되게 사소하지만 내용에있어서 중요한 부분을 수정하셨네요. 4:00 경의 메타수학적 명제 설명을 수정하셨는데, 수정 전에는 '메타수학을 다루는 명제' 라고 하셨습니다. 괴델수는 '수학적 명제' 를 '숫자'로 바꾸는 것이 키포인트입니다. 괴델수가 수학에서 가지는 중요한 의의는 메타수학의 영역을 수학의 영역으로 치환하는데에 있습니다. 수학적 명제에 대한 언급 자체는 메타수학의 영역입니다. 이를 수학적인 수(여기서는 자연수죠) 로 치환해 메타수학의 영역에 있는 명제를 수학의 영역으로 치환한 후, 수학적 기법을 이용해 논리를 전개한다. 라는 것이 불완전성 정리의 핵심 아이디어입니다. 괴델 수 라는 것은 일단 자연수이고, 자연수는 숫자이기 때문이죠. 물론 함의하는 것이 메타수학에서 다루는 것이지만, 괴델 수 라는 치환툴을 이용한 해석이지 숫자 자체가 나타내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자기언급을 피할 수 있는 것이기도 합니다. 저도 전공이 아니고 유튜브와 글을 읽으면서 이해한 것이기 때문에 매우 틀릴 가능성이 높습니다. 하지만 어떤 부분을 수정하셨는지, 어떤 디테일이 있는지는 많은 분들이 아셨으면 해서 댓글 남깁니다. 사실 이 주제를 처음 아시는 분들은 별 차이 없기때문에 재업로드 안하셔도 될꺼같은데 재업로드 하신 결단이 대단합니다.(저 또한 다시보기 전까지는 몰랐습니다.) 앞으로도 좋은 영상으로 뵙겠습니다.
궁금한 것이...수학 외적인 영역을 다루기 위해 수학 내적인 것을 이용한다는 게 가능할까요? 상대방의 마음을 알기 위해 내 마음을 이용한다는 것은 결함이 있는 유추에 불과하지 않나요? 아직 이 정리가 이해가 안 되네요. 가령 그=1 그녀=2 좋아한다=3 로 둔다면 p: 그는 그녀를 좋아한다 p의 괴델수를 n이라 하면 n=(2^1)(3^2)(5^3)=270 그러면 Sub(n, 3, 270)가 가리키는 명제는 '그 그 그녀 좋아한다 좋아한다'가 되는데 이는 '그는 그가 그녀를 좋아함(좋아한다는 사실)을 좋아한다' 혹은 '그는 그와 그녀를 좋아함(좋아한다는 행위)을 좋아한다' 두 가지 모두를 의미할 수 있습니다. 결국 명제가 자기 자신을 논리항으로 갖지 못하는 형식은 수학 밖의 영역에는 존재하지만 수학 내에서는 발견되지 않은 것인데, 수학 밖의 문제를 억지로 수학 내부로 가져오면 저런 오류가 생기지 않나 생각합니다. '괴델어'의 구문론적 형식이 이상언어의 조건을 충족해서 명제들과 일대일대응 관계를 지닌다면 오류가 생기지 않겠지만...잘 모르겠습니다
수학을 전공했던 저로서도 괴델 정리에 대해 반박하기 어렵긴 해도 무언가 낚인 것 같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는데 선생님께서 전체적으로 핵심을 잘 정리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이런 류의 역설들은 참과 거짓의 경계가 명확하지 않은 대상들을 논리학처럼 다룰 때 생기는 문제점인 것으로 저는 이해를 하고 있습니다. '유령은 충치가 있다'라는 진술을 A, '유령은 충치가 없다'는 진술을 B라고 하면 ~A=B로 보아서 A&B(모순율)는 거짓이며 ~(A&B)=AVB(배중률)은 그 반대인 참이라고 과연 말할 수 있을지 저는 의문이 듭니다. 상위 계층을 넘나드는 진술 속에는 이러한 표현 상의 불확정성이 만들어지기 때문에 참, 거짓이 명확히 구분되는 명제들에 한정해야 하는 논리의 대상은 될 수 없다는 판단입니다. 러셀 파라독스 A={X|X는 X의 부분집합이 아니다}도 같은 맥락이겠구요. 잠시 헛소리 좀 해보았습니다~^^
전 들으면서 완전한 것에 대한 비판, 어쩌면 신을 격하시키기 위한 논리전개라고 생각했는데 선생님께서 정리해주신 걸 보니 인간사고의 불확실성을 말하는 것이네요. 사고능력이 좋지 않아 수박겉핥기도 못하고 있지만 언젠가 앓의 기쁨으로 한주간 즐겁게 보냈다는 선생님처럼 깨달음의 즐거움을 누리고 싶네요. 영상 잘봤습니다! 짧은 영상인데 머리가 뻑뻑해지네요. 몸뚱이를 움직여야겠습니다.
