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희할아버지는 평양쪽에서 대대로 물려받아서 큰할아버지님과같이 조그마한과수원을하고계셨는데 해방이후 3년도안돼서 다버리고 한국에 피난오셧습니다....큰할아버지님은 그래도 조상님들이 물려주신곳인데 지켜야된다고 남아계셧고...할아버지는 돌아가실때까지 엄청 후회하셧죠...형님만 버리고 내려오는게 아니였는데 어떻게든 같이내려왓어야됏는데 하구.... 전쟁이 얼마나무서운건지 간접적으로 마니배웟습니다...
@@user-nb9xl1cf4m 음...저는 가족은 아닌데.. 아는 분이 북한출신인데, 조선때는 이름있는 양반 가문이었고, 해방전에도 지주로서 북에서는 좀 사시던 집안이었다고 합니다. 근데 해방되고 나서 세월이 어수선 하니까 아버지가 기차 타고 이분과 이분 여동생을 데리고 서울의 큰아들(그러니까 이분께는 큰 형님이죠) 집에 잠시 데려다 놓곤 아버지도 할아버지와 함께 가산을 정리해서 서울로 내려올거란 말을 남기고 북으로 다시 가셨답니다. 그때는 아직 남북이 교통하던 시절이었는데, 그 후 몇통의 편지만 받고 삼팔선이 너머로는 다니지 못하게 되면서 영영 뵙지 못했다고 합니다. 올해 나이가 아흔에 가까우신데 지금도 술 한잔 하시면 '차라리 그때 나도 따라갈걸...'하시면서 북에 남으셨던 부모님과 할아버지가 너무나 보고 싶다고 우셔요...
돌아가신 저희 할아버지께서 말씀하시길 한 일본인 선생님이 있었답니다. 이분은 엄했지만 일본인 학생들이나 한국인 학생들을 차별하지 않던 분이셨다는군요. 8.15 광복 이후 순사들과 헌병들은 두들겨 맞고 고리대금업자의 집은 불탔지만, 그 선생님의 집만은 학생들이 돌아가면서 지켰기 때문에 무사했다고 합니다. 그 선생님이 배를 타고 일본으로 돌아갈 때 모두가 슬퍼했다는 이야기가 떠오르네요. 그런 걸 생각하면 참.. 21년 전에 돌아가셨는데 여전히 그립네요. 좀 더 사셨더라면 이것저것 많이 여쭈어 봤을텐데..
제 할아버지께서도 비슷한 얘기를 해 주신적이 있습니다. 소학교 시절 한 일본인 선생님이 어려운 조선인 학생들 많이 도와 주셨다고 하시더군요. 그리고, 할아버지 사시던 동네에 가게를 운영하던 일본인 가족이 있었는데 아주 친절하고 예의가 발라 조선인들과도 잘 지냈는데 해방이 되자말자 친하게 지냈던 동네 사람들이 갑자기 안면을 바꾸고 그 집에 몰려가 일본인 가족 내 쫓고 가게를 빼았아 갈곳이 없어진 그 일본인 가족들을 할아버지께서 집에 데려와 귀국전까지 같이 지냈다고 합니다.
...지금 보면 북에 그대로 있지 않고 빠르게 피신을 한 사람들... 어떻게든 도망을 치는 것에 성공한 사람들은 이후로 "도망치길 정말 잘했구나..." 싶은 모습이 떠오릅니다. 당장이야 겁이 나거나 내가 무슨 설레발을 친게 아닐까 했겠지만, 소문을 확인하면서 정말 다행이구나 하고 안심을 했겠지요. 다른 거 넘어가고 일단 이후 북쪽 상황을 생각하면(...)
소련군 유명했더라구요. 독소전 후반기 독일 땅에 진입하고 나서 막장 짓 한거야 복수려니 생각할 수도 있지만 그리스 발칸반도에 가서도 개막장 짓들을 하는 바람에 현지 정부가 스탈린한테 항의를 하는데 스탈린의 답변도 걸작이었습니다. "군인들이 먼 타지에서 작전하는데 그럴 수도 있지! 뭘 그런 걸 가지고 불평들을 해!" 라는 뉘앙스로 답을 했더라구요.
