몽골을 비롯 북방 유목민족들은 장자상속이 아니라 분할상속을 했었죠. 부여 또한 인근 유목민족들과 유사한 문화를 가졌을 가능성이 존재하니 그런 관점에서 보면 해모수(부여)의 아들들인 해부루와 추모가 각각 동부여와 홀본부여로 분할상속을 받은거라는 관점도 생각해볼 수 있을것 같습니다.
재미있게 잘 들었습니다~ 우리나라 고대역사는 사료가 적고 신화적인 부분도 있지만, 그런 덕분에 다양하게 역사해석을 할 수 있는 것이 재미있습니다 이래서 역사는 흥미로워요^^ 기록이 적어서 알기가 쉽지 않지만, 해모수를 단군과 동일시한 글이 있듯이 고조선 단군과 해모수의 관계 그리고 고조선과 부여의 관계를 나중에 설명해주시길 부탁드립니다^^
동북아시아 지방을 할거하던 3대 민족이 동호 숙신 예맥 인데 예맥족이 세운 고조선이 위만에게 찬탈될 때 준왕이 세력을 이끌고 한반도로 이주하였고 한민족이란 요동의 예맥족과 한반도 삼한의 토착 민족 모두를 일컫는겁니다. 이 논리는 후대의 평가이고 당시 삼한의 토착민족은 예맥족도 같은 민족으로 취급하지 않았지요. 칠지도에 잠재적인 적으로 간주한 내용이 나오니까요.
근데 삼국사기에서 해부루가 금와를 발견했을때가 해부루가 늙었을때라 나오거든요 따라서 해모수가 해부루를 낳고 왕이 된후 늙어서까지 자식이 없다가 갓난아이 금와를 발견하고 그 금와가 장성해 왕이 된후 유화발견 근데 그 유화가 해모수의 아들 추모를 낳았다?? 게다가 조혼풍습도 원간섭기 이후에 생긴 고려말-조선의 결혼문화라...
하백은 특정인물이 아니라 신분일 가능성이 있음. 해부루를 낳은 하백집안과 주몽을 낳은 하백집안은 다를수 있다. 해모수는 해부루를 낳았고 해부루는 밑으로 내려가 부여라는 나라를 세웠다. 해모수가 보아하니 아들 땅이 기름지고 탐이나서 아들을 옆으로 쫒아내고 자신이 들어갔다. 그때부터 자신들이 북부여. 아들은 동부여가 됨. 그때 사고를 쳐서 낳은 아들이 주몽
해부르가 금화를 낳은것도 아니므고 금와가 추모를 낳은것이 아니니 셋간에 나이차이가 적을수도 있고 , 그시대에는 10대에 아들을 낳았을수 있으므로 40대에 손주를 볼수도 있습니다. 또한 형재가 많으면 맏이와 막내는 20살차이 나낳수있음, 또한 순장제도로 형수나 재수룰 취하듯 여자 형제가 한남편을 섬기기도 했음.
얘기 들어보니 스토리 앞뒤가 다 맞는데요~~ 정을통하고 자식을 나았다. 이 시점을 15-16세로 보시고 30세 전에 손자보고 45세에 술한잔 하다 눈맞아 자식 또 나으면 되죠. 보통인간이 아니라서 당시 60세 까지 살았다고 생각하면 충분히 여러 기록들에 맞출수 있습니다.
부여는 한국말로 밝게 빛난다는 뜻이고 조선은 한자로 적어서 아침에 빛나는 땅 부여는 천자의 아들 해모수가 건군 조선은 환웅의 아들 단군이 건국 사실 어떻게 기록하냐의 차이일뿐 둘은 같은것이 아니였을까요? 부여 = 조선 이렇게 보면 한나라의 공격으로 멸망한것은 위만조선이면서 요서부여 그 시대 금와왕이 통치하던곳은 북부여면서 진조선 이렇게 볼수도 있겠지요
저는 가설2가 유력해 보여요. 다만 금와는 해부루의 아들이 아니고 해부루와 나이차이가 크지않았던 동부여 가섭원의 지방실력자같고, 왜냐면 해부루가 아들이 없는데 개구리 어쩌고 하면서 금와가 등장했으니, 해부루의 피는 섞이지 않았으나 해부루의 강력한지지세력이라고 추측할수있고 해부루 사후 동부여의 왕이 되는 시나리오도 자연스럽게 이해가됩니다. 추모가 동부여에서 금와의 아들 대소에게서 미움받았다는것은 해부루 금와가 동부여로 오기전에 북부여에서 금와가 해부루를 서포트할때 해부루가 해모수 다음 대를 계승하도록하기위해 해모수에게서 이쁨을 받던 당시 장자 해부루와 나이차가 많던 어린 막내였던 추모를 금와의 아들 대소 등이 위협한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드네요.
