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이런 역사 강연에서 당대를 다룬 모든 사서 내용을 전부 나열하고 패널들과 생각해보는 그런 프로그램을 보고 싶다. 해모수와 유화에 에피소드에서도 해모수에게 아들이 없어 자식을 낳게 할 여자를 납치 비슷한거 해서 유화를 겁탈하는 기록도 있고 유화랑 하백이 해모수가 애매하게 나오니까 해모수한테 술 먹이고 강제로 잠자리 갖는 기록도 있고 금와의 양부 해부루는 기록에 따라 해모수의 아들인 경우도 있는데 그럼 위의 해모수에게 아들이 없었다는 기록이 뭐가 되는지 이런걸 논의 하는 방송이 있었으면함 정답을 제시 하는것 보다 논의 자체가 재밌는건데
고구려의 구려는 뿔가진사슴이 많다, 사슴이 많다 또는 사슴에게 활시위를당기는, 사슴을 사냥한다라는 뜻으로 순록유목민과 매우 밀접하다. 형사취수제는 형이 죽은뒤에 동생이 형수와 결혼하여 함께 사는 혼인 제도로 주로 유목민족에게서 자주 나타났으며 부여와 고구려 역시 형사취수제가 있다. 고구려는 3세기들어 형사취수제가 사라지는데 이는 유목민족의 문화에서 정착민족의 문화로 바뀌어가면서 없어진걸로 볼수있다. 즉 북에서 남으로 내려왔을 유목민족일 확률이 크다. 바이칼호 근처 유목민중 부리야트족은 현재까지도 우리나라와 비슷한 문화가 존재한다. 과거 유목집단에게 있어 물은 매우 중요했기에 내륙지방에서 가장 큰 담수호인 바이칼호수를 지배했던 세력은 큰 힘이 있었다. 현재 중국의 후룬베이얼은 후룬부이르라고도 부르며 이는 후룬호수와 부이르호수를 합쳐 부르는 말이다. 바이칼호수처럼 이 두호수 모두 담수이다. 따라서 바이칼호의 세력권이 과거 부여이고 이곳에서 남으로 내려와 후룬호와 부이르호에 터를 잡은게 고구려이다. 주몽은 부이르호수(비류수)의 물줄기 근처에서 살다가 그지역의 힘있는부족의 딸과 결혼해서 힘을 기지게 된것이다. 박창범교수님의 고구려초기 일식기록 최적 관측지역에 후룬부이르가 포함되며 현재에도 후룬부이르에 존재하는 소수민족인 오론촌족과 에벤키족이 순록과 밀접한 관계가 있다. 그래서 지금의 후룬호와 부이르호가 근접해있는지역이 고구려 초기 성도인 홀본성 또는 졸본성이라 할수있다. 395년 광개토왕의 비려 정벌에서 비려의 뜻은 비석사슴, 돌사슴 또는 사슴돌이라고 볼수 있고 비려 역시 순록유목민이라 볼수 있다. 사슴돌로 검색해보면 중국의 신장지역부터 몽골, 우크라이나까지 매우 넓게 분포되어 있다. 광개토비에는 부산부산을 지나 염수에 이르렀다 하였고 염수는 소금물로 즉 소금물과 비려의 사슴돌이 교차되는 최소한의 지역은 현재 몽골의 서쪽 끝인 uvs호수이다. uvs호수가 염수라고 본다면 부산부산은 현재 몽골의 항가이산맥과 타르박타이산이라고 볼수 있다.
단군신화는 성경의 이 이야기와 유사하네요. 성경에 기록된 내용은 "하느님의 아들들이 사람의 딸들을 보고 취하여 아들을 낳으니, 네피림(거인)이라. 당대의 영웅이더라..." 그 이후 노아 홍수 심판이 일어나는데, 육신화한 하느님의 아들들은 모두 육신을 벗고 다시 영의 존재로 돌아갔을 것으로 보더군요. 이 이야기가 구전되어 이러한 신화를 만드는 것은 아닌지 의심스럽습니다.
강한국가인건 맞는데 천년도 못가 고구려와 백제는 멸망 발해또한 오백년도 못가 멸망 유일무이하게 오직 신라만이 멸망 안했음 신라는 멸망한게 아니고 신라 마지막 왕이 왕건의 본모습을보고 왕의자리를 비켜줌.... 왕건은 신라 마지막 왕께 감사를 표해 경주 땅을 다스릴수 있도록 현 시장 자리를 마련해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