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연이 선왕 미천왕 시신을 빼앗고 태후와 왕후까지 인질로 잡아 간 이유는 고구려군의 보복을 염려한 방편이었죠. 백제는 하필 근초고왕의 등극으로 최전성기였지만, 평양성 전투에서 고국원왕이 전사하자 만족하고 철군합니다. 무려 40년간 재위한 군주였는데 외세가 강성하여 운이 안좋았을뿐 결코 실패한 군주는 아니었다고 봅니다. 물론 고구려는 위기였지만 절대 만만한 나라는 아니었습니다.
당시엔 빠요엔 1인캐리가 가능한 시대였죠. 알렉산더만 보더라도 그렇고, 고구려가 멸망하고 토번에서 가르친링이라는 희대의 빠요엔이 태어나서 당나라 정예군을 오는 족족 갈아버리는바람에 당나라가 한반도에 집중하지 못하게도 했구요. 그 유명한 설인귀도 가르친링과의 전투에서 패배했죠. 토번의 전투력이 넘사가 아니었냐라고 생각하겠지만 가르친링은 재상업무도 겸했기에 동생에게 군사를 준적이있었는데 당나라에게 개박살이 났었습니다. 이후 가르친링이 다시 군권을 잡고 몇배가 많은 당나라군을 섬멸시켜버렸죠. 전 광개토대왕보다, 고구려가 조금만 더 버텼더라면 토번라이징에 합세해 당나라를 두들겨팼을텐데하는 아쉬움이 있습니다. 고구려멸망후에도 고구려유민들이 계속해서 봉기하고 나라를 세우고 했던것을 보면 고구려는 국력이 다 빨려서 멸망한게 아니라 스스로 망한거라고 생각해요.
재밌게 보고 있습니다. '기록이 거의 남아있지 않아- 남은것도 위조 등이 있다고 하는...' 한반도에만 지도가 보이는게 안타깝긴 하지만, 점차 맞는 역사를 찾아가는 것도 우리의 몫이라 생각합니다. 반도사관은 일제가 만들었고 일제사관이 아직 뿌리깊게 남아있으니 안타까울 따름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