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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국력이 강했던 고구려는 진짜 어떻게 멸망했을까? 

역사돋보기 이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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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구려는 왜 멸망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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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 фев 2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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Комментарии : 777   
@user-eu4xf8yc8q
@user-eu4xf8yc8q 10 месяцев назад
정치인들의 파벌싸움으로 나라망한거보면 고구려는 확실히 한국의 역사다.
@user-sn7th9qf3b
@user-sn7th9qf3b Месяц назад
적당히가 중요함. 고구려의 리버스 버전인 완벽한 중앙집권체제 조선은 주변 세력에 군사력을 키울 여지차체를 주지 않았기 때문에 허약하기 그지없었음. 고구려의 군사력이 강했던 이유는 지방 귀족들의 끊임없는 견제와 경쟁으로 군사력 증진에 진심이었기 때문임
@user-sz1ic7pj5s
@user-sz1ic7pj5s 21 день назад
@@user-sn7th9qf3b 고려가 그 중간 쯤 어디었다가 공민왕 대에 성리학이 적극 도입되면서 장차 그쪽으로 흘러가 버렸지..
@user-rj7sy9li5w
@user-rj7sy9li5w Год назад
지구상에 존재하던 대부분의 나라들이 멸망 할때는 내부에서 이미 무너지고 외부의 공격은 그저 마침표만 찍는거라고 하더라구요..
@user-vu9vv8oe4l
@user-vu9vv8oe4l 14 дней назад
한국도 곧이다. ㅋ
@nayahun2
@nayahun2 Год назад
좋은 영상 잘 봤고 감사합니다 그냥 궁금해서 그런데 해당 내용은 학계에서 정설로 인정되는 내용인가요 아니면 여러 내용과 정황을 종합해서 채널 주인장님이 내린 결론이신가요?
@user-fb2hz1dc3c
@user-fb2hz1dc3c Год назад
고구려가 그래도 특유의 버티는 힘은 확실히 있었던 게, 잘 모르는데 요동 방어선 북쪽을 책임지는 신성은 무려 9개월을 버텨냅니다 정말 안시성의 신화가 재현될 뻔한 순간도 있었어요 그런데 연남생의 투항, 이게 정말 큰 건 국내성 포함해서 6개 성과 10만 호의 인구를 들고 투항했다고 하는데 그러면 인구가 50만가량입니다 원래 북쪽에서 내려오는 적을 막기 위한 후방 기지 역할을 했던 게 국내성인데 이 성 중심으로 수많은 성과 인구가 고구려에서 일순간 떨어져 나가면서 요동과 평양 사이에 엄청난 힘의 공백지대가 형성됐고, 요동 북쪽에서 국내성 쪽으로 이어지는 안정적인 보급로가 형성되면서, 고구려 원정의 최대 과제였던 보급의 문제를 해소하게 됐어요 나당 연합군의 소규모, 대규모 공세를 끈질기게 막아내며 국토를 수호해왔던 고구려인데 내분 앞에선 어쩔 도리가 없어요 고구려가 당나라에 맞섰던 가장 큰 무기는 땅 그 자체의 험난함과 그로 인한 적 행동의 제한성, 이 두 가지가 결정적이었는데 이게 더이상 먹히지 않게 되니 결국 막을 내리게 된 거죠 고구려의 멸망은 한민족의 역사에 있어 유난히 안타깝죠
@tv-iq2fm
@tv-iq2fm Год назад
심지어 그 신성도 사부구놈의 배신이 아니었으면 안무너졌음. 게다가 제3차 고당전쟁때 황산전투에 투입된 고구려군만 15만에 외인부대격인 말갈인 부대:5만을 더해 전투부대만 20만을 동원했을정도였는데 신라는 백제먹고도 진짜 끌어모아야 20만을 동원한점과 남소성에 저항한 고구려군이 15만이나 되는점을 고려하면 사부구가 배신만 안했어도 신성이 안무너진데다 요동성,안시성등도 그대로 버티고 있는 상황이라 나당연합군에 평양성이 무너지기는 커녕 오히려 제3차 고당전쟁은 나당연합군이 고구려군에 참패했다는것으로 끝나고 얼마 안지나서 가르천칭의 토번제국의 급성장으로 당제국이 수도 장안성까지 탈탈 털리며 고구려는 당제국에 역습을 가하며 당제국에게 타격을 준후 바로 신라를 쳐서 먹었을것임. 백제를 먹은 신라는 최대가 20만이 그만인데다 백제 세력들이 고구려에 붙어버리면 신라는 그대로 ㅈ망했겠죠. 그리고 가르천칭의 토번제국과 신라와 백제를 흡수하여 중화 제국과 동급이상의 문명에 백만 대군도 동원가능해진 통일 고구려로 인해 당제국은 ㅈ망했겠죠. 그리고 신라도 고구려애들과 어느정도 동질성이 있던걸 고려하면 당제국에 붙을 가능성은 낮을테니 당제국입장에서는 답이 없겠죠
@user-fb2hz1dc3c
@user-fb2hz1dc3c Год назад
@@mao4253 그 나라 멸망했다고 인구가 빠져나갔다고 그 나라 역사 자체가 다른 나라 역사가 된다는 건 뭔 발상입니까? ;
@a01082940205
@a01082940205 Год назад
옳은 해석이것 같습니다. 후방 문열어주고. 하이패스로 내려왛지요
@mao4253
@mao4253 Год назад
@@user-fb2hz1dc3c 영국인구가 미국을 세웠고 그후 그사람들을 미국역사로 치지 영국역사는 아니지 않아요?
@mao4253
@mao4253 Год назад
@@user-fb2hz1dc3c 역사의 주체는 사람아니에여??
@user-sp3rl4xt8b
@user-sp3rl4xt8b Год назад
안녕하세요. 저는 현재 중학교 2학년 입니다. 이번 도덕시간에 선풀달기 활동을 해서 역사돋보기님의 영상에 댓글을 남김니다. 제가 역사공부를 했었는데 이렇게 간단하게 설명을 해줘서 너무 좋습니다. 앞으로도 좋은 영상을 제작해 주세요.
@user-in7uw5mk9h
@user-in7uw5mk9h Год назад
이것만은알아주세요. 졸업한지 10년이다되어가는 20대후반의형이지만 한국사라는초중고 역사책은 믿지마세요 전부다 한국입장으로만 만든책이라 거짓이많아요 역사다큐를보더라도 해외에서만든걸보세요
@user-dz7uu4dt9u
@user-dz7uu4dt9u Год назад
@@user-in7uw5mk9h 그 말투가 최소 30대 후반의 형님같은데요..
@user-in7uw5mk9h
@user-in7uw5mk9h Год назад
@@user-dz7uu4dt9u ㅋㅋ 애늙은이라는말 많이들어봐서
@ai5445
@ai5445 Год назад
@@user-dz7uu4dt9u ㄹㅇㅋㅋ
@notorstrange
@notorstrange Год назад
여기서 역사 공부하지마쇼. 진주박물관 채널이랑 임용한 박사 채널 가셈
@user-er1te3ex6g
@user-er1te3ex6g Год назад
고구려의 멸망에는 연개소문 사후 아들들의 세력타툼이 컸는데 그중에서도 연남생의 배신이 뼈아프네요.
@user-lb5rb5pb3x
@user-lb5rb5pb3x Год назад
못 배운 기록인데 어디서 크 또 망하겠네 음
@gretsu222
@gretsu222 Год назад
고구려의 멸망은 연개소문때문이라 봐야지요, 그때 상황을 봐서 그냥 중국에 고개숙이고 적당히 조공하자고 한 왕과 귀족들을 불러내서 싹다 죽여삐고 전쟁광으로 고구려를 몇십년만에 작살낸게 연개소문임
@user-ox7wd9zf8h
@user-ox7wd9zf8h Год назад
@@gretsu222 상황은 무슨 중국 사신이 와서 눈안보이는척 하면서 고구려를 샅샅히 살폈으며 고구려의 승전탑까지 부셨는데 뭘해도 전쟁을 했을꺼임 연개소문은 그당시에 할수있는 최고의 외교술을 펼쳤고 그게 안되서 강경적으로 나온거뿐임 난 연개소문 그정도면 할꺼 다했다고 본다 사후 문제는 비판받을수 있으나 연개소문을 전쟁광 취급하기에는 그당시 고구려 상황을 봐야한다고 생각한다 왜 이렇게 까지 할수밖에 없었는가 그걸을 봐야지 정변했다고 그걸 당이 명분의 빌미를 삼아 전쟁을 일으키게 되서 전쟁을 통해 고구려가 멸망하게 되었다. 라는 말은 너무 너무하지 않음? 난 적어도 연개소문의 성씨를 1000년동안 중국의 기록만 보고 잘못 안 우리들과 그 우리보다 한참 못했던 일본한테 따라잡혀서 지배당하고 그후로는 힘이 부족해서 반갈죽당하고 북한이 도발하면 진짜 제대로된 구사적 대응도 못하는 나라의 후손들이 연개소문을 욕할 자격이 있나 싶다. 난 연개소문이 끝까지 중국과 어떻게든 싸워줘서 끝까지 할수있다는 의지를 보여줘서 진짜 감사하다고 생각함 조선과 다르게 아무것도 하지못하고 지배당하는것보단 손가락질 당할 각오로 정변 일으켜서 나라를 지키는것도 대단한 위인임
@ridkdkdhbc
@ridkdkdhbc Год назад
@@gretsu222 10 역알못 수준 ㅋㅋㅋㅋ 영류왕이 고수 전쟁때 잡은 포로들 다 풀어주고 승전기념탑 부셔버리고 고구려 상세지도 당태종한테 보내주고 선물까지 보내주면서 굴종적으로 나오면서 비굴한 평화를 유지했는데 그게 영원히 갈거 같냐? 어차피 당 태종은 고구려를 침략할건데? 개소리도 좀 적당히해라 영류왕이 한 짓은 매국노짓이나 다를게 없었음
@ridkdkdhbc
@ridkdkdhbc Год назад
@@gretsu222 당나라에 조공보내면 진짜로 안처들어올거 같냐고 ㅋㅋ 당장 고구려 멸망 후에 신라까지 먹으려고 한게 당나라구만 정신 좀 차려라
@user-qr3os8so9w
@user-qr3os8so9w Год назад
분명한건 고구려가 평양이 아닌 만주에 수도를 삼았다면 수나라때 멸망당했을 가능성이 컷음 이삼중에 방어진과 바다 여러깊은 강등 워낙 어려움이 많았죠
@emperorpenguin999
@emperorpenguin999 Год назад
그건 아님 수나라도 고구려에 국경 방어선을 쉽게 못뚫음
@user-ro6zg8is4n
@user-ro6zg8is4n Год назад
지금의 역사서에 기록된 현 평양이 태왕성이라는 것은 잘못된 것이라는 증거가 속속 나오고 있습니다. 태왕이 상시 또는 자주 거주하며 지내는 태왕성은 만주 심양 백산 부근이라는 것이 속속 나오고 있고, 고구려의 평양은 즉 수도로써 태왕이 가는곳은 전부 평양이라는 지명을 썻다고도 합니다. 현 북경은 고구려의 유주였으며 서평양, 국내성은 동평양, 부여성은 북평양, 현 북한의 평양이 남 평양, 만주 심양 백산 부근이 중평양 즉 태왕성입니다.
