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상 외 TMI 1. 駅弁(에키벤)중에 유명한 에키벤을 찾아다니는 투어도 존재하며, 간간히 뉴스 등에서 어느지역 백화점에서 에키벤 행사를 한다는 등의 홍보도 합니다. 2. 일본의 민간 신앙은 모든 물건에 신이 깃든다는게 기본이다 보니, 해당 신도 많은데 그러다보니 큰 틀에서 하는 일이 같은 신도 존재합니다. 유명한 예를 들면 칠복신 7명이 서로 다른 역할을 하나, 큰 틀에서는 복을 주는 일곱 명의 신이죠. 그건그렇고 빠퀴님. 도움을 요청한 정착지가 있습니다. 여기 지도에 표시해 두겠습니다.
타키 친구들이 미츠하 말투 지적하는 장면에서 사투리도 있지만, 일본은 자신을 부르는 용어가 많습니다. 대표적으로 私(와타시),僕(보쿠),俺(오레) 등이 있는데, 여기서 와타시는 주로 여자들이 쓰고, 남자들은 보쿠나 오레를 씁니다. 근데 남자는 친한 사람들 사이에서는 거의 오레로 자신을 부르는데, 저 장면에서 미츠하가 처음에 와타시, 라고 했다가 보쿠, 라고 했다가 마지막에 오레, 라고 해서 친구들이 이상함을 안느끼게 됐죠.
음... 본문과 댓글 내용에 없는 추가적인 TMI 하나 설명 드립니다. 작 중, 미츠하가 신사에서 흰 색의 상의, 붉은 색의 하카마(치마바지)를 입고 방울을 들고 춤을 춥니다만, 이렇게 흰 색의 상의, 붉은 색의 하카마를 입고 신사에서 일하는 여성들을 무녀(巫女, 미코)라고 합니다. 보통은 さん을 붙여서 巫女さん(미코상) 이라고 하죠. 이 무녀 분들은 신사에 있는 관계자분들이 아닌, [알바생]들 이랍니다. 보통 신사의 축제(祭り, 마츠리)가 있을 때에 이 무녀 알바생들이 많이 보이죠. (뭐, 보통 때도 여성분들이 지원하시는 알바 중 하나이긴 한다는거.) 저도 가끔씩 신사를 가게 되면, 무녀 알바 하시는 분들을 참 많이 보게 되더군요.
3:14 요바위... 요바위에 대한 설명은 다른영상에 있다던가 그게 아니라도 대부분 다 아실테니 넘어가고, 보통은 요바위를 연속10번째 하는날 밤에 청혼을 하고, 아침까지 같이 잔 다음 일어나 그 집안 부모에게 인사드리고 결혼을 허락받는게 보통이었습니다. 뭐 그게 10번째인지 아닌지 어떻게 아냐, 구라치면 어떻게 했냐... 그런건 케이스바이 케이스겠죠? 10번을 넘어도 서로 그냥 즐기기만 한 사람도 많았을꺼고... 여하튼, 보통 그 집안에서 원하지 않는 신랑감이면 10일째 밤이되기 전에 어떻게든 찾아내서 쫒아내려고 온집안 하인들 다 동원해서 막기도 하고 반대로 결혼시키고 싶은(반대로 남자입장에선 그냥 책임없는 쾌락...) 입장이라면 어떻게든 잠재워서 아침을 맞게 해 (강제로)결혼시키는게 이 요바위의 룰이었는데, 무려 임신해서 입덧할때까지 예비신랑 얼굴도 못봤다는게 깜놀포인트.
우리나라는 외국 작품 번역할 때 사투리 캐릭터를 사투리 안 쓰는 캐릭터로 캐릭터성을 멋대로 바꿔버리는 나쁜 관습이 있죠. 원작자가 의도한 캐릭터성을 제거하는 게 옳은 일인지... 드래곤볼에서도 손오공은 도호쿠 사투리를 쓰고 그 사투리 말투가 다음편 예고에 반드시 들어갈 만큼 일본에선 손오공의 상징으로 통하는데 한국판에선 그것도 지워버렸죠.
