸㅈㄷㅈㄸㅈㄷㄷㄸㅈㄷㅈㄸㅈㄷㄷㄷㄷㄸㅈㄷㅈㄸㅈㄷㄷㄸㅈㄷㅈㄸㅈㄷㄷㄷㄷㄸㅈㄷㅈㄸㅈㄷㄷㄸㅈㄷㅈㄸㅈㄷㄷㄷㄷㄸㄷㄷㄷㅊㅌㄸㅈㄷㄷㄸㅈㄷㅈㄸㅈㄷㄷㄷㄷㄸㅈㄷㅈㄸㅈㄷㄷㄸㅈㄷㅈㄸㅈㄷㄷㄷㄷㄸㅈㄷㅈㄸㅈㄷㄷㄸㅈㄷㅈㄸㅈㄷㄷㄷㄷㄸㅈㄷㅈㄷㄷㄸㅈㄷㅈㄸㅈㄷㄷㄷㄷㄸㅈㄷㅈㄸㅈㄷㄷㄸㅈㄷㅈㄸㅈㄷㄷㄷㄷㄸㅈㄷㅈㄸㅈㄷㄷㄸㅈㄷㅈㄸㅈㄷㄷㄷㄷㄸㅈㄷㅈㄸㅈㄷㄷㄸㅈㄷㅈㄸㅈㄷㄷㄷㄷㄸㄷㄷㄷㅊㄷㄷㄸㅈㄷㅈㄸㅈㄷㄷㄷㄷㄸㅈㄷㅈㄸㅈㄷㄷㄸㅈㄷㅈㄸㅈㄷㄷㄷㄷㄸㅈㄷㅈㄸㅈㄷㄷㄸㅈㄷㅈㄸㅈㄷㄷㄷㄷㄸㅈㄷㅈㄷㄷㄸㅈㄷㅈㄸㅈㄷㄷㄷㄷㄸㅈㄷㅈㄸㅈㄷㄷㄸㅈㄷㅈㄸㅈㄷㄷㄷㄷㄸㅈㄷㅈㄸㅈㄷㄷㄸㅈㄷㅈㄸㅈㄷㄷㄷㄷㄸㅈㄷㅈㄸㅈㄷㄷㄸㅈㄷㅈㄸㅈㄷㄷㄷㄷㄸㄷㄷㄷㅊㄷㄷㅊㄷㄷㄸㅈㄷㅈㄸㅈㄷㄷㄷㄷㄸㅈㄷㅈㄸㅈㄷㄷㄸㅈㄷㅈㄸㅈㄷㄷㄷㄷㄸㅈㄷㅈㄸㅈㄷㄷㄸㅈㄷㅈㄸㅈㄷㄷㄷㄷㄸㅈㄷㅈㄷㄷㄸㅈㄷㅈㄸㅈㄷㄷㄷㄷㄸㅈㄷㅈㄸㅈㄷㄷㄸㅈㄷㅈㄸㅈㄷㄷㄷㄷㄸㅈㄷㅈㄸㅈㄷㄷㄸㅈㄷㅈㄸㅈㄷㄷㄷㄷㄸㅈㄷㅈㄸㅈㄷㄷㄸㅈㄷㅈㄸㅈㄷㄷㄷㄷㄸㄷㄷㄷㅊㄷㄷ96ㅡㅡㅡㅡ듣드ㅡㅡ ㅡㅡㅡㅡ드ㅡㅡ트드ㅡ느ㅡㄷㄷ 드디어 ㄷㅅ즈ㅡ드ㅡㅡㅡ흐드틋듯드ㅡㅡㅡㅡㅡㅡㅡㅡ3즈 또 또 3ㅡ33333333333333 으으으 ㅡㅡ
멋지다 이 사람. 나는 이미지를 위해 형식을 지키느라 바빴다. 거침없는 나를 표현하고 싶었지만 딱딱한 형식에 구겨 넣어야 했기에 기이한 내가 되곤 했다. 거침없이 표현하라는 말은 그래서 의미가 있었다. 지위와 평판과 명예와 부에 짓눌려 내 자아는 무거웠다. 예의 바름, 사려 깊음, 존대에 짓눌려 내 자아는 무거웠다. 자아를 해체해서 자아를 무게를 덜어야 하다는 말은, 그것 말고는 다른 방법이 없다는 말은 그래서 의미가 있었다. 더 나은 내가 되어야 한다, 멋져 보여야 한다, 누구를 위해 살아야 한다는 고상한 가치는 집어던지고 진실 되고 솔직한 가치를 가져와야 한다. 그것이 어쩌면 덧댄 의미를 버리고 삶 그 자체로도 충분하다는 앎이 아닐까 생각한다.
