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화수님 정말 정말 오랫만입니다 심신이 힘든 개인 사정으로 절대 가벼이 볼 수 없는 청화수님 영상이라 방문이 늦어졌습니다 안녕하세요 청화숩니다 라는 안정적인 목소리와 여전히 방대한 해설을 접하니 힐링이라는거는 큰게 아니다 싶습니다 .. 그동안 라이브방송도 여러번 있었네요 밀린 영상 굉고와 더불어 꼼꼼히 시청하고 . 다음 라이브를 기약합니다~^^ 더불어 계획하시는 이어지는 시리즈물도 기다가 큽니다 ^^
그러셨군요. 그동안 오시질 않으셔서 어떤 일 있으신가 몹시 궁금하였습니다.. 저도 요즘 참으로 힘든 시기를 보내고 있는데 선생님꼐서도 부디 잘 해결되시기를 진심으로 기원드립니다. 제 영상으로 편안한 휴식 되실 수 있도록 부족하지만 더 열심히 만들겠습니다. 대단히 감사합니다.
부여..진짜 미스테리한 나라 중에 하나라고 생각해요.고구려 건국 신화랑 부여건국 신화랑 유사한 점, 고구려계였던 백제 역시 남부여라는 이름을 국호로 채택한것과의 연관성, 결과론적으로, 무엇때문에 추모대왕이 기를쓰고 부여의 정체성을 계승하려했는지 정말 궁금했는데 궁금증이 곧 풀리겠네요 감사합니다ㅠㅠ
잘 봤습니다. 지리의 힘이라는 책에도 미국이 강대국이 된 이유로 넓고 긴 강들이 수백 개가 있어서 대륙 곳곳으로 물류가 가능했다는 거였죠. 광개토대왕이 39에 돌아가셨는데 남진정책이 성공했으면 현대까지는 몰라도 5세기 이후 상당히 오랜 기간 동안 한반도와 만주를 석권한 국가로 거듭났겠네요.
사실 많은 사람들이 착각하는게 광개토대왕이 주로 북방의 적들과 싸우고 영토를 확장했다고 생각하는데 광개토대왕릉비를 보면 아시겠지만 사실 광개토대왕이 주로 싸운 주적은 북쪽 오랑캐가 아니라 백제와 왜, 더 엄밀히 말하면 왜와 가장 많은 전쟁을 벌였습니다. 그리고 백제를 이미 한번 정복하였음에도 직접 통치를 하지 못했었죠.
역사를 단순히 누가 뭘 했다, 잘하고 못했다가 아니라 정치, 경제, 지리적인 관점에서 그렇게 될 수 밖에 없었던 이유들을 찾아나간다는 점이 청화수 컨텐츠의 가장 큰 장점이 아닌가 싶습니다. 작년에 적벽대전 영상을 계기로 우연히 보기 시작했는데 정말 큰 행운이었던 것 같네요. 생업으로 인해 영상 제작이 힘들다는 점이 참 아쉽습니다. 누가 숙식 제공해주고 방에 가둬서 영상만 만들게 했으면 하는 생각도 듭니다 ㅋㅋ 다음 영상도 기대하겠습니다~
지금 생각으론 광활한 대륙을 더 정복하지 않은데 안타깝게 느껴짖만, 지금도 저쪽은 인구밀도가 극히 낮은 지역입니다. 물론 동북삼성이 우리나라보다 인구기 많지만 그것도 현재 고구려 강역 부근에 도시들이 인구가 많은거고...그때면 인구가 지금보다 적으면 적고 많지 않았을텐데 그때 당시 진짜 허허벌판에 중간 중간 도시들이 있었을텐데 저정도면 정말 많이 먹은거라고 생각해요, 광개토대왕의 일찍 돌아가신게 아쉽습니다. 하필 신라...
처음 댓글 남기네요. 좋은 영상 잘 보고 있습니다. 고구려의 시작부터 멸망까지 하나의 연결된 이야기로 이어 나갈 수 있다니 대단한 일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고구려사 책을 하나 쓰셔도 좋을 것 같아요. 학술서 같은 거 말고, 지금 방송해 오신 것 같이 여러가지 학설 등등 포함해서 엮어 나가시면 일반인들이 흥미롭게 읽을 수 있는 책이 되지 않을까 싶네요. 이번 영상 보고 문득 떠오른 생각입니다. ㅎㅎㅎㅎ ^^
왕은 백성들을 이주시킨 후 다음달에 남쪽지방을 쭉 들러보았다......우리가 위인들의 뜻을 미처 헤아리지 못하여 놓친 사료들이 아주 많습니다.....소수림왕의 체제정비는 모자란 국가내부의 약화된 부분들을 개선시키고자 그리하였다......대동강, 임진강,북한강,남한강,금강,(낙동강).....광개토대왕(고국양왕의 아들)은 18살에 왕으로 등극하여 백제를 공격하여 8성을 정복하고 ...무역으로 국가를 부흥시키려는 원대한 뜻을 두었다(북쪽의 거란말을 수급하여 남쪽의 동진으로 수출하였다...경제력이 있어야 군대를 운영할 수 있다) ....장수왕도 19살에 왕에 등극하여 아버지의 북방정책 과 남방정책을 이루어가기 시작하였다.....주몽시대부터 짚고와야 광개토대왕의 실체를 알 수 있습니다..................늘 건강하시길........
