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종환-k3h 좀 더 찾아보세요. 조선 수군은 백병전에서도 강했어요. 이것은 일본 편에서 전쟁에 가담했던 외국인 시선에서 고증됩니다. 강했던 고구려가 멸망했던 이유가 지도부의 분열이듯, 원균같은 쓰레기 장수가 지휘를 하니 턱없이 지휘체계가 무너지면서 비극이 시작되었다고 봐야지요.
배를 버리고 육지로 도망쳤고 육지에서도 왜놈에게 쫓겨 도망치는데... 원균은 살이쪄서 제대로 뛰지도 못하고 숨이차서 쉬다가 왜놈들한테 죽었다는 설도 있더라구요... 드라마에서 죽는 장면은 멋지게 미화 시킨것이고 실제로는 죽을때 마져도 조선의 통제사 답지 못한 꼴불견 스러운 죽음이었다는 설도 있습니다~
거제여행중 조선수군이 궤멸한 칠천량해전으로부터 역사적 교훈듣고 타산지석으로 삼고자 칠천량해전공원을 방문하였으나, 단순히 조선수군이 패하였다는 사실만 알려줄뿐 패전으로부터 어떠한 교훈도 알려주지 않아 칠천량해전공원의 존립에 대한 의문만 가지고 돌아왔습니다. 강사님! 시간되시면 한번 방문하시고 거제시청에 의견을 개진해 주셨으면 합니다
이순신 장군께서는 말씀하셨습니다. '적의 수급 취하는 쓰잘데기 없는 짓을 할 생각말고, 한놈이라더 더 죽이라'고요. '그걸로 전공을 판단하겠다' 고 부하들을 다독였고. 실제로 cctv 수준의 상세한 기록을 남기셨습니다. 반면, 이런 치열한 전투 와중에도 원균은 이순시늬 뒤를 따라다니며 전투에는 신경쓰지 않고, '너는 열심히 싸워라~ 나는 적의 목이나 줏으러 다닐테다' 하고 열심히 시체들의 목만 따서 조정에 바쳐 자신의 전공으로 모조리 돌렸다고 합니다. 이런 불합리한 평가방식은 현대에도 없다고는 할 수 없겠네요. 제가 전 직장에서 회의를 느끼고 정떨어진 이유중 하나 이니까요.
1등 공신이죠 덕분에 이순신 이라는 희대의, 세계사 통틀어도 몇 안되는 구국의 영웅이 탄생하게 되엇으니까요 앞으로의 전쟁은 없어도 , 전세계 전쟁역사 중에서도 이순신은 탑3 안에 들어갈만큼 대단하죠 원균이 없엇으면 이순신의 저 능력이 과연 제대로 평가받을수나 잇엇을까...?
공신은 순전히 왕과 조정이 정하는데, 원균은 할 줄 아는 거 하나 없어도 딱 하나 수급만은 열심히 갖다바치면서 자기의 쓰레기짓들은 제대로 보고를 하지 않거나 아예 허위로 보고하고 포장하면서 이순신의 공까지 자기가 주도한 것처럼 양아치짓을 하기도 하는데 그 진실을 파헤쳐줄 사람이 없었기 때문에.. 유일하게 이순신만이 그 실체를 알고 낱낱이 고하려면 고할 수도 있었을텐데 이순신장군은 희대의 국난 속에서 그럴 시간이 있었으면 차라리 적 동태 한 번이라도 더 살피고 모의전투라도 한 번 더해보고 병서 한 번이라도 더 보실 분이기 때문에 원균의 실체가 조정에선 제대로 드러나지 않았겠죠. 더구나 윤두수 같은 원균 커버 쳐주는 뒷배까지 있으니.. 거기에 선조입장에선 사실상 이순신한테 거의 나라 전체를 빚져놓고 정작 지는 이순신장군의 파직과 고행에 제일 크게 기여했으니 그 대체자로 선택한 원균이라도 이순신 못지 않은 사람이어야 그나마 면이라도 서는 거죠.. 그래서 또다른 경우는 원균의 실체가 알려졌어도 선조가 어떻게든 포장해서 이순신과 동급 공신으로 올린 걸 수도 있을 거 같아요.