삶은 다 '모른다'에서 시작된다. 무지로부터 벗어나기 위한 기나긴 여정이 '삶'!! 주어진 여정에서 나의 길을 찾아가는 여정이 '인생'!! '의미가 있어야 해, 꿈이 있어야 해'는 너무나 부차적인 문제일 뿐이다. 따라서 삶을 이끌어간 것은 '질문'!! '질문'을 포기해버린 '반복'은 생명과 완전히 반대되는 '반생명'이다. 질문이 없어지는 순간, 좀비가 된다. 청년은 좀비가 되고, 노인은 꼰대가 된다. 인류중 누군가가 깨달았다면 접속 연결해서 지식과 지성과 지혜를 쌓아가면 된다. 눈에 보이는 물질의 원리를 탐구하는 '지식(기술지知)'은 인간이 누리는 부를 확장시킨다. 이걸 누리고, 인간 삶에 적용하려면 구성원간 관계정립이 중요한데 이런 사회, 경제, 인문학적 탐구를 '지성(문명지知)'이라 한다. 인간 너머가 끊임없이 궁금하기 마련인데, 기술知와 문명知와 다르게 보이지 않는 '무의 세계'에 직면하게 된다. 보이는 모든 게 해체되는데, 이게 '지혜(자연지智)'!! 제일 중요한 게 만물의 '마땅히 스스로 그러함(비움의 철학)'을 깨닫는 지혜(자연지智)!! 그릇도 비워야 채워지듯, 문명도 비워야 순환할 수 있다. 지식은 기술을 확대하며, 인간 마음에 소유에 대한 욕망을 증폭시킨다. 너무 갖고 싶어지고 누리고 싶어진다. 이 마음을 해체하지 않으면 안 되는데, 이때 '지혜'가 필요한 거다. 관계를 고민하고 발전시키는 지성이 지혜와 연결되지 않을 때, 엘리트가 대중을 지배하고 군림하는 것으로 나아가게 된다. 그래서 지식(기술), 지성(문명)만으로는 인류가 자유로워지지 않는 거다. 더 많이 얻고 싶은 욕망을 제어할 수가 없기 때문이다. 이성에 대한 욕망, 돈(성공)에 대한 욕망, 지식(소유)에 대한 욕망이 걷잡을 수 없이 커져 '자의식의 비대'에 이르면, 점점더 목마를 뿐 멈출 수가 없다. 의 손오공은 시공을 초월하는 힘이 있지만, 그 단계에서 더이상 할 게 없으니 다 때려부수는 거나 하고 만다(그러나 산에 깔리는 벌 받음). 의 양소유는 절세미인에 매력있는 여덟 여인의 사랑을 받으며 치르는 시험마다 합격해 최고의 벼슬인 승상에 오르고, 싸우는 적마다 무찔러 나라의 영웅이 되지만 '허탈함'을 느끼고 꺼이꺼이 운다. 더많이 누린 다음에 오는 것은 반드시 '허무'!! "난 지금 부족하니까 더 많이 가져야겠어. 배부른 소리 마!" 하지만, 인간 존재를 잘 이해못해서 하는 소리다. 자신과 소통 못하는데, 타인을 공감하는 건 불가능하다. 그래서 세계와 단절된다. 인간이 가장 두려워하는 게 소외와 단절!! 거기에서 '허무'는 뼛속까지 오게 된다. 모든 존재는 변화하는 바, 그걸 받아들이고 천지만물(자연과 우주)과 교감하는 걸 지향하여야 한다. 문명의 끝을 향해 달려가면 그 끝에는 필연적으로 전쟁과 파괴가 있다. 불교의 '무', 노자의 '무위자연'와 접속해야 한다. 삶 속에서도 인생의 봄, 여름(청년기)까지는 열정을 가지고 뭘 하더라도, 인생의 가을, 겨울로 가면 회한도 없고 바라는 것도 없어 죽음도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는 방향으로 간다. 