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이 원래 해석할때 1.다른 나라사이에 끼인 나라 2.나라 안에,나라 중간에 이런 뜻으로 해석되다가 중화인민공화국이 들어서며 이것의 줄임말로 중국이 되었던게 사람들이 오해와 착각을 해서 나라를 칭하는 호칭으로 불리게 된걸로 알고 있습니다 훈민정음 해례본에 나라말씀이 중국과 달라란 말씀이 중국이라 다르단게 아니라 그 시대의 해석과 맞게 해석할려면 나라말씀이 나라안에서도 달라라고 해석해야 하는데........ 이것도 식민사관과 조선의 사대주의로 인한 세뇌와 착각의 결과물인것 같네요
이게 그럴수 밖에 없는게..., 고구려 백제 신라가 나중에 한강 유역을 차지하기 위해서 다투는데..., 그리고 조선이 수도를 지금의 서울인 한양으로 잡죠...., 지리적인 위치를 보세요... 최소한 산동반도와 그 내륙지방의 평원에 지배력을 행사하고 있었다고 가정을 해야... 의미가 있는 위치이고..., 황하정도 까지로 확대하면 할 수록 지리적으로 한양이나 평양을 수도로 한다면 이보다 좋은 자리는 없습니다. 실제로 일본이 일본에 있던 수도를 한양으로 옮길 계획까지 세웠었구요.... 큰 나라의 수도가 가져야 할 수도의 입지조건이나, 한강유역이 가지는 지리적인 잇점을 생각해 보면, 조선까지도 사실은 그 강역이 간도뿐만 아니라 산둥지방내륙 어디까지 였을 가능성을 충분히 염두해 둘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머리에 가슴에 너무 잘 들어와서 속이 뻥 뚫립니다 역사를 제대로 아는 자가 현실을 바라보는 안목과 혜안이 있다고 믿습니다 오늘날 한치앞의 티끌에 이리저리 휘몰리어 그릇된 어리석은 판단을 하는 거 보면 안따깝습니다 그러기에 이덕일선생님의 강의가 우리들에겐 큰 가르침이라서 고마울 따름입니다
중국에 산지 20년이 넘은 한국인 입니다. 중국에 온뒤로 우리 역사에 대해 더욱 열심히 공부하게된 사람입니다. 왜냐하면 이제 좀 중국어 구사가 편해지자 주의 중국인들 툭 하면 내벹는 소리가 바로"너네 엣날에 중국의 것이었다 or 소국이었다 등등" 이런 근거없는 소리였었는데 문제는 거의 교과서만 배운 제 지식으론 참 반문을 못하는 제 자신을 발견하게되어 그 뒤로 나름 열심히 혼자 역사 공부를 해오고 있습니다. 그래서 말인데 교수님 언제 중국에 다시 답사 오시게 되면 꼭 만나뵙고 싶슴니다. 연락 주세요. 진심입니다. 그리고 항상 좋은 영상 주시어 진심 고맙습니다. 수고하세요.
영상에서도 결국 하화족의 시작이 없네요... ㅠㅠ 이족이 시작한 역사가 있고, 하화족은 따로 역사가 없는. 결국, 왕조를 만들어 나간 것은 이족, 아마도 일반인들은 하화족이었던 듯. 마치 일본에서 동이족이 나라를 세웠을 때, 일반인들은 일본 토착 민족(아마도 폴리네이시안 쪽인 듯)이듯이 하화족도 중국 지역의 토착 민족인 듯. 동이족의 세계사적 사명이라고 한다면, 다른 지역, 다른 민족들한테 나아가 홍익인간하고, 문명을 전파한 뒤에 퇴장하거나, 쫓겨나거나, 떠나는 상태가 많이 있죠. 인도 쪽에서도 그랬던 듯.
