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나 그렇겠지만.. 꼬맹이시절 처음으로 학교에서 국뽕을 경험한 것은 광개토태왕의 전성기 영토 그림이였지.. 코딱지 만한 남한의 면적을 보다가 오래전 우리나라는 저렇게 엄청난 영토를 자랑했구나 하면서 가슴 속 깊은 곳에서부터 국뽕이 차오르는 경험을 했었는데.. 수십년이 지나... 저 그림이 얼마나 축소되고 왜곡된 그림이였는지 알게되었을때.. 그 허탈감과 분노를 이루말할수없었다..
고구려 백제 신라의 역사서 기록의 지명은 한반도에 없습니다. 거의 모든 지명과 수도 주요 전쟁 장소는 중국 땅 한복판에 있습니다. 고구려 연개소문이 당왕을 추격해다 놓친곳에 당왕이 기념으로 세운 몽룡보탑 위치가 어딘지 아십니까 중국 현지 역사가가 kbs역사 스페셜 취재진에게 진짜 역사 이야기를 들려주며 인터뷰합니다. 우리나라의 역사가와 교수들이 그리고 화려한 말하기를 좋아하는 스타 학원강사 나부랭이들이이야기해주지 않는 이야기를 중국 역사가를 통해서만 들을수 있습니다 중국 베이징 (북경)에 존재하는 수많은 고구려 유적들과 병영 병참기지 중국땅 한복판에 존재하고 있는 수십 수백개의 고조선과 고구려 피라미드와 유적지들 외부에 공개하지 않고 댐건설 등으로 수장시키고 공사로 파괴중입니다. 1997년까지 산동반도에는 상가들 이름이 백제가 들어간 간판이 널려있었지만 현재는 단 한개의 간판도 남아있지 않습니다. 왜 그럴까요? 광개토대왕의 영역 확장 수준은 우리가 국사책에서 보던 수준을 초월합니다. 광개토대왕의 영락궁 위치는 장안성 근방이랍니다… 놀랍지 않나요 경주에서 발견된 그릇에 쓰여진글귀에 광개토대왕 영토라는 유물이 발견되기도 했습니다. 한반도 전체는 거의 고구려 영향력 아래 들어가있던 작은 부분이었던 겁니다. 백제는 수많은 왕을 거느린 황제국 수준의 나라였습니다. 대한민국 작은 전라도 땅안에 국한된 지방정권 수준이 아니었습니다. ru-vid.com/video/%D0%B2%D0%B8%D0%B4%D0%B5%D0%BE-NZwluWSsap4.html 진짜 역사 이야기는 여기에 많습니다. 꼭 한번 가보십쇼 저는 역사에 관심이 그리 많지도 않고 게임 좋아하는 사람이지만 대한민국 사람 한명이라도 우리 조상님들의 진짜 이야기를 알기를 바랍니다.
고대사에 대한 황선생님의 인식은 친일 사학자의 인식에서 조금 나아간 것으로 보이지만 수험사를 강의하는 입장에서 친일사학을 무시할 수 없는 적당한 타협의 대상이 될 겁니다. 중국과 한국의 고대사를 원문을 통해 교차 검증하며 연구하는 재야사학자들과 커다란 차이가 있죠. 이런 면에서 황선생님의 고대사 강의는 식민지사학과 별반 다르지 않다고 생각됩니다.
을지문덕의 살수대첩 장소가 평안도 청천강이라고 하는 우리 한국사교과서는 가히 판타지 역사소설 같은 느낌이었다. 100만이 넘는 대군이 황하 남쪽 수나라에서부터 이동하여 탁군에서 집결하여 그 옛날에 군량미까지 수레에 싣고 병사들이 수개월을 산넘고 물건너(수십개의 강) 걸어서 걸어서 한반도 청천강까지 와서 전투를 했다는 게 신기방통하게 느껴지는게 나만의 생각일까요?
어쩔수없으신거 같습니다.. 삼국사기 초기기록 불신론에 대해서 어떠한 입장인지는 모르겠지만 고구려 영토 이야기할때 항상 빠지지 않는 문제가 모본왕조에 보면 분명 현 중국 북경지역 내부인 우북평 어양 상곡 태원까지 처들어갔다고 되있고 현 북경지방과 그 북부일대를 일컫는 옛 요동지방 이 지역을 고구려가 차지했고 이어 백제도 요서 지방을 경략했다라고 분명히 나오고있는데 이 부분은 생략하시네요 찬란한 우리 고대사 부분은 믿을수없다 과장됬다고 생각하고 축소된 부분은 사실로 인지해야한다하고 역사를 보는 관점이 뒤바뀐게 아닌가..
고구려 백제 신라의 역사서 기록의 지명은 한반도에 없습니다. 거의 모든 지명과 수도 주요 전쟁 장소는 중국 땅 한복판에 있습니다. 고구려 연개소문이 당왕을 추격해다 놓친곳에 당왕이 기념으로 세운 몽룡보탑 위치가 어딘지 아십니까 중국 현지 역사가가 kbs역사 스페셜 취재진에게 진짜 역사 이야기를 들려주며 인터뷰합니다. 우리나라의 역사가와 교수들이 그리고 화려한 말하기를 좋아하는 스타 학원강사 나부랭이들이이야기해주지 않는 이야기를 중국 역사가를 통해서만 들을수 있습니다 중국 베이징 (북경)에 존재하는 수많은 고구려 유적들과 병영 병참기지 중국땅 한복판에 존재하고 있는 수십 수백개의 고조선과 고구려 피라미드와 유적지들 외부에 공개하지 않고 댐건설 등으로 수장시키고 공사로 파괴중입니다. 1997년까지 산동반도에는 상가들 이름이 백제가 들어간 간판이 널려있었지만 현재는 단 한개의 간판도 남아있지 않습니다. 왜 그럴까요? 광개토대왕의 영역 확장 수준은 우리가 국사책에서 보던 수준을 초월합니다. 광개토대왕의 영락궁 위치는 장안성 근방이랍니다… 놀랍지 않나요 경주에서 발견된 그릇에 쓰여진글귀에 광개토대왕 영토라는 유물이 발견되기도 했습니다. 한반도 전체는 거의 고구려 영향력 아래 들어가있던 작은 부분이었던 겁니다. 백제는 수많은 왕을 거느린 황제국 수준의 나라였습니다. 대한민국 작은 전라도 땅안에 국한된 지방정권 수준이 아니었습니다. ru-vid.com/video/%D0%B2%D0%B8%D0%B4%D0%B5%D0%BE-NZwluWSsap4.html 진짜 역사 이야기는 여기에 많습니다. 꼭 한번 가보십쇼 저는 역사에 관심이 그리 많지도 않고 게임 좋아하는 사람이지만 대한민국 사람 한명이라도 우리 조상님들의 진짜 이야기를 알기를 바랍니다.