유고슬라비아에서도 여자만 보면 겁탈하는 바람에 티토가 스탈린에게 항의를 강하게 했더랬죠. 스탈린은 그냥 무시해 버렸고. 그래서 유고는 같은 공산국가였지만 반소련정책을 썼고 해방도 소련군에 의해 된 게 아니라 유고유격대가 독일군과 직접 싸워서 되었기에 자유공산국가로 갈수가 있었던거죠.
저희 외할아버지와 외증조부모님 가족이 원랜 한양 사람들인데 일제 때 황금이나 따 볼까하고 신의주에 가서 만주 땅을 돌아다니며 사금을 모으고 다녔다합니다. 근데 해방 직후인지에 신의주 집이나 겨우 모아둔 몇 안되는 사금까지 다 두고 서울로 돌아오셨는데 돌아 온 후 다시 그 집에 가지 못했다는 얘기를 들었습니다. 전 단순히 서울이 고향이어서, 해방된게 좋아서 왔는데 정말 다행히도 남한에 왔다 느꼈는데 이 영상을 보고 나니 아마 소련군이 진입할 때 영상과 같은 소문을 들었거나 목격했기에 서둘러 서울로 돌아온게 아닐까 싶습니다... 진짜 저희 조부모 세대는 하나하나가 다 드라마같은 삶을 산 것 같아요
우리 외조모 가문은 평양의 대지주 였고 지금 자산으로 따지면 1조도 넘게 가졌었음. 심지어 그 북괴 돼지 김일성의 애비놈도 천한 노비 출신이라서 그 가문의 묘지기 였음. 교회와 병원도 세우고 그 지역 가난한 수많은 사람들을 구제해서 인망이 매우 높은 집안 이었음 그런데 문제는 김일성 빨갱이 ㅅㄲ가 집권 한후 북한 모든 지주 중에서 우리 외조모 가문이 숙청 상대 1위 였던것. 다행이 그동안 도와주던 주변 서민들이 우리를 보호해서 무사히 남한으로 탈출 할수 있었지만 전 재산은 공산당 한테 빼았김 북괴 돼지와 공산주의자들이 내 평생 제일 원수임
@@user-rd8oh1tx1k 못배워먹은 틀베충식 논리 ㅋㅋㅋ. 당시 식민지 독립군들은 윌슨의 민족자결주의 영향으로 파리 강화회의에서 미국에게 일본에 뺏긴 나라를 되찾도록 도와달라했지만, 일본과 동맹군이던 미국은 이를 거절하고 소련이 독립군들을 지원해서 당시 독립군들 대부분은 공산주의자 아님 민족주의자였단다. ㅋㅋ
북한에서 도망친 할머니한테서 들은 얘기를 어머니가 얘기해줬는데 진짜 소련군하면 치가떨린다고 하더라구요 겉모습만 보면 일본인인지 북한인인지 구분을 못하니까 말도 못알아들으니 일단 동양인이다 하면 납치했다고 하구요 날붙이 공산품 총기 하다못해 냄비 밥그릇까지 쓸만하다 싶은건 전부가져갔대요 진짜 양아치도 그렇게 쌩양아치는 첨봤다고...
역사적으로 약탈과 보급의 상관관계는 마치 부모와 자식같이 붙어다니는거 같아요. 일본군도 개전초기 보급선이 작동할때와 아닐때의 태세전환이 판이하듯이... 지휘관의 역량을 벗어난 보급한계는 필연적으로 현지수탈을 동반하네요. 그렇다고 대전략상에서 발을 뺄 수도 없으니 결국 현지조달이라는 명목으로 수탈을 허용하게 되네요.
유튜브가 2005년도부터 지금처럼 보편적으로 볼 수 있었다면 사회탐구 점수 졸라 올랐겠다 매일 수업시간마다 선생님이 노트북으로 이거 틀어주고 시험 요점만 찝어줬으면 지금 내가 이렇지 않았을텐데.. 좋아하던 학원 선생님이 있어서 내 생애 처음으로 사회 점수를 80을 넘겨봤는데.. 그러다가 한 학년이 올라가고 이별을하고 또 손을 놨을때..퍄퍄킴이 잇었다면..아니지 고양이가 있었다면..
