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급쟁이였던 청년 김우중이 세운 대우는 대한민국 뿐 아니라 세계 곳곳에 자취를 남겼습니다. 한때 2등 재벌에 올랐던 굴지의 대기업 집단이 무너진 이유는 무엇이었을까요? 지금도 해체 과정과 원인을 두고 의견이 엇갈리는, 대우그룹 이야기를 전해드립니다. #대우 #김우중 #소비더머니
대우가 무너지는데 최고수훈은 무능한 정부관료였다. 경제관료들이 많은 기업회장 중에서도 가장 힘겹고 아니꼬운 상대가 김우중이었다. 지들보다 100배 더 큰사람이었으니까.... 오죽했으면 베트남서기장이 김영삼은 생까고 김우중이 방문했을 때 공항으로 영접까지한 것만 봐도 짐작이 가지
회장님 덕분에 국민학교부터 고등학교시절 유복하게보냈습니다. 외환위기로 아버지 명퇴당하셨지만 지금생각해보면 참 유복하게자랐구나 싶네요. 중동에나가있는 직원 가족들 불러다가 힐튼호텔에서 파티열어주시고 고맙다고 머리쓰다듬어주시고 선물도 엄청챙겨주신 기억 아직도 생생합니다. 지금은 아버지도 80을바라보고계시지만 아직도 대우 사내점퍼와 금뱃지를 갖고계십니다. 감사했습니다 회장할아버지.
주변에 대우그룹에서 근무하시다 명예퇴직 되신 두 분이 가까이에 계신데요. 지금도 그 분들은 그때의 영광을 잊지 못하시더라고요. 항상 회장님에 대한 말씀은 언제나 좋은 이야기들밖에 없었습니다. 연세가 드셨는데도 여전히 스마트하시고 깨어있다는 느낌을 제게 주시는 어른들이십니다. 이런 훌륭한 분들이 대우그룹에서 일하신 것 보니 대우가 얼마나 큰 기업이었는지를 깨닫게됩니다. 하늘에선 큰 아드님과 부디 편하고 행복하게 지내시길 기원하겠습니다.
저 서래마을 주민인데 돌아가시기 바로전까지 예전 서래마을에 사셨을때 다니셨던 아주머니 한분이 하시는 작은 미용실에 백발아 성성한 기사분이 운전하는 폭스바겐타고 오셔서 그 미용실에서 조용히 머리 자르고 가시던 모습 생각납니다. 미용실 원장님께 여쭤보니 예전 사셨을때부터 단골인데 몇십년째 오셔서 자르신다고.. 그때 참 감동 받았습니다. 대우의 성패를 떠나 멋진 인생 사신 분이십니다.
난 지금 미국에서 예전 대우 맨 이셨던 분들이 어느정도 성공하셔서 지금도 대우맨이셨던걸 굉장한 영광 이라 하시며 젊은시절 그때 한국 사회와 함께 성장하셨던걸 굉장히 자랑스러워 하시면서 김우중 회장님 과 미친듯이 나가 개척하며 함께 했었던 지난날을 추억하신다. 존경합니다. 기업은 정치인들이 좌지우지 할수 없게 해야한다
우리 아버지가 60년대 말부터 80년대 초 까지 대우실업 ( 부산 연산동 공장 신성통상)에서 근무를 하셨습니다. 김우중회장 하고 같이 출장도 많이 다녔었는데 , 여관방에서 자면 양말 빨아서 널어 놓코 다음날 신고 나간다고 하더군요. 그리고 시간 아낀다고 짜장면 맨날 시켜 먹었다고 하더군요. 대단하신분 . 집에 그당시 월급봉투종이 아직도 있습니다. 진짜 미친듯이 다들 일했었다고 합니다. IMF때 총때 메신거죠.
김우중 회장이 자신의 모교인 연세대에 자신이 소유하고 있던 강원도 원주지역의 거대한 부지(해당 부지에 미래캠퍼스가 세워짐)를 기증할 정도로 잘 나가셨는데 갑자기 나락으로 훅 떨어져버린걸 보면 사람일이란 예측하기 어렵다는 말이 딱 맞는 거 같습니다. 인생지사 새옹지마란 말도 어울리겠네요.