통일?말이 쉽죠 장기적으로 보면 이득이 될지몰라도 현재 저희 나라 경제가 안정적인 상황도 아닌데 통일을 한다? 통일을 한다해도 당장 할수있는게 없어요 북한내의 치안 안정화 정부 화폐등 처리해야할 일이 많아지고 최소 10년간 일반인들이 접촉할일은 없을거 같군요 평화통일이 가능할까요?만약 평화통일을 한다해도 북한내의 친중 세력은요?
@@user-qv3ef7zn8c 통일, 쉬운 과재는 절대로 아닐겁니다. 하지만 이런질문을 해보세요. 북한이 붕괴되었다. 북한땅을 차지해야할 나라는? 1. 중국 2. 소련 3. 일본 4. 한국 답은? 당연히 한국아닌지요? 힘들다고 외세에 우리땅과 같은민족을 내줄수있습니까?
내몽고와 몽골 국경 까지 고구려 영토 입니다.몽골족 친구가 말했는데 내몽고 海拉尔(후룬베이얼 대초원)지역에도 고구려 비석이 있다.중국 내 몽골족 애들도 고구려는 한국/조선의 역사로 인식 하고 있는 것 같다.고구려 역사는 제가 조선족으로써 한족 중학교 때까지 그런 나라가 존재하다 할뿐 고구려 역사는 잘 다루지 않았지만 요즘 교재는 잘 모르겠음.아쉽다.고구려 땅이 중국에 있어서.
@@user-be8rf4pm3r 중국은 독재 인권탄압의 괴뢰국. 역사가 매우 빈약한 나라 중국. 중국의 한족은 평생 만주족에게 시달려서 만주 이남 영토만 차지해야할 미개한 역사인데, 미개한 공산당이 지들 침략했던 몽골, 여진 금 후금 청 역사까지 지내들 역사로 편입시킴. 빈약한 역사는 현재 위대한 한국 역사를 자기네 것이라고 주장하는 웃지못할 행태를 반증함. 중국에서 태어나 중국인으로 사느니 아프가니스탄 난민으로 살아가는게 더 행복할것임.
@@user-be8rf4pm3r 뭔 청나라뿐이야 ㅋㅋㅋ 역사 좆도 모르네... 중국역사 똥꾸멍으로 쳐 배웠냐?? 그리고 만주족 청나라는 왜 니네 역사냐?? 중국 한족은 만주족 침략과 지배받던 역사다... 한족의 역사는 빈약하기 때문에 그 열등감 때문에 만주족 역사를 본인 중국 역사로 편입시킨거지 ㅋㅋㅋㅋㅋㅋ 중국의 역사왜곡은 중국 한족의 열등감에서 비롯된거 몰라??
세종대왕, 이순신 빼고는 다 갈아엎어야 함. 이황, 이이는 그냥 이론성리학자일뿐이고 무슨 영웅같은 존재가 아님. 신사임당은 정말 어이없음. 굳이 성리학자를 지폐에 넣으려면 오히려 실천성리학자 남명 조식을 넣어야 함. 그 영향을 받은 많은 제자들이 인진왜란의 의병장들이었음. 아직 실학이 없던 시절 실학자의 조상격임. 그리고 실학자 이야기가 나왔으니 하는 말인데 학자를 꼭 넣어야겠으면 정약용도 들어갈만한 인물임. 굳이 고구려의 광개토대왕까지 안가도 근현대에 넣을 사람많음. 대표적으로 김구, 안중근 또 굳이 여성을 넣으려면 당연히 유관순이 들어가야지.
지폐에 넣기에는 광개토대왕이 너무 옛날 사람임. 원래 전 세계 지폐 인믈 관행은 근대 인물을 넣는 게 일반인데 우리나라는 그 시대 인물들에 대한 평가가 극단적으로 엇갈리거나 좋지 못해(김구 이승만 등) 조선시대로까지 거슬러 올라가 지폐 인물을 찾은 거임. 여기서 고려시대도 아니고 삼국시대의 광개토대왕을 넣는다는 건 너무 옛날임. 초상화도 다 상상도인데..
광개토호태왕 : 나라를 정벌하지않고 신라 백제 말갈 거란을 복속시키고 대고구려 백성으로 삼게 하였다. 만백성의 대왕이시며 최고봉의 군왕 즉 태왕이라고 불렀다. 적의백성 하나하나 소중하게 살려보내주었으며 엄청난 만주벌판의 영토를 확보 하였다. 그힘을 모아 만주벌판 후연을 정벌하였다.
지금 우리가 알고있는 고구려의 영토와 중국 /일본/고려의 역사서에 나오는 고구려의 영토가 다르다는 주장들이 많이 나오는데 더욱 자세히 배울 수 있을가요? 백제와 신라또한 지금까지 우리가 배운 교과서와 많은 차이가 있다고 하는 말들이 많은데 그들의 관점에서 더욱 많은 것을 배우고 싶네요.
@@monoc77 저는 세종을 더 좋아합니다. 한사람의 생이 유한한데 땅이 넓어지고 세력을 누리기위해 희생하는 것들이 너무 크니까요. 한 사람이 영웅이라는 칭호를 받기위해 그 밑에 이름없이 죽어간 사람들이 너무 많아요. 어떤 의미에서 전쟁영웅의 출현은 동시대의 인간에게는 역병과 같은 재앙이 아닐까 싶기도 합니다. ㅋ 다만 당하기만하는 우리 역사에 광개토같은 인물 하나 갖는게 소중한 의미이기도 하겠죠 ㅋ 말씀주신 댓글에 공감하는 바입니다.