@JJS-ws1pf
@JJS-ws1pf Год назад
갱샹도 중국 후손 흉노인을 믿은게 잘못 ㅋㅋ경상도는 절대 믿지마라 통수맞는다 백제처럼ㅋㅋ 그리고 왜곡 도잘함ㅋㅋ 일본 피가 많이 섞여서 그런지 낄낄
@user-zd4ux3on5y
@user-zd4ux3on5y 11 месяцев назад
그건아님. 그리고 부족이랑 강력국가 백제 신라땜 위치 선정 더욱이 그럼 안되고. 어쨌건 말도 안되는 역사 모르는 소리.
@user-pp8sm2pp4w
@user-pp8sm2pp4w 10 месяцев назад
수나라는 고구려정벌안해도 스스로망할 나라였음 자국민 몇십만을 노역으로 죽였는데 ㅋㅋㅋㅋ
@Meoseum
@Meoseum Год назад
연개소문이 아들 정리 못한게 고구려 최대의 잘못임
@user-dy7dk8wd3c
@user-dy7dk8wd3c 6 месяцев назад
연남건 연남산을 제거했어야됐음 걔네때문에 연남생이 당나라로 가게됨
@keisk9248
@keisk9248 Год назад
5:49 연개소문이 안시성을 직접적으로 공격했다는 기록은 없습니다. 단지 당태종이 안시성에 패해서 돌아갈 때 “안시성은 연개소문도 함락하지 못 했다더라” 라는 카더라 말만 했던 기록이 있습니다. 그 기록 가지고 지금 우리 역사학계에서는 마치 내전이 있었던 것 처럼 말하고 있구요. 이는 당태종이 점령하지 못 하고 패퇴하는 과정에서 하는 변명에 불과하기 때문에 신빙성이 떨어집니다. 당태종 말이 맞다면 연개소문이 고정의 장군을 포함한 15만 군사를 굳이 보내 지원했을리가 없습니다. 성문도 열어주지 않을텐데요.. 이 부분은 잘못된 역사정보를 퍼트리고 있는 것이므로 정정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Werner4voss
@Werner4voss Год назад
처음 이설을 밀었던 분이 여호규 교수님이신대 몇년전에 스스로 이설을 철회시키셨죠
@keisk9248
@keisk9248 Год назад
이 설에 대한 수많은 공격이 있었을지도 모르죠.. 안시성의 성주도 양만춘이라는 가상의 인물이 아닌. 고정의 장군이 었을 확률도 높습니다. 고연수를 비롯한 선봉대 패배 후 후퇴해서 안시성과 합류해. 당군을 격퇴했을 것으로 보는게 맞을 듯 합니다. 상식적으로 5천도 안되는 병력으로 몇십만의 당군을 물리치는 것은 납득이 되기 어려운 부분이지요.... 선봉대 패배 후 본대의 행방도 묘연하구요.
@user-og8kq2oq2e
@user-og8kq2oq2e Год назад
확실한건 안시성과 중앙군 사이에 내전이 벌어졌다면 안시성에서 당 태종을 물리칠 수 없었을거라고 생각합니다. 안시성이 이기든, 지든 성 자체의 방어력이 약해졌을거고, 병력 숫자도 줄었을테니까요. 갈등은 있었을지도 모르지만 그마저도 '가설'에 불과한데 마치 내전을 정사인 것처럼 말씀하시면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darkduge
@darkduge Год назад
안시성성주는 고정의가 아님 양만춘도 가상의 인물이 아님 다만 성은 양씨가 맞지만 정확한 이름은 전해내려오지않음
@user-sw3bp3et6f
@user-sw3bp3et6f Год назад
아무리 강한 국가라 한들.. 내분은 자멸이다.. 마지막 멘트... 이거 진짜 우리들이 대한민국이라는 국가를 수호하기 위해 명심해야 할 말... 내분을 조장하고 분탕질을 조장하는 모든 사람들은 다 사라져야 한다..
@ggmind
@ggmind Год назад
윤석열과 국짐을 보고도 이런 말이 나오냐? 내분이 문제가 아니잖아 백제도 고구려도 매국노가 나라를 망하게 했다 지금 우리나라도 윤석열과 국짐 같은 매국노들이 나라를 망하게 만들고 있잖아
@sliverkim5784
@sliverkim5784 Год назад
민주주의 국가에서 무슨 전체국가적 발상인지
@user-sw3bp3et6f
@user-sw3bp3et6f Год назад
@@sliverkim5784 민주주의의 탈을 쓴 사회주의적 사상과 성향을 강조하는 사람들은 사라져야 한다고 생각함. 그들은 대한민국이라는 국가 자체를 위태롭게 함
@tv-zz2ym
@tv-zz2ym Год назад
​@@sliverkim5784 저게왜 전체주의적발상임?
@sliverkim5784
@sliverkim5784 Год назад
@@tv-zz2ym 민주주의는 다원주의를 전제로 함. 내분조장과 분탕질은 누가 판단하고 무슨 기준으로 하는 것임? 박정희 전두환 시절엔 민주주의 세력을 내분 조장 분탕질 조장 세력이라고 규정했음. 민주주의 자체를 부정하는 것-독재체제 주장- 제외하고는 헌법질서 내에서 용인되는 것이면 함부로 부정할 수 없는 것임.(헌재 판시이기도 함) 가치없는 주장이면 다수의 호응 못받고 사라지겠지. 선해해서 국가나 국민 공동체에 도움되는 방향으로 가자는 의미 정도로 이해는 하겠으나 저 구호 자체만 놓고보면 악용될 소지가 다분한 말임.
@kephas7772
@kephas7772 Год назад
역사 저널인가에서 최태성 선생이 요즘 학생들은 약소국 신라가 나중 (외세인 당을 끌여들여) 통일을 할 때 환호를 지른다고 하던데, 우리가 학창 시절엔 신라의 통일 과정을 보면서 환호 보단 강대국 고구려가 나당(솔직히 당나라)에 의해 역사속에서 사라지는 것을 더 슬퍼했던것으로 기억하는 데, 비슷한 연배의 학력고사 세대(국사는 세계사와 달리 선택이 아닌 기본 25점인과목-체력장 20점 포함 340점중에서...)인 최태성 선생은 그렇지 않았는지 의아해 지더라는...
@user-phm3.1415
@user-phm3.1415 Год назад
전 솔직히 한국인들은 신라의 후손 비중이 크다고 봅니다. 성씨들만 봐도 알 수 있죠. 박 석 김 이 최 정 배 손 설 + 김 이 허(가야계) 통일신라 이후 고려, 조선, 현재 신라계 후손들이 한국을 이끌고 있죠. 신라가 이기지 못했다면 지금 이들이 존재 했을까요? 그들이 지금 학생들이고 환호를 하는 이유도 말씀을 안 해도 알겠죠? 저도 94년생이고 어릴 때 환호했습니다.
@user-di1ox6fe3f
@user-di1ox6fe3f Год назад
남한은 성씨만 봐도 신라인 후손이 압도적으로 많죠. 그래서 그렇습니다.
