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은 조선족도 중화민족에 포함시킨다고 하던데... 그러니까 한복이 중국 것이라고 하는 게 자기네 소수민족의 복식이라서 라고 하지요. 묘족, 갈족, 강족, 위구르족, 티벳, 내몽고 등등을 다 통칭해서 중화민족이라고 지정을 함. 중화민족이란 게 20세기에 중국 공산당이 만든 개념이죠.
아무렴 슈카형이 잘 알지만 재미를 위해 말하지 않은 내용을 덧붙이면, 1.주원장은 남아있던 북원 세력을 유연하게 막기위해 자식들을 외곽지역의 번왕으로 만들고, 실제 군권까지 주었음. 그래서 연왕 주체는 사실상 합법적인 군대를 보유하게 됨. 2. 주체는 능력이 매우 출중했음. 주원장은 일부러 연왕을 북경지역의 번왕으로 보냈는데, 원은 이미 망해가던 나라였으며, 고대 중국사부터 중국이 가장 두려워한 오랑캐는 만주지역의 오랑캐였기 때문에 군사적 능력이 가장 출중했던 주체에게 맡김. 3. 덕분에 주체는 관할지와 가까웠던 고려와 여진족에게 시비를 걸며 늘 긴장상태를 유지했고, 합법적(?)으로 군사훈련을 할 수 있었음. 4. 연왕이 황제가 된 이후 수도를 남경에서 북경으로 옮긴 것은, 본인이 죽인 조카가 있던 궁에서 살기 싫었던 것도 있지만, 주체가 본래 연왕으로 있던 곳이라 영향력이 강했기 때문. 5. 명을 정복한 청나라가 북경을 그대로 수도로 삼은 것은 만주족(여진족)의 본래 고향에 가까워 영향력이 강했기 때문.
당시 중국 지역 중 만주 지역이 경제의 핵심이었는데 소련군의 도움으로 공산당이 장악하였죠. 일본군이 잘 키워논 걸 공산당이 장악해 버린 겁니다. 이게 좀 국민당에게 타격이 컸습니다. 이후 전투에서 포위되어 전멸하는 경우가 꽤 많았고... 하지만 대만은 지키게 된 거죠. 해/공군이 강하니까. 만약 남경이 수도로 남았다면 상해 말고도, 남부 지방 도시들이 더욱 발전 했겠죠.
영락제와 세조가 즉위할때 조금 달랐던건 영락제는 진짜 대판 싸워서 이겨서 쟁취했었고 세조는 영화와 다르게 정말 아무도 모르게 준비했다가 한번에 왕을 장악해서 끝냈습니다 사육신 생육신등이 유명해서 잘 안알려져 있었지만 그당시 지방쪽에서도 엄청난 반발이 있었고 그걸 달래기위해 아군에게 힘을 실어주다보니 왕권이 미친듯이 약해졌습니다. 단종이 너무 어려서 그렇지 단종은 역대 조선왕들중에서 정통성은 압도적인 1위였던 왕이기도 했고요....
역사 이야기가 나와서 지나가다 댓글 남깁니다. 본래 사육신은... 생육신 중 하나였던 남효온이 자신이 지은 문학집이었던 추강집에서 처음 언급한 것을 시작으로 이들을 사육신이라 불렀는데... 조선왕조실록 세조실록의 기록에는 단종의 복위운동을 위해 주모자 17명을 엄벌했다는 기록만 남아있습니다. 문제는 계유정난이 일어난 시기에 2~3살 정도였던 남효온이 후대에 이르러, 자신을 생육신 중 하나로 포함 시키면서 사육신과 생육신이라는 명칭을 새롭게 창조(?)했다는 데에 있습니다. 실제 동작구 사육신 공원을 가면 주차장은 5~6대 밖에 주차가 안되고, 언덕을 기어서(?) 올라가면 큰 대문이 하나 나옵니다. 그곳을 들어가면 맨 뒤쪽 구석탱이에 묘지가 있으니 산책할겸 한번 방문 해보시는 것도 좋을 것 같습니다. ^^
제가 순천김씨 입니다.. 계유정난때 순천김씨들 많이 죽었다고 해요.. 그리고 족보를 사던 시절에도 순천김씨 족보는 사지를 않았다고 해요. 그게 다행인지를 모르겠으나 전국에 순천김씨들이 많이 없어요. 그런 성도 있어라고 사람들이 말해요. 김종서 조상님 자부심을 가지고 살고 있습니다.