불멸이 나오기 몇해전, KBS 역사의 라이벌이란 역사 다큐멘터리프로에서 이순신과 원균을 다룬적이 있어요. 그러면서 진행자의 마지막 멘트가 이순신이 너무 부각되 원균의 업적이 가려졌다는 식으로 말하더군요. 방송국 자체가 원균 띄워줄 의향을 갖고 있었으니, 원균 배역도 멋있게한거죠. 솔직히 일반인이라면 원균을 그리 잘알지 못했을테니, 배우를 탓할일은 아닌거 같아요.
이순신이 일본군과 싸운 것은 단 며칠 만에 게다가 화살로 배에 불을 붙인 것만으로도 도검으로 싸운 것은 아니다. 그리고 일본군이 배에 대포를 장비하게 되면 조선군은 도움이 되지 않게 되고, 그 후 이순신은 전투 명령을 따르지 않고 도망쳤기 때문에 부하가 없는 병사에게 떨어졌다. 일본군에 있어서 이순신은 큰 장애가 아니라 부산에 상륙해 불과 3주 만에 서울에 도보로 도달할 수 있었다. 조선민중은 일본군을 환영했다. 그리고 화해가 성립해 일본군이 철수하자 이순신은 비겁에도 배후부터 일본군을 덮쳐 반대로 총격을 받고 죽은 것이다. 당시 기록에 따르면 이순신은 영웅이 아니다. 쓸모없는 남자였다. 그러나 한일병합 시대에 이승만이 역사를 날조해 이순신을 영웅으로 만들었다. 한국인은 그것을 검증하지 않고 믿고 있다. 그러나 데타라메는 데타라메입니다..
ㅎㅎ 마지막 멘트에서 빵 터졌습니다. '원균 과연 이새끼 칠천량에서 죽었을까요' 정말 다루기 싫은 역사의 한 장면일텐데 그래도 이렇게 속시원하게 강의해주시니 감사할 따름입니다. 우리 동네 그 원균의 후손이라는 부패정치인이 이 시신도 없는 원균의 묘랍시고 성역화하면서 묘 주변에다 온갖 치장을 다 했습니다. 정말 꼴뵈기 싫어 죽겠습니다.
이순신이 일본군과 싸운 것은 단 며칠 만에 게다가 화살로 배에 불을 붙인 것만으로도 도검으로 싸운 것은 아니다. 그리고 일본군이 배에 대포를 장비하게 되면 조선군은 도움이 되지 않게 되고, 그 후 이순신은 전투 명령을 따르지 않고 도망쳤기 때문에 부하가 없는 병사에게 떨어졌다. 일본군에 있어서 이순신은 큰 장애가 아니라 부산에 상륙해 불과 3주 만에 서울에 도보로 도달할 수 있었다. 조선민중은 일본군을 환영했다. 그리고 화해가 성립해 일본군이 철수하자 이순신은 비겁에도 배후부터 일본군을 덮쳐 반대로 총격을 받고 죽은 것이다. 당시 기록에 따르면 이순신은 영웅이 아니다. 쓸모없는 남자였다. 그러나 한일병합 시대에 이승만이 역사를 날조해 이순신을 영웅으로 만들었다. 한국인은 그것을 검증하지 않고 믿고 있다. 그러나 데타라메는 데타라메입니다..
