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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복서 김득구와 맨시니의 감동적인 스토리. 전세계인이 기억하는 복싱 역사 최고의 비극, 난타전이였던 명승부 하이라이트 영상. 한국인의 저력을 보여준 복서 김득구 with Clova 

스포츠몽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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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인과 맨시니 시점에서 바라본 김득구 복싱과 한국인의 저력.
1982년 11월 14일, 미국 라스베이거스 시저스 팰리스호텔 특설링.
비운의 복서, 그리고 헝그리 복서 김득구는 또 다른 비운의 복서 맨시니를 만나, 사생결단의 명승부를 펼칩니다
세계챔피언 타이틀 2차 방어전에 나선 맨시니도, 그 경기를 반드시 이겨야하는 이유가 있었습니다.
맨시니의 아버지는 1940년대 유명한 이탈리아계 미국인 복서였습니다.
줄곧 상위 랭커였음에도 불구하고, 단 한번도 타이틀을 쟁취하지 못하고 세계2차 대전에 나가 큰 부상을 입게 됩니다.
그 후유증으로 복싱을 그만두게 된 그의 아버지는 이후, 노동자로서 공장에서 일을 하며 생계를 이어갑니다.
가난하게 자랐던 맨시니에게는 형이 있었습니다. 형제는 세계챔피언이 되지 못한 아버지의 꿈을 대신 이루고 싶어 복싱을 시작합니다.
맨시니보다는 그의 형이 복싱에서 더욱 재능이 있었다고 합니다. 맨시니도 20살이 될때까지 16승 무패의 전도유망한 복서로 성장합니다.
성격도 밝고 유머 감각도 풍부해서 늘 여자들이 따라다니던 그의 형은 맨시니가 20살이 되던 1981년 발렌타인데이에 그의 17세 여자친구에게서 총격을 받아 살해됩니다.
맨시니는 그 사건으로 엄청난 충격을 받게 되는데, 아버지의 꿈을 이룰 아들이 형이 아닌 자신이 된 그는 그 사건 이후로 더욱 미친듯이 복싱을 하게 됩니다.
그러던 중, CBS 스포츠 프로그램에서 그의 가족 스토리를 방송에 내보냅니다.
1980년대 흑인들이 유명 복서를 장악하고 있던 시절, 젊고 잘생긴 이탈리아계의 백인 복서의 스토리는 영화 록키 발모아의 인생과 비교되며, 미국에서 큰 인기를 끌게 되는데요.
당시 돈킹과 함께 거물 프로모터로 활약하던 밥 애럼은 그의 인기를 포착하고 재빨리 그와 계약을 하게 됩니다.
거물 프로모터의 날개를 단 맨시니는 곧바로 세계타이틀전을 치르게 됩니다.
WBC 라이트급 세계 챔피언에 도전한 그는 잘 싸운다가 14회 KO 패를 당합니다. 정확하게 1년 후, 김득구 선수가 유리했던 경기에서 14라운드 KO패를 당하게 된 것처럼 말이죠.
미국에서 그의 인기는 대단했습니다. 그래서인지, 불과 6개월만에 WBC 세계타이틀전을 갖게 되고 그 경기에서 승리하며 복싱 세계챔피언에 등극합니다.
프로모터 밥애럼은 되도록이면 오랫동안 맨시니의 타이틀을 유지시키고 싶었습니다.
당시 라이트급에 세계적인 선수들이 즐비했지만, 그는 그들을 피하고 미국에서 잘 알려지지 않은 아시아의 한 선수를 주목합니다.
그 선수가 싸워 17승을 거둔 상대들은 모두 처음 들어보는 아시아 선수들이었습니다.
맨시니가 그를 쉽게 이길 수 있을 거라 판단했죠. 그래서 밥 애럼은 김득구를 맨시니의 2차 방어전 재물로 추진합니다.
동양챔피언이 된 김득구였지만, 세계타이틀전은 생각도 하지 못했습니다. 그러던 그에게 꿈에 그리던 세계타이틀전이 성사됩니다.
가난하고 차별받았던 배우지도 못했던 김득구, 그의 인생에서 세계챔피언은 유일한 인생의 목표였고, 반드시 재취해야만 하는 것이었습니다.