이해하기에 어려운 부분이 많아 3번 돌려보다가 이상엽 선생님의 강의까지 보고나니 이제서야 조금 이해가 되는 듯 합니다. 재밌네용 ㅋㅋㅋㅋㅋ 철학적 관점에서 불완전성 정리라는 도구를 이용하여 수학의 민낯을 아주 조금 들여다본 것 같은 기분이 참으로 오묘합니당 ㅋㅋㅋㅋㅋ 감사합니다!
댓글을 쭈욱 봣는데 아무도 이 영상의 핵심 오류를 짚어내지 못했네요. 0과 "0"은 같습니까? 컴퓨터언어에서는 둘은 다릅니다. 0은 int형의 타입이고 "0"은 문자형 타입으로 성질이 다릅니다. 단어가 같다고 해서 같은게 아닙니다. 나는 거짓이다의 전제로 한 명제와 실제 결과값의 나는 거짓은 서로 다른 성질입니다. 이둘은 그냥 문자만 같아보이는거지 성질이 서로의 성질이 다릅니다.
1) 괴델의 불완전성 정리에 대한 생각 수학 전공 : 수학은 인간이 만든 것임을 증명??? 철학 전공 : 인간은 진리에 도달 할 수 없다는 것을 증명??? 2) 메타수학 명제와 수학 명제의 정확한 구분 방법을 잘 모르겠습니다ㅠㅜ Depth로 구분하는건가요? 1번 예시 : ' '자연수 x가 있다'는 명제가 있다. ' 2번 예시 : ' x는 자연수이다. 그리고 f(x) =y이다. ' 3번 예시 : ' ' 자연수 x가 있다'라는 명제 a가 있다. 명제 a는 b라는 집합에 포함된다. ' 괴델의 신증명에서 나온 양상논리에 대해서 더 알고 싶습니다. 항상 좋은 영상 감사합니다:)
이 영상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괴델이 사용한 언어가 이상언어인지 일상언어의 모방인지 규명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가령 기호를 '그=1 그녀=2 좋아하다=3' 로 두고 명제인 p에 대해 G(p)==int(p의 괴델수) 로 함수를 정의할 때, 괴델의 언어가 한국어의 문법을 따른다면 p: 그는 그녀를 좋아한다 G(p)=(2^1)(3^2)(5^3)=2250 이지만 영어의 형식을 따른다면 G(p)=(2^1)(3^3)(5^2)=1350 가 됩니다 이 문제가 중요하다고 생각한 이유는 겹문장에서 이 언어형식이 중의성을 지닐 수 있기 때문입니다 가령 한국어의 문법을 따를 경우 명제 Sub(2250, 3, 2250)는 '그 그 그녀 좋아하다 좋아하다'로 배열되는데 이 명제의 뜻은 '그는 그를 그녀가 좋아함(좋아한다는 사실)을 좋아한다'가 될 수도 있을 것 같고 '그는 그가 그녀를 좋아함(좋아한다는 사실)이 좋아한다'가 될 수도 있으며 '그는 그와 그녀를 좋아함(좋아하는 행위)을 좋아한다'가 될 수도 있습니다. 특히 뒤의 두 문장에서 중의성이 생기는 이유는 억지로 자기 자신을 논리항으로 가지는 명제를 설정했기 때문이라고 생각하지만...아직 이 신종 '괴델어'의 형식을 파악하지 못해서 잘 모르겠습니다. 확실한 것은, 만약 괴델어의 형식, 그러니까 구문론에 결함이 있다면 그로 인해 발생한 정리에도 결함이 있을 것입니다...수학을 이용해 논리항의 문제를 극복할 수 있다는 발상이 이해되지 않아 끄적여봅니다 어렵네요...
너무 늦게 영상을 봐서 질문에 대한 답을 얻을 수 있을지는 모르겠네요 ㅜㅜ 4:16 에서는 왜 의미에 대한 수를 소수의 지수로 올리지 않나요?? 앞선 괴델수와 같이 하려면 민수는 짜장면을 좋아한다 라는 명제도 2의 2승 3의 3승 5의 7승끼리 곱해야 하는 것 아닌가요??