아버지 대우맨 출신인데 샐러리맨들 정말 잘 챙겨줬다 하셨음 야근도 엄청 자주 하셨던 걸로 기억하는데 성과 좋으면 보너스도 두둑이 주셔서 좋은 곳에서 자주 외식하던 기억남 초등학교때 반에서 호텔 구경도 못 해본 친구들이 태반일때 가끔 호텔 숙박권 호텔 뷔페 식사권 이런 것도 지급해 줘서 어린 나이에도 거기가 뭔가 고급 지고 엄청 좋았었던 기억이 어렴풋이 남 그리고 집에 티비 비디오 오디오 세탁기 냉장고 등등 고가 전자제품도 공짜로 주거나 시중가 보다 많이 싸게 팔아서 집에 없는 전자 제품이 없어서 친구들 이나 아파트 이모들이 놀러 오면 부러워 했던 기억남 이젠 그런 회사가 흔적도 없이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는게 씁쓸하네..
@Yosef J지금 와서는 추억이지만 그 후로 십년 정도 엄청 힘들 었었죠ㅠ 대우맨의 특징인지는 모르겠지만 엄청 근면 성실하셨어요 가족들이 좀 힘들어할 정도로 시간 엄수에 굉장히 집착 하셨는데 그런 성격 때문인지 긴 시간이였지만 다시 잘 재기하셨고 어느덧 은퇴할 나이가 되셨네요 이번편을 통해서 그리고 선생님께서 하는 말씀 들어보니 아버지의 삶을 좀 더 이해할 수 있었던 거 같아요 imf를 이겨내신 대한민국 가장분들 존경합니다.
이 글보고 어린시절 생각났어요. 아버지가 바쁘셔서 거의 보질 못했지만, 회사에서 가족들 다 불러 호텔에서 송년회도 하고 용돈도 받고 그랬거든요. 회사에서 제공되었다며 호텔도 가보고, 호텔 케이크를 먹고 놀랐던 기억.. 전 아버지 상사가 좋은 분인가보다 생각했었는데.. 코로나 좀 가라앉으면 아버지 모시고 좋은 곳가서 밥먹어야겠네요. 우선 힐튼호텔 케이크 사가볼까봐요.
저는 대우인터네셔널 지금은 포스코인터네셔널에서 3 년 에너지강재에서 영업직으로 일 했습니다.. 정말 이사님들은 항상 점심에 비빔밥을 시켜드셨고, 차에서 잠이들면 이동도 회사에서 돈받는 시간이라고 졸지 못하게 했고, 비행기 시간 기다릴때는 항상 노트북을 열어서 일을하고.. 저는 3 년간 단 한번도 쉰 기억이 없네요 ㅎㅎㅎ
공기업이 최고의 직장으로 추앙받고 모두가 워라벨을 외치는 시대에 소비더머니가 다뤄주는 위대한 회장님들의 열정과 집념은 거대한 울림으로 다가옵니다. 증조할아버지들이 피땀흘려 지키고 할아버지들이 토대를 갈고 닦아 이루어낸 지금의 대한민국의 입지, 그리고 세계화시대에 대한민국 국민으로서 누리는 혜택 모두가 그들이 간절히 원하고 바래왔던 소중한 것들이라는 것을 다시 한 번 깨닫습니다. 해보지도 않고 포기하지 않겠습니다. 가진건 시간과 젊음 뿐이니 꿈을 향해 열심히 나아가겠습니다. 귀한 분들의 이야기를 이렇게 방구석에서 쉽게 접할 수 있게 해주신 소비더머니 채널에도 감사드립니다.
분명한 한가지는 저때당시 대우맨으로 김우중 회장과 함께 일했던 임직원중에 김회장 욕하는 사람없고 욕하기는커녕 ( 차라리 김대중을 욕하면 욕했지) 아직도 대우맨이었던거 자랑스러워 하시는분들 많음. 그때 대우 임직원들이 다른 회사로가서 주역됐던 분들도 꽤 많은걸로알고. 가슴에 남은 회한이야 풀려면 한도 끝도없겠지만 그거 하나만으로 성공한 삶이다.