1982년 11월 미국 라스베거스에서 열린 이틀전을 준비하러 간 김득구는 필승을 다집하듯, 관을 만들어 가기도 합니다.
이 소식은 취재한 기자에 의해 경기 전부터 미국에 알려지죠.
별거 아니라고 생각했던 맨시니는 뒤늦게 김득구의 경기 영상을 보고는 깜짝 놀랍니다.
쉽게 포기하지 않는 그의 근성, 터프한 싸움들. 맨시는 그와의 경기가 쉽지 않을 거라 생각했습니다.
경기 전날 김득구가 묵엇던 라스베거스 호텔방에는 '죽거나 살거나" 라는 글을 붙혀 놓았다는 것을 알게된 맨시니는 마치 전쟁터에 끌러가는 병사처럼 싸늘한 기분이 들었다고 합니다.
전미국에 생중계될 맨시니의 경기는 미리부터 큰 관심을 끌게 됩니다. 맨시니는 갑작스럽게 등장한 백인스타 선수였죠.
그는 이 경기에서 반드시 이겨야 합니다. 약체라고 알려진 아시아의 선수에게 진다면, 자신이 아버지 대신 쌓아올린 복싱 패밀리로서의 명예와, 꿈만 같던 그의 인기는 순식간에 식을 수 있었기 때문이죠.
그는 자신이 스타덤에 오를 자격이 있는 선수라는 것을 스스로 증명해 보여야 했습니다.
그래서 그는 그 어느때보다도 강렬한 투지를 불태우고 있었습니다.
그렇게 목숨을 던지는 의지와 불꽃같은 강렬한 투지가 라스베이거스에서 충돌을 일으킵니다.
김득구는 전사같았습니다. 모든 언론이 맨시니가 쉽게 승리할거라고 예측했지만, 싸움은 뜻밖에 강대강으로 호각세였습니다.
그건 대단한 싸움이었습니다. 그둘은 생존을 위해 싸우는 것 같았습니다. 맨시니의 펀치들이 김득구에게 날려졌지만, 그는 영향 받지 않는 듯 했습니다. 맨시니의 몸은 아팠고 머리는 어지러웠습니다.
그는 김득구의 힘을 강하게 느끼고 있었다고 합니다. 정말 놀라만한 싸움이었습니다.
3라운드에서 그의 귀가 찢어졌고 그는 왼손을 다쳤습니다. 4라운드에 그의 눈은 부어올랐고, 싸우는데 엄청난 용기가 필요한 상황이었습니다.
그건 오랫동안, 서로 주고 받으며 지지치 않는 싸움이었습니다.
나는 오늘밤 여기에서 우리 둘중, 하나는 죽거나 산다고 생각했다. 나도 절대로 질거라고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맨시니 복싱 매니저 : 맨시니는 라운드 내내 경기를 잘 풀어가고 있었지만, 김득구는 매 라운드 후반부가 되면 정신을 차리고 그와 랠리를 벌였습니다. 이 싸움은 매우 어려울 거란 생각이 들었죠.
8라운드가 끝났을때, 세명의 심판중 한명은 동점이었고, 두명은 맨시니가 아주 조금 앞설 뿐이었습니다.
적지인 미국 현지에서의 판정은 불리할 수 밖에 없다는 점을 감안하면, 실제로 김득구가 더 잘싸운 경기였습니다.
하지만 김득구가 맨시니를 이기려면, 10라운드 안에 그를 KO 시켜야 했습니다.
매니시는 놀랍게도 15라운 경기를 뛸 수 있도록 잘 훈련된 체력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대부분 그의 경기에서 늘 11라운드부터 더 강했고, 후반전에는 거의 그의 페이스들이었기 때문입니다.
맨시니는 바디히트를 잘 하는 사람입니다. 그가 김득구의 바디를 계속 쳐대는 것으로 그의 몸은 서서히 침식을 당했습니다.
김득구의 펀치는 파워를 잃어가고 있었죠. 13라운드가 시작되자 맨시니는 39개의 펀치를 날렸지만, 반대로 단 한대의 카운터 펀치도 맞지 않았습니다.