백제는 고구려와 패권을 겨룬 국가입니다. 한강이북지역은 고구려화 했지만 이남은 다시 백제와 신라에게 상실합니다. 후반기의 신라가 나당연합을 맺지 않았다면 우리나라의 고대사는 중국과 패권을 겨루는 한반도 통일정복국가로 발전했을수도 있습니다. 생각해보세요 반반도에 기반을 두고 요나라나 금나라처럼중국과 힘겨루기를 하는 모습을요. 발해가 한반도를 포함해 충분한 인구를 두고 튼실하게 발전한 모습을 정말 아쉬움이 크게 남습니다.고려도 내부적으로 황제국가였으나 신라는 그런 패기가 없죠. 조선도 그렇고요.
ㅉㅉㅉ 매금대왕 중공바이러스 ㅅㄲ 우리나라 찬란했던 광개토태왕 업적을 보니 열등감 ㅈㄴ 차오르지? 중국인ㅅㄲ들이 하는거라곤 열등감에 남의나라 역사를 어떻게해서든 지네껄로 만들거나 그게 하찮다고 격하시켜버리거나 이런거 밖에 할 줄 모르지. 덩치만 커 가지고 무슨 열등감이 그렇게 많어ㅋㄱㅋㅋ 실상은 바이러스의 중심지요, 남의 나라 역사 훔치려 드는 도적놈에 불과한데ㅋㅋ
13:00 충주고구려비는 광개토대왕이 한강유역 전체를 장악했다는 근거가 된다고 합니다. 영락7년세재정유(永樂七年歲在丁酉)라는 구절이 식별되었다고 하는데, 이건 광개토대왕의 재위기간을 의미하는 영락 연호라고 하네요... 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_id=201911201137001
고구려 백제 신라의 역사서 기록의 지명은 한반도에 없습니다. 거의 모든 지명과 수도 주요 전쟁 장소는 중국 땅 한복판에 있습니다. 고구려 연개소문이 당왕을 추격해다 놓친곳에 당왕이 기념으로 세운 몽룡보탑 위치가 어딘지 아십니까 중국 현지 역사가가 kbs역사 스페셜 취재진에게 진짜 역사 이야기를 들려주며 인터뷰합니다. 우리나라의 역사가와 교수들이 그리고 화려한 말하기를 좋아하는 스타 학원강사 나부랭이들이이야기해주지 않는 이야기를 중국 역사가를 통해서만 들을수 있습니다 중국 베이징 (북경)에 존재하는 수많은 고구려 유적들과 병영 병참기지 중국땅 한복판에 존재하고 있는 수십 수백개의 고조선과 고구려 피라미드와 유적지들 외부에 공개하지 않고 댐건설 등으로 수장시키고 공사로 파괴중입니다. 1997년까지 산동반도에는 상가들 이름이 백제가 들어간 간판이 널려있었지만 현재는 단 한개의 간판도 남아있지 않습니다. 왜 그럴까요? 광개토대왕의 영역 확장 수준은 우리가 국사책에서 보던 수준을 초월합니다. 광개토대왕의 영락궁 위치는 장안성 근방이랍니다… 놀랍지 않나요 경주에서 발견된 그릇에 쓰여진글귀에 광개토대왕 영토라는 유물이 발견되기도 했습니다. 한반도 전체는 거의 고구려 영향력 아래 들어가있던 작은 부분이었던 겁니다. 백제는 수많은 왕을 거느린 황제국 수준의 나라였습니다. 대한민국 작은 전라도 땅안에 국한된 지방정권 수준이 아니었습니다. ru-vid.com/video/%D0%B2%D0%B8%D0%B4%D0%B5%D0%BE-NZwluWSsap4.html 진짜 역사 이야기는 여기에 많습니다. 꼭 한번 가보십쇼 저는 역사에 관심이 그리 많지도 않고 게임 좋아하는 사람이지만 대한민국 사람 한명이라도 우리 조상님들의 진짜 이야기를 알기를 바랍니다.
another portion of fake Korean maps and fairy tales. There has never been Goguryeo in Primorye - there is not a single object of Goguryeo and Goguryeo was much smaller in size.
고구려 백제 신라의 역사서 기록의 지명은 한반도에 없습니다. 거의 모든 지명과 수도 주요 전쟁 장소는 중국 땅 한복판에 있습니다. 고구려 연개소문이 당왕을 추격해다 놓친곳에 당왕이 기념으로 세운 몽룡보탑 위치가 어딘지 아십니까 중국 현지 역사가가 kbs역사 스페셜 취재진에게 진짜 역사 이야기를 들려주며 인터뷰합니다. 우리나라의 역사가와 교수들이 그리고 화려한 말하기를 좋아하는 스타 학원강사 나부랭이들이이야기해주지 않는 이야기를 중국 역사가를 통해서만 들을수 있습니다 중국 베이징 (북경)에 존재하는 수많은 고구려 유적들과 병영 병참기지 중국땅 한복판에 존재하고 있는 수십 수백개의 고조선과 고구려 피라미드와 유적지들 외부에 공개하지 않고 댐건설 등으로 수장시키고 공사로 파괴중입니다. 1997년까지 산동반도에는 상가들 이름이 백제가 들어간 간판이 널려있었지만 현재는 단 한개의 간판도 남아있지 않습니다. 왜 그럴까요? 광개토대왕의 영역 확장 수준은 우리가 국사책에서 보던 수준을 초월합니다. 광개토대왕의 영락궁 위치는 장안성 근방이랍니다… 놀랍지 않나요 경주에서 발견된 그릇에 쓰여진글귀에 광개토대왕 영토라는 유물이 발견되기도 했습니다. 한반도 전체는 거의 고구려 영향력 아래 들어가있던 작은 부분이었던 겁니다. 백제는 수많은 왕을 거느린 황제국 수준의 나라였습니다. 대한민국 작은 전라도 땅안에 국한된 지방정권 수준이 아니었습니다. ru-vid.com/video/%D0%B2%D0%B8%D0%B4%D0%B5%D0%BE-NZwluWSsap4.html 진짜 역사 이야기는 여기에 많습니다. 꼭 한번 가보십쇼 저는 역사에 관심이 그리 많지도 않고 게임 좋아하는 사람이지만 대한민국 사람 한명이라도 우리 조상님들의 진짜 이야기를 알기를 바랍니다.