영상 항상 잘 보고 있습니다. 최근에 예전에 했던 영상들을 묶어서 리메이크? 하시는 것 같습니다. 그래서말인데요. 가후라는 인물이 참 좋던데 이참에 4편짜리를 묶어서 가후편을 해주시면 어떨지 조심스레 여쭈어봅니다. 그때는 주변 인물들이나 상황에 중점을 두셨다면 이번엔 가후란 인물에 좀 더 초점을 잡아주시면 하는 바램이 있어서요.
가설 2가 가장 신빙성이 있어 보입니다. 단군조선과 부여는 같은 나라인 듯 하며 해모수는 제사장인 단군이었으며 하백 집안은 제사장의 부인을 배출하는 부족인 듯 합니다. 해모수가 아들인 해부루에게 세습을 할려고 했으나 해부루에게서 자손이 없고 다른 부족의 금와를 태자로 옹립하니 이에 다른 부족에게 천제의 지위가 옮겨 지는 것에 격분한 해모수가 아들인 해부루에게 다른 곳으로 이동하라고 명령했다는 것이며 이에 자신을 계승할 아들이 없던 해모수는 급한 마음에 하백 부족의 여성 유와와 만나 자손을 생산하고 어디론가 사라졌는데 해모수는 얼마 후 사망한 것 같고 태어난 자손이 바로 해주몽이라는 것 같습니다. 다시 말하면 해모수의 아들은 해부루와 해주몽 두명이라는 것 같습니다. 해주몽은 늦둥이일 가능성이 높습니다. 즉 해씨 집안인 해주몽과 다른 부족 출신인 금와 출신의 대소와의 사이에는 미묘한 대립이 발생했고 이에 해주몽이 동부여를 떠나 북부여(졸본부여)로 도망쳐서 그간 계승자가 없던 북부여에서 해모수를 계승했다는 것 같습니다. 문제는 손자뻘인 대소와 해주몽이 나이가 비슷했다는 오류가 있지만 당시에는 10대에도 후손을 낳았다는 점을 미루어 보면 해부루는 해모수가 젊은 시절 10대에 생긴 아들이며, 해주몽은 해모수가 노년시절인 50대 이상에서 생긴 아들이라고 본다면 손자뻘인 대소와의 나이차이도 극복될 수 있지 않을까요?
청화수님 좋은 영상 감사합니다. 개인적으로 궁금한 부분이 있는데, 발해를 세운 대조영의 탄생연도(생년)가 너무나 궁금합니다. 왜냐하면 발해고를 읽어보니 고구려의 장수 출신이라고 되어있는데 고구려 멸망 후 30여년이란 시간이 지나 세워진 발해의 시조가 된 후에 20여년을 통치하여 50여년이란 시간이 나오는데 고구려 멸망 당시 20대 청년 장수였다는 것인지 중년의 장수였는지 궁금합니다. 흔히 대조영의 아버지라고 알려진 걸걸중상이 60여세에 사망했다고하는데 그렇다면 도대체 대조영은 몇살에 발해를 건국한 것인지, 드라마 '대조영'처럼 645년에 출생할 수도 있는 것인지 궁금합니다.
제자식이 스탠포드대 동아시아역사 박사과정 중인데 진짜 놀랍네요 독학으로 우리역사를 공부하신것 같은데 많이 배우고 갑니다 역사를 공부하시는분들은 어느 분야보다도 논리력 통찰력이 요구되는 학문입니다 신채호선생이 그렇게 연구를 하셨듯이 보통의 머리로는 해낼수 없는 작업입니다 놀랍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