이미 김득구의 몸은 더 이상 경기를 받아들이기 어려운 상태가 되고 있었다. 모든 에너지를 소비한 듯 보였습니다.
내가 이기고 있다고 생각했지만, 라운드 종료 직전 그가 뒷걸음을 치더니, 나에게 반격을 가하기 시작했습니다.
그가 모든 에너지를 소비한 것처럼 보였는데, 어디서 그의 에너지가 갑자기 나오는지 놀라웠습니다.
하지만 그것이 그의 강렬한 의지로 뻗을 수 있었던 마지막 힘이었습니다. (KO)
트레이너 : 아주 힘든 경기였기 때문에 김득구가 다운 되었을때 무척 기뻤습니다. 나는 김득구에게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아무도 몰랐고 그저 행복했습니다.
링닥터 : 그의 동공이 확장되어고 맥박이 느려지고 있었다. 그가 흐릿한 정신으로 의자에 털썩 주저 앉았을때, 문제가 발생했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슈거레이 레너드 : 그가 그냥 탈수 상태라고 생각했습니다.
네바다주 선수위원회 : 그가 얼마나 심하게 다쳤는지 확신할 수 없었습니다. 나는 그가 지쳤는지 몰랐습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아마 50년 동안 네바다주 라스베거스에서 심각하게 다친 사람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그의 형이 죽은 후 17개월만에 맨시니는 자신이 만들어 낸 또 다른 죽음에 고통을 받게 됩니다.
몇개월 후, 김득구의 어머니의 자살 소식이 들려오고, 또 몇개월 후, 그 경기에서 심판의 심판이 경기 중단을 적절히 하지 못한 것에 대한 죄책감에 시달려 우울증에 빠진 후 자살했다는 뉴스를 접하게 됩니다. 그 비극적인 뉴스들은 맨시니에게 매우 극심한 정서적 트라우마에 던져주게 됩니다.
맨시니는 이 경기 이후로 심리적인 불안정 상태를 안고 내리막을 걷게 되며 세게타이틀을 오래 유지하지 못하고 은퇴하게 됩니다.
위대한 명승부를 남기고 떠난 김득구의 아들. 태어난서 단 한번도 아버지를 느껴보지 못했던 불행한 그의 아들은 이제 치과의사가 되엇습니다.
맨시니는 그 소식을 듣고 정말 행복했고, 그로 인해 조금이나마 자신의 죄책감이 치유되어서 고맙다고 밝혔습니다.
김득구는 한국 복싱의 헝그리 정신의 표본이었습니다.
알리와 타이슨 등등 1980년대 까지만해도 전세게의 복싱은 가난하고 불우했던 청년들에게 희망이 되는 스포츠였습니다.
비록 승리는 하지 못했지만, 그가 보여준 정신력과 저력은 전세계 복싱역사에 잘 알려져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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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ng : 이철희 - Like a movie
자료출처 : gongu.copyright.or.kr
Music promoted by DayDreamSound : • Video
CC-BY 3.0 goo.gl/Y8U8b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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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evin MacLeod의 Artifact - The Dark Contenent에는 크리에이티브 커먼즈 저작자 표시 4.0 라이선스가 적용됩니다.
creativecommons.org/licenses/...
출처: incompetech.com/music/royalty-...
아티스트: incompetech.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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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ostalgic Piano by Rafael Krux
License: creativecommons.org/licenses/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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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 янв 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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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ser-cv2fl4iw8c
@user-cv2fl4iw8c 3 года назад
김득구의 고3 담임선생 이였습니다. 사내답고 의리있는 학생 이였습니다. 미국가기 전에 인사하러 왔길래 점심을 된장찌개 로 같이 하였습니다. 죽기 전에는 링에서 내려오지 않겠다고 말하던 득구의 얼굴이 지금도 생생하게 기억됩니다. 오랜 세월지난 지금도 득구를 생각하면 눈물이 나고 보고 싶습니다.
@wispower89
@wispower89 3 года назад
우와 인터넷. 유튜브의 힘이 크네요. 모든 사람들을 묶어주네요. 대단합니다. !!
