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를 알면, 영화가 더 잘 보인다! 민족의 성웅 이순신 장군 3부작의 대미를 장식할 노량!! #뉴스공장#다스뵈이다#매불쇼#시네마지옥#겸손은힘들다#김어준#최욱#죽음의바다#이순신#명량#한산#김윤석#백윤식#정재영#김한민#김한민감독#허준호#김성규#이규형#박명훈#문정희#여진구#이제훈#안보현#이무생#임진왜란#도요토미히데요시#영화#영화리뷰#개봉영화#크리스마스영화#영화추천#영화평론가
이순신 장군 영화 좋습니다. 다만 이순신장군에게만 너무 많은 영화 만들지말고 이순신장군 못지않은 을지문덕장군 계백장군 강감찬장군 등에 대해서도 많은 영화가 나왔으면 합니다. 그리고 장군 위주의 영화가 아니라 장군 한 사람이 아닌 병사 의병 국민 등 모든 사람들이 주인공이 되는 영화, 즉 전쟁영화가 만들어지면 좋겠네요..삼국시대 나당전쟁, 고려거란전쟁,임진왜란, 병자호란 등 역사적이고 드라마틱한 사건이 많은데 이를 도외시하고 있다는ㅈ느낌이 듭니다.
노량 보고 왔어용~ 신병주 교수님을 통해 실제 역사이야기를 대입하여 돌아보는 재미가 쏠쏠했습니다~ 정작 필요한 장면은 많이 생략하고 쓸데없는 장면이 곳곳에 있어 아쉬운 면이 없지 않았지만, 칠흑같은 밤바다에 시마즈 부대를 향한 첫 포탄이 날아들던 장면에서는 홀로 환호성을 질렀을만큼 후반부의 전투 장면은 볼만했습니다. 2부도 기대할게요~
노량 영화 관련 알려드리고 싶은 점 - 혹여 일본 역사에 관심이 많으신 분들.... 노량 영화에 요도기미(도요토미 히데요시의 첩, 오다 노부나가의 여동생 오이치의 첫째 달, 히데요리의 어머니), 도요토미 히데요리, 도쿠가와 이에야스가 첫 장면(히데요시 임종 자리)에 '등장, 출연' 은 하지만... 딱 그때만 나오고 더 이상 안 나옵니다. 일본 내 정치 상황, 갈등에 대한 언급은 전혀 없습니다. - 고니시 유키나가(소서행장)과 필생의 라이벌 가토 기요마사(가등청정)은 전혀 등장하지 않습니다. 영화 초반 고니시의 대사 속에서만 짧게 언급만 됩니다. - 이순신 장군에게 크게 패했던 도도 다카토라(등당고호), 구키 요시타카(구귀가륭), 가토오 요시아키(가등가명), 와키자카 야스하루(협판안치 - 불멸의 이순신 드라마 상에서 김명수 님이 맡은 배역으로, 엉뚱하게 이 드라마로 인해 과대포장, 과대평가되어 유명해짐)는 전혀 등장하지 않고, 대사 속 언급도 전혀 없습니다. - 명나라 등자룡 장군은 조총에 맞지는 않지만, 아뭏든 비겁한 공격으로 인해 당합니다 - 완전 특별 출연인 세자 시절 광해군과, 권율 장군 모습을 보시려면... 영화가 끝나고 출연진 연출진 협조 등등 이러저러 글씨들 올라가고... 인내심을 가지고 자리에 앉아 계시며 기다리셔야 합니다. (개인적으로 굳이 왜 광해군과 권율을 등장시켰는지 이해 불가) - 이순신 장군님 전사 장면은 온갖 매체에서 많이 등장했지만, 상여 모시고 장례 치르는 장면은 처음 보네요.. - 명나라 진린 제독은 수염이 완전 검은색 흑발이고, 이순신 장군은 수염이 흰색+회색, 명나라 장군은 수염이 완전 흰색으로 분장되었습니다. 실제로는 등자룡이 제일 나이 많고 그 다음이 진린, 이순신 장군이 제일 나이가 어립니다.