늘 느끼지만 진짜 창업자 세대분들의 이야기는 말도 안되는 기업가 정신으로 무장된 이야기에요.... 저는 머리로 얄팍하게 계산해서 이건 안돼, 이건 이래서 안돼 물론 안되는 이유를 찾는 건 아니지만 당연히 어렵다고 생각하는 건 안된다고 생각하는 편인데 영상을 보면 초대 회장, 설립자, 창업자 분들의 에너지는 정말 혀를 내두르게 됩니다. 어찌보면 40~70년대에 어떻게 저런 분들이 그렇게 많이 나왔는지 지금 생각하면 너무 신기합니다. 지금보다 인구는 절반보다 조금 더 많은 수준이었을텐데 에너지가 정말 장난 아닙니다.
오히려 생각의 수준이 높아지고 고도의성장,빠르고 쉽게 찾을수 있는 지식들때문이 아닌가 싶네요 생각의 수준이 높아지면서 더 많이 계산하게 되고 더많이 생각하면서 생각이 깊어지면서 안좋은 결과에 대한 생각 또한 깊게 자리잡고 수많은 성공과 실패의 선례들을 쉽게 찾아보면서 성공보다는 실패의 가능성이 많다는것 또한 쉽사리 접하게 되면서 도전을 쉽게 못하게 되는것이 있는것 같아요 그리고 저시대에는 말그대로 아무것도 없었고 경쟁자 또한 없었기에 더 많은 가능성이 있지 않았을까 싶어요 과거의 제벌들은 안정보단 도전을 현재의 제벌,기업들은 도전을 통해 일궈낸것들을 안정적이고 단단하게 만드는것 같아요 대우또한 도전은 있었지만 안정이 없었기 때문에 역사의 뒤안길로 떠나갔지 않았나 싶네요 도전도 중요 하지만 도전만큼 안정도 중요하다는것을 느끼네요
@@5nsd04e 그러니깐. 지금 유튜브 시작해서 몇백만 되기 힘든 거처럼. 그 시절 재벌들이 지금 2000년대에 사업시작했다면 그렇게 성장하기 어려웠을거란 이야기. 당장 지금 자산총액 기준 재계서열 순위보면 전자 화학 자동차 중공업 건설 식품 등 제조건설 기반으로 창업해서 순위권에 들어온 재벌기업이 뭐가 있음? 금융계열 미래에셋 제외하면 당시에 없던 IT계열 2~3개정도나 겨우 50위권에 들어감. 그리고 한국 경제성장 당시 정재계 유착을 기반으로 대기업 위주의 특혜받은 건 사실인데 당시에도 인맥없이 아무나 가능했던 거 아님.
@@5nsd04e 헛소리는 아니지. 당연히 지금 대기업들의 창업자들은 엄청난 도전정신을 가지고 성공한 극소수의 사람들이긴 하지만 과거의 터무니 없는 대출한도와 정부세금의 지원으로 대기업들이 큰 건 명확한 사실이지. IMF 당시 대부분 기업들의 부채가 1000%가 넘었는데, 정부와 금융기관이 눈감아주지 않았다면 생길 수도 없는 일이었음. 지금 창업하는 사람들과 과거에 창업했던 사람들은 성공할 수 있는 기회와 확률부터 엄청난 차이를 보인다고 생각함. 아웃라이어라는 책만봐도 미국의 19세기 후반에 미국 역대 부자 중 4명이 있었던 것처럼, 특정 황금기에 부자가 되기 위한 기회가 더 많다고 생각함.
과거에는 잘살지는 못해도 재벌총수도 일계 직원도 국가와 가족을 잘살게 하겠다는 꿈이 있었던 시절이었던 것 같다 지금의 우리는 기업도 개인도 그저 나만 잘살면 그나마 다행이라는 생각만 들게하는 세상인것 같아 슬프다 어디서부터 잘못된건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우리가 다음의 정체성과 꿈을 찾지 못한다면 지금 누리는 것들은 사라지고 우리의 후손들은 우리를 원망할것이다
@@dhwkdudwjsmddkTqkfsus 주식투자 안할거면 모르겠지만 투자 계속할거라면 주식으로 10만원에서 30억으로 만든 [주식의정석] 이 채널의 영상들을 꼭 보셔야 할거에요 (영상들이 짧아서 보는데 무리없음) 주식투자를 어떻게 해야만 하는지 그야말로 주식의정석을 보여주고있더군요. 아마 은둔고수로 추정이되는데요 광고 아니니 오해없으시길..