@user-qi2dk9hb1x
@user-qi2dk9hb1x 3 года назад
훌륭한 제자 뿌듯하시겠네요 항상건강 하세요
@harrisonbaek1249
@harrisonbaek1249 3 года назад
정말 투혼이 무엇인지를 보여준 명경기 였었죠. 죽기를 각오하고 겨루겠다고 미니 관까지 품고 미국에 갔었지요. 참 애닯습니다. 아들이 치과의사가 된 것이 정말 기쁘네요. 선생님께도 적잖은 위안이 됐겠지요.
@user-ki2dt1fw9f
@user-ki2dt1fw9f 3 года назад
아 정말 인생의 크나큰 교훈을 알려주시네요 감사합니다 사람은 죽어서 이름을 남기네요
@user-ee1lx8gh2y
@user-ee1lx8gh2y 3 года назад
오늘 2013 03 27일 비오는 날 제 마음속의 영원한 선수 김득구님을 만나고 선생님을 뵈어 영광입니다 서두에 1982년 제 나이 13살 국민학교 6학년으로 나이계산 되어집니다 그 날 혼자 시골방에서 직접 본 경기 혼신의 힘을 다하신 모습에 잊지 못합니다 이 일로 선수의 염려로 15회가 12회로 된걸로 알구요 김득구의 어머님 맨시니님 안타까운 소식에 마음아프지만 힘든시대를 희생하신 덕분에 저희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영상을 만들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goodboy8070
@goodboy8070 3 года назад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아버지 없는 설움의 슬픔이 매우 컸을텐데 정말 자랑스럽습니다 홀로 아들을 키우며 슬픔을 감추고 오직 아들만 바라보고 살아온 훌륭하신 어머님께 자랑스런 아들이 되시길 바랍니다
@user-hq6hw8sx3p
@user-hq6hw8sx3p 3 года назад
득구야 보고싶구나 초등학교6학년때 책가방도 없이 보자기에 책을 담아 어깨에 메고오던 그때가 선하구나 반암리에서 학교까지 그먼길을 늘 걸어 왔었지 편히쉬거라
@진경라이브Jinkyunglive
@진경라이브Jinkyunglive 2 года назад
김득구와 동창 친구시군요 저는 28살 때 쯤 경기니....두 분 예순 쯤 되셨겠군요 아들이 치과의사로 자랐군요 그 시절이 생각납니다
@Kim-ig3qq
@Kim-ig3qq 2 года назад
춥고 배고프던 60년대 초등학교 다닐때 너무 가난하여 뒷축 닳아없어진 검정고무신 끌고 책보자기 둘레메고 학교다닌 기억이 납니다. 김득구 선수의 인생이 그 시대를 대변하는 듯...참으로 애통하게 가신 분입니다.
@eddychun9601
@eddychun9601 Год назад
@익살 나는 늙은이 소리 들을까봐 초등학교라 부르는 습관을 익혓다. 궁예냐?
