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아홉 살 성인이 되기 직전 마지막 밤에 한 일은 그 애와 정동진으로 향한 것이고, 스무 살 새해 첫 시작을 기점으로 한 일은 그 애와 풍등에 소원 적어 밤하늘에 날린 일이다.
서로의 소원을 보여주진 않기로 했지만 그 애의 소원이 너무 궁금해서 눈을 흘깃거렸다. 그 애의 풍등에는 ‘행복’이라 쓰여있었다. ‘행복’이라는 단어 뒷부분은 그 아이의 코트 소매에 가려져 보이지 않았다. 어림잡아 “행복하게 해주세요.” 혹은 “행복한 새해가 되도록 해주세요.”라는 포괄적인 소원이라고 생각했다.
달리는 기차에서 풍등에 소원을 적는 탓에 내 필체는 악필일 수밖에 없었다. 신이 있다면 내 소원을 알아볼 수나 있을까라는 나의 물음에 그 아이는 신이 한국어를 알기나 할까라고 말하며 히죽 웃었다.
그 애와 나는 그날 밤 성인이 되었고 둘은 미열 가득한 밤을 보냈다. 우리는 그날, 새벽을 통째로 빌려 많은 대화를 나눴다.
“무슨 소원 빌었어?”
그 애가 팔베개를 하고 있는 내 어깨에 대고 아기 새처럼 속삭였다. 기대고 있는 그 애의 머리에 입을 바짝 붙이고 말했다.
“비밀로 하기로 했잖아.”
“치사해. 나는 비밀이라고 해도 말할 거야. 네가 행복했으면 좋겠다고 빌었어.”
그 애가 얼굴을 내 어깨에 파묻은 탓에 히죽 웃는 미소가 어깨에서 가슴까지 곧장 전해졌다. 나는 그날 기차에서 그 아이가 “행복하게 해주세요.”라는 소원을 적었기를 바랬다. 내가 풍등에 악필로 “이 사람의 소원을 들어주세요.”라고 적은 까닭이다.
그날 밤하늘에는 풍등이 조만한 불씨가 되어 흩어졌다.
그 애와는 여럿 추억거리가 가득했지만, 이 장면만은 인화된 사진처럼 선명하게 윤곽이 잡혀있다. 사라져가는 풍등과 정동진 그리고 미열 가득했던 첫 경험.
작년 새해에는 가야지, 가야지 했지만 여유가 없어 미루기 바빴던 정동진으로 향했다. 그 애와의 정동진 이후 처음으로 가는 걸음이었다. 그곳은 스무 살의 밤과 다를 것 없는 곳이었다. 정동진역에는 크리스마스트리가 있었고, 여전히 풍등축제를 즐기러 온 연인들로 가득하였다. 변한 것이 있다면 오로지 나 하나였다.
그날 밤에는 그 아이와 함께했던 밤과 같이 풍등을 준비해 갔다. 나는 이날 어떤 말을 해야 할지 알고 있었기 때문에 풍등에 대고 소원을 적지 않았다. 적는다는 것은 기억하지 못한다는 의미이기 때문이다. 언젠가 다시 정동진에 가게 된다면 또는 풍등을 날리게 된다면 이라는 생각으로 많은 새벽을 그려왔다. 직접 와보니 내 생각보다 조금 더 포근한 분위기가 맴돌고 있었다.
그날 밤은 스무 살의 밤을 연상하듯, 날린 풍등이 조마 한 불씨가 되어 홀연히 흩어지고 있었다. 나는 이때라고 생각하며 하늘을 바라보고 말했다.
“고맙습니다.”
사라져가는 풍등을 향해 고맙다는 독백을 했다. 눈에 맺힌 눈물 때문인지 묻혀가던 풍등의 불씨가 단번에 큰 모닥불처럼 검은 밤하늘에 번졌다. 나는 슬프진 않았지만, 어떤 울컥한 감정과 잊어버릴 것만 같았던 아련한 분위기에 휩싸였다. 그 언제나 말하고 싶던 말.
“그때에 나의 행복을 빌어준 당신에게 참 고맙습니다.”
그 애의 소원은 지구 몇 바퀴를 돌아 그날 밤에야 나에게 도착했다.
“고맙습니다.”
제목과 본문은 작가의 도서 '편지할게요'에서 발췌했습니다.
Image : 시월애(movi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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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 июл 20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