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론으로 대부분 맞는 말입니다. 더이상 진리에 대한 정확한 설명이 없을 듯 훌륭해보입니다. 그러나 전형적인 解悟의 경계에 머문 강론입니다. 삶을 바탕으로 깨친 향기가 묻어나지 않습니다. 알음알이에서 정말로 벗어난 깨침을 이룬 이는 예외 없이 공통적으로 보는 경계가 있습니다. 그런 이들은 도를 설명하는 시도를 하지 않게 돼있습니다. 도를 설명으로 전달할 수 있다고 시도하는 자체가 그것에 이르지 못했음을 자증하는 모습입니다. 이 말이 불편하다면 정확히 그 경계에 머문 상태입니다.
대부분의 영적수행전통은 범아일여의 기초 위에 있는 것 같습니다. 참나인 나로부터 현상계가 비롯되고 참나인 내가 현상계를 보는, 내가 나를 본다는 것이지요. 참나도 나고 현상계도 나라는 인식입니다. 반면에 참나인 내가 있고 가상세계인 시공간세상이 있다고 말하는 전통도 있습니다. 시공간세상 속의 모든 것들은 실재가 아니고 모두 가상이지만 참나인 나는 실재하는 존재입니다. 가상과 실재는 다르므로 참나는 시공간세상 속의 존재와 하나가 될 수 없습니다. 시공간세상 속의 모든 것들은 관점과 시점에 따라 주체와 대상의 관계가 수시로 바뀌지요. 그러나 참나와 시공간세상 속의 것들과의 관계는 주체와 대상의 관계가 바뀌지 않습니다. 본질적으로 참나는 항상 주체이며 시공간세상 속의 모든 것들은 참나인 나에게 항상 대상입니다. 참나는 실재이지만 시공간세상의 모든 것들은 실재하지 않는 가상입니다. 공간이 있고 그 안에 형상을 가진 존재들이 있어서 행위하는 것 같지만, 그것은 시각적, 감각적으로 그렇게 인식될 뿐이지 실제로 공간과 형체를 가진 존재들은 없습니다. 그렇기에 실제로 실재하는 것은 감각적으로 인식되지 않는다고 하고 감각적으로 인식된다는 것이 실재함을 의미하지 않는다고 하는 것입니다. 다시말해 감각과 실재는 아무런 관련이 없는 것이지요. 참나인 나를 찾기 위해서는 감각적으로 인식되는 시공간세상 너머로 인식을 확장해야 합니다.
깨달음이 그리 간단한게 아니예요.. 견성은 삼매의 형태로 오며, 생각이나 말이 개입될수없는 한자리의 체험이 오며, 그것은 의도해서 정좌하고 든다고 되는게 아니고, 생각지도 못한때에 갑작스레 삼매가오며 확인이 됩니다. 하루아침에 되는것이 아닐뿐더러, 사성제 사념처 연기중도 팔정도를 제대로 이해하고 모든 관념을 실상의 안목으로 바꿔야합니다. 그런 후, 닦아나가야하며 깨달아 생사를 반드시 벗어나고자 하는 보리심의 발심이 사무쳐야 진실하게 닦을수 있습니다. 그 한자리에 대한 실상법문을 두루두루 많이 들으세요. 성철스님 백일법문,종범스님 등등. 한자리 확인 후, 보림은 실상염불 추천합니다. 또한 본래의 한자리를 확인했다해서 깨달았다 말할수없어요. 본자리를 확인한것 뿐. 분별식과 자의식, 업식 등을 닦아서 구경각의 깨달음에 도달해야 비로소 깨달았다 할수있습니다. 오매일여가 되어야 하지요. 견성후에 수심결,증도가,신심명,금강경 등을 보면 그 확인한 한자리로 바로 모든 의문과 막힘없이 바로 이해가 됩니다.