고려시대때 서희가 되찾은 강동6주는 압록강 북쪽입니다 ‘강동’의 뜻은 강의 동쪽을 뜻합니다 즉 지금의 요하 동쪽에 있는 영토를 되찾아서 강동6주를 설치한 것입니다 만약 강동6주가 평안도라면 강남6주가 되어야 합니다 압록강 남쪽에 있기 때문입니다 명사 지리지에는 고려의 북서쪽 영토가 지금의 요하 동쪽 철령까지라고 기록되어 있고, 고려사 지리지에는 고려의 북동쪽 영토가 두만강 북쪽 688리 지점인 공험진까지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현재 우리가 배우는 역사교과서에 기술되어있는 고려의 영토는 조선총독부에서 편찬한 ‘조선사’에 기록되어있는 것을 그대로 베낀것입니다 일제는 우리의 민족정신을 말살하기 위해 우리의 역사를 왜곡하기로 방침을 정하고 조선총독부 산하에 ‘조선사편수회’라는 기관을 설치하고 막대한 예산을 들여 우리 역사를 왜곡하는 작업을 벌였습니다 그런데 거기에 한국인 역사학자들이 참여했는데 대표적인 인물이 이병도, 신석호입니다 이들은 친일파 역사학자들인데 해방후 민족주의 역사학자들은 독립운동가들이었기 때문에 다 제거되거나 납북되어서 남한의 역사학계는 이들 식민사학자들만 남았던 것입니다 그들이 일제의 식민사관을 그대로 계승해서 왜곡된 우리 역사를 가르쳤고 그들의 제자들도 식민사학을 배워서 또다시 그 제자들에게 가르치고, 그들의 제자들은 다시 그들의 제자들에게 식민사학을 가르치고.... 그 결과 우리는 잘못된 역사를 배워온 것입니다 원나라가 무너진 후 명나라가 철령에 철령위를 설치하고 자신들의 땅으로 편입시키겠다고 고려에 통보하자 우왕과 최영이 요동정벌군을 보냈습니다 그런데 역사 교과서에는 철령이 함경도 안변이라고 기술되어있습니다 그러면 고려는 그 땅을 지키려면 어디로 군대를 보내야 하겠습니까? 당연히 함경도이겠죠? 그런데 왜 요동정벌군을 보냈겠습니까? 철령이 요동에 있었기 때문입니다 몽골이 고려를 침공하자 당시 고려 북쪽 지방의 수령들이었던 조휘와 탁청 등이 그 지역을 갖다 바치고 투항을 했습니다 그리고 원나라는 고려의 북쪽 영토를 직속령으로 편입시키고 쌍성총관부를 설치했던 것입니다 그러나 원나라가 쇠약해지자 공민왕이 그 땅을 수복하기 위해 인당과 유인우로 하여금 군사를 몰아 쌍성총관부를 점령케 합니다 이때 인당은 압록강을 건넜고, 유인우는 두만강을 건넜다고 고려사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쌍성총관부가 압록강과 두만강 너머에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지금의 역사 교과서에는 쌍성총관부가 함경도 지역에 있었다고 기술되어 있습니다 일제가 완전히 왜곡한 것을 그대로 추종하고 있는 것입니다 공민왕이 북방 영토를 회복한 후 원나라가 북쪽으로 물러나자 명나라가 그 땅을 차지하기 위해 철령위를 설치하겠다고 고려에 통보했습니다 그러자 고려에서는 우왕과 최영이 그 땅을 지키기 위해 이성계와 조민수로 하여금 요동을 정벌토록 한 것입니다 그러나 위화도 회군에 의해 목적을 달성하지 못합니다 그렇지만 조선시대의 태종때 명나라와 국경을 합의했는데 고려시대때의 우리 영토였던 철령과 공험진까지를 조선의 북방 영토로 확정했습니다 그리고 세종이 김종서와 최윤덕을 북방으로 보내 4군 6진을 설치했던 것입니다 그 지역이 현재 우리가 간도라고 부르는 지역입니다 즉 4군 6진이 간도에 있었다는 뜻입니다 이러한 내용들은 다 조선왕조실록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하지만 현재 대학의 역사학 교수들, 역사를 다루는 국가기관인 동북아역사재단과 한국학 중앙연구원과 국사편찬위원회의 역사학자들은 모두 일제의 총독부 역사관을 추종하기 때문에 왜곡된 역사가 바로 잡히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것은 왜곡된 우리 역사의 극히 일부분에 지나지 않습니다 중국의 한나라가 고조선을 멸망시키고 고조선 땅에 한사군(낙랑군, 현도군, 진번군, 임둔군)을 설치했습니다 그런데 당나라의 사마정은 사기 하본기의 주석서인 사기색은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태강지리지에서 말하기를 낙랑군 수성현에는 갈석산이 있으며 만리장성이 시작되는 지점이다’ (위,촉,오의 분열을 끝낸 나라는 사마염이 건국한 진나라 입니다 ‘태강’은 진나라 무제였던 사마염의 연호입니다 사마염은 삼국을 통일한 후 전국의 지방행정조직을 점검하기 위해 ‘태강지리지’라는 지리서를 편찬했던 것입니다 따라서 태강지리지는 낙랑군이 현존했을때의 책이기 때문에 정확한 자료입니다 그리고 태강지리지가 당나라때에는 존재했기 때문에 사마정이 그 책을 인용해서 사기색은에 기록한 것입니다) 갈석산은 하북성에 있는데 아주 유명한 산입니다 고조선의 영토가 거기까지였던 것입니다 그런데 한국의 주류 역사학자들은 한사군이 북한 땅에 있었다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낙랑군이 평양에 있었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갈석산이 평양에 있습니까? 만리장성이 평양까지 내려왔나요? 