사대는 그런 뜻이 아닙니다. 사대주의를 말하는 모양인데 그건 일본이 조선을 삼키기 위해 만들어낸 허위, 가상의 개념입니다. 사대라는 말은 맹자에게서 나왔는데 그 뜻은 전혀 다릅니다. 이걸 일본이 가져다가 조선병합의 정당성의 논리로 사용한겁니다. 조선은 오히려 명과의 실리적 외교를 통해서 막대한 이익을 얻은 국가입니다. 조선과 명의 관계를 보면 일방적으로 조선에게만 유리합니다. 임진왜란때에도 명이 조선에 보낸 원병과 물자만 해도 어마어마합니다. 하다못해 전쟁이 끝난 후에도 전후복구에 쓰라며 엄청난 은자를 보내주었고 전쟁중에도 툭하면 조선사신이 명나라에 군량미를 보내달라고 떼를 써서 백만석가까이나 얻어냈습니다. 이런 실리외교를 사대주의라고 폄하하는건 일본논리에 동조하는겁니다. 똑같이 몽도를 했는데도 고려현종은 현명한거고 조선선조는 어리석다는 현시대의 해석도 웃긴겁니다. 선조가 몽도를 하지 않았다면 조선은 그때 망해서 일본의 식민지가 되었을 겁니다. 이런게 모두 일본이 우리역사를 마음대로 재단해서 우리에게 심어준것이 뿌리깊게 남아서 해방된지 75년이나 지난 지금도 그 힘을 발휘하는겁니다.
좋은 강의 감사합니다. 고대에 동아시아는 동이족 또는 환웅의 배달국의 터전임을 알겠습니다. 현재 동양3국을 보면 중국은 동이족의 땅을 차지했고, 일본은 제천전통을 계승했고, 한국은 홍익인간, 이화세계라고 하는 정신을 계승한 것처럼 보입니다. 한국이 중국과 일본에 비해 민중들의 저항정신이 강하고 민주주의가 발전한 것도 이런 전통 때문이 아닌가 싶습니다. 감사합니다.
몽골과 징기스칸을 연구해온 박원길 박사님은 몽골의 시조신인 알랑고아의 아버지가 고주몽이라고 합니다. (몽골은 그러한 건국역사를 오래전부터 확신하고 있었던 것 같습니다. 몽골/원나라가 세계를 다 정벌해 복속시켜도 고려는 그리하지 않았고 이후에도 계속 어느 정도의 대우를 했던 것 등이 그런 이유에서 였던 것 같습니다. 박원길 박사님의 몽골 측 스승인 어느 교수님은 한국을 '어머니의 나라'라고 부른답니다.) 그리고 이게 사실이라면, 제가 놀라는 것은, 고구려의 건국이 엄청나게 오래전이라는 (= 고구려가 엄청나게 일찍 생겨난 나라) 뜻 이네요? = 고주몽이 몽골의 시조신보다도 더 먼저 사람이라니 말이죠. 그리고 선생님의 말씀대로, 우리민족의 분파가 매우 널리 퍼져 있는거 같습니다.
그자는 일본간첩인데요 중국을 다스린 사람들은 동방민족 입니다 고대에는 빙하기로 북방에는 문명이 없었습니다 지리상 동방민족이 북쪽을 통해 내려간거죠 대다수 중국인은 남방계 맞습니다 근데 대다수 일본인은 중국인보다 더 남방계죠 아이누족은 북방민족인데 일본에 병탄되고 노예화 되었죠
이씨조선왕조가 수차례에 걸처 수압령을 내려 자주적 역사책은 다 압수해서 없앴음 남은건 일제시대에 마져 없애고 일본왕이 사는 황거에 숨겨놓음 일본도 동이족의 분파로 사대주의에 찌든 이씨조선에 질린것도 있고 식민지배를 받은 한국은 그것을 대동아공영권을 합리화시키는 도구로 봐서 거부하기도 함