@user-rk9kl8lc9h
@user-rk9kl8lc9h Год назад
9분29초 에 연정토가 비친인구는 4000명이 아니라 4000호라하네요
@user-kdg3hsjab8n
@user-kdg3hsjab8n Год назад
2차 고당전쟁 승전 이후에 고구려는 당나라 봉선의식에 참여함 이것은 당이 고구려의 존재를 인정했다는 뜻으로 사실상 고구려 정벌을 잠정적으로 포기하겠다는 의사였으나.. 연남생이 귀순하면서 생각이 뒤바뀌고 고구려 정벌에 올인했지 그 사이에 토번이 발흥한걸 생각하면 만약 그 시기에 고구려가 당과 전쟁없이 넘겼다면 토번의 발흥과 맞물려서 나라를 보전할 수 있었음 당나라는 한반도는 커녕 요동까지도 직접 통제할 여력이 없었음 결국 내분이 모든걸 망쳤다
@gretsu222
@gretsu222 Год назад
그때 고구려가 멸망하지않았으면 아직까지도 한반도가 통일되지 않았을수도 있져
@ridkdkdhbc
@ridkdkdhbc Год назад
@@gretsu222 ㅈㄹㄴ
@user-fb2hz1dc3c
@user-fb2hz1dc3c Год назад
@@gretsu222 뭔 발상임??
@I_DO_NOT_WANT_TO_USE_HANDLE
@@gretsu222 지금도 분단이다 게이야..
@seonghashin8802
@seonghashin8802 Год назад
맞는 말입니다. 1년만 버텼어도 당은 토번때문에 고구려원정은 포기했겠죠. 따라서 연개소문의 정변이 고구려멸망의 직접적인 원일일 수 있습니다.
@Bin314-h5z
@Bin314-h5z Год назад
한민족 역사상 다시는 없을 나라다 영토며 국력이며 운까지 고조선과 다르게 건국초에 중국이 분열된 시기에 다가 주변 경쟁 국가들은 연맹 왕국 단계 팽창하기 좋은 시기에 다가 유능한 지도층 까지 영토로 따지면 발해도 있지만 고구려에 비할바는 못된다고 생각함 고구려는 국가 멸망전을 몇번이고 버텨냈는데 발해가 고구려의 반만이라도 버텼다면....
@gray8235
@gray8235 Год назад
확실히 국력 성장 할때가 중국 삼국시대였고 전성기에 맞춰 국력 확장할 때가 5호 16국 그리고 미천왕때부터 장수왕까지 군주들 라인업도 장난 아니였네요
@Bin314-h5z
@Bin314-h5z Год назад
@@gray8235 발해도 군주들이 유능했으나 하필이면 경쟁 상대가 요나라.....만약 발해가 요나라와의 경쟁에서만 이겼다면 중국 역사상 가장 돈많은 호구인 송나라에게서 공물이나 뜯으면서 역대급 제국이 됬을수도 있었으나... 그 축복은 요나라가 누렸네요
@user-up9dc7hm1m
@user-up9dc7hm1m Год назад
​@@Bin314-h5z 발해가 운도 안 좋았던게 몰론 요나라를 만난 것도 있지만 후삼국이 분열되어 있던 것도 크다고 봅니다. 몰론 거란이 요나라 세우고 발해 침공하기 전에 왕건이 후삼국을 통일했어도 고구려 계승 의식이 같은 발해와 주도권 싸움을 할 수도 있다는 주장도 있으나 만약 일찍 통일되었다고 가정한 고려 입장에서 발해가 무너지면 요나라라는 대국과 직접 국경을 맞대니 그래도 발해를 지원하지 않았을까요? 순망치한, 입술이 없으면 이가 시리다는 말도 있고요.
@user-up9dc7hm1m
@user-up9dc7hm1m Год назад
​@@Bin314-h5z 어차피 발해가 있어도 발해의 중심인 5경(상경 중경 동경 서경 남경)은 대부분 백두산 위쪽, 만주, 연해주, 간도 쪽에 있고 핵심 요충지도 요동과 부여성이기에 고려쪽으로 남진할려고 하여 충돌하진 않을 거라고 봅니다. 게다가 고려보다 더 강한 요나라가 요동과 부여성을 노리고 있으니까요! 그때도 민족의 개념이 있었을지는 모르나 고려가 신라처럼 중국 당나라나 거란 요나라에 빌붙어서 발해땅을 나누려고 하지는 않았을 거라고 봅니다.
@Bin314-h5z
@Bin314-h5z Год назад
@@user-up9dc7hm1m 그쵸 주위 국가들이 다 분열이 되어서 요나라를 견제할 세력이 없었죠 중국 한국 토번 위구르 까지 동북아 거대국가중 안정된 나라가 발해와 요나라 이 둘밖에 없었죠 둘의 경쟁으로 동북아 패권이 정해지는 싸움 이었는데 유목민족과의 전면전은 중국도 힘드니까요 그래도 발해가 국력에 비해 너무 맥없이 망한게 아쉽네요 물론 발해 부흥운동은 상당히 많았지만요 최소한 여진족 초럼 간도랑 한반도 북부만 지켰어도 괜찮았을 텐데요
@user-fw7fr2uj9r
@user-fw7fr2uj9r Год назад
한 국가가 망하는 건 외부의 침략에 의해서가 아니라, 내부의 분란 때문에 망한다. 멕시코 마야 문명이 스페인 군인이 진입했을 때 이미 내분으로 망해있었다.
@user-wp5tp5kb4j
@user-wp5tp5kb4j Год назад
마야문명은 거의 시체나 다름없었고 예시로 드신건 아즈텍 문명이 아닐까요?
@user-oi3os5kb5t
@user-oi3os5kb5t Год назад
음 외부의침략이 너무세서 내분이 생기는게 아닐까 싶네요
@flanderscat
@flanderscat Год назад
연개소문을 보면 카르타고의 한니발이 생각나네요 둘다 강대국에 맞선 용맹한 장군이었으나 전투에서 패하고 나라가 멸망해버리고.. 연개소문은 후계자 관리를 제대로 못한 점도 있지만 결국 본인이 마지막 방어선이었던것 같아요
@user-ps3gi1qq7i
@user-ps3gi1qq7i Год назад
연개소문은 전투에서는 다이겼음. 천하에 이세민도 연개소문을 두려워했다는 얘기도 있음
@flanderscat
@flanderscat Год назад
@@user-ps3gi1qq7i 그럼 연개소문 설인귀에 의해 죽임을 당했다는건 뭔가요?
@kkndsa
@kkndsa Год назад
@@flanderscat 그건 당연히 허구죠
@Son_ssi
@Son_ssi Год назад
@@flanderscat 그런 말은 정사 어디에도 없는데요? 소설 내용을 착각하신 건 아닌지? 뭐 소설 내용에 당태종을 위협하는 연개소문을 설인귀가 무찔렸다는 말은 있는데 죽였다는 건 없습니다.
@gyusikkim
@gyusikkim Год назад
​@@flanderscat당태종과 개소문이 다투다가 태종이 밀려 도망가다가 설인귀가 나타나 태종을 구해줌. 태종이 중국 역사에서 1위나 2위 하는 성군으로 추앙 받아, 그에 대한 무슨 위대한 작품을 남기고 싶었던 중국인들이 재미로 허구처럼 지어낸 이야기.
@jfjdkjeebwkf
@jfjdkjeebwkf 10 месяцев назад
7세기 고구려는 그냥 땅덩이만 컸지 애초부터 비옥한 농토도 별로 없고 영토 대비 가성비 떨어지고 그나마 영토 넓고 인구 많으니까 특유 군사력으로 백제랑 신라 누를 수 있었던거지 그래서 전성기때도 북쪽으로 그렇게 많이 확장했지만 남진정책도 포기할 수 없었던거고 고구려가 한반도를 먹을거였으면 광개토장수문자왕때 확실하게 백제신라 복속했어야했는데 때를 놓친거임 오히려 땅덩이에 비해 갓성비였던게 평야도 있고 철도 많이 생산된 한반도 중남부 국가들이고 바다까지 넓어서 자급자족도 되고 말년에 백제가 쌉질만 안했어도 남부지방에서 신라랑 양강구도 펼칠 수 있었는데 신라한테 먹힌거임 신라보고 외세 지원받은 양아치&불완전 통일이라고 평가하는데 그 당시 상황으로선 고구려랑 백제는 이미 내정 자체가 개판나있었고 신라는 급식때부터 진흥왕때가 전성기라고 배웠는데 어디까지나 영토넓이 기준일 뿐이고 그 이후로 더 똘똘 뭉치고 강해져서 신라가 통일할 수밖에 없는 그림이었다 급식때는 고구려가 통일했어야 지금보다 땅도 더 넓었을거라고 생각하는데 지금 생각해보면 진짜 급식스러운 생각이었던거같고 심지어 고구려보다 북쪽으로 영토 더 넓었던 발해도 얼마안가 작살난거보면 그냥 만주~연해주 땅덩이 차지하는건 그리 중요해보이지 않음
@user-zi6ro5oh5w
@user-zi6ro5oh5w Год назад
고구려 멸망을 다룬 드라마 대조영 추천합니다 나라를 잃었지만 희망을 잃지 않고 나라를 부활시킨 스토리
@user-rk9kl8lc9h
@user-rk9kl8lc9h Год назад
부여성 이야기도 해주시면 좋겠네요
@user-fm4we9je4y
@user-fm4we9je4y 5 месяцев назад
부여성은 충남 부여에 위치
@user-rk9kl8lc9h
@user-rk9kl8lc9h 5 месяцев назад
@@user-fm4we9je4y 그 부여성말고요 고구려 최북단 부여성
@qwerty-go6ri
@qwerty-go6ri Год назад
원소사후 원가가 조조에게 무너진과정과 비슷하죠
@user-em7qf2yq8m
@user-em7qf2yq8m Год назад
삼국시대에 제갈공명이 고구려의 훍어보더니 글을 적으며 뭐라했냐하면 외부로붇어는 무너지지않고 내부로 무너뜨니라고 병법에 적었음 그러니깐 당 태종이 그걸보고 그대로 무너뜨린걸로 알고있음
@MBSHIM-td7ch
@MBSHIM-td7ch 11 месяцев назад
ㄷㄷㄷㄷ;;; 제갈량이 결국 高句麗멸망의 머나먼 빅픽쳐 대선조 중원오랑캐 원인이었던 것인가;;;; 소름
@user-dw3ck2sb7g
@user-dw3ck2sb7g 11 месяцев назад
당 태종은 실패하고 죽었고 고종 때 멸망시킴
@user-rk9kl8lc9h
@user-rk9kl8lc9h Год назад
다음영상은 미스터리인발해와 신라인가요?