TMI) 일본이 저렇게 문화적으로 뭔가 풍성해질 수 있었던 건 역시나 자연지리적 영향이 크죠. 인간이 극복할 수 없는 재해로 가득했다는 점, 그리고 섬이 많아서 각 지역별로 고유성이 발달할 수밖에 없었다는 점 이 두 가지가 시너지를 일으키면서 일본 열도 자체가 세계 다른 곳으로 치면 대륙 수준으로 문화가 풍부해질 수 있었습니다. 중국은 문화대혁명 없이 민주 국가가 되었다면 명실공히 동아시아 제1의 문화 대국이 되었겠지만, 설령 그렇다고 해도 일정 면적당 문화력은 여전히 일본이 더 컸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습니다. 그 정도로 생각보다 문화가 매우 풍부하게 살아있는 곳이 일본이죠. 현실적으로는 중국이 문화대혁명을 거친 탓에 일본이 동아시아 제1의 문화 대국입니다. 옆 나라 한국은 중세 때부터 워낙 중앙집권적이었기 때문에 일본에 비해 지역별 문화가 약하게 발달했습니다. 거기다가 섬은 많지만 섬을 천시해 온 문화 특성상(이건 바다를 잘 다룰 줄 모르던 신라가 원조. 통일신라 때 장보고가 섬 출신이라는 이유로 정부 관리들이 천하다 여겼다는 기록이 있음.) 일본과 달리 섬 문화도 크게 발달할 수 없었죠. 조선 시대부터 서울이 모든 것의 표준이었기 때문에 각 지방 고유 문화도 곧잘 서울 문화에 밀려 바뀌거나 사라지는 일이 비일비재했고요. 그 결과, 한국은 전국적으로 동질감은 아주 높아져서 당장 서울에서 부산이든 광주든 어디로 떨어져도 문화가 딱히 다르지 않아 그냥 지내던 대로 지낼 수 있어 편합니다. 첨단 문물이나 새로운 시스템도 일사불란하게 전국적으로 보급되기 쉬워졌죠. 그 대신 다양성이 부족해졌습니다. 일본의 신사나 마츠리에 비견될 법한 일상 문화도 잘 없어서 좋게 말하면 현실에 집중하는 사회이고 나쁘게 말하면 심심하고 고유성이 부족한 사회입니다. 거기에 낡은 것을 갈아 버린다는 마인드 덕에 빠르게 도시를 세우고 급속한 경제 발전도 이룰 수 있었지만 그 대신 전통 문화의 대부분을 잃어버리고 말았습니다. 그래서 외국인들도 특히 한국과 일본을 모두 경험해 본 사람들은 이렇게 평가하는 일이 많습니다. '한국은 일본보다 일상 곳곳에 첨단 문물이 잘 스며들어 있어서 물질적으로 편하다. 한국 어디를 가나 문화가 같아서 지역별 문화 차이에 따른 걱정을 하지 않아도 된다. 하지만 나라가 너무 거기서 거기에다가 너무 세속적이다 보니 심심한 편이며, 전통적인 이미지도 약하다.' 반면에 일본에 대해서는 '첨단과학의 나라임에도 의외로 한물 간 아날로그가 많이 남아있어 비효율적인 때가 많다. 하지만 지역별로 문화적 다양성이 풍부하고 한국에 비해 전통도 많이 녹아 있어 고유성이 강한 편이고 보고 즐길 게 많다.' 이렇게 평가하는 일이 많습니다.
붉은실 이야기 비슷한 이야기로 후백제를 세운 견휜의 탄생설화중 하나가 있는데요. 견휜의 어머니가 매일밤 잘생긴 남자가와서 사랑을 나누었고 정처카 궁금하여 그남자의 옷에 실타래를 묶은 바늘을 꽃인두니 다음날 그실을 따라가자 굴이 있었고 안에는 바늘이 겉에 꽃힌 지룡이 있었다는 탄생설화입니다. (부족한점이 있다고 생각하신분은 댓글로 달아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