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우스트-t6i이유가 많음. 일단 자기가 낳은 아들이니까 웬만한 패악질은 눈감아 줬을거고, 자기가 다섯째 아들이였는데 다 죽이고 보위에 오른 거라 다음 왕위만큼은 장자 계승을 하고 싶었을 거임. 맘대로 주면 또 신하들이랑 민심이 요동칠거고, 자기가 그랬던 것처럼 또 형제들끼리 싸울테니까. 그래서 양녕한테 기회 엄청 많이 줬음
양녕대군 일탈은 비난받아야 마땅하지 만 태종과 원경왕후에게는 세명의 아들 을 보낸후 겨우 얻어 건강하게 자라는 아 들이라 이제가 애틋할 수 밖에 없었고 애 지중지하며 키웠죠. 이렇듯 많은 정을 주며 키웠기에 다른 자 식들보다 지극하게 아끼며 폐세자 때도 무조건 보호할 수 밖에
천하의 살인귀.태종 도 어찌하지 못했던 유일한 사람이 바로 양녕대군입니다. 거슬리는 것들은 모두 다 죽여 없앴던 살인 대마왕이었지만 은 자 식한테 만 큼은 그렇게 하지 못했죠 . 도승 지 앞에서 어릴 적에 곁에서 키우지 못한 것을 천추의 한으로 생각한다는 구절이 있다고하더라고요. 그가 남긴 명언 중의 명언은 자식은 어찌할 수가 없다,...
그냥 인간이 그런 것이지요. 어르신. 전 세계적으로 한국인은 그래도 양반이었습니다. 당장 선진국이라는 영국만 봐도 전세계에 똥을 뿌리고 독을 뿌리고 다녔으면서 이제는 신사의 나라라는 약을 팔고 다니는 나라입니다. 프랑스는 지금도 한국에서는 폭동이라고 불리는 수준의 파업을 밥먹듯이 하는 나라이며 세상 더러운 나라이며 이탈리아는 세상에서 가장 다혈질이고 여성에 찝쩍거리는 나라이지요. 그냥 인간이 그런거고 환경에 영향받아 그렇게 된 거라고 생각해요.
정정하자면 한국의 왕이 아니라 ‘프린스 리’로 소개하는 경우가 왕왕 있었습니다. 당시 서방에서 prince는 왕자나 왕손 혹은 통치가문의 후손한테 주는 작위였기에 틀린 말도 아니었으며, 왕족이라고 소개하는 것이 당시 동방의 생소한 나라 출신으로서 미국의 지식인과 엘리트 층과의 관계와 인맥을 쌓는 데에 도움이 되었다고 합니다. 한 가지 더 덧붙여보자면 이승만은 왕족으로서의 자부심은 있었으나 나라를 그 지경으로 몰고 간 왕실은 싫어했습니다. 그와 더불어 공화주의자였기 때문에 전제군주제의 잔존 세력을 좋게 볼 수 없었을 겁니다. 그리고 애초에 이승만은 왕족에 대한 질투와 피해의식을 가질 만큼 열등감이 있는 인물이 아니었습니다. 이미 예전에 몰락한 가문에서 태어나기도 했고요. 미국 최고의 대학들에서 학,석,박사학위를 취득한 한국 최초의 박사이자 당대 최고의 엘리트였으니까요.. 거기서 비롯된 지식과 자부심이 긍정적으로 작용해서 이승만이 ‘외교에는 귀신’이 되고 거기서 비롯된 권위주의적 의식이 부정적으로 작용해 ‘내치에는 병신’이 되지 않았을까 생각해봅니다.
근데 태종이 힘들게 얻은 자식이 양녕대군이라 너무 오냐오냐해서 키워준 탓도 있고해서 점점 양아치로 변해갔고 태종도 알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적장자라는 이유로 계속 넘어가주다가 결국 선 넘는 행동을 계속함으로 참지 못하고 자식들 똑똑한 충녕대군을 왕세자로 삼고 양녕대군을 폐세자로 되었죠
비슷한 댓글에 남겼던 글을 그냥 복붙하겠습니다. 정정하자면 한국의 왕이 아니라 ‘프린스 리’로 소개하는 경우가 왕왕 있었습니다. 당시 서방에서 prince는 왕자나 왕손 혹은 통치가문의 후손한테 주는 작위였기에 틀린 말도 아니었으며, 왕족이라고 소개하는 것이 당시 동방의 생소한 나라 출신으로서 미국의 지식인과 엘리트 층과의 관계와 인맥을 쌓는 데에 도움이 되었다고 합니다. 한 가지 더 덧붙여보자면 이승만은 왕족으로서의 자부심은 있었으나 나라를 그 지경으로 몰고 간 왕실은 싫어했습니다. 그와 더불어 공화주의자였기 때문에 전제군주제의 잔존 세력을 좋게 볼 수 없었을 겁니다. 그리고 애초에 이승만은 왕족에 대한 질투와 피해의식을 가질 만큼 열등감이 있는 인물이 아니었습니다. 이미 예전에 몰락한 가문에서 태어나기도 했고요. 미국 최고의 대학들에서 학,석,박사학위를 취득한 한국 최초의 박사이자 당대 최고의 엘리트였으니까요.. 거기서 비롯된 지식과 자부심이 긍정적으로 작용해서 이승만이 ‘외교에는 귀신’이 되고 거기서 비롯된 권위주의적 의식이 부정적으로 작용해 ‘내치에는 병신’이 되지 않았을까 생각해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