자연은 끊임없이 봄여름가을겨울로 변화하며 살리고 죽이고 또 살리기를 반복할 뿐, 어떤 의미를 가지고 그러는 건 아니다. 청년도 일자리가 안 생기고, 장년은 일하기가 싫고, 노년은 정년했는데 할 일이 없는 세상이 도래하는데, 이런 백수 세상이 21세기의 존재론이다. 기술知와 문명知를 추구하는 건 정규직에게 맡기고, 백수는 지혜의 파동(마땅히 스스로 그러할 뿐, '의미'는 없다는 '앎')에 접속하게 될 것이다. 근원적 질문을 던져서, 지금까지 이룬 문명과 기술을 근본적으로 바꿀 수 있다. 도달할 수도 없고, 도달할 필요도 없는 지평선 같은 지향을 향해 갈 때, 그때가 지혜의 파동과 접속하는 거다. 지혜의 파동과 접속해서 앎의 지평선으로 달려가자~~
기술지, 문명지, 생명지(?)를 지식, 지성, 지혜로 나누어 본 관점이 좋네요. 하지만, 한 인간이 지식과 지성을 건너뛰고 곧바로 지혜로 나아갈 수 있을까요? 지식과 지성을 갖추지 못한 사람이 지혜만을 가질 수 있다고 해도, 그 사람과의 접속엔 한계가 있지요. 게다가 그 지혜를 알아볼 수 있는 사람도 별로 없을 것 같습니다. 이 세상의 운영은 기술지와 문명지에게 맡겨두고 백수들은 지혜를 쫒자는 말씀이 한편 백수들이겐 희망을 주겠지만, 세상을 책임지는 사람들이 오히려 지혜를 얻어야 하는데 그들이 백수의 지혜에 접속을 할지가 의문이네요.
서양에 오래 살다 보니 정말 선택에 어떤 한계를 두지 않는 걸 종종 보게 돼네요. 그 중 하나는 한 여자가 그 아비보다 더 나이 많은 사람과만 결혼해 사는 걸 반복하며 자신의 인생에만 투자하던데 ... 쌤의 말씀에 과히 적절히 맞는 경우였네요. ㅎㅎ 어쨌든, 사고에 한계를 두지 않고 자유롭게 펼쳐 가는 시대의 리더이십니다. 유교로 치장되어 비합리적인 한국가족현실에 일침을 가해 바르게 이끌어 주심에 감사드립니다.
존재를 너무 무겁게 받아들인 나머지 그 무게에 짓눌려 유머를 1도 구사하지 못했던 1인입니다. 뭔가를 이루려, 누군가를 도우려하기 이전에 지금 이순간을 마음껏 즐기고, 스스로를 표현하며 순간순간에 감사하겠습니다. 가족, 직장, 고객들 의식하며 긴장하곤 했는데 이제부턴 그 망상을 훌훌 털어내고 활짝 웃으렵니다. 곰쌤 사랑합니다 ❤ 모두를 응원합니다 ❤
소식에 운동을 효과있게 하시면 상승작용이 2배가 아니라 적게는 4배 그 이상의 복합효과가 나타납니다. 하루에 밥은 식당 공기 하나, 채소반찬은 많아야 식당공기 둘, 물은 적어도 3리터 먹고 땀내서 운동 3시간 해도 지치지 않고 힘이 아주 조금씩 계속 늘어납니다. 4년반이 지났어요. 허기는 물로 채우세요. 관심있으시면 연락주세요. jaekunyoo@yahoo.com
가족에게서 독립해서 자기 앞가림만 하고 살아도 그보다 더 인류를 위한 희생은 없다. 뭘 할려고 하지마라 지성은 웃고 떠들고 즐기는것, 무엇 또는 누군가를 위해서 살아야 한다던가 더나나져야 한다던가 멋있어져야 한다던가 하는 생각만버려도 지금 세상은 참 살만한 세상이다. 잘듣고 갑니다. 지금 이런세상을 만들어준 사람들에게 감사하는 마음이 듭니다.