@@afleafle33 민족주의는 민족의 자존성을 되새기는 사상입니다. 국수주의가 아닙니다. 조선조정이 망할조정이었다고 외세에 침탈당하는 것이 마땅하다고 여기는 어리석은 자가 아닙니다. 썩고 낡은 사회는 망하고 보다 진보한 사회를 민족 자존성 갖고 만들어 나가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이순신이 일본군과 싸운 것은 단 며칠 만에 게다가 화살로 배에 불을 붙인 것만으로도 도검으로 싸운 것은 아니다. 그리고 일본군이 배에 대포를 장비하게 되면 조선군은 도움이 되지 않게 되고, 그 후 이순신은 전투 명령을 따르지 않고 도망쳤기 때문에 부하가 없는 병사에게 떨어졌다. 일본군에 있어서 이순신은 큰 장애가 아니라 부산에 상륙해 불과 3주 만에 서울에 도보로 도달할 수 있었다. 조선민중은 일본군을 환영했다. 그리고 화해가 성립해 일본군이 철수하자 이순신은 비겁에도 배후부터 일본군을 덮쳐 반대로 총격을 받고 죽은 것이다. 당시 기록에 따르면 이순신은 영웅이 아니다. 쓸모없는 남자였다. 그러나 한일병합 시대에 이승만이 역사를 날조해 이순신을 영웅으로 만들었다. 한국인은 그것을 검증하지 않고 믿고 있다. 그러나 데타라메는 데타라메입니다..
이순신이 일본군과 싸운 것은 단 며칠 만에 게다가 화살로 배에 불을 붙인 것만으로도 도검으로 싸운 것은 아니다. 그리고 일본군이 배에 대포를 장비하게 되면 조선군은 도움이 되지 않게 되고, 그 후 이순신은 전투 명령을 따르지 않고 도망쳤기 때문에 부하가 없는 병사에게 떨어졌다. 일본군에 있어서 이순신은 큰 장애가 아니라 부산에 상륙해 불과 3주 만에 서울에 도보로 도달할 수 있었다. 조선민중은 일본군을 환영했다. 그리고 화해가 성립해 일본군이 철수하자 이순신은 비겁에도 배후부터 일본군을 덮쳐 반대로 총격을 받고 죽은 것이다. 당시 기록에 따르면 이순신은 영웅이 아니다. 쓸모없는 남자였다. 그러나 한일병합 시대에 이승만이 역사를 날조해 이순신을 영웅으로 만들었다. 한국인은 그것을 검증하지 않고 믿고 있다. 그러나 데타라메는 데타라메입니다..
뻭이 국무총리인데 아무리 대통령이라도 해군 사령관이 패장이라도 목 날리긴 힘들었을듯 합니다. 그당시 선조 또한 도망치는 중이였고, 그걸 책임 묻기란 쉽지 않았을것 같음. 차라리 충청부사로 갔을때 온갖 장계가 올라와도 무시하고 끝까지 안고 간게 선조인데, 차라리 그때라도 선조가 정신을 차리고 원균을 파직 했다면 역사는 달라졌을거임. 가장 의아한건 원균은 왜 충청부사에서 육군으로 승진을 못하고 다시 수군으로 왔느냐 인거. 빽이 든든하고 왕의 총애를 받는 장군이면 수군보다 편한 육군 장군으로 남는게 좋았을텐데 왜 다시 수군으로 돌아갔는지
황현필 선생님, 원균을 미화하는 무리들과 싸워서 꼭 이기시길 바랍니다!!! 많은 사람들이 칠천량 해전에 대해 자세히 알아 원균하면 바로 칠천량 해전 패배가 떠올랐으면 좋겠네요. 조선 수군 만명이 죽었는데 어떻게 미화를 할 수가 있는지... 대한민국은 민주주의 국가가 맞는 것 같습니다.