영상을 시청하다 보면 여러 가지 의문 의심이 생길 수 있습니다. 영상 한두 편으로 이러한 문제가 해결되기는 어렵다고 봅니다. 가슴속에 ‘나는 누구인가’라는 근원적인 질문에 대한 답을 찾고자 진지하게 공부해나가는 구도자라면 기존에 알고 있던 모든 알음알이를 내려놓고 여러 영상을 반복해서 들어보시기를 바랍니다
영상을 시청하다 보면 여러 가지 의문 의심이 생길 수 있습니다. 영상 한두 편으로 이러한 문제가 해결되기는 어렵다고 봅니다. 가슴속에 ‘나는 누구인가’라는 근원적인 질문에 대한 답을 찾고자 진지하게 공부해나가는 구도자라면 기존에 알고 있던 모든 알음알이를 내려놓고 여러 영상을 반복해서 들어보시기를 바랍니다
위빠사나를 하는 나란없으며 위빠사나를해서 깨닫겠다고하는 그자가 누구인지? 본래 자신은 절대이고 절대는 텅빔이며 따라서 형상있는 자신은 환형이고 말하는 언어자체가 환이며 의싣[생각,마음]이 환이이므로 추구할 그무엇도없는 본래무일물일뿐이며 몸으로사는 개체로서의 나라는자아는 아무것도아님을 아는것이 깨달음의전부이며 이깨다은 자도없고 알아도 아는자가없으며 봐도 봄만있고 보는자는 없다 깨달아도 절대가 깨닫는것이고 알아도 절대가 아는것일뿐 나라는 자신의 개체는 지푸라기도 들수없고 먼지한톨보다 작은 것도 가져갈수없는 몸이 죽으면 동시에 사라지는 허상체에 불과한 아무것도 아닌 허상체이며 이런 허상체가 살고잇는 이생시도 아무것도아닌 꿈에지나지않는 허구다 자신이 본래 무아이기에 자신을 포함해서 모든 대상들은 전부 공에 지나지않는다 즉 스승이라는 개념도 제자라는개념도 공이며 석가모니 싯다르타도 공일뿐 실체는 깨달은 싯다르타가아닌 본래 절대이고 중생도 실체가 아니지만 중생의실체는 절대이다 모든것은 절대에서 시작되고 절대에서 끝나며 그러면서 절대는 시작도아니고 끝도 아니다 의식은 절대에서 비롯되지만 의식이 사라져도 절대는 사라지지않고 남으며 절대는 영원히 변하지안는다 스크린에 비친 영상에서 전쟁이나고 불이나고 홍수가나도 스크린은 불에 타지도않고 물에젓지도 않는것처럼 절데에게는 아무일도없고 본래 있는그대로순수하고 청정할 뿐이다
구 : 구한다 도 : 길을~ 따로이 길을 구함에 길은 길이 아니고 따로이 길을 찾음에 길은 길 떠나 오리 무중! 지금 바로 나 있는 여기에 !!! 길은 널려 있고 길은 언제나 활짝 열려 있다! 어리석은 자는 눈 앞에 길을 두고도 애써 외면하고 따로 없는 길을 찾는다! 현명한 이는 지금 여기 길 있음을 바로 알고 요령 찾지도 피우지도 않고 우직히 길을 간다. 이러한 이는 따로 구하지 않아도 필히 열반에 이른다! 그렇치 않은 이는 변함 없이 도깨비가 되어 돌고 돌고 돌아 항상 그자리 꼬아 놓은 메비우스 길을 벋어날 날 없다...
말에 따라가지 말라고 하는데 다들 말꼬리만 잡네요..ㅎㅎ 보고 듣고 느끼고 숨쉬는것을 자각하는것이 깨달음인데 뭘 그리 분별들 하시나요.. 본래 하나님이고 본래 부처고 진리인 분들이 .. 숨을 쉬며 살아있는게 부처인데 부처가 되는 방법을 가르쳐달라고 한다면 뭐라고 대답해줘야 할까요? 님..현재 숨쉬고 계시잔아요? 바로 그겁니다..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