평양에 있었던 것은 낙랑군이 아니라 낙랑국입니다 고구려의 호동왕자와 낙랑공주의 이야기에서 알 수 있듯이 낙랑공주는 낙랑국 왕의 딸인 것입니다 그러나 낙랑군은 독립된 나라가 아니라 지방행정기관이기 때문에 낙랑태수의 딸은 낙랑공주가 될 수 없습니다 따라서 하북성에 있었던 낙랑군과 평양에 있었던 낙랑국은 서로 다릅니다 수나라와 당나라가 고구려를 침략했을때 수당군이 집결한 지역은 북경 근처의 탁군입니다 그런데 왜 수당군이 탁군에서 집결했는지를 생각해봐야 합니다 만약 한국 군대가 북한으로 처들어간다면 어디서 군대가 집결하겠습니까? 당연히 휴전선 근처에서 집결해서 북한으로 가겠죠? 하지만 목포나 부산에서 집결해서 북한으로 가지는 않을 것입니다 마찬가지입니다 그 당시 고구려와 수당과의 국경이 북경 근처였기 때문에 수당군이 탁군에서 집결했던 것입니다 갈석산이 있는 하북성이 고조선의 땅이였기 때문에 광개토태왕때 고구려가 옛 땅을 되찾기 위해 거기까지 진출했던 것입니다 그러면 고대 요동의 위치가 현재 우리가 알고 있는 지역과 달라집니다 북경 근처에 있는 난하가 고대의 요하였고 난하의 동쪽이 요동, 서쪽이 요서였던 것입니다 우리 역사를 공부하면 애국심이 생기지도 않고, 나라와 민족을 위해 내가 어떤 의무나 희생을 치를 가치도 전혀 못느끼는 것이 현실입니다 그러니까 검찰처럼 자신들의 기득권 지키기에만 혈안인 것입니다 나라와 민족을 위한 길보다는 개인의 이익과 영달만 좇는 것입니다 이게 다 우리 역사의 뿌리가 잘려나갔기 때문입니다 일제의 의도대로 민족정신이 말살된 것입니다 하지만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습니다 왜곡된 우리 역사를 바로 잡아서 제대로된 미래를 설계해야 합니다 현재의 코로나 방역, 한류열풍, G7국가로의 진입 가능성이 타진 되는 상황등 우리의 자부심을 높이는 일들이 일어나고 있는 이유도 우리의 역사를 제대로 알아야 이해할 수 있습니다 우리의 역사를 제대로 알면 우리의 원래 모습을 알 수 있고, 우리의 원래 모습이 발현되는 현상이 바로 K방역, 한류열풍, G7국가로의 진입이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래야 우리의 미래도 제대로 설계할 수 있습니다
another portion of fake Korean maps and fairy tales. There has never been Goguryeo in Primorye - there is not a single object of Goguryeo and Goguryeo was much smaller in size.
고구려 백제 신라의 역사서 기록의 지명은 한반도에 없습니다. 거의 모든 지명과 수도 주요 전쟁 장소는 중국 땅 한복판에 있습니다. 고구려 연개소문이 당왕을 추격해다 놓친곳에 당왕이 기념으로 세운 몽룡보탑 위치가 어딘지 아십니까 중국 현지 역사가가 kbs역사 스페셜 취재진에게 진짜 역사 이야기를 들려주며 인터뷰합니다. 우리나라의 역사가와 교수들이 그리고 화려한 말하기를 좋아하는 스타 학원강사 나부랭이들이이야기해주지 않는 이야기를 중국 역사가를 통해서만 들을수 있습니다 중국 베이징 (북경)에 존재하는 수많은 고구려 유적들과 병영 병참기지 중국땅 한복판에 존재하고 있는 수십 수백개의 고조선과 고구려 피라미드와 유적지들 외부에 공개하지 않고 댐건설 등으로 수장시키고 공사로 파괴중입니다. 1997년까지 산동반도에는 상가들 이름이 백제가 들어간 간판이 널려있었지만 현재는 단 한개의 간판도 남아있지 않습니다. 왜 그럴까요? 광개토대왕의 영역 확장 수준은 우리가 국사책에서 보던 수준을 초월합니다. 광개토대왕의 영락궁 위치는 장안성 근방이랍니다… 놀랍지 않나요 경주에서 발견된 그릇에 쓰여진글귀에 광개토대왕 영토라는 유물이 발견되기도 했습니다. 한반도 전체는 거의 고구려 영향력 아래 들어가있던 작은 부분이었던 겁니다. 백제는 수많은 왕을 거느린 황제국 수준의 나라였습니다. 대한민국 작은 전라도 땅안에 국한된 지방정권 수준이 아니었습니다. ru-vid.com/video/%D0%B2%D0%B8%D0%B4%D0%B5%D0%BE-NZwluWSsap4.html 진짜 역사 이야기는 여기에 많습니다. 꼭 한번 가보십쇼 저는 역사에 관심이 그리 많지도 않고 게임 좋아하는 사람이지만 대한민국 사람 한명이라도 우리 조상님들의 진짜 이야기를 알기를 바랍니다.
언젠가 역사스페셜에서 고구령의 최 북단 지역에 가서 촬영한 적이 있었지. 지대가 높긴 하지만 나무가 없더군. 그 모습을 보면서 생각했지. 말을 탄 고구려 기병이 과연 그곳을 넘지 않았을까? 왜 아무것도 없는 평원 한 복판을 그들의 강역으로 정했을까? 보통 국경선은 강과 산으로 하는 것인데. 내가 전문가가 아니라서 정확하게 알 수는 없지만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한반도는 우리 조상들의 별장 같은 곳이다. 그 증거는 이 쪼그만 땅 덩어리에 서로 다른 말투다. 부산과 대구, 광주와 전주, 충청과 강원, 경기도와 황해도, 함경도, 평안도. 9부족 12연맹체였던 우리 민족의 한반도 별장. 그 작은 곳에 갇혀 지낸지가 벌써 70년이 넘는다. 이제는 우리 스스로 이 작은 땅을 벗어나서 광활한 저 대륙으로 진출해야 할 때다. 광개토태왕. 징기스칸 (진귀한)이 말했다. 내가 처음이 아니라고! 그래서 생각해봤다. 누굴까? 과연 누가 있어서 감히 칭기스칸을 2번째로 만들었을까? 우리 역사 아니 만주와 시베리아의 역사에서 그 정도로 칭송받을 만한 분은 '광개토태왕'밖에 없다. 그런데 고작 한반도와 만주 쪼금 먹고 나서 자신의 이름을 '광개토태왕'이라고 했다고? ㅎㅎ 믿기 힘들지.