이순신이 일본군과 싸운 것은 단 며칠 만에 게다가 화살로 배에 불을 붙인 것만으로도 도검으로 싸운 것은 아니다. 그리고 일본군이 배에 대포를 장비하게 되면 조선군은 도움이 되지 않게 되고, 그 후 이순신은 전투 명령을 따르지 않고 도망쳤기 때문에 부하가 없는 병사에게 떨어졌다. 일본군에 있어서 이순신은 큰 장애가 아니라 부산에 상륙해 불과 3주 만에 서울에 도보로 도달할 수 있었다. 조선민중은 일본군을 환영했다. 그리고 화해가 성립해 일본군이 철수하자 이순신은 비겁에도 배후부터 일본군을 덮쳐 반대로 총격을 받고 죽은 것이다. 당시 기록에 따르면 이순신은 영웅이 아니다. 쓸모없는 남자였다. 그러나 한일병합 시대에 이승만이 역사를 날조해 이순신을 영웅으로 만들었다. 한국인은 그것을 검증하지 않고 믿고 있다. 그러나 데타라메는 데타라메입니다..
강의 마지막말이 의미심장하네요. 원균 이새끼 죽었을까요? 근데 그때 안죽었다는 말이 더 많더라구요. 일본측 기록에도 그때 죽인 조선군 장수 이름에 없다고 합니다. 그리고 칠천량이후에도 조선 조정에서 원균에 대한 언급이 몇번이 나오고요. 아마 산 속에 숨어 살다가 조용히 죽었을듯 싶네요
이순신이 일본군과 싸운 것은 단 며칠 만에 게다가 화살로 배에 불을 붙인 것만으로도 도검으로 싸운 것은 아니다. 그리고 일본군이 배에 대포를 장비하게 되면 조선군은 도움이 되지 않게 되고, 그 후 이순신은 전투 명령을 따르지 않고 도망쳤기 때문에 부하가 없는 병사에게 떨어졌다. 일본군에 있어서 이순신은 큰 장애가 아니라 부산에 상륙해 불과 3주 만에 서울에 도보로 도달할 수 있었다. 조선민중은 일본군을 환영했다. 그리고 화해가 성립해 일본군이 철수하자 이순신은 비겁에도 배후부터 일본군을 덮쳐 반대로 총격을 받고 죽은 것이다. 당시 기록에 따르면 이순신은 영웅이 아니다. 쓸모없는 남자였다. 그러나 한일병합 시대에 이승만이 역사를 날조해 이순신을 영웅으로 만들었다. 한국인은 그것을 검증하지 않고 믿고 있다. 그러나 데타라메는 데타라메입니다..
이순신이 일본군과 싸운 것은 단 며칠 만에 게다가 화살로 배에 불을 붙인 것만으로도 도검으로 싸운 것은 아니다. 그리고 일본군이 배에 대포를 장비하게 되면 조선군은 도움이 되지 않게 되고, 그 후 이순신은 전투 명령을 따르지 않고 도망쳤기 때문에 부하가 없는 병사에게 떨어졌다. 일본군에 있어서 이순신은 큰 장애가 아니라 부산에 상륙해 불과 3주 만에 서울에 도보로 도달할 수 있었다. 조선민중은 일본군을 환영했다. 그리고 화해가 성립해 일본군이 철수하자 이순신은 비겁에도 배후부터 일본군을 덮쳐 반대로 총격을 받고 죽은 것이다. 당시 기록에 따르면 이순신은 영웅이 아니다. 쓸모없는 남자였다. 그러나 한일병합 시대에 이승만이 역사를 날조해 이순신을 영웅으로 만들었다. 한국인은 그것을 검증하지 않고 믿고 있다. 그러나 데타라메는 데타라메입니다..