전쟁이 나면 어떤 상황이건 민간인들은 고생이지요. 우리할머니도 어렸을떄 한반도에서 태어난 일본인 친구들과 친하게 어울려놀았다는데 해방이 되면서 급히 피난가느냐고 다들 연락이 끊겨서 슬펐다고 하셨어요. 일본인 선생님한테도 말안듣는다고 회초리맞고 그랬다는데. 의외로 일본 민간인들하고는 한국사람들이 섞여서 잘 지냈다고 하더라고요.
@@user-suminlee 딱히 그렇지도 않았음. 지주가 일본인으로 바뀌면서 지대는 더 늘었고, 대부분 일자무식 농민은 농토 강제로 다 뺏기는 바람에 소작으로 전락하는 경우도 있거니와 무엇보다 일하는것도 차별이 심해서... 일본인 민간인 중에서는 나쁘지 않은 사람도 있었다고 돌아가신 저희 할머니가 말씀하셨지만 대체로는 가난한 농민한테는 다 뜯어가지만 않으면 다행 수준이었다고 하긴 함..
8:50 나중에 소련에 강제 징용된 일본인들이 보상요구하니까 일본정부가 꼼수로 안해주겠답시고 러시아 가서 알아보라고 했는데 여기서부터 샌프란시스코 조약에 국가간 청구권은 해소되었다고 적혀있어도 개인의 청구권은 살아 있다는 논리를 씀. 근데 정작 이건 한국인 징용 피해자들도 똑같이 일본에 청구할 수 있는 근거가 되는 논리라는 자가당착.
장교출신입니다. 영상보며 문득 생각이 드네요. 전술학에서 민간요소가 꼭 포함되는 이유중 하나입니다. METT+TC라고 작전수행에 꼭 알아야할 정보중 마지막인 C가 civil consideration(민간요소) 인데 주변 민간인들이 적보다 아군을 우호적으로 대하고 자발적으로 협조할 수 있게끔 하는것이 중요하죠. 실제 6.25당시 남한이 열세일 때, 울산지역에 빨치산이 많이 나와 주민들을 약탈하고 죽여 분노한 울산주민들이 연합군측에 많이 협조했었죠. 아마 전쟁나서 우리가 북진한다면 북한주민들도 우리에게 많이 협조할 것 같네요.
반대로 지리산 쪽에서는 빨치산 소탕하던 경찰들이 빨치산들이 강압적으로 물자를 뺏은 거여도 협조한 걸로 간주하고 무지성으로 처벌하고, 빨치산들도 잡으면 닥치고 사살에 심지어 효수까지 해서 (빨치산들 역시 경찰서 털면 경찰서장 목을 잘라서 효수) 일대 민간인들이 빨치산 다음으로 싫어했던 게 지역 경찰이였는데, 8로군 출신이라 민심을 중요하게 생각하던 차일혁이 부임하면서 경찰을 빨치산 다음으로 싫어했던 지리산 일대 주민들이 다시 마음을 돌렸죠. 여기에 잡히면 무조건 총살이던 빨치산들도 회유를 시켜서 빨치산 잡는 유격대로 써먹은 덕에 지리산 일대를 휘저었던 이현상도 잡을 수 있었죠. (다만 다른 팔로군 출신들도 그랬듯이, 팔로군 출신+팔로군 출신이라 방법이 너무 온건하다는 이유로 전쟁 끝나고 대우는 그닥 좋지 못했죠.)