철학은 모든 학문의 근원... 그러니까 이렇게 생각하는 방식 자체가 오늘날 '이성적 사고'의 원형인데, 특히 수학과는 뗄레야 뗄 수가 없어 보입니다. 국내 철학과 석박사분들이 수학을 겸임해서 전공하시는 게 맞지 않나 싶은... 마찬가지로 수학 하시는 분들은 철학을 공부하셔야하는 게 아닌가 싶은.. 사교육 현장에서 중고등 수학을 가르치다보면 나오는 뜨악한 질문들의 면면은 죄다 현대 수학 이전의 스타일을 가진 질문이고, 상당수 강사분들은 '그게 그렇게 중요해?'로 폄훼해버리더라고요. 그런 반응은 지성의 꽃이 필 수 있는 시기의 학생들에게 적합하지 않아 보입니다. 당장 이 영상에서 다루는 러셀의 역설은 상당수 학생들이 궁금해하는 것인데 말이죠. 양자역학이 통용되는 현대사회와 배중률의 중고등 학문의 세계와의 간격도 좁혀줄 필요가 있는데 그 역할을 이런 콘텐츠들이 해주는 것 같습니다.
안녕하세요. 현재 고등학교에서 재직 중인 교사입니다. 이전에 다른 영상에도 댓글을 달았으나, 동일한 댓글을 중복해서 다는 점 죄송합니다. 선생님의 여러 영상들을 수업에 사용하는 것에 관련해서 허가를 구하고자 메일과 페이스북 메시지를 보내드렸습니다. 나중에 확인하신다면 회신부탁드립니다.
아무래도 수리논리를 체계적으로 설명하지 않는 이상 다소간 오류는 불가피한 모양입니다. 4:00 "0=0"은 대상체계의 명제이며 메타체계의 기호열입니다. ""0=0"은 참이다"는 메타체계의 명제이지만 산술적인 메타체계 위에서 나타낼 수 없습니다.('증명가능하다'가 아닌 '참이다'라서 그렇습니다. 이게 가능하다면 거짓말쟁이 역설로 산술체계가 모순이 된다는 게 Tarski's undefinability theorem입니다.) 여기서, 메타체계의 어떤 명제가 산술명제로 변환가능하고 괴델수를 매길 수 있는가?에 관해서는 PA니 ∑1-완전성이니 β함수니 하는 별 이상한 것들이 나오는데요, 솔직히 교양 영상에서 다 다루긴 힘들어 보이긴 합니다. 다만 정확성이 문제가 된다면 이 부분에 대한 언급 역시 필요해 보입니다.
세상은 불규칙성과 규칙성을 가진다. 불규칙과 규칙성을 가진다는 것 자체는 규칙적이지만 규칙성이 존재하는 것이 증명 불가능함은 무슨 뜻일까? 증명의 정의가 무엇인지부터 알아봐야 한다. 증명이란 일종의 규칙과 법칙을 갖춘 체계를 세계 속 부분집합인 진리가 체계로 존재될 수 있는 여부를 결정하는 것이라 정의내린다. 그렇다면 만약 규칙성과 불규칙성이 둘다 존재한다는 가진 규칙성의 존재의 증명은 불가능하다고 볼 때 진리는 증명 체계 속 존재의 증명보다 앞서있다 말할 수 있다. 즉, 모든 체계는 불완전한 증명이 내재되어 있다. 즉, 완전한건 존재하지 않으며 그러한 규칙성은 과학, 철학, 수학에서도 살펴볼 수 있다. 즉, 인간은 영원히 진리를 다 알 수 없다.
사실 원조 철학자들도 후기에 자기 이론을 수정하는 경우가 허다합니다. 어떤 경우는 스스로의 혼란에 갇혀 신에게 귀의해 버리기도 하지요. 어쩐지 수학의 논리주의, 직관주의, 형식주의를 거쳐 괴델에게 이르는 과정이 칸트의 인식론 후기 논쟁인 듯한 인상을 지울 길 없습니다. 우리의 이성이 인식할 수 있는 한계를 칸트는 이미 잘 정리해 놓은 듯합니다. 수학적 직관의 세계를 엄격히 구별하고, 이를 넘어가는 분야는 형이상학으로 간주하여 나름대로 철학적 탐구를 해 나가면 된다고 봅니다. 분명히 세계는 인간의 두뇌와 인식체계를 넘어섭니다. 그래서 과학자들도 여분의 차원을 찾기 위해 노력 중이구요. 그 여분의 차원이 이미 우리 옆에 있는데 못 찾고 있다는 것이 현대 과학의 중론입니다. 김박사님, 항상 감사드립니다. 오히려 가끔씩 사소한 오류를 인정하시는 모습이 해당 분야 최고의 대가들 보다 더 휼륭하다고 생각됩니다.
