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식진의 비문이 발견되기 전까지 의자왕은 향락과 여자에 빠져 나라를 망하게 한 왕이라지만...기록에 의자왕은 멸망하기 바로 전해 659년까지 신라를 몰아붙여서 가야의 영역까지도 차지한 왕이라고 나옴...근데 왜 갑자기 그다음해에 나라가 망했는지 미스테리였지만 지나친 왕권강화를 위해 귀족 숙청 부분과 그리고 나당 연합군이 왔을때 임존성이 아닌 수비에 유리한 웅진성을 택했지만 웅진성주 예식진의 배반으로 허무하게 망한걸로 밝혀졌죠...물론 너무 오래된 고대사이고 멸망당한 패자 백제의 기록자체가 지금 현재 거의 남아있질 않아서 정확하진 않지만.....궁예 또한 왕건과의 세력다툼에서 패해서 죽은뒤로 아마도 흑화당했을 경우가 높다고 봅니다...궁예 본인도 송악을 근거지로 했다가 나중에 철원으로 수도를 옮기는걸 보면 왕건의 세력을 견제하기 위해서였을 경우가 다분하죠..결국 세력다툼에서 졌기 때문에 패자는 어쩔수 없이 흑화되기 마련입니다..
태조 왕건은 이시대 최고의 드라마지 왕건을 뛰어넘을 사극은 없다. 어떡해 200화에서 딱 마무리가 될수있으며 어찌 이드라마에 인생을 어찌 살아야하나 하는 법이 너무나 잘 나온다. 우리는 때로는 궁예가 될때가 있고 때로는 왕건 같아야할때가 있고 때로는 여기에나오는 신하들 같이 살아야할때가 있다 너무나 명작이다
단순히... 역사는 승자의 기록?? 그럼 어떤 역사든 믿을 수 없겠네? 배울 필요도 없겠네? 물론 기록의 대체로 승자의 관점에서 쓰임. 그래서 세계사도 유럽 중심으로 서술 되는 일이 비일비재함. 하지만 그런 이유 때문에 생각이 있는 사람은, 어떤 역사도 걸러 듣고 걸러서 이해하는 것임. 그리고 학자라면 더더욱 그러함. 그런데도 옹호와 변명의 여지가 거의 없는 인물이라면? 억지로 두둔할 이유가 없음.
솔직히 우리나라는 사료가 너무없고 중국같이 기록한것도 커서 그냥 이런게 있구나 정도만 알아도 상관없음. 더 깊이 파고들꺼면 이제 진짜 깊이 파야하고. 삼국사기 김부식이 고려때 썻고 고려사 조선때 쓴거임. 고려입장에서 쓴것도아니고 조선이 조선에 띄울려고 쓴거라 큼직큼직하게 보는게 좋음
단순히... 역사는 승자의 기록?? 그럼 어떤 역사든 믿을 수 없겠네? 배울 필요도 없겠네? 물론 기록의 대체로 승자의 관점에서 쓰임. 그래서 세계사도 유럽 중심으로 서술 되는 일이 비일비재함. 하지만 그런 이유 때문에 생각이 있는 사람은, 어떤 역사도 걸러 듣고 걸러서 이해하는 것임. 그리고 학자라면 더더욱 그러함. 그런데도 옹호와 변명의 여지가 거의 없는 인물이라면? 억지로 두둔할 이유가 없음.
그건 피아골 이야기 인거 같네요. 지리산 피아골이 죽은사람 피로넘쳐 그것을 숨기려고 백성들이나 군사들에게 쌀과 밀가루를 모아서 빨간 핏물을 하얗게 가렸다고 들었습니다 적들은 피아골에 피가흐른다는 정보를 입수하여 병력이 많이 죽었다고 생각하고 공격할기회를 엿보는데 대뜸 밀가루와 쌀뜨물이 내려와서 이렇게 많은 쌀뜨물이 내려온걸보니 병력이 많겠구나 하고 회군했다는 옛 이야기를 들었네요
단순히... 역사는 승자의 기록?? 그럼 어떤 역사든 믿을 수 없겠네? 배울 필요도 없겠네? 물론 기록의 대체로 승자의 관점에서 쓰임. 그래서 세계사도 유럽 중심으로 서술 되는 일이 비일비재함. 하지만 그런 이유 때문에 생각이 있는 사람은, 어떤 역사도 걸러 듣고 걸러서 이해하는 것임. 그리고 학자라면 더더욱 그러함. 그런데도 옹호와 변명의 여지가 거의 없는 인물이라면? 억지로 두둔할 이유가 없음.
단순히... 역사는 승자의 기록?? 그럼 어떤 역사든 믿을 수 없겠네? 배울 필요도 없겠네? 물론 기록의 대체로 승자의 관점에서 쓰임. 그래서 세계사도 유럽 중심으로 서술 되는 일이 비일비재함. 하지만 그런 이유 때문에 생각이 있는 사람은, 어떤 역사도 걸러 듣고 걸러서 이해하는 것임. 그리고 학자라면 더더욱 그러함. 그런데도 옹호와 변명의 여지가 거의 없는 인물이라면? 억지로 두둔할 이유가 없음.
기록된 역사로 보면 그럴것입니다.... 하지만 당시 역사의 기록은 지금과는 너무도 다릅니다.. 사실 지금도 알려지는 것과 기록되는 것 또한 다른것이 현실입니다. 특히, 정치라면 더더욱..... 물로 저도 과거의 정확한 사실은 모릅니다. 하지만 역사를 되집어보면 우리 역사의 기록에 의하면 참 이상하다 싶은 기록은 역시나 궁예와 광해군입니다... 정말 기록된 그대로 일까? 것에 참 이해하기 어렵고 이미를 부여할수 잇는가에 대하여서는 여전히 미스터리입니다.. 역사의 기록은 승리자의 기록이기 때문입니다....
단순히... 역사는 승자의 기록?? 그럼 어떤 역사든 믿을 수 없겠네? 배울 필요도 없겠네? 물론 기록의 대체로 승자의 관점에서 쓰임. 그래서 세계사도 유럽 중심으로 서술 되는 일이 비일비재함. 하지만 그런 이유 때문에 생각이 있는 사람은, 어떤 역사도 걸러 듣고 걸러서 이해하는 것임. 그리고 학자라면 더더욱 그러함. 그런데도 옹호와 변명의 여지가 거의 없는 인물이라면? 억지로 두둔할 이유가 없음.
쿠데타 세력에 의해 축출당한 궁예대왕은 철저하게 미치광이 폭군으로 매도되었다. 중앙집권으로 나아가려는 궁예대왕은 왕건을 비롯한 호족세력에게는 제거 대상이 되었을것이다. 이에 호족들이 왕건을 추대하고 궁예대왕을 몰아낸 참극이 벌어진것이다. 한편으로는 북진을 꿈꿧던 궁예대왕이 성공한 제왕이 되었다면 어떠했을까라는 아쉬움이 남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