1. 당시 일본인은 북한에 25만 명 정도가 있었는데 그 중 3만5천 정도가 소련의 비호를 받은 조선인에게 살해당했습니다. 물론 초반의 광풍이 지나간 후에는 북한에도 '이건 아니다' 싶어서 자산을 몰수한 것 외에는 귀국하기 전에 먹고는 살게 해줬습니다. 2. 고급 엔지니어들은 북한에서도 활동했는데 이들은 김일성보다 약간 아래거나 그 이상의 월급을 받으며 살았습니다. 대신 출국은 엄금. 3. 그 외에 나머지 쓸모없는 노약자들이나 미숙련공 같은 일반 시민 대부분은 일본으로 송환된 거로 알고 잇습니다. 4. 소련은 일단은 북한에 있는 온갖 설비를 전리품 명목으로 압수했다가 훗날 현지 인민위원회(훗날의 북한 정부)에 매각하는 형식으로 넘겨줬습니다. 물론 뜯어간 것도 있고. 이거 다 논문 피셜
우리집은 조부모님 두분 모두 북쪽분이고 젊은 시절에 이러저런 이유로 만주로 가셨던 분들입니다. 할아버지는 제가 태어나기 전에 돌아가셔서 직접 이야기를 듣진 못했지만 할머니 말씀으로는 해방이 되고, 소련군 들어오면서 같이 고향으로 돌아왔는데 땅도 있고, 선산도 있고, 고향집도 거기 있으니 두고가지는 못하겠다고 차마 월남을 못하고 북한 수립때까지 거기 사셨다고 합니다. 근데 주변 사람들이 출신성분문제로 잡혀가고, 우리집이 양반집안이긴 해도 오래전에 몰락해서 얼마 안되는 땅으로 살던 자작농이었는데도 부농계급이라며 땅 가져가려고 하고 해서 불만이 쌓이고 쌓였다가 마침 국군이 진군해오고, 흥남철수할때 결국 가진거 다 포기하고 월남한 경우입니다. 당시 일본놈들 이야기도 많이 하긴 하셨는데, 어디다가 적어놓을 것을 그냥 듣기만 하니 기억이 가물가물하네요. :(
자 당시 한국에서 태어난 일본인들은 고향 자체가 한국이고 한국인들과 엉키고 살아가서 일본 본국에서 건너온 사업가들이나 군인들과는 좀 다른 행보를 보임 한국인들과 태어났을때부터 부딛히고 살아서 호의적였음 그래서 패전 후에도 일본으로 가지않고 자기가 태어난 한국에 남았던거고
포항구룡포 가면 일본인거리가 있는데 거기의 한 가옥2층에 가면 당시 여기 살았던 일본인들 본토에서 찍은 영상 나옵니다. 구룡포에서 살던 어린 시절에 대해 환한 얼굴로 웃으며 이야기를 하는데 국적은 일본이지만 한국땅이 고향이라 생각하더군요 죽기전에 다시 한번 가고 싶다고. 일본사람들 자체는 순박한 사람 많아요
군인의 약탈을 막으려면 민주주의 교육만 받는다고 될게 아니라 군이 필요로 하는 물자도 넉넉해야 하고 위계가 잘 확립되어있어야 합니다. 과거 박애를 와치던 프랑스 혁명군조차도 총 소리 들릴 땐 "튀어!!" 도시에 들어가땐 "털자!!" 였습니다. 나폴레옹이 이탈리아 침공할 당시 혁명정부한테 지원도 제대로 못 받아서 군화 신고 있는 놈도 별로 없을정도로 거지꼴로 들어갔는데 나올 때는 병사들 밀린 봉급 한번에 해결하고 자기가 챙기돈은 말할 것도 없이 혁명정부에 자금까지 쐇습니다. 보석도 정부에 보냈다고는 하는데 보석만 털어갔으면 다행이죠. 오히려 예술품까지 털어서 루브르 박물관 가면 그때 털어온 이탈리아제가 엄청 나게 많습니다. 군인은 약탈을 하면 안된다는 건 오늘날 생각이고 심지어 이것도 잘 안 지켜지기도 하죠. 현재 우크라이나 전쟁 중에도 러시아 군인들이 마트 털고 귀중품 약탈하잖아요?
이 영상 보고 북한은 일제를 청산했는데 왜 남한은 일제를 청산하지 않았죠? 라는 의문이 드는 분들을 위해 설명해드립니다. 1. 북한도 일제 당시 전문인력을 충분히 활용했고 이용해먹었습니다. 당시 전문가 지식인 계층이 전부 일제종사자였기 때문입니다. 2. 결국 이들은 청산당하게 되는데, 이는 북한이 일제를 청산하기 위해서 한 것이 아닌, 북한에서의 김일성 중심의 권력체계를 세우기 위해서입니다. 다른 세력은 일본인이든 독립군출신이든 심지어 자신의 오른팔이였던 사람이라도 전부 죽여버렸죠. 3. 그리고 현 대한민국 기득권층의 대부분이 여야를 가리지 않고 친일파 후손입니다. 당연히 친일파 청산이 안되는건 여 야 모두 겉으로만 청산을 외치며 실제로는 할 생각이 없기 때문입니다.