상고시대의 중국은 황하 남쪽이 아니라 황하 북쪽에 있는 산서성 기주冀州(현재 하북성 기주와는 다름) 중심도시는 요임금의 수도였던 평양平陽으로 오늘날 임분(山西省臨汾市)입니다. 요임금의 도성이 있는 임분을 기준으로 장안은 서이西夷였던 주문왕, 낙양은 동이東夷였던 순임금의 영역이 됩니다. 순임금 때 산동은 말 그대로 태행산太行山 동쪽에 있는 땅..하북에서 산동반도까지 포함하여 지금과 달리 그 범위가 넒었습니다. 태행산맥을 기준으로 서쪽은 산서山西, 동쪽은 산동山東..산서에는 기주가 있었고, 산동에는 청주靑州가 있었습니다. 기주의 땅이 커지면서 관리하기 쉽게 병주幷州와 유주幽州를 세웠고, 청주도 확장되자 영주營州를 설치했습니다. 임분의 북쪽에 있는 태원이 병주의 중심도시가 됩니다. 병주의 동북부를 분할시켜 나온 게 유주였습니다. 영주는 청주의 북쪽 땅을 떼어내 만든 행정구역입니다. 따라서 유주는 본래 북경 일대까지 포함하지 않으며 영주는 하북성을 넘지 않고 요녕성까지 올 수 없습니다. 중국인은 유주의 범위가 청주(하북성)에서 요동반도와 한반도 북부까지 이른다고 간주하고 있습니다. 그러면 유주는 일개 주州라고 하기에는 아예 한 나라를 세워 독립할 수 있을 만큼 땅이 너무 크기에 상식적으로 납득하기 어려운 일... 자치통감에서 서진西晋시대의 유주자사 왕준에 관한 기술이 있습니다. "왕준은 동이를 감독하며(都督東夷) 하북의 군사권을 가졌고(河北諸軍事) 유주를 거느렸다(領幽州刺史)" 하북은 이족(동이)의 땅이고, 유주는 하북에 속하고 하북은 원래 한족의 땅이 아니었다는 걸 암시하는 것 같은데..적어도 위나라 때 이미 유주가 산서가 아닌 하북으로 이전되었다는 것을 알려주고 있는 대목...당고종 때 고구려와 백제는 황하 이북에 있는 백성들(高麗百濟河北之民)이라는 기록도 자치통감에 있습니다. 고구려와 백제는 당나라 이전 남북조 시대에 하북지방까지 세력을 확장했음을 알려주고 있는 게 아닐까 싶네요.
황제 헌원조차도 동이 분파이고, 주나라도 동이 분파일겁니다. 원래 중원에는 키작고 새까만 미개한 토인들이 살고 있었고, 북쪽에서 키크고 훤칠한 동이족들이 중원에 계속 유입 됨에 따라 이합집산이 계속 이어지면서 지금의 중국이 생겼다고 봅니다. 넓게 보면 중국 일본은 다 어찌보면 형제죠. 아주 웬수 지만요.
이덕일 박사님^^~🙇♀️🙇♀️🙇♀️ 안녕하세요~🙆♀️🙆♀️🙆♀️~ 예전~KBS 역사 시리즈에~ 출연하신거~기억합니다^^~☺️ 중국민의 기원~출발점은 어디로 부터인가!~에 대한~관점에 전적으로 동의합니다~ 한국 중국과 중국 바운더리~ 일본은~논란의 여지없이 하나의 민족임이 확실하다고 봅니다~ ~(몽고도~베트남 북부도) 왜냐허면~첫째~생긴게 똑같습니다~😃😄😆~ 이거 이상 더 확실한 증거가 어디 있겠는지요?~☺️ 중국은~자신들이 중국에 살고 있으니~자신들의 우월성을 과도하게 드러내려는것 같고요~ 일본은!~🤔~과거에 힘이 좀 쎘었고(서구문물을 빨리 받아들여서~삶에 적용 이용 활용)~현재에도 주도권이 있는 나라라고 봅니다~(산업기술 과학)~ 그래도~일본은~집안으로 치면~ 막내급입니다~ 과거나 현재나~맨날 내가 잘났니~ 못났니~하는 집구석 싸움은 필연이 아닐까 합니다~ (인구의 기하급수적인 증가 산업발달등에 따른!~인간은 끊임없이~헤게모니를 장악하고자 하거든욤~) 한!~시조에서 시작된것이 너무도 맞기에!~ 한중일이 함께~ 뿌리를 찾는 일에 열린 마음으로 동참하는것이~ 올바른 자세 태도가 아닐까 합니다^^~☺️😊😁~ 울나라(한국)의~ 우월우수성에 대해서는 뭐 말할 필요가 있겠습니까?