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실 당산철교 문제는 겉으로 잘 드러내지 않았을 뿐, 완공 당시부터 문제가 많았습니다. 뭐 패셔너블하게 보이려고 해괴망측한 구조로 철교를 세웠고 그러다보니 하중을 견디지 못하다보니 완공 당시부터 문제가 많았는데 1994년 10월 21일에 성수대교가 무너집니다. 이후 당산철교도 성수대교와 같은 시공사에서 시공한 것이 드러났고 이후에 당산철교도 비슷한 증상이 나타나자 전면재개설 vs 유지보수 진영간 대결이 팽팽했습니다. 그러자 서울시에서는 신중에 신중을 기해 1997년 1월 1일을 기해 개설한지 12년만에 당산철교를 전면재개설하기로 결정했지요. 철거공사한지 2주일만에 와르르 무너져내렸다지요.만약에 조금이라도 늦게 결정되었더라면 대한민국 역대 참사 1위를 기록했을 것입니다. 이유는 지하철 1량당 최소 100인임을 감안하면 (좌석 54인 포함) 1편성당 1,000명 이상 탑승한 상태라 인명피해는 역대급으로 예상했었지요. 3년간은 2호선 순환기능이 마비되었고 대부분 내선은 당산행, 외선은 홍대입구행(합정행은 별로 없었음)으로 운영되어왔었으며 끊어진 구간은 무료셔틀버스로 대체를 했었습니다. 이렇게 3년간의 어마어마한 개고생끝에 특A급의 당산철교로 다시 태어났지요. 지금은 당산철교를 재개설한지가 21년차 되어가고 있으며 순환선으로서의 제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성수대교 무너지고 한강에 다리들을 긴급히 검사를 했는데, 당산철교가 불안정하다는 판정을 받습니다. 이때 2가지 의견이 대립하는데 보수해서 좀더 쓰고 나중에 다리를 다시만들자 VS 당장 다리 부시고 다시 만들자로 팽팽히 싸우다가 결국 빨리 다시 만드는걸로 결정이 나서 다리를 다시 만들게 됩니다. 근데 정말로 하루라도 공사가 늦었으면 성수대교, 삼풍백화점은 비교도 안되는 초대형 참사가 날뻔 했습니다. 2호선이 출퇴근 시간에 10량씩 운행되고, 각량에 100명 가까운 인원이 탑승하는데, 대략 1천명의 인원이 탑승합니다. 그런데 공사시작 결정후 2틀만에 당산철교는 무너졌습니다. 몇몇 사람이 점감차 다리에 올라갔는데 구조물들이 무너지기 시작해서 긴급대피 했죠. 정말로 공사가 늦어지는 결정이었으면 대략 1천명 이상의 인원이 추운 한강물에 다이빙 할뻔 했습니다
지금은 합정도 홍대도 많이 변했지요. 합정도 그리 유명한 거리도 아니었고 당시만 해도 왜 6호선을 사람많은 신촌이 아닌 합정에다가 환승역을 해놨냐고 말들이 많던 때가 있는데 요즘은 합정도 홍대 버프 덕에 많이 변했지요. 그 때 합정은 지금에 비하면 그냥 일개 특징없는 거리로 기억되지요. 지금은 메세나폴리스 같은 스퀘어 건물도 들어서서 격세지감이지만 말이지요.
제가 아예, "(237) 당산 Dangsan" 현행표기를 영구히 존치시키기 위해 제가 작성한+하는 철도 지하철 노선문서에서는 "(237) 당산 Tangsan" 매킨라이샤워 형식 한국어 로마자표기법으로 쓰고있으니, blog.daum.net/chuanstation 제 다음블로그 들어오세요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