@sex0069
@sex0069 Год назад
고구려가 강건했던 시절 백제와 신라 통합 했으면 진짜 동북아 최강이엇을텐데
@엘씨케이
@엘씨케이 Год назад
걍 광개토대왕이 마음만 먹으면 백제 신라 다먹을수 있었는데 평화정책 써서 안먹었다고 배웠는데 아님? 아님말고
@notorstrange
@notorstrange Год назад
@@엘씨케이 응 아니야
@mj7631
@mj7631 Год назад
지리상 쉽지않음 ㅋㅋ 내려간다해도 군대를 오래 주둔시킬수가 없음 한반도에 통일왕조가 존속되던 시기마다 요동이 누구 땅이었는지 보면..
@youp7964
@youp7964 Год назад
한반도가 왜 천연요새인데ㅋ 고구려는 대초원기반 기마병력이 주력이고 신라백제가 암만 호구같아도 섬과 강과 산을끼고있어서 정벌이쉽지않음 배후문제도있고
@notorstrange
@notorstrange Год назад
@@youp7964 애초에 근대화 전까지 만주 한반도 동시 점유는 불가능임
@tv-.2461
@tv-.2461 Год назад
근데 고구려 700년 역사중 저렇게 자멸할 일은 분명 그전에도 있었을듯 근데 그 타이밍에 나당연합이 침공을 한거고 인생은 타이밍이란게 천년전 역사에도 존재한 사실 아닐까
@emperorpenguin999
@emperorpenguin999 Год назад
내분이 원래 많긴 했음
@mao4253
@mao4253 Год назад
고구려도 발해도, 전부 내부에서 무너지기 시작함. 근데 같은일이 한국에도 일어나는거같음... 남녀 갈등, 세대갈등에 에휴 모르겟다
@reyjinwep6497
@reyjinwep6497 Год назад
연개소문 쿠데타 → 왕권약화 → 연개소문 사망 → 후계자 서열정리 중 내분으로 자멸 → 나당연합에 멸망 고려의 무신정변과 같은 논리입니다 연개소문의 권력 장악이 고구려 멸망의 가장 큰 원인입니다
@emperorpenguin999
@emperorpenguin999 Год назад
고구려 멸망의 가장 큰 원인은 연개소문 아들들의 분열과 연남생의 배신인데 왜 언개소문 탓을 하냐
@emperorpenguin999
@emperorpenguin999 Год назад
애초에 영류왕이 매국노나 다름없는 비굴한 평화를 구걸하고 연개소문을 죽이려고해서 먼저 선빵쳐서 없앤거고 연개소문이 강력한 카리스마랑 리더쉽으로 내분에 쌓인 고구려를 이끌어서 당과의 전쟁에서 그만큼 버틴거지
@darkkjw
@darkkjw Год назад
@@emperorpenguin999 멸망의 근본적인 원인인건 맞지 대당 강경책의 입안자이기도 하고 자식들의 분열역시 연개소문의 쿠데타와 권력 세습으로 인해 유발된거니까 고구려가 일시적으로라도 숙이고 당태종~측천무후 집권까지 약 60년만 버텼으면 그 다음은 당나라도 슬슬 개판나기 시작하기 때문에 훨씬 더 오래 생존했을걸..
@user-pq6ml1wz6y
@user-pq6ml1wz6y Год назад
​@@emperorpenguin999 연개소문 쿠테타이후 당나라와 적대적인 정책을 핀게 고구려 멸망의 원인임 연남생이 당에 투항한건 아주 나중문제고
@gyusikkim
@gyusikkim Год назад
​@@darkkjw그렇게 본다면 영류왕의 책임으로 거슬러올라가야 함. 당에 대한 저자세 때문에 국론이 분열됨.
@bigmackrigee-Yeongaesomoon
@bigmackrigee-Yeongaesomoon Год назад
ㅜㅜ
@wonsukchoi4523
@wonsukchoi4523 Год назад
신라 혼자 힘으론 고구려 멸망 못시켜요 당나라도 혼자선 안되니 신라까지 끌어들였는데 당나라가 거의 다 해치웠고 신라는 밥숟가락 얹은정도로만 생각됩니다
@user-jz4bl4fx2t
@user-jz4bl4fx2t Год назад
소리가 안들려요
@geahyungchoi8978
@geahyungchoi8978 Год назад
10대20대에는 고구려 멸망이 참 안타까웠고 고구려가 삼국을 통일 했다면 어땠을까 하는 아쉬움이 들었지만 지금 30대에 다시 생각해보니 망할만 하니까 망했구나 라고 생각이듬 그래서 더이상 안타까움과 아쉬움은 없음 어찌됐건 머가리 잘 쓴 신라가 저 시대 위너 👍
@user-re8fo8ke3m
@user-re8fo8ke3m Год назад
고대 국가는 중앙집권 이 아닌 귀족들의 연합체 라고 보는것이 맞겠네요 대게 고구려 백제가 망한것이 국력이 약한것이 아니었군요 ... 귀족들과 연합이 얼마나 되느냐 차이일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드네요... 멸망 이후 고구려도 백제도 부흥운동이 이루어진걸 보면 영상의 내용이 공감이 됩니다
@_white_moon_
@_white_moon_ Год назад
사실 중앙집권이 확립되는건 조선시대 라는 말도 있죠 ㅎㅎ.....
@dri13829
@dri13829 Год назад
중앙 집권 국가라도 국경 인근 군 사령관이나 최고 지도자를 호위 하는 집단이 변절 하면 답이 없음.
@user-fb2hz1dc3c
@user-fb2hz1dc3c Год назад
그 해석이 틀리지 않은 부분은, 백제는 상좌평이 귀족들의 최고 위치였는데 의자왕이 아들들을 전부 상좌평에 앉힘으로써 귀족 민심이 이반됐고, 결국 신라가 5만 군대 이끌고 쳐들어올 때 부랴부랴 동원할 수 있었던 게 겨우 계백의 5천 결사대였으니 귀족을 얼마나 왕이 잘 규합시키느냐가 매우 중요하다고 할 수 있죠. 연개소문은 반정으로 친당 세력 영류왕과 100여 명의 귀족을 전부 제거한 뒤 대막리지에 올라 순전 본인의 카리스마와 역량으로 당나라의 침략을 저지시켰지만 그가 떠난 뒤 그만한 인물이 나오지 않으면 그 공백은 굉장히 크게 다가오죠. 연개소문만은 고구려를 강성하게 이끌었다고 말하고 싶을지 모르나 그가 권력을 잡았던 기간 동안 왕 중심으로 일치단결하여 외세에 싸운다는 대의도 약해졌고, 귀족이 왕의 권한을 행세하는 꼴이 된 데다 자식 간의 내분까지 일어나버렸으니... 귀족이 왕의 권한을 행사한 국가, 귀족이 왕을 버린 국가가 고구려와 백제의 말로였다고 봐도 과언이 아니네요.
@user-rg1cf4yx7f
@user-rg1cf4yx7f Год назад
만약 연개소문의 쿠데타가 실패하고 영류왕정권이 그대로 이어졌다면 고구려는 어떠했을까? 또 그렇게 됐으면 삼국통일은 누가 했을까?
@user-cx4tg9us5k
@user-cx4tg9us5k Год назад
다 좋은데 가끔 소설을 쓰시는군.... 연개소문이 정변에 반대한 안시성을 공격했다고 그리고 패했다고??? 당태종이 요동의 살벌한 겨울추위도 다가오고 안시성 공략 실패를 감추기위한 거짓말 이라는 것이 중론이고 고구려 최전선 요동의 중심은 말 그대로 대성인 요동성이고 안시성은 산악지형의 중소규모의 성이지....ㅋㅋㅋ
@user-xj3hw4ov3b
@user-xj3hw4ov3b Год назад
이 아재 말이 맞음
@user-vx5eg6kl6i
@user-vx5eg6kl6i Год назад
고구려가 한국역사라는 근거 중 하나 내분...격화...ㅠㅠ 슬프군요...
@user-jb5me9si9b
@user-jb5me9si9b Год назад
조선사 오천 년 특징 : 분열성, 타율성, 停滯性(정체성). 엽전은 안 된다. 오래된 생각이다.
@user-fb2hz1dc3c
@user-fb2hz1dc3c Год назад
참내 그게 뭔 근거예요 똑바로 아셔야겠네 모든 나라의 마지막은 내분인 거 모르시죠?