김영주 북한 부주석 (일제강점기헌병보조원) 장헌근 북한 임시인민위원회사법부장(일제강점기 중추원 참의) 강양욱 북한 인민위원회 상임위원장 (일제시대 도의원) 정국은 북한 문화선정성 부부상 (아시히신문 서울지국 기자) 김정제 북한 보위성 부상 (일제강점기 양주군수) 조일명 북한 문화선정성 부상 (친일단체 '대화숙' 출신, 학도병 지원유세 주도) 홍명희 북한 부수상 (일제강점기임전대책협의회 가입 활동) 이활 북한 초대 공군사령관 (일제강점기 육군 항공대 소속) 허민국 북한 인민군 9사단장 (일제강점기 육군 항공대 소속) 강치우 북한 인민군 기술 부사단장 (일제강점기 육군 항공대 소속) 최승희 일제하 친일단체 예술인 총연맹 회원 김달삼 조선노동당 제주 4.3 사건 주동자 (일본군 소위) 박팔양 북한 노동신문 창간발기인, 노동신문 편집부장 (일제 만선일보 편집부장) 한낙규 북한 김일성대 교수 (일제강점기 검찰총장) 정준택 북한 행정10국 산업국장 (일제강점기 광산지배인 출신, 일본군 오장 근무) 한희진 북한 임시인민위원회 교통국장 (일제강점기 함흥철도 국장) 이승엽 남로당 (일강점기식량수탈기관 이사) 북한이 친일청산이 잘이루어 졌다는건 잘못된 오류죠. 사법부 군인 문화계쪽 거의 모든 분야에서 친일파를 기용햇었음
반대로 미군은 시계를 보급받으니 미군의 약탈품 1위는 장교들이 가지고 있는 권총이였죠. 태평양 전선에서도 일본도와 남부권총이 최우선 전리품이고, 서부전선에서는 루거나 마우저 권총이 워너비 전리품이였죠. (특히 일본도는 본국에 가져와서 팔면 진짜 비싸게 팔렸는데, 그 중에 군도가 아닌, 집안 대대로 전해져 내려오는 가보를 들고 온 장교들도 있어서, 태평양 전선에서는 남부권총 다음으로 탐냈던 게 일본도)
이래서 부국강병이 중요 한 것이죠.... 아무리 든든한 동맹국이 있어도 그 나라가 스스로 강해질 의지가 없다면 아무도 구원의 손길을 내밀지 않는 냉정한 현실이죠.... 대표적으로 1970년대의 남베트남에서의 미군 철수도 그랬었고 2021년의 아프가니스탄에서 미군 철수도 그랬죠
소련이 한국을 침략했다고 하는데 말도 안되는 소리고 실상은 미국이 한국을 베트남처럼 침략해서 남한에서 민간인 20만명을 학살하고 있었다 학살한 이유가 식민지에서 독립한다고 하자 미군인 학살했다 그래서 북한의 한국인들이 남쪽의 한국인들 학살 당한다고 한국인들 구하게 소련에게 탱크를 달라고 해서 탱크를 타고 내려온것이다 ((전세계를 소련이 공산화를 퍼뜨린다고 말하는데 실상은 미국의 식민지 학살 인간노예 국가들을 독립시키기 위해서 노력을 했던것이다))
결국 다 똑같네..독일,일본,러시아,미국,영국 그리고 우리나라도 다 한때 잘못했던것들이 있다는것..다만 문제는 그때의 일들을 반성하고 앞으로는 그러지않아야 하는데..21세기인 현실에서도 똑같은 역사가 반복된다는게 너무 슬프다..나라가 힘이 없으면 안되는 이유 중 하나..
