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격 우리 역사 스토리텔링쇼 #벌거벗은한국사 00:00 빗발치는 상소에도 여인에게 푹 빠진 숙종 04:51 장희빈이 궁녀가 된 사연 07:07 왕후의 빈 자리를 채운 장희빈 09:10 숙종의 어머니, 명성왕후가 장희빈을 궁에서 내쫓은 이유 14:44 다시 돌아온 장희빈을 불러들인 사람이 인현왕후? 17:50 인현왕후가 장희빈에게 회초리를 든 이유 21:46 장희빈에게 온 정실부인을 넘어설 기회
와이책으로 장희빈을 마주하고 6년동안 중고등생활을 더 하면서.. 장희빈을 굳이. 표현하자면 악역쪽이 아닐까 싶었는데.. 그래도 어린나이에 궁에 들어와 10년동안 일하고 왕이라는 한 남자를 사랑했는데 냅다 쫒겨나서 사랑하는 남자의 결혼식을 봐야했던건 좀 슬프네.. 그것도 그렇지만 어릴때 중전이 되서 자기보다 나이 많은 승은후궁이 아들까지 낳고 숙종한테 사랑 못받던 인형왕후도 참.. 이미 결말을 아는 역사내용이지만 오늘 장희빈의 또다른 슬픔 하나를 공감하고 가네요
영조임금이 세종만큼 가장 장수한 임금이었고 손자까지 더해서 약 100년간 나라가 조선에서 가장 빛나는 세상이 왔죠... 단지 정조임금이 오래살지못해서 정순왕후의 수렴청정이 나라가 혼란의 카오스로 가는 지름길 되고말았지만... 숙빈최씨는 장옥정과는 다른 인생을 살았지만 최후 승자는 장옥정이아니라 숙빈최씨가 아닐까 싶음 숙종 경종 이후 왕들은 영조의 아들 손자 들로 조선이 마무리되니까요. 장옥정은 숙빈최씨의 그림자라고 해도 무색할정도... 조서
장희빈은 성격은 최악이였던것 같아 드라마에서 보면 절대적이던 왕이 다른 후궁에 있다고 그방에 쳐들어가 난리피고 어느누가 그런 행동을 할수 있단 말인가.그시대에는 그런일이 있을수 없는 행동을 했고 남편이 바람을 피웠던 그 시대의 여자들의 인생이 비참하다고 볼수 밖에 없다.
역알못들이 후궁이 세컨드 첩이니 뭐니 잡소리 하는데.. (숙종 유언 1720년 이후면 어느정도는 말이됨 후궁은 거의 양반가에서 보내려하지않아서 세도가에서는 보내지않으려함. 후궁이 왕비 되지못하게 법이 된게 1720년 숙종 사후부터임. 1720~1910년의 200년간 조선이라면 참작의 여지라도 있는데 1720년 이전의 조선의 후궁을 세도가에서 자기딸을 보내던거였고 그 후궁에서 왕비를 뽑았기때문에 후궁은 절대 첩이나 세컨드가 아니라 고려 호족 왕비와 가까운 제도였음) 숙종이전의 왕비들이 고려의 지방호족들 왕비와 다르다? 숙종 이전의 후궁들은 본처가 아니고 세컨드였다? 개소x 인거 알고 있죠? 신덕왕후 강씨, 승휘 권씨(후궁에서 뽑힘 문종),숙의윤씨(장경) 폐비 윤씨, 안순왕후, 정현 왕후, 희빈 장씨. 중종당시의 수많은 빈등 후궁들(중전 후보였음 후궁에서 뽑자는 고관들 이야기 나왔음 실제 뽑혔고) 이게 니가 생각하는 처첩 세컨드인가? 세컨드가 왕비가 될수있던가
응 일부일처제에선 세컨드 맞아 그나마 그 후궁들도 그룹이 있는데 1. 왕비(혹은 세자빈) 후보에서 탈락한 그룹(공채) 얘네들은 가문도 좋았고 후궁이라도 나름 위상이 높았고 왕비라도 함부로 못대했음 2. 임금님 특채 그룹 : 보통은 궁궐 내에서 무수리나 상궁나인 같은 인생 살고 있다가 임금님 눈에 띄어 후궁으로 특채된 케이스인데 얘네들은 진정한 의미의 세컨드였음 장희빈은 2번 그룹 아무튼 조선은 1부1처를 법제화한 나라였고 왕실의 경우도 이를 충실히 따랐음 그래서 어떤 경우에도 왕비는 1명이었고 이 왕비는 본인이 자식을 낳든 못낳든 임금님 정자에서 나온 모든 아이들의 법적 어머니가 되었고 임금님이 돌아가셨을 경우 왕세자가 즉위할 때까지 임금권한대행을 법적으로 보장받았고 왕세자가 어릴경우 성년이 될때까지 실질적인 국가의 통치자 이기도 했음 (후궁들은 아무리 자기가 낳은 아들이 차기 왕이어도 이런 법적 권한이 1도 없음) 하지만 이런 후궁들이라고 해서 영원히 세컨드였던건 아니고 왕비가 왕보다 먼저 돌아가시거나 혹은 인현왕후처럼 폐위되었을 경우에는 꿈에 그리던 왕비마마가 될 기회가 있었는데 실제 많은 후궁들이 이런식으로 왕의 본처가 되는 인생역전을 했음 왕비>>후궁1그룹(공채)>>>>>>>>>후궁2그룹(특채)인데 장희빈이 대단한건 무려 2그룹에서 왕비가 됨 그것도 명문 양반출신도 아닌 가문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