@user-hr6kz4ji8c
@user-hr6kz4ji8c Год назад
@@user-fb2hz1dc3c ㄹㅇㅋㅋ 유럽은 중국보다도 작은 대륙에서 단 한번도 통일된적이 없는데
@Daniel-qx1ip
@Daniel-qx1ip Год назад
@@user-jb5me9si9b 응 니가 제일 문제 이런 생각을 하는 너 때문에 안된다
@user-jb5me9si9b
@user-jb5me9si9b Год назад
@@user-hr6kz4ji8c 유럽이 단일 국가냐?^^
@cacarote12
@cacarote12 Год назад
나라의 멸망은 내부분열로 다 무너짐
@user-ln1fn7rv5t
@user-ln1fn7rv5t 11 месяцев назад
중화와 신라의 역사로 쓰여진 역사서를 어찌 그대로 믿을수 있는가....
@user-rt1yp6cj8d
@user-rt1yp6cj8d Год назад
연개소문이 안시성 공격했다는 기록출처 알려주세요. 처음 듣는거라 궁금하내요.
@wangslee3544
@wangslee3544 Год назад
이거 그냥 영화 안시성만 봐도 나옴
@Werner4voss
@Werner4voss Год назад
당태종이 안시성 공격할때 안시성주가 연개소문의 쿠데타에 반대해 연개소문이 쳤는대 못이겼다고 직접 말했음
@user-bk3vs7qv8q
@user-bk3vs7qv8q Год назад
전 수험공부하다 알았는데 ㅎ
@gyusikkim
@gyusikkim Год назад
​@@Werner4voss역사의 기록은 맞지만, 무기 들고 싸웠다고는 생각되지 않고 말다툼 수준이 아닐까...
@ht30
@ht30 Год назад
내부분열이 제일 큰 문제.
@user-uh9kk3qb2d
@user-uh9kk3qb2d Год назад
수, 당과의 오랜 전쟁에 버틸 수 없었지요. 정복하지 않으면 정복당하지요..
@eunwoocha2208
@eunwoocha2208 Год назад
민족의 방파제 고구려…요새 대조영 다시 보고 있는데 자멸이 딱 맞는 표현인듯
@jongmyeoninglim7738
@jongmyeoninglim7738 Год назад
안시성성주랑 연개소문이랑 내분은 출처어딥니까? 이거 야사로알고있는데 정사처럼 얘기하는게 맞나요?
@user-pm5fp3cm1n
@user-pm5fp3cm1n Год назад
동영상에 오류 내용이 있습니다.실록에서는 연남생은 측천무후에 의해 역적으로 몰려서 일가족이 모두 처형이 되었습니다.연남생이 당나라에서 버틸수있었던건 번장제도의 힘을 얻은 백제출신의 장수들의 도움이 컸습니다.
@josephkang6513
@josephkang6513 Год назад
연개소문의 사실상 막부체제였는데 연개소문이 죽고 자식들이 사분오열해버린 상태에서 나당연합이 침공...
@DS-pe6rn
@DS-pe6rn 4 дня назад
정치적 대립+외부세력과 전쟁 때문에 멸망.. 근데 당나라와 전쟁 여파로 황해도 해안가 몇십리에 인적을 볼수 없었다는 글은 본적 있는데 이미 거의 그로기 상태긴 했음 다만 정치적 문제만 없고 최대한 존버 했으면 달라졌을지도?
@user-vb9ku6ki9f
@user-vb9ku6ki9f Год назад
집안싸움.. .. 결정적으로 그 넓은 영토를 다스리는 국가가 아니라 영토를 지키기위한 176개의 성을 다스리는 국가라서 망한거에요
@batuu2601
@batuu2601 4 месяца назад
연개소문이 왕중심 체제에서 신하가 왕권을 빼았아서 국가의 시스템이 망가졌다고 봄 고려 처럼 힘의 차이가 월등하면 금나라에 사대하고 내치를 다졌어야
@user-ux6lj3dl7k
@user-ux6lj3dl7k Год назад
외부보다 내부가 위험.. 고구려 연남생놈이 고구려 제2수도 국내성포함 40개성이 항복해서 부여성쪽길과 남하길이 뻥 뚫림..
@user-ro3ou3lj1m
@user-ro3ou3lj1m Год назад
여러가지 이유지... 수나라 러쉬에 타격이 큰데 되돌릴만한 인구수도 농경기술도 부족하니... 거기에 연개소문이 욕심을 부려서 일할사람들도 부족해짐... 그 와중에 아들농사도 폭망...
@user-fg8lq4zf1u
@user-fg8lq4zf1u Год назад
욕심이 아니라 부응이었음
@user-su5ri2bt2b
@user-su5ri2bt2b 6 месяцев назад
장수왕이 천도한 평양은 지금의 평양이 아니다 고서들중 많은 중국역사서에서도 기록된 것이 많다고 한다 즉 대륙서쪽이라는 기록을 자세히 연구할 필요가 있다고 봅니다
@user-jk1eg8ip9d
@user-jk1eg8ip9d Год назад
고구려 특성상 전쟁을 안할 수는 없었지만, 지나치게 믾은 전쟁을 한 건 좋지 않았음. 특히, 수당과 장기간 전쟁으로 인하여 국토가 황폐해지고 인구가 급격히 줄어들어서 나라가 정상적으로 운영하기가 어려워 졌음.
@kevinkim7833
@kevinkim7833 10 месяцев назад
수, 당과의 전쟁은 불가피하긴 했죠.. 외세의 침략을 무조건 막아야 하는 전쟁이었으니까요
@user-qr3os8so9w
@user-qr3os8so9w 8 месяцев назад
고구려는 지정학적으로 전쟁을 피하기 어려웠죠 북방에 유목민족들한테 털린적이 있어서
@user-cl8wf1ce2r
@user-cl8wf1ce2r Месяц назад
​@@kevinkim7833 영류왕이 한거처럼 당나라한테 낮추고 사대했으면 어땠으련지. 10년만 버텼으면 당나라는 고구려 못 쳐들어갔을텐데.
@Kwang-Min-Lee
@Kwang-Min-Lee Год назад
아무래도 고구려가 땅도크고 군사력이 가장 강력한 국가였다보니까 멸망이 너무나도 안타깝고 아쉽긴하지만 고구려가 멸망을 안했고 지금까지 계속 이어졌다면 한국이 통일이 안되고 3국으로 나뉘어져서 지금까지도 계속 지속되었을수도있겠죠!!
@user-rc2fd7sb9x
@user-rc2fd7sb9x Год назад
맞습니다 아마 한반도에 두나라가있을겁니다.
@younghwanjang4558
@younghwanjang4558 Год назад
​@@user-rc2fd7sb9x지금도 한반도는 두나라로 갈라진 상태잖아요.
@user-qt1bn3lw4o
@user-qt1bn3lw4o Год назад
한반두는요?
@user-rc2fd7sb9x
@user-rc2fd7sb9x Год назад
@@younghwanjang4558 북괴는 나라가 아닙니다 불법무장단체입니다.
@maple.north.kr1
@maple.north.kr1 Год назад
주몽:아......활 그렇게 쏘는거 아닌데....
@user-wg4nb7hd7t
@user-wg4nb7hd7t Год назад
왕이 실권잃고 특정세력이 힘을 가지면 곧 무너졌다.
@user-hg4ds7qj6v
@user-hg4ds7qj6v Год назад
궁금한게 있는데 고구려.신라,백제도 나름 한민족아니였나요?? 북한,남한처럼 같은민족,언어를 쓴거잖아요!!
@user-bn4og8dh7u
@user-bn4og8dh7u Год назад
분열과 수당 침입의 상처를 회복못함 마지막으로 분열까지 ㅇㅇ
@user-bp3kw3rc9k
@user-bp3kw3rc9k Год назад
미래의 사람이 고구려 시대를 가서 고구려 삼국 통일한 미래보다 암울하지만..신라가 통일하고...일제 식민지 시대를 거쳐야 하는 미래가 필요했기때문!!수백만 분에 1의 확률에서 오로지 이 역사를 거쳐야 하는 이유가 있어서임.이래야 미래의 타이머신을 만들어서 인류를 지킬수 있는 역사가 만들어지는 하나의 선택.
@zse260
@zse260 Год назад
결국 통일된 중원의 힘, 그 힘을 효율적을로 활용할 줄 아는 상대에게 망한거
@user-yi7jj9le9t
@user-yi7jj9le9t Год назад
저는 고구려의 멸망은 연개소문이 원인이라고 봅니다
@jwk5077
@jwk5077 11 месяцев назад
내분이 크긴한데 부수적인 요인으론 고구려의 동맹국이 대거 사라진 영향도 큼 북쪽에선 돌궐이나 그런 유목민족이 고구려와 동맹관계라 당나라를 적절히 견제했는데 다 당나라한테 정복당하고 남쪽으론 백제는 진작에 멸망당하고 거기에 내분까지 터지니 안망할수가 없는데.그와중에도 고구려는 1년이상이나 버팀
@TLS9723
@TLS9723 Год назад
근데 사실상 당나라만 막아오던 국가가 신라 당나라가 양각으로 공격하면 그것만으로도 멸망위기인데 내부사정까지 곱창이났으니....
@user-ux6lj3dl7k
@user-ux6lj3dl7k Год назад
그래도 중국왕조+유목민족과 싸우면서 700년역사를 썼다는게 대단한듯.