구글맵을 펴보니까 누가봐도 남진했을것 같습니다. 요동반도는 강원도에 다름아니고 평원은 유목민족이 뻑하면 달려오는 곳이죠. 요하 하류는 요택이라 농사도 안되구요. 정말 똥땅입니다. 평양평야 재령평야는 한국 최대 평야지대입니다. 한강유역 능가하는 대지이죠. 김제평야와 비등 또는 그 이상의 면작을 자랑하죠. 낙랑대방으로 이미 개척된 공간이기도 하구요. 요동은 방어막으로 쓰고 평양, 재령, 함흥평야 쓰는건 누가봐도 합리적입니다. 국내성, 홀본? 거긴 진짜 강원도 평창 정도 되는 공간입니다.
우리는 한반도와 만주를 잇는 완전한 고구려의 재건을 위해 노력해야 한다. 우리 민족이 독자적으로 존립하기 위해서는 식량과 에너지 안보가 필수다. 자손만대를 위해서 한반도와 만주의 통합을 반듯이 이루어야 한다. 통일전이라도 남북경협을 본격적으로 추진하게 되면 만주지역을 한반도 경제권으로 편입시킬 수 있다. 중국과 공존하면서도 고구려의 경제영토를 수복할 수 있다. 남북은 분단으로 인해 역설적으로 경제력과 핵능력을 동시에 갖출 수 있게 되었다. 남북이 지혜를 발휘하여 공조를 통해 북핵을 지켜내고 남한의 경제 북한의 핵의 시너지 효과를 극대화하면 민족중흥의 기회를 맞이할 수 있다. 중국이 분열할 경우 적극 개입하여 동북삼성을 물리적으로 통합하고 연방국가를 수립한다. 동북삼성내 모든 주민을 고구려의 후예로 인정하고 각 성의 자치를 허용 한다. 다만 연방대통령은 미국식 간선제를 채택하고 남북한을 합친 대의원 수가 과반을 넘도록 한다. 우리가 고구려족의 정체성을 유지하고 노력한다면 완전한 고구려의 재건은 결코 꿈이 아니라 현실이 될 수 있다. 고대 동북아에는 우리 민족의 원류인 동이족으로 불리는 예맥, 동호, 숙신, 韓, 왜족이 정착했었는데 예맥은 주로 만주 중심부와 한반도 중북부 일대에, 동호는 서쪽 몽골초원 지대에 숙신은 북만주와 연해주 일대에, 한은 한반도 남부에 그리고 왜는 일본 열도에 있었다. (동이족은 모두 북방에서 이주해서 시차를 두고 각자의 터에 자리를 잡았기 때문에 이들 종족간에는 기본적으로 친연성이 있어 우리 민족의 원류로 볼 수 있다. 참고로 흉노족은 동호와 인접한 북방 초원지대에 정착해서 흉노/유연/돌궐/위구르족으로 이어졌는데 같은 북방민족이지만 우리와는 혈통이 다른 민족이다. ) 예맥족은 우리 민족의 주족으로 요하문명을 일으키고 우리 민족의 최초국가인 고조선을 건설하여 주변 종족인 숙신, 한, 동호, 왜를 한 울타리에 두고 영향력을 행사했던 것으로 보인다. 고조선은 예맥족 중심의 동이족 (예맥, 숙신, 韓, 동호, 왜) 연합체 국가로서 오랜 세월 유지되다가 세력이 약화 되면서 한나라에 멸망하고 말았다. 그 과정에서 동이족의 이합집산이 이루어지게 된다. 고조선은 오랜 세월 안정되었기 때문에 동이족 내부의 종족간 융합이 활성화 되지 못하고 중국보다 먼저 문명을 일으켯음에도 춘추전국 시대를 거치면서 비약으로 발전한 중국 문명에 뒤지게 되면서 위기를 맞게 되었다. 동호와 왜는 일찌감치 떨어져 나갔는데 동호의 경우 고조선 서쪽 변방에 위치하여 중국의 영향을 먼저 받게 되어 중국으로 진출하게 되고 종족 내부 부족의 성쇄에 따라 선비족 거란족 몽골(실위)족이 차례로 득세하게 되는데 선비족과 거란족은 중국 한족에 흡수되고 몽골족은 지금의 몽골이 되었고 일본열도에 떨어져 있던 있던 왜족은 지금의 일본이 되었다. (고조선 문명권에 속했다고 동호와 왜를 무조건 우리 민족으로 보기 어렵고 더구나 고조선 문명권인 동호와 접해 있으며 간접적으로 영향을 주고 받은 흉노까지 우리 민족의 범주로 보는 것은 문제가 있다고 본다. 