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후세계에 대한 이야기를 비웃다가, 스스로 죽음이 눈 앞에 보이면, 장담하던 쿨한 자세는 어디로 가고, 그 때부터 힘들어하는 경우를 많이 보았는데, 마음이야 어떻든 스스로 감당하면 될 것을, 기필코는 주변에 민폐로 이어진다. 이 역시 그 전에는 그런 마음도 스스로 닫아 지킬 수 있다고 호언장담하던 사람들이다. 결론은 기성 사후세계 이야기를 몯 믿겠으면 스스로 만들길.
사후세계 관은 종교마다 아주 다양하지만 모두 한가지 공통점이 있음. 죽었다 다시 돌아온 사람이 없으니 전부 아무런 증거나 근거가 없다는 것. 가장 합리적 설명은 사후세계는 없다고 봐야함. 다만 그런 사후세계에 대한 협박이나 보상 (즉 지옥이나 천국 극락 따위) 을 이용해서 사람들을 종교가 원하는 대로 협박해 마음대로 조종할 수 있기 때문에 꾸며낸 것임. 즉 종교에 관계없이 사후사계는 부 다 거짓말 사기라고 봐도 됨.
아랍민족도 아닌것이 그냥 종교를 앞세워서 지네 나라 국민들도 제대로 먹여살리지 못하면서 이슬람혁명을 수출하겠다고 난리치는 개객기들이지요 ㅋㅋㅋ 따지고 보면 이란 혁명수비대라는 특권계층이 모든 권력과 경제권력을 틀어쥐고 이란 대다수 국민들을 억압하고 있는 중일겁니다 ㅎㅎㅎ
일본인들이 우리 문화재 안 챙겼으면 3년간의 싹쓸이 전쟁에 모두 불타거나 훼손 되어꺼찌. 내 서울서 살다 80년대초에 아버지 고향 충청도 생 시골 가 보니 화장실에서 모두 옛 한자책 고지를 화장지로 엉덩이 딱더라구요. 그 때 딱은게 훈민정음 해례본 이었지 멉니까..解例 머라 써있던걸 기억..
일본이 미륵사 석탑을 공구리 치지 않았다면 탑의 돌들은 편편한게 다들 지역주민의 구들장으로 쓰여 지금에서는 탑의 흔적도 남아 있지 않았겠지요. 교수님 말대로 공구리는 당시 최고의 기법이었는데 지금에 와서 이걸 마치 일본이 한국 문화재 망처놓으것처럼 망발하는 놈들이 있어 기분이 안좋아요. 일본의 자랑 오오사카성도 공구리로 수리했습니다.
대륙백제,고구려땅 관리하느라 경기도까지 신경못썼다면 몰라도 한반도 충청도,전라도는 관리했는데 경기도는 어려웠다? 그럼 백제 초기영토도 관리못하면서 당과의 전쟁은 어떻게 이겼고 고구려 영토는 아예 손도 못댔다는 건데 이게 무슨 삼국통일인가? 상식적으로 말이 안되는걸 자판식민사관이 가르쳐 준대로 암기만하니 역사학자란 자들도 자판식민사학의 녹음기에 불과한 것! 치나,자판등 관련국 역사서,유물,현지조사등 비교,교차 연구는 해봤나?
사서가 아닌 현장 기록은 파괴되고 사라질 수 있습니다. 하물며 서울 경기도 지역은 이후로도 고려 조선의 중심지로서 1000년간 워낙 많은 발걸음이 거쳐갔으니 앞선 신라 불교 문화재나 사찰은 진즉 후대에 변용되거나 훼철되었다고 보는 게 좀 더 이치에 맞지 않을까요? 특히 조선이 수도 중심지에 불교 유적을 퍽이나 곱게 내버려두었을거 같습니다. 소위 아카데미의 고대사 접근법은 갈수록 축소지향적이네요...
뉴라이트역사관이 무엇인지 잘 모르시는 분들께... 조선반도에 궁예도 끼워넣고 백제 신라도 끼워넣고 가야도 끼워넣어 임나가라와 충남에 백제 5도덕부와 평양의 낙랑 대방을 뒷받침해주는게 우리 역사학계와 이러한 친일단국대와 조계종이 벌이는 사업으로 보입니다. 철불하나로 경기와 철원 강원에 백제 통일신라 고려 왕건 오호십국까지 역사왜곡을 하는 이유가 무엇일까요.? 이 뿐만이 아닙니다. 당나라가 상국이고 근본이라는 조계종의 역겨운 역사왜곡에 한숨이 절로 나옵니다. '신라는 낙타와 물소가 자라기에 알맞다.' [신당서] '신라말 후백제를 완전히 제압한 왕건에게 신라 동부의 110개의 성과 부가 왕건에게 귀의하였다.'' [고려사] ''당나라에 사신이 도착했을 때 일본 사신에겐 답례를 하지 않았고, 신라 사신에겐 말에서 내리지 않은 상태인데도 답례를 했으며, 발해 사신에겐 말에서 내려 먼저 예의를 표하는 것을 본 후에 답례를 했다.'' -일본서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