@user-fz9kd7pv8y
@user-fz9kd7pv8y Год назад
아들이 유복자로 아는데 잘자라 주었군요
@hunsung342
@hunsung342 Год назад
@익살 나도 국민학교 세대인데 초등학교라고 말함. 명칭이 바뀌었으니 당연한거자너. 국민학교라는 말이 간혹 나오긴 함
@user-rd2bj5ct9o
@user-rd2bj5ct9o 4 месяца назад
사랑스런우리삼춘 보고십으네요 정말로자랑스럽고 사랑합니다 삼춘저명훈입니다 잘계시죠♡♡
@user-jr6wp7kt9v
@user-jr6wp7kt9v 3 года назад
김득구 정말로 한국인의 정신을 만천하에 알린 최고의 복서입니다 천국에서 잘계시겟죠 복싱사에 영원히 남은 이름 김득구선수 😎
@user-ou5fr7qe7s
@user-ou5fr7qe7s 3 года назад
지금도 이 장면을 보면 목이 메이고 눈물이 난다. 김득구의 죽음이 슬픈게 아니다. 그 시절 대한민국 젊은이들의 모습과도 같았던 김득구의 저 전투 장면. 우리는 그때 가난을 벗어나기 위해 죽을듯이 밤을 낮처럼 일을 하며 살았다. 휴일? 소설 속에서나 나오는 단어였다. 그렇게 살던 우리들에게 그의 죽음은 우리를 슬프게했다. 어쩌면 나도 김득구처럼 이 세상과 싸우다 죽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서글펐다. 나 역시 한창 때인 30대 초반에 과로로 쓰러졌던 경험이 있었기에 더욱 그랬다. 내 나이 어느덧 70. 아파트 앞 놀이터에서 천진스럽게 깔깔거리며 뛰어노는 손주들을 바라보며 그나마 우리가 겪었던 그 처절하고 극심한 가난을 이 아이들에게 물려주지 않게 된 오늘이, 얼마나 행복하니?라는 생각에 큰 위로를 받는다. 당시 엄마 뱃 속에 있던 김득구의 아들이 치과의사가 됐다는 얘기는 이 채널을 통해 처음 알게됐다. 그래, 득구야? 네 죽음과 우리 세대의 그 고단함은 결코 헛되지 않았지? 나도 멀지않아 자네가 있는 곳으로 갈 나이네그려. 살아 생전 단 한번도 만난 적도 없지만 저승해선 함 만나서 진한 쐬주나 한잔하세. 우리 시대의 슬프고 용감했던 젊은 한국인, 김득구!
@user-vb4le6hq4k
@user-vb4le6hq4k 3 года назад
어르신 고생 참 많으셨습니다.
@user-ct5dz4ry7m
@user-ct5dz4ry7m 3 года назад
엄동설한 연탄한장 새끼줄에 매달고 달동네를 오르던 시절이 생각나네요 ㅠㅠ
@user-hh5bu2yq7d
@user-hh5bu2yq7d 3 года назад
어르신이 살아온 삶에 박수를 보냅니다.
@bearsgold3890
@bearsgold3890 3 года назад
글을 읽어 내리는데 울컥하네요 ㅠ 고생 많으셨습니다
@Evelyn-ey7vs
@Evelyn-ey7vs 3 года назад
ㅠㅠ
@youngkim4370
@youngkim4370 3 года назад
지금 다시보니 최고의 복서였네 ... 원없이 싸웠고 최선을 다한 경기였다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user-qt5bc7ct2o
@user-qt5bc7ct2o 2 года назад
나이 먹고 다시 보니 눈물만 나네요 그 아드님 훌륭하게 잘큰거같아서 감사하내요 당신의아빠는 우리들의영웅입니다
@whiskygogo2143
@whiskygogo2143 3 года назад
아~국민학교 1학년때 본 이 시합을 아직까지 못 잊고 있었는데!! 김득구 이 이름을 지금까지도 기억합니다!! 아무것도 모르는 8살 초딩 어린이 시절때도 얼마나 강렬했었는지... 죽음을 두려워하지 세계최고의 복서!!! 당신은 복싱 역사 뿐만아니라 대한민국의 전설적인 초고의 스포츠 영웅입니다!!!
@davidkim3305
@davidkim3305 3 года назад
내가 이 경기중계방송을 봤다. 너무 안타까운 사고였다. 이로 인해 세계타이틀매치가 15라운드에서 12라운드로 룰이 바뀌기까지 했다.
@karl7
@karl7 3 года назад
15라운드, 12라운드 두개였던 것이 15라운드가 없어진 것이 정학하지 않나 싶습니다. 저 시합 당시 저는 9살이었고 본 기억 납니다.
@user-fp9dr5kp7j
@user-fp9dr5kp7j 3 года назад
지역챔피언이 12라운드, 세계 챔피언은 15라운드였습니다. 즉 동양챔피언은 12라운드였죠. 저 시합으로 세계챔피언도 12라운드로 바뀌었죠.
