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만히 듣고 보니 그 당시가 한국사에서는 가장 중요한 분기점이었네요. 한글이 창제 선포될 수 있는 길로 가느냐 그렇지 못하느냐가 결정되는 순간이었으니 태종과 그의 적장자 양녕에겐 가슴아픈 일이었겠지만 5000년 한국의 역사를 통틀어 조선, 오늘날의 한국에게는 정말 축복 같은 왕이 등극하는 계기가 되었으니. 세종과 한글이 없었다면 과연 동서양을 아우르는 한류, 한국을 선진국으로 도약시킨 한류가 발생했을까 하는 생각을 하면 더욱 꿈과도 같은 역사의 분기점 같습니다. 태종 이방원과 원경왕후는 세종을 낳은 것만으로도 소위 말하는 까방권을 5000년 동안은 획득한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도 해봅니다. 태종, 원경왕후 왕자의 난을 거치며 끝내 살아서 세종을 낳은 것. 정말 감사합니다. 세종대왕한테는 이루말할 수도 없이 최고의 감사를 올립니다.
문종의 욕심으로 단종이 죽은거 정사를 돌보지도 못하는 어린 핏덩이를 왕으로 추대한게 큰 욕심이었음 자기가 단종이 정사를 볼수있을 나이까지 살았다면 상관없지만 너무 빨리 죽을걸 알면서 핏덩이로 인해서 김종서나 중신들이 왕을 꼭두각시로 만들고 정사를 운영하는걸 걱정한 양녕대군이 걱정한거임.. 역사는 역사일뿐임 역사에 인성이 어디있음 ...과정만 있을뿐임..
조선 제3대 왕 태종 장남 적장자 세자 양녕대군(숭례문 현판 글씨 . 경복궁 경회루 현판 글씨)이 개막장짓 잘해서 폐 세손돼서 → 조선 제4대 왕 세종대왕님께서 만들고 반포하신 한굴(훈민정음)을 우리가 현재 사용하고 있는 고마움 ~ ㅎㅎ ~ 양녕대군 ~ 참 ~ 잘했어요 ~ 100점 ⬆❤
최태성 선생님! 제 의견은 이렇습니다. 제가 보기에는 태종이 양녕을 원래 버리는 카드로 쓴 것 같습니다. 태종이 최초로 실록을 태종 13년에 편찬한 것을 보면 최초로 실록청을 구성하고 실록을 편찬한 것으로 보입니다. 그러던중 고려의 역사도 보았고 고려 초의 국가 기틀을 마련하는 과정에서 왕건의 외척세력으로 인한 혼란을 보았을 것이고.. 이러한 과정을 겪지 않기 위해서 양녕대군을 버리는 카드로 쓸수밖에 없는 왕의 고뇌가 보입니다. 이것이 진정한 용의 눈물이 아닌가요? 심지어 세종의 외척도 미리 제거했다는 게 합리적입니다. 세계 UNESCO 문화유산으로 등재된 조선왕조 실록과 훈민 정음이 똑같이 등재되어 있습니다. 태종이 전 오히려 더 위대하다고 생각합니다. 왜 태종을 단순한 폭군의 이미지만 씌우는 지 알수가 없습니다. 조선이 결국 외척세력으로 혼란한 내우외환의 시대로 역사 속으로 사라진것도 태종의 정확한 선견지명이 아니었나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