빠르게 성장한 만큼 빠르게 사라진 비운의 대기업... 사실 대우가 파산한 데에는 너무 빠른 시간 안에 너무 많은 분야로 사업 분야를 확장한 것도 좀 크다고 생각했음. 흔히 말하는 문어발식 경영의 정수가 IMF 이전의 대우. 어음으로 굴러가던 기업 경영 체제에서 문어발식으로 확장하면서 가수익(어음으로 벌어들이는 수익)은 재계 탑급이었지만 IMF로 어음 경제가 한 번에 무너지면서 받아야 될 어음들이 모조리 사라졌고 결국 성장 동력이었던 어음이 오히려 발을 묶고 파산까지 이르게 했음. 조금 느리더라도 천천히 발을 넓혔으면 그 천부적인 경영 감각 덕에 지금까지도 삼성을 위협하는 대기업이 되지 않았을까...?
겪어보니 1. 이건 뭐...김우중은 대단한 사람 맞음. 2. 근데 대우맨 뽕맞은 애들은 제정신이 아닌 사람들 많음 3. (주) 대우다?! 가오가 모공까지 튀어나와서 이건 인간인지 하나님도 버린 생물인지 모를 정도로 제정신이 아니더라.(당연히 성과는 없음.) 4. 아직 남아있는 대우그룹 출신 회사들이 왜 자꾸 먹버 당하는지 생각해보면, 답 나오는거 아닐까 싶다.
@@OYT0724 금 모으기 아이디어가 김우중 씨 꺼임 또 모인 금를 다른 무역 상사와 분할 판매도 했고 ,,, 아니 떰핑 쳤다고 봐야지, 그때 만약 금 모으기 한 그 금를 한국은행에 3년만 방치했어도 따 따 불은 될 수 있었지 그게 말이다 안 팔고 가지고만 있어도 IMF에서 다 한국 기초 자산으로 잡피는거야 ,, 굳이 딸라로 바꿀 필요가 없는거임ㅋㅋㅋㅋ 보여만 주면 되 야 우리 이만큼 금 있 어 당신들 눈으로 바 요 그러니 조금만 연기 합시다 하고 ,,, 야 진짜 나라를 걱정하고 후손들이 걱정되면 선조들에 실수를 가르쳐야 되는거야 알팍한 국뽕에 감격스러워 하는건 공산당원 들이나 해야 하는거야 한국에서 김우중이 편은 아마도 조선일보 정도? 그리고 너와 같은 지방 이기주의자들 가칭 우파라고 하지 ㅋㅋㅋ
1.자기손으로 말뚝 세워 지은 공장은 없고 빚내서 인수하고 덩치만 키움 2.히트 상품도 없고 실속은 더욱 없었음 3.부채비율이 최악이었음. 분식회계로 또 대출받음 4.이 모든 게 권력과 유착 없이는 불가능했음 5.경영능력보다는 욕심이 앞섰음 5.대우 직원들 협력업체 출장가면 돈 뜯어내기 바빴음 6.거품 경영인의 대표적 사례임
제3세계 시장을 노린게 대우의 큰 패착임 이영상에서도 말했듯이 거지국가들은 약속어기는게 일상임 현물로 받았다지만 돈이 아니라 현물로 받으니 유동성이 약화되고 현금 유동성이 약화되니 대출에 젖어들어버림 따고 갚자 이래버리니 회사는 미친듯이 커갈 수 밖에 문제는 제 3세계는 구매력도 약하고 삶의 질도 낮아서 제품의 질보다는 양과 가격을 더 선호하니 대우가 자체 첨단기술을 개발할 이유도 의지도 사라짐 가장 큰 문제점은 미개척 시장을 찾는다 말은 좋지만 경쟁자가 없다는 뜻임 그러니 혁신과 개발을 너무 소홀히함 그딴걸 왜함? 나혼자 여기서 사업하는데 그 모든게 쌓여서 대우가 순식간에 허공으로 사라진거지
