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가수는 훗날 한시대를 풍미하는 힛트곡을 여러개 내어 빅 가수가 되지요 약간 두터우면서도 맑은 탁 트인 고음이 매력적이었습니다 바야야 라는 노래도 정말 좋았습니다 이 시절 크리스마스엔 길거리에 캐롤이 울려 퍼지고 크리스마스 케익도 치킨도 없었지만 사람들은 웬지 행복했었습니다 문방구는 형형색색 크리스 마스 트리에 장식하는 반짝이를 길게 매달아 바람이 불면 오색 창연하게 뱅글뱅글 돌며 흩날리고 크리스마스 이브에 눈이라도 내리면 우리는 딱히 갈곳도 없었지만 온돌방 아랫목에 이불을 덮고 눕거나 라디오의 음악 프로를 들었습니다 문풍지 방문 밖 장독대엔 눈이 소리없이 쌓여가고 밖에서 키우는개는 추웠을텐데도 당시 마당에서 키우는 개들답게 의연하게 자기 집에서 잠을 자거나 집을 지키고 아름다운 시절이었습니다 이제는 결코 돌아갈 수 없는! 그러나 사람은 마음속에 추억의 집을 짓는다고 그런 추억을 안고 사는 사람들은 행복하다고 봐야겠지요 결국 사람은 마음이 꽉 차야하고 평온해야하니까요
전두환 시절이 사실은 가장 살기 좋았던 시절이죠 청년 실업문제도 없었고, 경제는 매년 폭발적인 성장을 했고 그러면서도 물가는 안정됐고, 부동산 폭등 문제도 없었고, 범죄율도 아주 낮았고, 사교육비도 전혀 없었고, 대학교 학비는 저렴했고... 쓰다보니, 이게바로 지상낙원 이었네요..
그게 반드시 요즘 아이들 잘못이라기 보다는.. 환경적인 요인이 크게 작용하는듯 합니다. 정치적, 경제적으로도 어려운 시기 모두가 이겨내며 아이들도 빨리 철이 들어야 했고 .. 대가족이 모여사는 가정에서는 할아버지나 아버지에게 엄하게 집안교육을 받고 자라기에.. 그랬었지요.. 지금이나 하나 아님 둘이니.. 금이야 옥이야.. 하자는대로 다 해주고 저때보다 더 귀하게 크다보니 그렇게 보일수도 있습니다.
주변 환경, 특히나 고도의 IT발달에 따른 겉모습의 변화죠.. 알기쉽게 예를 들자면 1. 옛날 40대부터 60대까지 검은 뿔테안경에 신문을 보는 이미지와 지금의 70대도 산뜻한 캐주얼 차림에 스마트폰을 보는 모습의 차이로 설명이 될것 같습니다. 다만, 겉모습이 진중함과 점잖음을 판가름하는 기준이 될 순 없죠..
저 시대엔 지금처럼 다양한 놀거리 문화가 많이 없었고~ 각종 검열로 인하여 걸러진 문화들만 보고 듣고 자란 세대라서 어른스럽게 보였조~ 서태지와 아이들의 등장으로 검열이 많이 풀려서 표현의 자유가 많은 지금의 가수들만 봐도 어려보이조~ 표현이 자유롭다는 건, 젊어 보이는 범위에도 들어가니까요~^^
강변가요제,대학가요제등은 당시 청소년부터 장년층까지 아우르는 축제와도 같았는데...지금은 10대,20대 전유물인 k-pop이 세계로 퍼져 나간다지만 방탄소년단,블랙핑크는 모두가 알아도 그들의 노래는 아무도 모르는 현실.이제는 아련하지만 통기타 선율에 거친 목소리..뱃속은 빈곤해도 음악은 오곡잡과처럼 풍요로웠던 그 시절이 그립다.
근데 아이러니한건 그당시의 스타들도 지금의 그 정체모를 다소 난잡한 느낌의 아이돌 후배들을 여지껏 키워왔다는거임 그 대표적인 예가 이수만 박진영 이지 다른 대선배 가수들도 알게모르게 뒤에서 아이돌 사업을 해왔고 그중에서 뜨는애들 지는애들 아예 뜨지도 못한 아이돌 그룹애들이 수두룩뻑쩍하게 깔렸다는사실 ㅋㅋㅋ
저 당시 김상희 문주란 하춘화 김추자 등 당대 최고 가수들이 득실 득실 했지만 대학 가요제라는 축제로 가요계의 바람이 대학가로 슬슬 불어오던 때 입니다....전국민의 대학가요제 노래 나 어떻해는 시내 음반사에서 하루 좋일 나오고..... 소풍과 송아지로 논을 가는 장면이 너무 아련 합니다....이젠 세월이 흘러 70을 바라보는 나이가 돼니 너무 그립습니다...초가집과 비포장 도로가....
@@user-kq7ko7cr4c 저 때는 최루탄 속을 뛰어다니는게 정의인줄 알았는데 지나고 보니 박통만큼 나라를 사랑하는 애국 대통령은 없었다는 사실을 뒤늦게 알았지. 민주화운동으로 민주화가 앞당겨진 공헌은 있지만 그 민주화의 길목에 너무나 많은 주사파 사회민주주의자들이 주도권을 가지고 참여함으로 지금도 왜곡된 민주주의가 나라를 이상한 쪽으로 가져가고 있다는 것을 젊은 이들이 잘 모른다는데 이 나라의 위기가 있음.
난 이정희의 그대생각이 좋아서 대략 천번정도 연습하였더니 지금은 완창을 합니다 내가 처음으로 완창한 이정희의 그대생각 난 1979년도에 신문배달하고 있었는데 이정희는 스타의 출발점에 있었다니 정말 존경스럽습니다 무용학과 학과 학생의 커리어에 가수 그리고 청순한 미모에 대한민국 청년들의 가슴을 설레게 했을까요
@모깔콘 518묘역에 갔을때 제또래 학생들의 영정사진이 있어서 너무나 놀랐던 기억이 있네요 중학교 어린 학생들이.. 난 그때 서귀포에서 친구들과 노느라 정신없던 시절이었는데 그런 참혹한 일이 있었을줄 상상도 못했었죠 자기들 잊지 말아달라고 외치던 그 목소리 기억하고 있습니다 저도 518관련 영화 보지 못하고 있어요
@모깔콘 몇년전 친구들 하고 광주에 있는 친구 만나러 간김에 5.18민주 묘지에 들러 들러 님을위한 행진곡을 부르는데 가슴이 먹먹해 눈물진적 있는데 80년 그때 그자리에 있던 사람들은 어땠을까요? 당시 전 10살 이었는데 아버지가 광주에서 폭동이 났고 "김대중이 빨갱이래"라는 말을 들은 기억이 납니다. 다행히 아버지에 영향을 안받아 당당히 "그래 나 빨갱이다" 라고 얘기 하고 다닙니다. 80년엔 너무 어렸고 87년 인천5.3사태 때부터 6월항쟁때 17살 나이로 최루탄에 맞서 짱돌 던지면서 싸워 직선제를 쟁취했죠..지금도 그때 생각하면 자랑스럽 습니다.
70년대생이지만 이 노래와 가수가 기억이 나네요. 영상을 보니 풋풋하고 가녀린 분인데 지금은 어떤 모습일까 궁금해집니다. 요즘은 옛날 영상 찾아 보는게 취미가 되버렸어요. 그시절 대학생이었던 분들이 지금은 노년층을 바라보실텐데 이런 영상 보시면 그리움에 사무칠 듯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