개인적으로 주원장 이야기도 흥미로웠지만 주원장의 아내인 마황후 이야기도 굉장히 흥미로웠던 기억이 있네요. 수많은 신하들을 처형한 고집불통 주원장이었지만 젊을 적부터 함께 고생했던 아내 말은 잘들어서 누명쓴 신하들이 마황후한테 찾아가서 억울함을 토로하고 그 덕에 많은 충신들이 목숨을 구했다던 ㅎㅎ
역사적으로 베이징은 중국 한족의 땅이었던적 보다 한족이 아닌 북방민족 등의 땅이었던적이 더 많습니다. 수도를 예전 처럼 남경 같은 남쪽에 두는 것은 북방을 포기하거나 혹은 북방이 두렵거나 하기 때문입니다. 통일된 중국을 경영하려면 이미 한족의 문화로 확보된 중원과 남쪽지역 보다는 북쪽의 베이징에 수도를 두는 것이 좋습니다. 북방이 흔들리면 통일은 깨지는 것이고, 북방은 중국으로 편입된 지가 몇백년 안되는 약한 고리니까... 만주국이라고 일본이 세운 괴뢰국가역시. 만주땅 그러니까 중국의 북방지역이 역사적으로 현실적 행정력 차원에서도 그 지배상태가 대단히 애매한 지역이었기 때문에 가능했던 겁니다. 중국이 너네들 우리나라 침략해서 점령했다!!!라고 따지면, "야, 만주가 니네땅이라고 그렇게 큰 소리치기에는 좀 애매하지않냐?"라고 맞받을수 있었으니까. 현대중국의 마오쩌둥도 그걸 너무 잘 알고 있었습니다. 막 시작된 중국입장에서 북방을 확실히 중국땅으로 안정화 시키는게 중요했으니까... 진짜 중국은 우리기준으로 서남쪽에 있습니다. 그곳의 문화나 말투가 진짜 중국입니다. 현재 북경을 중심으로 한 중국은 사실 역사적으로 진짜 중국으로 편입된지 얼마되지 않습니다. 그곳 사람들의 생김새나 말투 역시 전통 중국어와 다릅니다. 진짜 중국어 발음은 r발음이 세지 않습니다. 북경/그 북쪽 중국어는 r발음이 매우 셉니다. 그건 바로 만주어, 여진어를 쓰던사람들의 후세가 그곳에 살고 있기 때문입니다.
첨언드리자면 중국대륙은 늘 북에서 남으로 동에서 서로 통일이 되었는데, 딱 두번 한신이 서쪽에서 주원장이 남쪽에서 통일했습니다. 진시황의 진도 서쪽이라고 말씀하시는데 당시 지도상 진나라는 삼국지의 기산(웅)을 도읍을 삼았고 진시황이 왕에 오를땐 장안 근처로 천도하여 북에서 남으로 통일하였습니다. 그리고 여말 요동정벌이 한반도 국가의 마지막 요동 함락이며, 명나라 초기에도 조선(고려)는 싸움을 잘하는 나라이기때문에 강경책과 유화책을 동시에 폈습니다 본격적으로 깔본건 왜란과 호란이후이지요
중국수도의 특징은 항상 가장 위험한 경계지역에 수도를 두고, 거기에 군사력을 집중함. 서안은 서쪽 국경, 북경은 북쪽 국경. 남경은 양자강을 경계로 하는 남쪽 방어선. 지금 중국 지도에서 이 세곳을 잇는 지역 안쪽이 실제 중국땅이고 그 외 지역은 다른 민족이 살던 땅을 조공국 형태로 간접 지배하던 곳임. 그 민족들이 한족에게서 분리되어 독립 국가가 되는 날이 오길 바랍니다.
징산 공원.... 인공호수 만들기 위해 파낸 흙을 이용해 산을 이루었다는 것이 일반 사회에서는 믿겨지지 않겠지만.... 군대 다녀온 사람들은 이해 한다. 진지 보수 공사나 윗분들 현장 시찰 나올때, 부대 정기 점검일때의 그 순간을.... 정말 인간의 초능력이라고 해야 하나.... 인간의 위대함이라고 해야 하나.... 여하튼 군대에서 정말 많은 것을 배웠다. 사람이 마음만 먹고 일치 단결 하면 호수 한두개 뿐 아니라 산도 원하는 만큼 만들고도 남을 거다. 대자연도 위대하지만, 사람도 정말 위대하다는 것을 사람이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