인생은 정답이 없는것 같아요 그것은 답이 다양하다는 뜻도 되겠지요 제가 생각하는 것은 가장 자기답고 자기 몸집에 맞는 옷을 입고 살아가는게 좋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자신은 자기자신이 제일 잘 압니다 남의 말, 점쟁이 말은 참고만 하시고, 맹신하지 마세요 누가 뭐라든 조바심 내지 말고 자신을 믿으세요. 그리고 양심에 따르는 삶은 성공여하를 막론하고 후회하지 않는 삶이 될 것 같습니다 무엇보다 당신 자신이 이 지구별에서 가장 소중한 존재라는 것 항상 기억하셨으면 좋겠어요~^^
"죽지 않으려면, 내게서 삶의 의미를 덜어내야 한다...목표와 가치가 있기 때문에 허무하다." 소름이 돋았습니다. 요즘 퇴임 후 우울감애 빠져 계시는 아버지께 드리고 싶었던 말이었어요.. 이제는 자신의 인생을 사시라.. 누구의 누가 아닌, 본인의 본인 자체가 되시라고.. 그 외는 제가 한다고요.. 그렇지만 다른 책임의 삶을 저는 살 거예요. 저의 저로서, 각각의 삶을요.
중년은 청년들 호구가 아니다.. 돈없는 청년백수들이 돈 있는 중장년 백수들에게 몇 번 얻어먹을 수는 있을지 몰라도 결코 오랫동안 그 상태가 지속될 수는 없다.. 중장년 백수가 뭐 할 짓이 없어서 청년 백수들 호구가 되겠는가.. 돈있는 중장년 백수는 골프치고 놀면되고 어쩌다 만난 젊은 애들이 귀여우면 맥주 몇 번 사줄 수는 있겠지.. 할 일이 왜 없는가.. 배달앱보고 배달이라도 하며 자기 생계를 책임져야 그게 온전한 인간의 시작이 되는 것이다.. 돈 없으면 그건 그냥 거지지 구도자도 뭣도 아니다.. 생계라는 토대를 갖추는게 우선이다.. 그게 안되서 문제라는 거겠지.. 있다해도 3D같은 하고싶지 않은 일뿐이어서 하기 싫다는 거겠지.. 하고 싶은 일은 경쟁자가 너무 많고 경쟁에 밀려 할 수가 없고 그렇다면 유일하게 남은 하기싫은 일이라도 해야 살 수가 있는데 그게 싫다면 생물학적으로 부자연스러운 열반?에 이를 밖에.. 무서운 세상이야.. 어렵고 힘들어도 매달리는 사람이 많은 일에는 다 이유가 있는 것이다.. 그게 아니면 살 수가 없다는 사실을 아니까 필사적으로 쟁취를 하려고하는 것이지.. 공부를 잘하려고 하는 것도 그런 이유겠지.. 이유가 없는 게 삶이라면 굳이 집착할 필요가 없는건가??
전 지성을 통해 계몽하려는 욕구가 많은거 같아요. 물적인 것에 대한 소유욕은 별로 없는데 강의를 들으며, 지적인 관심과 허세가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역시 자의식을 덜어내는 것은 머리로는 알고 있으나 현실에서는 어렵습니다. 내려놓기위한 구도자의 자세와 노력이 필요하다는 자기반성이 들었습니다.
끝이 보이지 않는 코로나시대의 터널 속에서 한줄기 희망의 빛을 봅니다. 선생님의 지성은 많은 이들로 하여금 지혜의 길로 접어드는 길목을 밝혀주는 초롱불이 되리라 믿습니다. 저어겐 삶의 이유가 꼭 있어야 합니다. 그것은 바로 지혜의파동과 접속하는 삶을 살아보고 죽는것. .. 당신의 존재에 감사드립니다.
60이 넘어서야 무언가를 얻으려는 노력도 능력도 없는 자라는 걸 알게되어 다 내려 놓으니 대한민국이 보였습니다 . 어리석은자들로 인한 혼란을 보며 내가 마지막으로 할일은 사회의 한줌 소금이라도 던져주고 떠나야겠다 맘먹은데 .... 분노와 내자신의 어리석음이 교차 합니다 .