@@kkt9719 나라를 들어 치면 멸망도 가능 했을지는 몰라도 그당시 백제도 만만치 않은 나라 입니다. 기습에 의해 수도는 잃었지만 지방의 5방은 건재 하고 문주왕은 신라의 구원병을 끌고 왔죠..거기다 가야의 군대까지오면...삼국 연합군과 고구려군의 전쟁이 벌어질테고 그러면 내륙으로 병진 할수록 산세가 험해지니 산성전에 따른 소모전이 될게 뻔합니다. 장수왕은 전략가고 이걸 안거죠. 거기다 뒤통수에는 북위가 있습니다. 장수왕은 정말 지략가다운 결정을 한겁니다.
another portion of fake Korean maps and fairy tales. There has never been Goguryeo in Primorye - there is not a single object of Goguryeo and Goguryeo was much smaller in size.
고구려 백제 신라의 역사서 기록의 지명은 한반도에 없습니다. 거의 모든 지명과 수도 주요 전쟁 장소는 중국 땅 한복판에 있습니다. 고구려 연개소문이 당왕을 추격해다 놓친곳에 당왕이 기념으로 세운 몽룡보탑 위치가 어딘지 아십니까 중국 현지 역사가가 kbs역사 스페셜 취재진에게 진짜 역사 이야기를 들려주며 인터뷰합니다. 우리나라의 역사가와 교수들이 그리고 화려한 말하기를 좋아하는 스타 학원강사 나부랭이들이이야기해주지 않는 이야기를 중국 역사가를 통해서만 들을수 있습니다 중국 베이징 (북경)에 존재하는 수많은 고구려 유적들과 병영 병참기지 중국땅 한복판에 존재하고 있는 수십 수백개의 고조선과 고구려 피라미드와 유적지들 외부에 공개하지 않고 댐건설 등으로 수장시키고 공사로 파괴중입니다. 1997년까지 산동반도에는 상가들 이름이 백제가 들어간 간판이 널려있었지만 현재는 단 한개의 간판도 남아있지 않습니다. 왜 그럴까요? 광개토대왕의 영역 확장 수준은 우리가 국사책에서 보던 수준을 초월합니다. 광개토대왕의 영락궁 위치는 장안성 근방이랍니다… 놀랍지 않나요 경주에서 발견된 그릇에 쓰여진글귀에 광개토대왕 영토라는 유물이 발견되기도 했습니다. 한반도 전체는 거의 고구려 영향력 아래 들어가있던 작은 부분이었던 겁니다. 백제는 수많은 왕을 거느린 황제국 수준의 나라였습니다. 대한민국 작은 전라도 땅안에 국한된 지방정권 수준이 아니었습니다. ru-vid.com/video/%D0%B2%D0%B8%D0%B4%D0%B5%D0%BE-NZwluWSsap4.html 진짜 역사 이야기는 여기에 많습니다. 꼭 한번 가보십쇼 저는 역사에 관심이 그리 많지도 않고 게임 좋아하는 사람이지만 대한민국 사람 한명이라도 우리 조상님들의 진짜 이야기를 알기를 바랍니다.
ㅇㅇ 모본왕이 알려진 폭군이다 뭐다하는데 이분은 최초 고조선이후 요서지방을 정복하였으며 그 다음태왕인 태조대왕께서 요서10성을 쌓았다랴고 기록에 있고 요북지방인 내몽고지역 반을 나누어 동쪽지역인데 이곳이 선비 오횐족 영토인데도 대다수사람들은 요서지방이 오환족 선비족땅인줄 착각하죠 그리고 많이 알려진 후연 전 나라인 전연이라는 나라가 요서지역에 빼앗겼고 그래서 전연 후에 후연 이나라들이 고구려의 원수이고 후연에게는 미천왕 분의 묘를 가져갔죠 그리고나서 요동을 탈환시킨분이 소수림왕과 광개토태황님 아버지인 고국양왕님이죠 고국천왕때 다잃었죠 요동 요서지방 밑의 근초고왕때 경기도북부지역과 개성 평양까지 잃었는데 소수림왕과 고국양왕 때 요동지방 절반과 경기도 북부를 다시 수복했습니다 그래서 광개토태황님이 요서 요북소금강까지(시라무렌강) 정복하였는데 일본넘들과신라넘들이 외곡을 시켰고(역사는 승자편) 그래서 지금까지 작게 영토를 축소시켰죠
아하..캬 아주 잘 들었습니다.^^ㅋㅎ 제가 또 요새 가장 좋아하는 나라(터키) 다음으로 제일 관심 가는 나라가 바로 조선과 함께 우리나라 사상 제일 전성기 였었던 위대한 대륙 벌판의 역사 고구려 인데요 확실히 우리가 광개토 대제님 당시 화북 동쪽의 요서와 요동땅 후연쪽까지 정벌한뒤 전성기를 맞기 이전 북위가 모두 마중나와 고개 숙여( 고로 속국이나 속령까진 아니지만, 아니기는 해도 부하이자 의형제의 나라로서 두거나 맞이하도록 되었다.)) 이자들이 광개토태왕 폐하님의 심복인 부하장수를 임금으로서 추대하고 맞이하였다. 이 광대, 광활하고 대단했던 팍스 고구려의 역사들이 좀 더 많이 일깨워 졌으면 하는 바램이죠.^^ㅋㅎ