~ 옛적부터~하늘에 제사를 지내왔던 (가장~오랫동안~)민족이고~ 중국 일본계들 보다는~순수혈통을 유지한 민족이지요( 지리적위치) 머리도 좋고~인물도 수려하고오!^^~욤~ㅋ ㅋ~ 이런저런 이유로~삼국중~ 젤 맏형이고 적자는~한국입니다~ㅎ😌 ㅎ😌 근대사부분을 연구하셨는데~ 고대사에도 열려있다는 것은 어찌보면 지극히 당연한 것이라 봅니다~ 역사라는~큰!~카테고리 안에서 근현대사 통달하면 고대사도 보이기 마련인거지욤^^~ 정조의 독살설!~ 아마도 저도 그케 생각합니다 당시의 상황(당파)를 보면~ 그보다 더한 일도 했었을 것이라구요~ 방송~잘봤습니다~ 감사합니다^^~
1.중국어학원 유튜브를 보는데 한국어를 쎄게하면 중국어가 된다고 함. 일정한 변칙성을 갖고 받침만 ㄴ.ㅇ만 추가하면 됨. 2.한국어가 원조 언어라고 하면 중국어는 한국어에서 약간 이탈 된 몇 개의 언어를 추가하면 된다는 것인데 한국어의 파생어라 음운원리가 맞지 않는게 있다고 함. 1번만 중국어학원에서 이야기 했고 본인은 중국어 모름.
쑨룽지씨가 쓴 신세계사 1권 157페이지에 보면 허베이 텐먼 부근의 스자허(石家河)문화가 연대적으로 기원전 2500년에서 기원전 2000년 정도의 유적지이며 이곳에서 발견된 고성의 면적이 120만 제곱미터에 달하며 이미 고국{古國)의 단계에 들어선 걸로 보인다는 글이 있는데 이와 관련하여 정형진씨가 중국에서 활약하던 공공족이 우리의 환웅족이라는 내용이 떠올랐습니다 시기적으로 그리고 공간적으로 스자허문화가 공공족 혹은 환웅족의 문화와 연결되지는 않을까요? 여기서 활약하던 환웅족이 좀더 동북방향으로 이주하여 홍산문화의 곰족과 연합해서 단군조선을 건국한 것이 아닐까 생각해봅니다
銕쇠 철 侇무리 이 姨이모 이 洟콧물 이,콧물 체 咦크게 부를 이 峓산 이름 이 恞기꺼울 이 挗도려낼 결 㹫짐승 이름 이 䧅험준할 이 荑벨 이,띠 싹 제 桋나무 이름 이 胰등심 이 痍상처 이 眱물끄러미 바라볼 이 䄺강아지풀 제,어릴 치 羠불깐 양 이,불깐 양 시 蛦가을 매미 이 䨑구름 걷히고 비 그칠 제 䩟무두질한 가죽 이
서책에 중국이란 말자체가 언제 있었나요 이건 아니죠 중국이란 뜻은 '중앙이되는 지역'라는 뜻이죠 그단어 자체는 서책에 첨 보인것은 훈민정음에서 보일 뿐 중국이라는 단어가 쓰인곳이 없습니다 간과하시지 마시길 바랍니다 하화족이 지금의 한족이라 하신것은 정설같습니다 염두에 두고 연구해야겠습니다 감사합니다
河洛지구를 天下之中이라고 하셨는데, 여기에서 중국이라는 말이 나왔을 수도 있지만, 그 중국은 고유명사인 나라의 이름이 아니라 그냥 왕이 사는 땅 또는 지역을 뜻하는 일반명사이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아마도 중원이라는 말도 거기에서 유래되었을 가능성이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드네요. 중국이란 가운데에 있는 나라라는 일반명사로써 해당 시기의 가장 강한 국가의 왕이 있는 지역을 가르키는 것으로, 통일왕조이면 그 통일왕조의 왕이 거주하는 곳이 중국이라고 해석하는 것이 낫지 않을까요 ? 