@tlakf153
@tlakf153 Год назад
고구려 나라 컸을때 중국인 멸망시켰어야댔는데 ㅈㄴ아깝다 ㄹㅇ
@user-wx6yj4uv2r
@user-wx6yj4uv2r Год назад
내분이 젤크지ㅋㅋㅋㅋ 현재우리나라도 크게 다르지않아 ㅋㅋㅋㅋㅋ
@user-or2cl8ig2n
@user-or2cl8ig2n 11 месяцев назад
국가의 흥망성쇠는 인접국과의 상호작용입니다. 단순히 집권층 내분이 일어났다고 망하진 않습니다. 중국이 분열되었을때 고구려가 강했던거고, 중국이 통일된후 그 국가를 번영시킬 황제가 나오면 고구려는 못버팁니다. 그 공식대로 이루어진것 뿐입니다.
@user-tk8yp5cw8e
@user-tk8yp5cw8e Год назад
평양의 위치나 그런 건 학설이 많으니 차치 하더라도, 동영상 중에 국내성이 500년 간 고구려의 수도였다는 설명은 너무나도 잘못 됐네요. 역사 유튜버 분이 이런 기본 적인 것도 모르시면.... 삼국 사기 한 번만 읽어 봤어도 다 알 수 있는 건데,
@Werner4voss
@Werner4voss Год назад
고구려는 의무려산에서 시작됨
@AA-dk5cw
@AA-dk5cw 11 месяцев назад
근데 사실 고구려가 600년 넘게 갔다는거 자체가 존나 대단한거지 신라나 백제는 지들끼리 라이벌인데 고구려의 라이벌은 중국이였으니 고구려가 거의 700년을 갈 동안 중국에서 바뀐 왕조만 10개가 넘은걸보면 고구려는 존나 오래 간거임 땅덩이가 작은것도 아니였는데
@user-pp8sm2pp4w
@user-pp8sm2pp4w 10 месяцев назад
라이벌은 아님 백제가 신라 개털었음 갑자기 당나라가 개입해서 한순간에 뒤 바뀐거지
@user-zi8ps5ir1b
@user-zi8ps5ir1b 4 месяца назад
@@user-pp8sm2pp4w신라는 광개토대왕 아니었음 진작 멸망당했지 ㄹㅇ
@user-nq5oo2sg7i
@user-nq5oo2sg7i Год назад
고구려 멸망은 사실 중국의 운하와 당시 항해술과 조선술의 발달임 중국이 고구려를 쉽게 못건든게 엄청난 원정임 특히 요하 주변의 늪과 뻘이 원정을 더 힘들게함 원정에서 제일 중요한건 보급임 보급이 가능해야함 근데 중국에 운하가 생기고 중국 남부 양쯔강에서의 엄청난 경제력이 이제 북 중국까지 올 수 있게 됨 또한 그전까지 중국은 오직 육로로 고구려를 침공함 아직 대군을 이동시킬 항해술과 조선술이 겸비가 안됨 근데 수나라 때부터 중국은 이제 육군 해군이 동시 출병이 가능해짐 원래 중국이 고구려 쳐들어가려면 마음 크게 한번 먹고 가야했음 근데 수나라부터 당나라까지 위에 서술한 이유로 연속 침공이 가능해짐 결국 물량전 못 버틴 고구려는 국력이 회복이 안되서 멸망한거임
@user-if7jt7lp8d
@user-if7jt7lp8d Год назад
네 이상 닉넴님의 뇌피셜 잘 들었습니다. 영상에서 소개 했듯 내분으로 인해 고구려의 중요 성 들을 (열어주어) 다이렉트로 수도가 함락된거 아닌가요?
@Werner4voss
@Werner4voss Год назад
@@user-if7jt7lp8d위 댓글이 말하는건 중원국가들의 고구려 공격방식이 훨씬 효과적으로 바뀌어 고구려가 비록 내분에 의하긴 했지만 수당과의 전쟁에 꽤 고생했다는 내용임 요동에 방어선 박아두고 비교적 후방인 평양을 안전한 수도로 생각했지만 수나라부터 서해로 바로 수군을 보내 평양성 직공이 가능해짐 사수전투로 유명한 당의 2차 침공도 백제가 멸망했던것처럼 10만이 넘는 군대가 한번에 서해를 건너 평양을 직격한거임. 비록 연개소문이 사수전투로 당군을 격멸시켰지만 고구려 입장에선 엄청난 위기였음 상대적 후방인 서해안 지역이 공격받는다는건 고구려의 몇안되는 곡창 지역이 공격받는다는 걸 뜻했고 결국 병력이 분산되어 당의 2차 침공 당시 고구려는 한강에서 평양까지 쌀배달온 김유신도 못막음 즉 아무리 내분에 의해 고구려가 멸망했다고 해도 수당의 수륙 양공 작전이 고구려의 국력을 엄청나게 소모시켰다는건 부정할 수 없음
@seonghashin8802
@seonghashin8802 Год назад
@@Werner4voss 한나라도 평양성직공으로 고조선을 멸망시킴
@seonghashin8802
@seonghashin8802 Год назад
문제는 고구려가 중앙집권 국가가 아니었다는 점. 그렇기에 수도직공이 가능했음. 임진왜란 때 선조처럼 도망치며 버틸 수가 없었음. 의자왕처럼 될까봐
@user-oi3os5kb5t
@user-oi3os5kb5t Год назад
강남 경제력은 당나라때도 쩔었나요? 전 송나라부터인줄 알았는데...
@batisttwota3223
@batisttwota3223 Год назад
고구려가 멸망한 이유:1.내분과 분열(한민족 멸망공식) 2.두개의 전선(아무리 강국이라도 전선을 두개 만들면 힘들다) 3.명장및 성왕의 맥이 끊임(소수림왕,영양태왕,호태왕,장수태왕,문자명태왕,양만춘,온달,을지문덕,연개소문같은 위인들이 말년에 없었다.)
@AA-dk5cw
@AA-dk5cw 11 месяцев назад
연개소문 죽고 2년뒤에 고구려가 멸망했으니 존나 말년인데
@rowin2581
@rowin2581 Год назад
이작은 조선반도 안에서 항상분리돼있다는게 이해가 안감 그렇게 통일할 위대한왕이 없다니
@user-yi2sb7gn5b
@user-yi2sb7gn5b Месяц назад
중국의 두 개 통일왕조와 50년 넘게 총력전을 치뤘는데 그 이전에도 북주, 돌궐과 전쟁 상태였슴. 그런 고구려가 수와 당 보다 국력이 미약했던 중국의 남북조시대 때 남조와 북조에 각각 조공칭신 했다는 게 의아스러움.
@user-fs7bv5kv1j
@user-fs7bv5kv1j Год назад
화면첫장 삼국의 지도를 보니 일제식민사학을 바탕으로 만든것 같은데,유투브 책보고를 시청후 역사해석을 추천합니다.