진짜 2차 세계대전 기간동안 소련군이 저지른 만행들도 그렇고 이번 영상에서 언급되었더런 소련군의 만행들도 그렇고...... 2차 세계대전 승전국이라는 타이틀에 가려져서 그렇지 소련도 진짜 당시 그들의 적국이였던 일제, 나치 독일이나 다름 없는 악랄한 국가였죠 어쩌면 애초에 근.현대 제국주의 열강 국가들보다 더 악랄한 국가가 현재 모든 공산주의 국가들의 맹주 격인 소련이 아니였나 싶네요....
다른 유럽 열강들에 비할 것도 없이 거의 거지꼴이나 다름없게 살던 가난한 나라 사람들이 수뇌부가 독재자한테 다 총살당해 지휘력도 개판되었는데 말도 함부로 못하는 경직된 분위기 속에서 나라를 지킨다고 생산인구 오천만명, 동네 학교 남자애들 몇백명 중 팔다리 잘린 세네명만 살아남은 수준으로 죽어나간 독재국가인데 수년동안 전쟁을 하고 거의 끝물에 도착한 전투부대다? 상식적인 대응을 할 수가 없죠...아무래도
@@user-ed2ux2lk1l생각은 무슨 맞는 이야기지 역사상 가장 악마와 살인마가 스탈린과 중공 모택동 캄보디아 폴포트 그리고 북괴 김일성 베트남 호치민이다. 모두다 좌익이지 심지어 독일 나치당의 공식명칭도 독일 사회주의 인민노동자당으로 역사상 자국민포함 수백만명을 학살하거나 굶겨죽인게 모두 좌익이었다.
소련이 아마 보급이 제대로 들어 왔어다면 그런짓을 하지 못했을겁니다 반대로 미국이 독일한테 전국토가 초토화당했거나 30정도만 피해를 입어서 보급을 못해주면 똑같이 했을겁니다 심지어 일본군도 중일전쟁때 똑같이 했습니다 그러니 보급이 얼마나 중요한지 다시보여주는 대목이라 생각할수 있습니다
1. 북조선에 진주한 소련 제25군은 상당수가 죄수 출신들이라 군기가 개판이었다고 합니다. 그래서 손목뿐만 아니라 다리에도 손목시계를 주렁주렁 차고 다니는 꼴을 자주 볼 수 있었다고 하죠. 2. 식민지 근대화론의 허구성으로 거론되는 문제이기도 한데, 일본이 조선에 산업시설은 건설했지만 정작 그걸 조선인들이 운영할 수 있는 능력이 없었습니다. 남한이야 말 할 것도 없고 나름 산업화되었다던 북한 역시 마찬가지라 일본인 기술자들을 다수 억류시켜서 이들로부터 공장 기계 가동법을 배워야 했다고 합니다. 3. 일본인들이 파괴하고 튄 산업시설들 중에는 함경도 일대의 수력발전소들도 꽤 있다고 합니다. 험준한 산지에 위치해서 현재까지도 복구는 엄두도 못내는 곳들이 다수 있다고 하지요.
미국은 사상자도 많이 나고 애초에 남한에 주둔할 생각이 없었음.......3.8선 분할도 미국정보장교 소령이 장난으로 툭 던진말인데 정말로 쏘련이 남쪽으로의 진군을 멈추었음 ....미군은 울며겨자먹기로 9월 17일 남한에 진군함..........지구상에 천사국가가 있어서 하나를 고르라면 중국 쏘련 나미비아 이라크 리비아등이 아닌 미국이다
@@davidjacobs8558 근데 그 당시의 일본 기술력이 좋지는 않았죠. 백 투더 퓨처 3편에서 50년대의 브라운 박사가 타임머신에 있던 부품 중에 일제가 있으니까, 일제를 쓰니까 고장나지, 라고 하는데, 마티가 무슨 소리냐면서 일제가 얼마나 좋은데, 라고 하는데, 그 당시 일본 기술이 많이 애매했었죠. (그래도 그 당시에 지금도 꽤 어려운 기술인 총열에 크롬도금을 적용할 정도로 나름 기술력이 괜찮긴 했지만, 문제는 후반으로 갈 수록 가내수공업 형태로 만드니 품질이 개판이 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