음 요즘 엔지니어링에 많이 쓰이는 것이 불완전성의 정리이군요. IT에서는 해쉬함수로 응용해서 쓰고 있고 코인의 핵심원리에도 쓰이고 있습니다. 프랙탈이나 황금비율의 공통점이 있는데 완전히 닫힌논리는 죽은 논리라고 본다면, 프랙탈이나 황금비율은 닫힌논리에 하나더를 추가해서 무한히 닫히지 않게 하는 삶의 논리를 담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삶을 사는 모든 존재는 불완전하다고 볼 수 있군요. 콜라츠 추측에서 처럼 4, 2, 1로 수렴하기 전까지...
질문이 있습니다. (1) 괴델수를 괴델이 한 방식인 소수들의 곱으로 나타내지 않고 다른 방식으로 부여하는 방법이 있나요? (y/n) (2) 다른 방식으로 괴델수를 부여하면 전체적인 증명에서 어떤 문제가 생기나요? 예를 들어 모든 수학적 명제들을 열거한 다음에 거기에 그냥 1, 2, 3...으로 괴델수를 부여하고, 그것을 잘 기억하여 어떤 문장이든 보다 짧은 괴델수 n을 찾을 수 있고, 어떤 괴델수 n에서든 거기에 해당하는 문장을 찾을 수 있도록 정의하여 출발하면 역시 증명이 가능한가요? (y/n) (3) 이런 식으로 증명하면 안 된다면, (2)의 경우에 괴델식 증명의 어느 단계에서 문제가 생기나요? 예를 들어서 Dem(x,z)를 정의할 수 없다든지...?
@@yotachy 소수의 개수는 무한하더라도, 결국 실수의 개수보다는 적어요. 무한에도 급이 있어요. 이 댓글 보고 저도 0부터 1 사이의 실수 집합이 자연수의 개수보다 크기 때문에 괴델 수로 표현을 다 못하지 않나?라고 생각해서 chat gpt등 찾아보니 '괴델 수는 자연수 집합이기에 모든 실수를 나타내기에는 무리가 있다'라는 결론을 얻었어요.
심리학적으로 이게 무슨 현상일까요??.. 괴델이 내놓은 논문이나 검증과 이론에 대해선 사람들이 긍정을 하는데. 괴델이 본인이 암살위협에 있다고 주장을 하면 그거는 편집증인가보다라고 너무 쉽게 넘어가는데. 인간의 시기질투가 거의 본능과 무의식에 가깝다는걸 느낍니다. 아~ 편집증이였나보구나... 그랬구나.. 천재괴델도 별수없구나~ 이 사고 과정이 도대체 왜 존재하는지. 당연히 아니죠. 아 괴델이 수학계에 조작이있었다고 말한거보니까 딱봐도 그게 사실이구나. 하는게 정상인데말이죠. 그런데 기가막힐정도로 이런문제들에대해서 사람들이 그냥 받아들인다는겁니다. 백신도 그러하고요. 공포와 두려움. 시기질투가 인간의 사고를 마비시키는거같습니다. 생각할수록 화가 나네요.
영어로 제작되고 자막이 있는 영상으로 필터링해서 찾았을 때, 하나는 위키피디아 텍스트 데이터를 음성 데이터로 전환해서 읽어주는 영상 2개랑 인도 공과 대학의 영상 밖에 찾지 못하겠네요. 사람들이 불완전성 정리에 비해서 완전성 정리에는 관심이 많이 없을꺼라고 생각해서려나.... 아니면 너무 쉬운 개념이라서??? (나만 모르는건가 !!!)
@@goodandtak1331 불완전성 정리는 페아노 공리계를 메타이론으로 사용해서 그 안에서 논리를 전개한다음 조금의 정수론 지식으로 충분히 증명이 되는데(페아노 공리계보다 더 약한 공리계(Robinson 공리계)를 사용해도 증명됩니다), 완전성 정리를 증명할때에는 집합론을 사용해야됩니다. 집합론에서 논리를 전개하고 의미론을 정의한다음에야 증명이 됩니다. 기호들의 집합이 countable이면 ZF에서 충분히 증명이 되지만 uncountable이면 선택공리가 무조건 필요해집니다. 그래서 일반적인 수리논리 책들에 있는 완전성 정리 증명을 보면 불완전성 정리의 증명보다 훨씬 복잡하고 수학적인 테크닉의 수준이 더 높습니다. 또 의미론을 정의하는 것조차 까다롭다고 느낄 수 있습니다. 그레서 완전성 정리보다는 이해하기에 선행 지식이 덜 필요한 불완전성 정리를 많이 설명하는 거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