그럴 경우 민족의 계보가 뒤죽박죽이 되고 정통성이 제대로 이어지지 못하는 문제가 있다.) 예맥,숙신,한족간에는 활발하게 민족융합이 이루어졌는데, 고조선이 쇄퇴하기 시작하면서 고조선내 일부세력이 부족 단위로 산재하던 숙신을 통합해 가는 과정에서 예맥과 숙신의 융합으로 부여가 탄생하고, 고조선 멸망후 고조선 유민들이 한반도 남부로 유입되면서 여러 소국들이 건설되는데 그 과정에서 예맥과 한족의 융합으로 삼한이 형성되고 예맥의 잔존 세력들이 동예 옥저로 명맥을 유지하다, 고구려 백제 신라로 재편되면서 삼족 융합이 가속화 되었다. 숙신계는 한번에 통합되지 못하고 잔여 세력들이 시대에 따라 읍루/물길/말갈등으로 불리며 남아있다, 고구려때 흑수말갈만 남기고 모두 통합되었다. 고구려가 고조선 재건의 기치를 들고 예맥 숙신 한족의 통합을 주도적으로 이끌어 고구려족이 형성되게 된 것이다. 고구려가 만든 큰 울타리 안에서 삼족 융합이 이루어지게 되었다. 아마도 고구려가 조금만 더 존속했다면 동이족 전체를 통합했을 수도 있었을 것이다. 고구려 멸망후 고구려족은 한반도 고구려족과 북방 고구려족으로 분리되었다. 북방 고구려족은 고구려를 계승한 발해가 숙신의 잔여 세력인 흑수말갈을 완전 통합 함으로써 완성 되었고 발해 멸망후 정체성이 변질되어 여진족/만주족이 되었다. (발해 멸망후 발해인은 요에 의해 숙여진과 생여진으로 나뉘게 되고 생여진 출신의 아골타가 금을 건국하여 여진을 통합하게 되고 금이 망한후 여진은 건주, 해서, 야인 여진으로 나뉘게 되고 누루하치가 후금을 건국하여 여진을 다시 통합하고 그의 아들 홍타이치가 나라명를 청으로 민족명을 만주족으로 개칭하게 된다.) 여진/만주족은 중국이 주장하는 숙신/읍루/물길/말갈/여진/만주의 단일 계통의 민족이 아니라 예맥/숙신/한족의 삼족 융합족인 것이다. 한반도 고구려족은 통일신라의 과도기를 거쳐 고려가 재통일하고 고구려를 계승 함으로써 완성되었고, 고려 멸망후 조선의 건국으로 정체성이 변질되고 결국 지금의 한민족이 되었다. (일반적으로 우리민족을 예맥 내지 예맥과 한의 융합족으로 보는데 문제가 있다. 고조선 시대를 논외로 한다 해도 숙신 (읍루/물길/말갈)과 부여 고구려 발해를 통해 천년 이상을 함께 했고 내부적으로 예맥계니 숙신계니 하는 민족 구분이 없었고 소수 집단이 다수 이민족을 지배할 때 나타나는 이원적 지배체제도 없었는데 고구려 발해 멸망후 한순간에 예맥계가 분리되어 한민족에 통합되었다는 것은 이해할 수 없는 것이다. 고조선 멸망후 극소수의 예맥계가 만주와 한반도 북부에 남아 부여 고구려 발해를 세워 1000년 넘는 세월 국가를 경영했다면 믿을 수가 있겠는가? 설사 인정하더라도 온전히 그들의 역사를 한민족의 역사로 치부할 수 있겠는가 ?) 고구려족은 분리되었어도 접경 지역을 중심으로 한민족과 여진/만주족간에는 민족 융합이 부단히 이루어져서 혈통적으로도 거의 차이가 없다. 한민족과 여진/만주족은 변경 지역이 수차례 바뀌었어도 서로 쉽게 융합되었는데 예맥계니 퉁구스계니 하면서 언어 등의 일부 이질적 요소를 가지고 별개의 민족임을 강조하는데는 문제가 있다. 한민족과 여진/만주족은 고구려의 깃발아래 뭉치면 언제든 하나의 민족이 될 수 있다.
좋은 국사 선생님을 만나셨던 것 같네요~ 과거엔 수많은 선생님들께서, "농업생산량이 많은 한강 유역의 비옥한 평야를 차지하기 위한 각축전이다." 뭐 이런 식의 설명으로 간단히 퉁치시곤 했습니다. 제 학창시절보다 더 새로 발견된 사실들이 교과서에도 잘 반영되는 것 같아 흐뭇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