@user-ng3nm8do2k
@user-ng3nm8do2k Год назад
연개소문 아들들이 서로 왕이 되겠다고 내전으로 멸망
@user-hunter7853
@user-hunter7853 Год назад
고구려가 삼국통일 했음 영토는 광활할지 모르나 정치 체제 기반은 지금 북한 중국보다 더 못한 사람 취급 받을수 있을듯
@user-fb2hz1dc3c
@user-fb2hz1dc3c Год назад
고구려도 백제나 신라처럼 특정 국경선 일대가 전부 바다로 에워싸여 있다거나 남쪽만을 주요 국경선으로 두는 형태였다면 광개토대왕 혹은 장수왕 대에 말씀하신 무력으로 밀어버리는 것이 가능했을 겁니다. 하지만 이후의 역사가 꼭 고구려가 통일을 이뤄낼 만한 전개로 흘러가지만은 않았어요. 우선 광개토대왕 때에 통일하지 않은 것은 요동 일대를 아직 완전히 강역 안으로 두기 전이었고, 요동을 완전히 장악한 뒤로도 북쪽에서 얻어낼 것들이 훨씬 많았기 때문입니다. 철, 소금, 병마 등... 이건 남쪽보다 한반도 북쪽 혹은 요동과 만주 일대에 훨씬 풍부하기 때문에 남쪽은 고구려 입장에서 자신들에게 불리하지 않게 돌아갈 정도로 관리하고 북쪽을 공략하려던 거였죠. 비려나 말갈 등 제압해야 할 유목 민족들이 더러 있었다는 것도 이유고요. 그들이 수도인 국내성을 백제와 신라 이상으로 훨씬 더 위협할 존재인 데다 그들은 국가 형태를 띄고 있지 않으니 더 쉽사리 제압하는 게 가능했습니다. 이들을 제압하는 과정에서 남쪽은 고구려에 "불리하지 않게 돌아가게끔 하는 것"에 초점이 맞춰져 있었어요. 그래서 백제 아신왕이 왜를 끌어 들여 신라 금성까지 유린했을 때 급히 5만 기병 보내서 구원했던 거고요. 당시 신라 수도인 금성(경주)이 털릴 정도였는데, 그걸 살려내고 왜군 전부 축출한 뒤 낙동강 넘어서 초기 가야의 맹주였던 금관가야를 털었죠. 이렇게 충분히 밀어놔야 다시는 신라(당시 신라의 위치는 고구려의 우방 국가이자 후방이 완전히 백제화되는 것을 막아줄 국가)를 쉽게 흔들지 못할 것이라 여겼으니까요. 이때 신라는 세력이 너무 약해 백제는 커녕 왜한테도 쩔쩔매는 수준이었는데, 고구려의 주적은 백제였고, 백제가 가야, 왜와 연합해 호시탐탐 신라 지역을 집어삼킬 궁리를 하고 있었으니, 고구려 입장에서는 신라를 살려놔야 후방이 안전해지는 겁니다. 백제가 신라를 멸망시키고 그 지역을 취한다면, 고구려가 나당 연합군에 포위되었던 것 같은 국제 정세가 조기에 형성되었을 거예요. 고구려가 남방 정세에 있어 가장 경계했던 상황도 바로 이것이었구요. 그리고 장수왕이 결과적으로 평양 천도를 이루지만 이 계획은 광개토대왕 때부터 차근차근 준비되고 있었기 때문에 수도를 옮기려는 계획을 실행하기 전에 남쪽의 두 국가와 대전쟁을 치룬다는 건 말이 안 되고요. 장수왕의 경우는 평양 천도를 성공시키지만 오랫 동안 수도 귀족으로서의 지위를 누려 온 국내성파 귀족들의 반발로 최소 수 년 정도는 내전 혹은 그와 유사한 거센 저항에 부딪쳤을 거라고 보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이때 고구려의 대외 활동 기록이 거의 전무하거든요. 내부에서 해결할 문제가 있어 해외 원정이나 영토 팽창을 하지 못했다는 거죠. 이렇게 장수왕이 평양 천도한 게 427년이고, 나제동맹은 고구려의 영향 하에서 벗어나고 싶어했던 신라와 고구려를 꺾고 싶어했던 백제의 연합으로 433년부터 554년(이때 나제동맹으로 한강 빼앗지만 신라 진흥왕이 뒤통수 치고 백제 성왕 죽임으로써 나제동맹 해체)까지 이어지는데, 장수왕 입장에서도 중원 왕조들과 북방 이민족들을 두고 함부로 나제 동맹군을 공격하긴 어렵죠. 한반도는 압록강 이북 대륙에 비해 폭이 상대적으로 좁고(선택할 수 있는 길이 제한적이란 뜻), 산지와 강이 많기 때문에 수비하는 쪽에서 준비를 잘하고 있으면 치고 들어가기가 어려워요. 그럼에도 장수왕이 백제를 한 번 확실히 꺾어야겠다고 결심했던 건 472년 개로왕이 북위에 사신을 보내 고구려를 함께 공격하자고 한 사건 때문이었습니다. 그래서 475년에 한성을 급습해 개로왕을 죽임으로써 백제도 한성백제시대가 끝나고 충청도에 수도를 두기 시작하는 거죠. 장수왕이 당시 백제 수도였던 한성 함락 때 동원한 군사 수가 단 3만 명이고, 개로왕 처형 후 부랴부랴 군대 추가해 밀고 내려간 게 아니라 차근차근 확장해 나갑니다. 이유는 나제동맹을 약화시키기 위한 것도 있지만 수도가 국내성에서 평양으로, 남쪽으로 천도됐으니 평양 이남으로 좀 더 국경선을 넓혀 수도를 보호해야 했기 때문이에요. 평야를 충분히 확보하고, 중국으로 가는 뱃길을 안정적으로 장악하려는 것도 이유였지만요. 어쨋든 한성 함락으로 장수왕이 백제를 크게 약화시킨 건 맞지만 백제와 신라 지역을 한 번에 집어삼킬 수 없다는 건 알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안정적으로 영토 확장하면서 최대로 넓힌 게 우리가 역사 시간 때 본 충청도 아산만~경상도 죽령 지역까지의 영토입니다. 고구려가 세력을 확장했다고도 볼 수 있지만, 백제&신라 입장에서 보면 영토가 좁아진 만큼 더 살아남아야 한다는 의지로 내부 단결이 돼 더욱 강하게 저항하니 고구려 입장에서도 정말 작정하고 대군을 휘몰아 통일 전쟁을 시작할 것이 아니라면 굳이 그들과 전쟁을 벌일 필요는 없었습니다. 이 시점부턴 영토로나, 군사적으로나, 외교적으로나 고구려의 위상과 국력이 백제와 신라를 확실히 앞섭니다. 하지만 고구려 단독으로 백제와 신라 지역을 단숨에 점령할 만큼 두 국가가 호락호락하지는 않습니다. 이 묘한 힘의 질서가 고구려가 더 이상의 전쟁 비용을 치르려 하지 않았던, 다르게 말하면 백제와 신라를 점령하지 못했던 이유입니다. 광개토대왕 때부터의 활발한 영토 확장으로 장수왕 치세 때의 고구려는 확고부동한 동방의 1인자라는 지위를 얻었고, 한반도 남부 세력으로부터 심각한 위협 또한 없으니 이제부턴 평화를 누리며 실익만 챙기면 되는 상황이 펼쳐지는 것입니다. 이 시기부터는 한반도 남부 정세에 있어 고구려에 큰 위협이 될 만한 상황이 펼쳐지지 않는 한 굳이 대군을 동원해 전쟁을 벌일 필요가 없어졌다는 것입니다. 다른 한편으로 냉정하게 본다면 백제는 한성백제시대가 끝난 뒤의 혼란스러운 상황이었다 치더라도 신라는 이전에 비해 국력이 확실히 신장된 상태였다는 겁니다. 백제와 신라 각각의 국토가 고구려에 비해선 현저히 작으니 두 국가를 각각 상대할 수 있다면 이야기가 달라질 수는 있어도, 나제동맹군 전체를 고구려가 홀로 상대해야 했던 당시 상황은 결코 만만하지 않았을 겁니다. 그럼에도, 정말 그럼에도 불구하고 고구려가 김유신과 김춘추가 그러했듯 다른 두 나라를 멸망시키고 홀로 이 땅의 주인이 되어야겠다는 의지를 강하게 품었다면 전성기 고구려가 역사적인 삼국통일을 이뤄내는 주인공이 될 수도 있었다고 개인적으로는 생각하지만... 역사에 만약이란 없으니까요.
@seonghashin8802
@seonghashin8802 Год назад
수나라가 대운하를 완성하고 거의 즉시 고구려원정을 시작한 것을 보면 대운하의 건설목적이 고구려원정 때문이었다라는 생각이 들 정도입니다.
@wwer196
@wwer196 Год назад
대운하로 대륙전체의 생산력을 집중하는게 가능해졌으니 고구려로의 전면침공이 가능해진거임. 고구려를 치려고 운하가 생긴게 아니라 운하가 생겨서 고구려 침공이 가능해졌다는 거지.
@tv-funhistorytv1061
@tv-funhistorytv1061 11 месяцев назад
544년의 귀족 다툼 기록은 그 신빙성에는 정설이라 보기 힘듭니다. 일본서기의 기록으로 알고 있는데 일본서기라는 책 자체가 신빙성이 부족한 책입니다. 대체로 6세기 중반을 귀족연합정권이라 칭하지만 직 후 고구려 왕들이 ‘친히’ 군사를 이끌고 전쟁에 나가는 모습도 보이는데 이는 왕권이 군권을 장악한 모습으로 6세기 고구려의 국력 약화 근거로 보기 힘듭니자. - 또한 개로왕의 편지 역시 고구려를 치기 위한 내용의 기록이며 북위는 빈번하게 고구려와 사신 교류를 했습니다. 북위가 그 백제의 내용에 답장 조차 하지 않은 사실은 당시 고구려와 북위가 서로 남쪽을 바라보며 그들의 국경 지역에 대한 우호를 맺었고, 그것인 즉 고구려가 내란 상태의 직면으로 보기 힘듭니다. 또한 단 7일만에 (개로왕이 북위에 편지를 보내고 3년만에 쳐들어가) 한성을 무너뜨린 고구려가 당시 귀족과 장수왕 같은 내전이 참혹했다믄 것 역시 사실로 보기 힘든 부분이 있습니다
@Demon_Hunter
@Demon_Hunter Год назад
연남건이 항복하지 않자 이에 불만을 품은 연남건의 심복이자 승려인 신성이 다른 장수들을 선동하여 결국 당나라군과 내통하여 평양성의 성문을 열어버리고 말았다. 이로써 고구려는 668년 멸망하게 되었다. 라는데요
@user-um3mh9vo5b
@user-um3mh9vo5b Год назад
국가가 망하는 가장큰 이유는 내분이지...... 원래 강대국이 망하는건 내부에서 시작이 됨..... 연남생이 권력을 잡았으면 .... 그를 중심으로 뭉쳣어야 맞는거지...... 자신을 죽이려 하면..... 과연 어느누가 나죽여라 할 사람이 있을까...?? 연남생 욕할것 없음..... 욕먹을 자들은 내분 일으킨 귀족들의 책임임....
@user-gt5qm2un7b
@user-gt5qm2un7b Год назад
제큰이유는 지들끼리 싸우고 배신때리고 시간질하고 그걸 이용한 신라의 잔꾀에 넘어간거고 당하고 신라의 책략에 완전 깨진거다
@TV-ci6gr
@TV-ci6gr Год назад
지금 대한민국 같군요ㅋ
@user-oi7cz7fl2u
@user-oi7cz7fl2u 11 месяцев назад
연개소문이 고구려 귀족을 쓸어 버리고 왕도 죽이고 하니 전쟁시 가용 장수가 없었고 아들들도 별 장수기질이 없어서 연개소문 사후 아들끼리 내분으로 위쪽은 당에 붙고 아래쪽은 신라에 붙고 이러니 안망하냐. 연개소문 당대에는 안망했지만 망하는게 필연이었던거지.