3월 9일 [양력 4월 6일] 아침에 맑다가 저물 때에 비가 내렸다. 우우후 및 강진현감이 돌아가겠다고 하므로 술을 먹였더니 몹시 취했다. 우우후는 취하여 쓰러져 돌아가지 못했다. 저녁에 좌수사가 왔기에 작별의 술잔을 나누었더니 취하여 대청에서 엎어져 잤다. 개(介 계집종의 이름인 듯)와 같이 잤다. 9월 19일 [양력 11월 8일] 바 람이 세게 불고 비가 많이 내렸다. 아침에 행적(行迪)이 와서 봤다. 진원(珍原)에 있는 종사관의 편지와 윤간(尹侃) 봉해의 문안 편지도 왔다. 이 날 아침 광주목사(최철견)가 와서 같이 아침 식사를 했다. 이어서 술이 나와 밥을 먹지 않아서 취해버렸다. 광주목사의 별실에 들어가 종일 몹시 취했다. 최철견의 딸 최귀지(崔貴之)와 잤다. 9월 12일 [양력 11월 1일] 바 람불고 비가 많이 내렸다. 저녁나절에 길을 떠나 십 리쯤 되는 냇가에 이르니, 이광보(李光 輔)와 한여경(韓汝璟)이 술을 가지고 와서 기다리고 있었다. 그래서 말에서 내려서 같이 이야기하는데 비바람이 그치지 않았다. 안세희(安世熙)도 왔다. 저물 무렵에 무장(茂長)에 이르렀다. 여진(女眞)과 잤다. 9월 14일 [양력 11월 3일] 맑다. 하루 더 묵었다. 여진(女眞)과 두 번 관계했다. 9월 15일 [양력 11월 4일] 맑다. 체찰사가 현(무장현)에 이르렀다고하므로 들러가 절하고 대책을 의논했다. 여진(女眞)과 세 번 관계했다. 여진(女眞)이 아파 울었다. 2월 12일 [양력 3월 10일] 맑다. 일찌기 창녕사람이 웅천 별장으로 돌아갔다. 아침에 살대(箭竹) 쉰 개를 경상수사에게 보냈다. 저녁나절에 수사가 와서 같이 이야기했다. 저녁에 활을 쏘았다. 장흥부사, 흥양현감도 같이 쏘다가 어둘 무렵에 헤어졌다. 나이 젊은 계집들은 하루 종일 같이 놀다가 초저녁에 돌아갔다. 3월 5일 [양력 4월 2일] 맑 다가 구름이 끼었다. 새벽 세 시에 출항하여 해가 뜰 무렵에 견내량의 우수사가 복병 한 곳에 이르니, 마침 아침 먹을 때였다. 그래서 밥을 먹고 난 뒤에 서로 보고서 다시 잘못된 것을 말하니 우수사(이억기)는 사과를 마다하지 않았다고 했다. 그 일로 술을 마련하여 잔뜩 취하여 돌아왔다. 그 길에 이정충(李廷忠)의 장막으로 들어가 조용히 이야기하는데 취하여 엎어지는 줄도 깨닫지 못했다. 비가 많이 쏟아지므로 먼저 배로 내려가니, 우수사는 취하여 누워서 정신을 못차리므로 말을 못하고 왔다. 우습다. 배에 이르니, 회, 해, 면, 울(蔚) 및 수원(壽元) 등이 함께 와 있었다. 비를 맞으며 진 안으로 돌아오니, 김혼(金渾)도 왔다. 같이 이야기하다가 자정이 되어 잤다. 계집종 덕금(德今), 한대(漢代), 효대(孝代)와 은진(恩津) 네 명과 잤다.
요즘보면 이순신 보다 원균이 더 애국 충신이고 안중근은 테러범이고 진애국자는 이완용 일파라 하는데 지역.남여.노소 갈등에 이어 역사 갈등까지 국론이 분열 되었으니 국가 장래가 암담 하네요 다른건 몰라도 사상과 역사는 이렇게 크게 분열되면 국운마저 위태로울것 같은데 어떤 대책이 나와야 하지 않을가 싶네요
시간 순서로는 한산, 명량, 노량 해전 이지만 명량이 갈등과 긴장감이 몰입감을 키웠고, 한산에서는 원균과의 갈등과 해상전투의 압도적 승리가 빛났다. 명량에서 선조에게 죽을 뻔 하고 붕괴된 소규모 수군으로 왜 싸우려하는지 답을 주지 못했다. 노량은 지루하고 갈등구조도 없고 시마즈가 왜 그토록 500여척을 희생하며 고니시를 구원하려는지 이순신은 왜 싸워 조선수군의 막대한 희생을 감수하려했는지 공감하기 어려웠다. 결과적으로 이순신은 죽었고 시마즈와 고니시는 탈출했다. 허무한 결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