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00 과거 합격 전부터 관직 생활을? 03:09 성종의 스승이 된 임사홍 05:56 공주와 결혼한 임사홍의 아들 07:05 안하무인인 임사홍의 행동들 11:56 임사홍이 중전 윤씨의 폐위를 반대한 이유 14:40 도승지 임사홍이 꺼낸 말의 의도 17:56 임사홍을 유배 보낸 성종? 21:28 임사홍의 복직을 반대한 조정 신료들
제 이름은 任英宰이고 풍천임씨 27세 손입니다. 저는 任士洪의 할아버지 우의정 임견의 막내아들 (임사홍아버지와 형제, 고양목사) 자손입니다 . 우리의 역사에 간신으로 매도된 2분을 꼽으라면 고려말 신돈과 임사홍이라 알고 있습니다. 재이논쟁도 흙비는 자연의 순리에 따라 흙비가 내릴 수도 있는 것인데...... 하늘의 좋지않은 징조라며 임금을 정치적으로 압박하는 당파싸움이 있었던건 부인하기 어렵습니다. 또한 임금이 아무리 부부간의 일이라 하여도 당파와 연맹을 맺고 왕후를 폐위하면서 사약을 내려 죽여 버리는 처사는.... 살아있는 원자(연산군)를 전혀 고려하지 않는 극단적인 행태로 비난 받아 마땅한 것으로 생각합니다. 이런 일들을 목숨을 걸고 반대하며 22년의 유배생활을 한 인물을 가볍게 폄하하는것은 역사를 몰이해 하고 형해화 하는 일이라 사료됩니다.
내가 임사홍일지라도 연산군에 의해 복귀되었을 때, 나를 나락으로 몰아 세운 조정신료들를 가만 두지 않았을 것이다. 솔직히 임사홍이 조정신료들의 미움을 산 이유는 20대의 젊은 나이에 비서실장(도승지)를 하는 등, 너무 잘 나갔기 때문이다. 한마디로 임사홍을 시샘하고 질투했던 것이다. 나는 임사홍을 칭찬하지는 않겠지만, 그렇다고 악인이라 비난하지도 않겠다. 그는 그의 삶을 충실히 살았다라고 여기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