@@user-xm3yz1zf3g 고구려 영토는 모본왕을 시작으로 요서지방은 고구려 영토였습니다 그러다가 고국원왕이라는분이 근초고왕때 한강북부와 개성 평양을항복시켰고 전연에게 요서 요동지방을 빼앗겼던 고구려가 휘청이던 시기이죠 그러다가 소수림왕때 내정을다지고 난후 광개토태황님 아버지인 고국양왕때 개성 평양지역을 다시 가져왔고 요동지역까지 수복했으며 그다음왕인 광개토태황님이 이 기세로 쭉쭉 백제 아신왕을 격파하였고 후방이 안정된 2~3년동안 말갈 부여 거란같은 큰부족 국가들을 이기고 지배했으며 또다시 백제 가야 일본이 신라를 공격하자 5만 병력을 보내어 이겼고 그때 1년에 후연에 국력을 쏜아내어 이겼죠 대단한분입니다ㅎㅎ 이때 북만주 연해주 요동 요서 지역과 충청도지방과 강원도지방전라도 절반(20~25%)까지 넒혔죠 이렇게 잘살다가 장수왕의 남진정책으로 동맹을 맺은 신라와 백제가 공격하여 백제는 충청도지방을 신라는강원도와 경기도를 가져가서 이때부터 다시 휘청거리다가 진흥왕때 함경도 남쪽 반 까지 빼앗겼고 이때 온달장군이 그냥 돌격하여 함경도 가져왔고 강원도 북부반을 가져오며 화살을 맞고 죽었고 이대로 쭉이어오다가 이것까지 역사문현이 있는데 이다음인 요서지방은 마지막으로 언제 빼앗긴건지 알수가 없어서 이대로 끝나는게 좋을듯하네요 ㅎㅎ 인제 조계호님 고구려영토 이해되었나요? ㅎㅎ 쓰다보니 너무써서 이해 않되시면 답을적어주시면 계속 쓰겠습니다~^^
@@user-iq7rf3hd3o 아.... 근데 북방으로 가는건 결과론적으로 의미가 없었는데.. 이게 참 아쉽, 결국인 백제와 신라를 복속해서 온전하게 삼국을 통일하고. 본격적으로 통일된 상태에서 중국, 일본과 경쟁했다면 동아시아 역사가 어땠을런지... 동아시아 밸런스 생각해보면 한국이 만주 가져가는것도 진짜 괜찮았을텐데.. 만주를 가지고 있었도 한 중 일 삼국에서 지금처럼 막내거나, 일본이랑 비슷한 수준이 됐을거 같고 중국이랑은 지금처럼 엄청 차이가 나겠지만, 최소한 확실하게 견제할 수 있을 정도의 국력은 됐을거 같은데.
고구려 백제 신라의 역사서 기록의 지명은 한반도에 없습니다. 거의 모든 지명과 수도 주요 전쟁 장소는 중국 땅 한복판에 있습니다. 고구려 연개소문이 당왕을 추격해다 놓친곳에 당왕이 기념으로 세운 몽룡보탑 위치가 어딘지 아십니까 중국 현지 역사가가 kbs역사 스페셜 취재진에게 진짜 역사 이야기를 들려주며 인터뷰합니다. 우리나라의 역사가와 교수들이 그리고 화려한 말하기를 좋아하는 스타 학원강사 나부랭이들이이야기해주지 않는 이야기를 중국 역사가를 통해서만 들을수 있습니다 중국 베이징 (북경)에 존재하는 수많은 고구려 유적들과 병영 병참기지 중국땅 한복판에 존재하고 있는 수십 수백개의 고조선과 고구려 피라미드와 유적지들 외부에 공개하지 않고 댐건설 등으로 수장시키고 공사로 파괴중입니다. 1997년까지 산동반도에는 상가들 이름이 백제가 들어간 간판이 널려있었지만 현재는 단 한개의 간판도 남아있지 않습니다. 왜 그럴까요? 광개토대왕의 영역 확장 수준은 우리가 국사책에서 보던 수준을 초월합니다. 광개토대왕의 영락궁 위치는 장안성 근방이랍니다… 놀랍지 않나요 경주에서 발견된 그릇에 쓰여진글귀에 광개토대왕 영토라는 유물이 발견되기도 했습니다. 한반도 전체는 거의 고구려 영향력 아래 들어가있던 작은 부분이었던 겁니다. 백제는 수많은 왕을 거느린 황제국 수준의 나라였습니다. 대한민국 작은 전라도 땅안에 국한된 지방정권 수준이 아니었습니다. ru-vid.com/video/%D0%B2%D0%B8%D0%B4%D0%B5%D0%BE-NZwluWSsap4.html 진짜 역사 이야기는 여기에 많습니다. 꼭 한번 가보십쇼 저는 역사에 관심이 그리 많지도 않고 게임 좋아하는 사람이지만 대한민국 사람 한명이라도 우리 조상님들의 진짜 이야기를 알기를 바랍니다.
어느 분으로부터 들은 이야기 강감찬 장군께서 고구려 수나라 전쟁 때 살수에서 대승 하였고 결국 고구려는 200백만 대군을 물리쳤다. 수나라 군인들이 막강 고구려 군사들 뚫고 당시 살수라던 평안도 청천강까지 밀고 내려올 수 있었을까? 후방 깊숙이 왔다면 엄청난 피해로 고구려 재기 불가능 했을 텐데? 이유는 당시의 살수가 청천강이 아니고 요녕성 대양하 라는 강의 지류 소자하 이기 때문이다. 또한 고구려의 수도가 북한의 평양이 아니고 만주 요서 어느 곳이라고 추정한단다. 그 만큼 대국이었다. 역사를 쭈구려놓은 일제 식민사학자들과 이를 떠받드는 역사학계가 중국의 동북공정을 부추기는 주범이란다.
백제와 신라의 국력은 이미 정복 전쟁을 치른 후에 패망 직전에 이르렀고 왕의 항복까지 받아낸 상황이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광개토대왕이 굳이 백제와 신라를 멸망시킨다면 그 지역 내부에서 반란이 일어날 가능성이 큽니다. 통일 신라(마음에 들지 않지만 이렇게 표현하겠습니다.) 때도 고구려와 백제 부흥운동이 일어났고 고려 때도 고구려(최광수), 백제(이연년) 부흥운동이 일어난 적이 있습니다. 영락태왕은 북방세력과 대치 상태에 있었고 그들을 견제해야 하는 상황이었기에 남방 지역에서의 반란은 큰 방해요소가 될 거라고 생각했을 것이고 백제와 신라의 군주는 그대로 두되, 군신의 관계를 맺고 조공을 통해서 국력이 성장할 수 없도록 하는 것이 더 이익이 됐을 것이라 판단했던 것 같습니다. 하지만 영락태왕은 북방과의 대치상태가 해소되고 난 후에는 남방을 복속시키고자 하는 생각은 분명히 있었던 걸로 파악됩니다. 평양 천도가 장수왕의 업적으로 다들 생각하지만 광개토대왕 후기의 기록에 평양을 자주 방문한 기록이 있고 그곳의 주민들을 이주시킨 기록이 존재합니다.