@user-dh1ye9mf2j
@user-dh1ye9mf2j Год назад
중국의 통일이 큰 이유기도 할겁니다. 그리고 백제의 멸망과 연개소문 사후 자식들간의 세력다툼으로 국론이 분열된 것도 크고요. 하지만 한 나라가 망하고 그 민족이 30년만에 다시 나라가 만들어진 최초의 발해 왕국이 건국되기도 하였고요. 영류왕이 온건파였던건 오랜 전쟁으로 나라 사정이 말이 아니여서였을겁니다. 우선 전쟁이 일어나면 주변의 논밭은 다 태워버리고 성문을 잠그고 항전하는거니깐요. 이런게 지속되다보면 농사 지어야 하는 백성들이 징집되고 악순환의 반복이었을겁니다. 국내성파와 평양파의 지역감정도 국론을 분열시킨 원인이었을거고요. 또한 왕이 절대적인 권한을 갖는 고려, 조선때와는 다르게 여러 부족의 결집으로 이루어진 국가이다보니 자신들에게 분리하게 여겨지면 결국은 왕이 원하는대로 군사와 식량을 내주는 것도 쉽지 않았을거라고 생각되고요. 그래도 국력이 수십배 차이가 나는데도 오랜기간 버티고 수 차례 승리한 고구려는 우리의 자랑스런 역사라고도 생각되고요.
@user-fb2hz1dc3c
@user-fb2hz1dc3c Год назад
여기 저기 들은 거 합치신 것 같은데 왕이 절대적인 권한 갖는 고려, 조선이라 하셨는데 거기서 고려 빼셔야 합니다. 고려 왕이 수도 나가면 백성들 중 누가 강도가 되어 금품 갈취한다고 해도 이상하지 않은 국가였습니다. 단적으로 일본군 쳐들어왔을 때 선조가 의주로 피난가는 동안 백성들이 공격한 예 없죠? 고려는 거란이 쳐들어왔을 때 현종이 나주까지 튀어갈 동안 받은 산적들과 지방 귀족들의 공격이 어떠했는지는 아세요??? 고려가 왕이 절대적 권한을 갖고 있었다고 어디 가서 말하면 무식하단 소리 들을 겁니다
@user-pl1td8qf7w
@user-pl1td8qf7w 11 месяцев назад
세상 어디에도 대막리지 라는 벼슬이 없었죠 태왕 위의 신하 라는 ㅋㅋ
@popori6833
@popori6833 Год назад
땅 차즈러 가즈아~
@user-ph6jm6it2d
@user-ph6jm6it2d Год назад
고구려는 왜 신라와 백제를 냅뒀을까
@gyusikkim
@gyusikkim Год назад
장수왕대에 고구려의 남하를 두려워 한 신라와 백제가 나제동맹을 맺으니 고구려가 맥을 못춤. 그래서 이후로도 신라와 백제를 같이 상대하기에는 항상 역부족이라고 스스로 느껴서 둘 중 어느 한 나라를 정벌할 생각을 못함.
@gyusikkim
@gyusikkim Год назад
중국 왕조가 신라, 고려, 조선을 정벌하여 합병하기보다는, 그냥 놔두고 조공이나 받게 한 점과 비슷한 것임
@user-ph6jm6it2d
@user-ph6jm6it2d Год назад
@@gyusikkim 하긴 맨날 쳐들어오니 바뻣겠군요 백제나 신라는 그것에 조금 안전했던것?
@wonsukchoi4523
@wonsukchoi4523 Год назад
고구려의 침략전쟁 주 타깃은 강대국인 중국이지 신라 백제같은 약소국이 아니었으니요 만약 양학한다 힘빼고 그러면 중국이 가만히 있겠어요?
@user-ph6jm6it2d
@user-ph6jm6it2d Год назад
@@wonsukchoi4523 광개토태왕 때도 안한거보면 그냥궁금해서요
@tanso2624
@tanso2624 Год назад
말라죽은거지 고구려 대중전쟁 패턴이 청야전술, 수성전, 역습섬멸인데 청야전술 하면서 토지 황폐화되고 수성전하면서 거점 황폐화되고 대규모 한타 하면서 인구 갈려나가고 이짓을 수십년 반복하고 갈려나가니 결국 말라죽은거
@user-yw4tx3dd6c
@user-yw4tx3dd6c Год назад
연남생이 당에 간 순간 끝이었죠
@user-rh1gv8ib1w
@user-rh1gv8ib1w 11 месяцев назад
구테타를 일으킨 연남산 연남건 후원집안이 모친집안인 명림 씨족입니다
@user-lv9jj1eq5t
@user-lv9jj1eq5t Год назад
고구려가 수나라를 먼저 쳤던 이유 수가 중국 통일 후 고구려에게 조공을 요구했으나 고구려 왈"니가 뭔데?" "한 대만 맞자"
@user-sp2se6jn8i
@user-sp2se6jn8i 2 месяца назад
고구려도 그때 거기 패권국인데 만주 지배권 다 뺏어 갈려고 하니까 그런거임요
@Mybronaldo
@Mybronaldo 11 месяцев назад
고구려는 Korea라는 이름으로 현재진행형이라는 게..
@Cute_Joyuri
@Cute_Joyuri Год назад
고구려는 신라때문이 아니라 당나라때문에 멸망함. 당시 신라의 국력으로는 불가능 했음. 나당연합이 고구려를 침공할때 신라가 기다린건 고구려 멸망보다 당나라가 힘을 빼주길 기다린게 아닐까 함. 고구려 멸망하고 신라까지 집어삼켜 한반도 전체를 당나라 관할구역으로 편입하는걸 저지하기 위해......
@sdj-jn7up
@sdj-jn7up Год назад
고구려도 신라를 단독으로는 이기지 못함 그래서 여제동맹 맺은거고..
@ridkdkdhbc
@ridkdkdhbc Год назад
@@sdj-jn7up 순수 1대1이면 고구려가 개바르지 ㄷㅅ아 실질적으로 고구려는 국경선도 많고 적도 많아서 신라에만 군대 보낼순 없으니 여제동맹한거고
@emperorpenguin999
@emperorpenguin999 Год назад
@@sdj-jn7up ㅈㄹㄴ
@darkkjw
@darkkjw Год назад
@@ridkdkdhbc 백제 멸망이후 시점이면 그렇지도 않음... 당장 백제를 먹은 신라의 인구 호수와 생산력이 고구려를 압도함 고구려는 땅은 넓지만 땅크기에 비해 인구가 적었음 만주지역은 지금과 달리 개발이 거의 안되어 있던 땅이기도 했고
@deokjang
@deokjang Год назад
대왕의꿈 드라마가 ㄹㅇ 존잼이엿는데
@user-vl4zi2ze2g
@user-vl4zi2ze2g Год назад
연남생도 연남생이지만 보장왕의 무능력함도 크다
@Hyuchan1002
@Hyuchan1002 11 месяцев назад
어차피 바지사장에 불과 ㅋ
@TOYEMPEROR
@TOYEMPEROR 11 месяцев назад
한국 : 연남생이 문제 미국 : 유남생이 문제
@wolfwind1741
@wolfwind1741 Год назад
오늘날의 북한처럼 유연성이 없는 강경 일변도의 외교도 큰 문제라 봅니다
@trysystem9445
@trysystem9445 Год назад
만약이라는 말이 있듯이!! 고구려와 신라가 손을 잡았더라면...
@emperorpenguin999
@emperorpenguin999 Год назад
그럴일은 없음 서로 적일뿐임
@user-wp5tp5kb4j
@user-wp5tp5kb4j Год назад
당시에 고구려가 신라를 도와주는 조건으로 내건게 영토를 바치면 도와주겠다 였습니다. 물론 고구려가 수나라랑 다이다이할때 신라가 기회를 봐서 먹은땅이지만 먹은 놈한테는 어떻게 먹은건데 다시 주냐 이런 생각하죠
@user-jq3wt8mv2d
@user-jq3wt8mv2d Год назад
백제멸망과 지배층의 분열이 큰거같음
@user-gt5qm2un7b
@user-gt5qm2un7b Год назад
백제는 간신배와 왕의 무지로 끝난거구
@user-is6vl2iw4i
@user-is6vl2iw4i 11 месяцев назад
차라리 연개소문이 쿠데타를 실패했으면 고구려는 어떻게 됐을지
@jayk6803
@jayk6803 Год назад
적은 내부에 있다
@user-wj1yb1ff6w
@user-wj1yb1ff6w Год назад
보장왕이라 연남산이 항복한게 아니라 고구려승려출신 신성이 항복한거임 역사좀 제대로 알고 얘기하셈 보장왕은 끝까지 싸우려했고 당으로 압송되고 돌아와서도 부흥운동 꽤하다가 잡혀간거임
@bubu-ww3wm
@bubu-ww3wm Год назад
지금의 대한민국 같구나. 정치하라고 뽑은 정치인들은 자신들 표 얻으려고 맨날 상대 헐뜯기만 바쁘고 내전 아닌 내전만 쳐 하는데... 어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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