삶에는 의미가 부여됨으로써 인간은 살아갈 의욕과 희망을 갖게 되는겁니다. 다만, 과도한 의미가 부여되고 거기에 집착을 하게 되면 괴롭고 고통스러워 지는거지요. 인간에게 왜 높은 지능이 있을까요? 인간에겐 왜 이성과 감정이 있을까요? 그것은 삶에 의미가 있기 때문입니다. 그 의미가 크던 작던 인간은 그런 의미를 자신에게 부여하고 그것을 확신하고 삶에 대하여 투쟁하므로써 그 가치가 완성되는 것입니다. 삶에 꼭 이유가 있어야 하냐 라고 생각한다면, 솔직히..왜 살아야겠습니까? 하루 삼시 세끼 밥 은 왜 먹을 것이며, 숨은 왜 쉬어야 할까요? 제 말씀이 과하다고 들릴지 모르겠으나, 인간은 매 순간 순간마다 자신이 부여한 삶에 대한 가치를 이루면서 보람을 느끼는겁니다. 다만, 위에 언급했다시피..과도한 집착이 문제인 것이므로.. 완급을 조절하고 잘 콘트롤 하며 살아야겠죠. 그런게 인간이 살아가는 삶의 묘미 아니겠습니까?
매우 공감합니다~👍 삶의 의미에 과도한 집착이 문제이지요~! 서기2천년 이후로 자본주의의 극치에 달하면서, 돈이 전부인 것처럼 되어버린 세상~ 그속에서 " 의미없이 자유롭게 실자 " 는 강력한 메세지가 집착에서 조금은 벗어나게 합니다~! "도가도비상도" 를 항상 명심해야 합니다~
어딘가에서 보니까 저를 포함한 젊은이들은 이미 노인보다도 더 삶을 초탈한 듯한... 허무, 공허함을 체득하고 있다고 하더군요. 일정 부분 공감합니다. 허무주의 말고.. 소신껏 자유를 누리며 사는 사람과 남은 인생 즐기며 살고 싶네요. 건강이라는 복까지 내려준다면 더할 나위 없단 생각과 함께. 제일 좋은 건 부모 욕망부터 끊어내면 엄청난 자유가 펼쳐집니다. 이걸 모르고, 이걸 못하는 젊은이들이 많아서 안타까울 뿐. 개인적으로 최근 들어서 소위 말하는 스펙을 쌓고 있는데...여기도 보면 중장년, 노년층들이 "젊은이들아!!! 놀지 말고 너희 때 스펙 열심히 쌓거라." 주입, 강압... 그것도 대단히 지혜로운 말인양 포장해서 말하는 것 보고 저로선 실소를 금할 수가 없더군요. 그렇다고 해서 스펙 쌓지 않는 게 정답은 아니지만 자기 말이 정답인양(본인들은 스펙 열심히 쌓아서 연봉 6~8천, 1억 찍는다고들 하더군요.)... 지금 젊은이들이 어떤 상황인지도 모르고 저러는 거 보면 갑갑증이.
소식에 운동을 효과있게 하시면 상승작용이 2배가 아니라 적게는 4배 그 이상의 복합효과가 나타납니다. 하루에 밥은 식당 공기 하나, 채소반찬은 많아야 식당공기 둘, 물은 적어도 3리터 먹고 땀내서 운동 3시간 해도 지치지 않고 힘이 아주 조금씩 계속 늘어납니다. 4년반이 지났어요. 허기는 물로 채우세요. 관심있으시면 연락주세요. jaekunyoo@yahoo.com
대학생때부터 선생님 팬이었지만 의미를 부여하는 삶이 왜 비정상인지 이해를 못했어요 20대때 쫓던 꿈과 환상이 코로나로 와장창 깨지고 허무가 몰려오자 이제야 이해가 가다군요 그나마 전 아직 젊을때 깨달아서 다행입니다 하지만 여전히 그 후유증에서 못 벗어나고 있는 것도 사실이에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