백제와 신라는 어느시점에 고구려의 속국이었는데 391년 둘다 왜의 속국이 되었다가 다시 고구려의 속국이 된게 백제는 396년이고 신라는 400년이라고 광개토대왕비에 나와있어요 여기서부터는 제 생각인데 속국이 되었다는 건 이미 고구려의 영토가 된거고 백잔주와 신라매금이 자치를 하는 형태인건데 지도에 백제와 신라를 영토 밖에 표시해놓은것은 나중에 다시 독립할걸 의식했기 때문인것 같아요 동부여도 410년에 고구려의 속국이 되었는데 지도에 고구려 영토 안으로 표시한것으로 보면 일관성이 없는것 같다고 조심스럽게 말해봅니다
거의 점령해놨는데 하필 장수왕때 반란터졌으니. 거의 모든 거점이란 거점은 점령시켜놨고 마지막 한 타 날릴때 개광토태왕이 죽고 내전나고... 그리고 한반도보다는 요동지방 먹는게 더 큰 이득이였을듯 산 산 산인데 요동지방은 그야말로 평원이니 저때 고구려가 후방정리하고 본격적으로 중국 침략했으면 금,청같은 나라를 여진ㅡ만주족이 아니라 한민족이 세웠을 것 같음
언제든 끝낼 수 있는 미약한 후방 세력은 구지 일단 내비둔듯 . 거기에 쓸 여력조차 그냥 북진에 쓰고 나중에 제들은 아무때느 마무리 하면되 이런거? 삼국지 게임중 손권을 하다가 마치 조조를 상대해사 바쁜데 뒤에 아래쪽 사섭 따위는 언제든 끝내면 되니까 구지 병역 이동시켜서 귀찮아 질 필요없는 이런거?
당시 고구려의 수도 양평(평양,지금의 선양,선양의 옛 이름이 평양임)은 모든 북방민족들의 문화의 중심지였고 북방유목민족들의 수도 역할을 했습니다.다시는 오늘날과 같은 국경선은 없었구요.국경선은 근대들어와 만들어진 개념임.고구려의 영향권아래 있는 지역은 만주,고구려5부족인 몽골,카자크스탄,볼가강유역의 볼가족(볼가=부여가)등 이었는데 이는 고구려의 영토였다고 봐도 무방합니다.
부여족의 본거지가 볼가강???이 확실한 가요?? 송화강(아무르강의 지류) 유역으로 알고있는데요.. 볼가강은 지역적으로 시베리아를 한참지나, 러시아 북부에서 발원하여 카자흐스탄과 우크라이나 사이를 수직으로 흘러 카스피해로 흘러들어가는 강인데... 님의 말씀대로 한다면 중앙아시아는 물론 그 광활한 시베리아 타이가 침엽수림 지역이 모두 고구려 영향권에 있었다는 얘기가 되는데, 듣는 입장에선 기분좋은 얘기 입니다만, 믿기가 쉽지 않은 것이 사실입니다..고구려 보다 넓은 영토를 가졌다고 알려진 발해 조차도, 오늘날의 블라디보스톡 이나 하바롭스크 같은 극동,연해주 지역 으로 학자들은 그 실질 영토와 영향권을 한정하고 있습니다..
당시의 요동은 황하부근이였고 산둥반도 입구쪽이 비가많이 오면 물에잠기어 늪지대처럼 변하여 그 지대를 요택이라 불렀습니다. 수,당이 고구려 요택을 건너 공격하옇고, 당태종이 연개소문 추격을 피해 우물에 숨어 목숨을건졌다는 몽룡보탑의 위치를 보면 대략 고구려영토가 어디까지였나 대충알수있지 않을까요? 결국 예맥족의 위치까지 영토까지 그려보면 설득력있습니다 지금까지 우리가배운 고대국영토들이 얼마나 엉터리였나 한심합니다 황선생님 제발 일제가 만들서준 역사를 가르처주지마시고 백지상태에서 유물과 사료들을위주로 검증연구 바랍니다
역사는 답이 없네요. 고구려강역의 중심이 우리가 배운 것보다 최소 1500리 이상 서쪽입니다. 고구려 시대 평양은 지금의 북경이고 고수 고당전쟁 때 수와 당의 수도는 시안(장안)이고요 황하가 꺾여 올라가는 요수를 중심으로 갈라집니다. 국내성 평양성 안시성 등 모두 산동반도 윗쪽에 있습니다.
중원 고구려비가 장수왕비가 아니고 광개토왕비 라는건 대학졸업후 30년만에 여기서 새로 배우네...지도를 보고 느끼는건 광개토 대왕이 중원까지 진출했을때 차라리 순수하게 고구려 힘만으로 신라.백제 멸망 시키고 삼국통일을 했어야 했다.그래야 진정한 한민족의 우성인자가 한민족의 주축이 되는 역사를 만들어 왔을텐데,광개토대왕이 정복을 멈춘건 너무 아쉽다.전라도,경상도서 식량 조달하고,척박한 북방으로 정복을 지속했었다면 진정한 제국을 만들었을텐데
황선생이 유튜버중 그나마 제일 나은 편입니다만.그도 식민사관에서 벗어나질 못하고 있음.강의중에 낙동강이 나오는데 낙동강이 아니라 양자강이구요.중원비도 황하이남의 지역.안휘성일대일 가능성이 농후합니다.삼국사기에 나오는 근초왕의 서안평점령,동성왕의 북위의 100만대군 괴멸은 반도사관으로는 설명이 안돼죠. 또한 삼국사기도 1912년일본넘에 의해 일반에게 공개시 記자가 붙어 공개됐음.원래는 삼국사죠. 최치원전에 보면 고구려.백제강병시 100만대군을 보유했고 중국의 오 .월. 연. 제.노.한.조를 지배했다고 기록되어 있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