근데, 춘추전국 시대가 끝나고 秦,漢 왕조가 끝나고 위ㆍ서진 이후 5호16국시대, 남북조 시대의 팔분십열의 혼란기에는 어디가 중국이었을까요 ? 가장 강한 나라를 중국이라 칭했을지 아니면 하락지역 즉 낙양을 점령한 나라를 중국이라고 칭했을지 궁금합니다. 인도의 어느 책에 의하면, 중국 고대 승려가 인도에 불교 연구를 위해 인도에 가서 책을 남겼는데, 인도 즉, 천축국이 바로 중국이다 라고 기록했다고도 합니다. 그리고, 조선조 세종대왕 때의 훈민정음 서문에도 "나랏말싸미 듕귁에 달아 (國之語音 異乎中國)"이라는 구절 속에 중국이라는 어휘이 나오는 데, 여기에 쓰인 말도 고유명사인 중국 즉 가운데 있는 나라나 중심국가 라는 의미 중국이지 중국이라는 나라를 뜻하는 고유명사가 아닌 것이라고 봅니다. 근데, 우리나라는 그걸 단어 그대로 지금의 중국이라는 나라와 동일시하는 우(愚)를 보이고 있지 않나 생각합니다. 이건 제가 고교를 다니면 1970년대의 얘기이니까 지금은 어떻게 가르치는 지는 모릅니다만, 그대로가 아닐까요 ? 그리고, 조선이 건국된 것은 1392년이었고 명이 건국된 것은 1368년이었습니다. 조선 초기는 명나라의 수도가 남경이었고 명의 주원장도 이쪽 사람이라서 아마도 남경 부근의 말을 주로 사용했을 것이고, 세종이 왕위에 오른 것이 1418년인데, 그때는 명나라의 수도가 남경이었고 남경에 도읍한 명나라가 중국이었겠죠. 그당시의 명국의 표준말은 남경어였을 것이고, 훈민정음을 창제하고 반포할 당시 (1443~1446년)에는 명나라가 도읍을 남경에서 북경으로 옮긴(1421년 북경 천도) 후에는 였습니다. 훈민정음은 우리말을 표기하기 위함도 있었지만, 지나대륙의 지배층의 말이 바뀐 것에 대하여 표기를 쉽게 하기 위함도 있지 않았을까 추측됩니다. 우리 조선 말이 중국 (고려 초만 해도 중국은 몽골말을 쓰는 원나라였고, 조선 초는 남경에 사는 남경말을 쓰는 명나라 )과 다른 것은 당연하였을 것이고, 또한 명나나라 1421년 도읍을 남경에서 북경으로 옮기면서 中國인 明의 표준어가 남경말과는 전혀 통하지 않는 말이 새로운 표준어가 되니까 세종대왕은 적지 않게 당황을 하였을 것으로 봅니다. 조선 초기에는 몽골어가 중국어가 되었고, 조선 초기에는 남경어가 중국어가 되었고 또 북경으로 천도한 이후에는 북경어가 중국어가 또 되었으니까 황당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래서, 백성들을 위한 글자를 만든 목적을 담을 훈민정음의 서문에 어찌 보면 그다지 의미가 없는 거기에다 중국과 다른 나라니까 그게 한족의 나라든 몽골족의 나라이든 당연한 뜻을 가진 "국지어음 이호중국"이라는 문장을 넣어서 지나의 중심국가의 말을 쉽게 표기하고 배우기 쉽게 하도록 양수겹장의 훈민정음을 청제한 이유가 동시에 있다고 밝힌 것은 아닌지 하는 추측도 해봅니다. 그리고 이후 만주족의 후금 또는 청나라가 들어서자 청나라가 중국이 되고 만주어와 북경어가 중국어가 되었던 것은 아닌까요 ? 결국 고대에 중국이라는 말은 지금의 중국을 뜻하는 고유명사가 아니라 지나대륙의 통일왕조의 왕이 사는 나라가 중국이라는 일반명사가 아니가 생각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