@@이순신박사 조선인이 이순신을 어떻게 평가하는지는 조선인의 자유이다. 그러나 이순신이 활약한 것은 1592년 5월부터 7월 7일까지이며, 그 후는 모두 지는 것이 사실이다. 거북선의 출동 기록은 없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일본과 명국이 평화협정을 맺고 인질을 교환한 뒤 일본군을 배후에서 덮쳐 반대로 죽었다. 이러한 사실에서 이순신이 조선을 구한 영웅이라고 객관적으로 판단하는 것은 무리이다. 생각하십시오. 만약 이순신의 비겁한 공격에 일본군이 화나 평화협정을 파기하고 다시 공격해 오면 조선은 어떻게 되었습니까? 이순신은 그 책임을 어떻게 할 생각이었을까요? 히데요시가 죽은 것은 명국과 조선에게 운이 좋았습니다. 이에 따라 조선은 살아남을 수 있었지만, 국력을 깎은 명국은 그 후 곧바로 청국으로 정복되었습니다. 청국의 홍타이주는 조선에 복속을 명령했지만 반항한 조선은 곧바로 패전하여 홍타이주 앞에서 굴욕적인 속국 인사를 했다. 그것이 역사이다.
처음부터 원균은 귀중한 판옥선을 자침시키고 도망가기 바빴는데 간혹 티비나 유투브에 보면 원균 맹장설을 유포 하는 사람들을 이해 할 수가 없다. 심지어 해사 교수도 티비프로에서 이순신과 함께 용감하게 왜군을 격파하였다고 칭찬하는데 역사의 기록이 잘 못된건가 그분이 잘 못되었는가 그리고 칠천량에서 원균의 행적을 보면 그냥 졸전 그자체인데 뭔 맹장인지
@@afleafle33 대한민국역사상 최악의 대통령세마리증에 우열을 가리기 힘든 놈을 최고의 위인? 개풀뜯는 소리 쳐하지말고 얼른관속으로 들어가라임마! 일제시대이후 태어났지만 수구꼴통짓을 하는놈들보고 토착왜구라고 하는이유 모르나? 리승만이가 친일앞잡이놈들을 자기 권력사수를 위해 수족으로 부렸기때문이지...그런 순왜놈들이 권력을 갖고 새끼쳐서 지금까지 잘쳐먹고 잘살고있다 ..부관참시해도 부족한 벌레들이지
참 추운데 화나가서 열나네요. 칠천량에서 1만명이상 이순신이 몇년간 양성한 정예부대를 어떻게 하루에 다 말아먹고...휴 열받네요. 진짜. 아무리 포위 되었더라도 진영갖추고 미친듯이 싸워야 하는데 이미 수군들의 신망을 잃을대로 잃은 원균때문에 사기가 다 꺾여 있었을거라고 봅니다. 정말 타임머신이라도 타고 가서 원균을 죽이거나 선조를 없애고 싶다.
이순신이 일본군과 싸운 것은 단 며칠 만에 게다가 화살로 배에 불을 붙인 것만으로도 도검으로 싸운 것은 아니다. 그리고 일본군이 배에 대포를 장비하게 되면 조선군은 도움이 되지 않게 되고, 그 후 이순신은 전투 명령을 따르지 않고 도망쳤기 때문에 부하가 없는 병사에게 떨어졌다. 일본군에 있어서 이순신은 큰 장애가 아니라 부산에 상륙해 불과 3주 만에 서울에 도보로 도달할 수 있었다. 조선민중은 일본군을 환영했다. 그리고 화해가 성립해 일본군이 철수하자 이순신은 비겁에도 배후부터 일본군을 덮쳐 반대로 총격을 받고 죽은 것이다. 당시 기록에 따르면 이순신은 영웅이 아니다. 쓸모없는 남자였다. 그러나 한일병합 시대에 이승만이 역사를 날조해 이순신을 영웅으로 만들었다. 한국인은 그것을 검증하지 않고 믿고 있다. 그러나 데타라메는 데타라메입니다..
해전이 아니라 칠천량 근처육지에서 일본육군들이 판옥선에 올라타서 조선수군 다 칼로도륙냈고 불질러버림. 심지어 배를 빼앗겼다라는 기록도 있음. 그 빼앗은 배는 일본수군 전력으로 사용했겠죠. 해전이라는 표현도 아깝습니다. 그냥 칠천량에 묶여있다가 도륙당함. 칠천량도륙, 칠천량살육 이라는 표현이 정확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