옛 대우계열사 직원이었는데요. 김우중 회장에 대한 일화를 새파란 사원시절 당시 차장님(대우그룹 시절 공채로 입사하신분)께 들은적이 있습니다. 김우중 회장님은 그 명성치고 굉장히 겸손한 편이셨데요. 아니 오히려 부끄러워하는 편이었다는 인상을 받으셨답니다. 그 차장님이 대리시절인데, 김회장님은 자기 자신(사장)을 띄우는 일을 하지 못하게 했다는 군요. 예를 들어, 신년 시무식을 열어도 행사순서표에 “사장님 신년사” 이렇게 쓰지 못하게 하고 그냥 “사장 신년사”라고 표기하고, 사회자가 읽기도 그렇게 했다네요. 그래서 대우 사내 문화도 권위보다는 실용적인 것을 중시했다고 합니다. 당시 대우는 사훈 자체가 특이했습니다. “창조. 도전. 희생” 영리기업에서 희생이란 말이 왜 들어갔는지 신기하죠. 제가 일했던 곳도 사훈이 “도전과 열정, 자율과 책임”이었습니다. 중후장대 산업이면서도 그 특이한 분위기의 자율적인 사내 문화. 지금 생각해봐도 정말 좋은 회사였어요. 지금은 주인이 자주 바뀌어 그 유산을 계속 유지하지 못한다라고하니 너무 안타깝습니다. 모든 대우맨이 지금도 분개하고, 안타까워하지만 대우그룹은 분명히 살릴 수 있었습니다. 당시 천천히 내실을 다지며 사업을 키울 수 없었습니다. 속도전에서 늦어지면 바로 도산입니다. 당시 기재부 관료들에게 밉보여 자금 흐름에 있어 정권의 보호를 못받아 쓰러진 겁니다. 대우처럼 다른 그룹들도 자금을 유동화시켰습니다. 그런데 뚜렷한 기준없이 대우는 배제되고 해체됐습니다. 지금 생각해도 너무 아깝습니다. 삼성처럼 기술초일류의 회사는 되지 못해도 생활필수영역 및 중공업 같은 중후장대산업에서 튼튼한 회사로 남을 수 있었습니다. 지원을 받았다면 더 많은 수출과 일자리로 빚을 갚았을 거구요.
내가 근무하면서 두눈으로 본 계열사 이사부장은 사우나 좋아하고 법인카드로 안경사고 골프에 환장하고 업무용차를 개인전용으로 쓰고 지 친구가 국민은행 지점장이라서 국민은행에 예금넣어주고 차량 유류비 지 맘대로 쓰고 업체랑 낙씨다니며 접대받고 참치눈알로 담근술 좋아하고 일식집 주방장이 명절에 회사로 선물보내주고 참 가관이었어요
IMF 사태 터지기 전까진 국내 재계서열 2위였었는데... 그때 위기만 잘 넘겼어도 지금까지도 재계 순위 5위권일텐데. 특히 대우중공업, 대우자동차는 확실한 효자계열사에 크게 알아줬었지.채무만 잘 해결되었음 싶은데 무리하게 다른 사업까지도 확장 시키다 결국 부도 나고 자동차만 쉐보레로 인수 합병된 안타까운 기업. 98년때 부평 자동차공장 지나갈때 늘 타이어 불타오르고 시위 엄청났던거 기억나네
영상을 보니 ... 세계 시장을 상대로 하는 여러가지 무역에는 천재적인 재능이 있었지만 ... 품질 + 기술 악착같이 일류로 올려서 한우물 파는 것에 대해서는 좀 무관심했다는 생각이 드네요 ... 근데 사실 김우중 식의 대기업 경영은 중진국에서 선진국으로 가는 시기에는 적합할지 몰라도 선진 기업 중에서도 결국 일류만 살아남게 되는 세계시장에서 대기업으로 살아남기에는 역부족이었다는 생각이 드는 ... 분식회계건도 그렇고 ... 선진국형 일류기업으로 살아남는 데는 방식이 좀 안맞지 않았나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