@user-xe8uw1mb8u
@user-xe8uw1mb8u 2 года назад
저도 봤어요 다이겼다고 박수치고 난리났어죠 좋다고 근데 한순간 숨이머지는줄알았답니다 가엾고 불쌍한사람 그에 어머니 모습도 문뚝 떠오르네요 생각만해도 마음이 아품니다
@owlism8035
@owlism8035 2 года назад
그 당시에 세계 챔피언전도 12라운드 하는것도 있지 않았나요? 아미 ibf가 먼저 한거로 그리고 저게임 이후로 wba와 wbc도 12라운드로 간거구요~~~ 확실하진 않지만 ㅎㅎ
@user-fp9dr5kp7j
@user-fp9dr5kp7j 2 года назад
@@owlism8035 당시 ibf 는 막 신설된 단체로서 모르는 사람이 휠 많았습니다. 그냥 세계 챔피언은 wba wbc만 있었지요. Inf는 83년 11월 창설되었으니 당시 체급별 챔피언도 다 없었을 거예요.
@luckyguy9088
@luckyguy9088 3 года назад
어렸을 적 봤던 경기였는데 그 당시 온 국민의 충격 이었죠. 김득구 선수의 아드님이 훌륭하게 성장하셨다니 기쁘네요. 김득구 선수의 아내분께서 얼마나 힘드셨을지... 행복하게 지내시길 바랍니다.
@user-do7dc7mq3k
@user-do7dc7mq3k 2 года назад
최송함니다 사노라니잊었던기역이돼살아나는군요ㅡ 우리에근성 다시한번느끼며
@user-dg3wp8nv2d
@user-dg3wp8nv2d 3 года назад
지금봐도 너무 가슴아프다 그래도 훌륭한아들 남기셧으니 하늘에서는 평안함 누리시길
@user-tg5xg7gl8i
@user-tg5xg7gl8i 3 года назад
제가 올해 49살 입니다...제 어릴적 기억중 가장 생생했던 기억이 김득구선수가 경기중 쓰러져 혼수상태에 빠졌다는걸 뉴스에서 본 후 이불 뒤집어쓰고 밤새 하나님께 김득구선수 살려달라고 기도드린게 생생하네요...하나님은 저의 기도를 외면하셨고 저는 그뒤로 교회에는 부모님때문에 어쩔수 없이 다녔지만 마음속으로는 하나님의 존재를 부정했었죠...어린마음에...가끔 김득구선수 영상 접할때 마다 아직도 눈시울이 벌개지네요.아들이 훌륭히 커줘서 너무 기쁘네요.
@user-lr5bb2mh3n
@user-lr5bb2mh3n 3 года назад
지금이라도 교회나가서 은혜받으시죠
@user-of5cr3wc3n
@user-of5cr3wc3n 3 года назад
@@user-lr5bb2mh3n 교회를 왜가냐 대한민국 코로나 오십프로 이상이 개독교 때문에 생긴거다
@user-si3hy4vp6n
@user-si3hy4vp6n 3 года назад
@@user-of5cr3wc3n 그건 아니죠. 신천지가 맨첨에 은폐를 한 이유는 있어도 기독교회는 어떤 업종에 비해 가장 코로나 발생률이 적은 곳입니다. 그 어떤 업종보다 발병률이 적습니다. 현재도 그 어떤 곳보다 방역을 철저히 하는 곳이고요. 다만 정부나 언론이 필요에따라 본인들의 이익을 위해 마녀사냥을 한것이 분명하죠. 생각해 보세요 교회가 욕먹어서 여럿이 산겁니다. 사회적으론 경각심을 불러 일으키고 정부는 자신에게 오는 화살을 피했고 언론은 자신들의 유익을 위해 이슈화 했습니다. 단순하게 생각하시면 안되어요.
@user-of5cr3wc3n
@user-of5cr3wc3n 3 года назад
조주빈 유영철 정인이 양모 강호순 이춘재 이미친놈들도 정부나 언론이 필요에따라 본인들의 이익을 위해 마녀사냥을 한것이 분명하냐? 이사람들이 욕먹어서 여렷이 산거냐? 이미친놈들도 사회적으론 경각심을 불러 일으키고 정부는 자신에게 오는 화살을 피했고 언론은 자신들의 유익을 위해 이슈화 했냐? . 이놈들 욕하면 단순한거냐? 처죽일놈아.... 일부 진짜 신앙인들 은 방역에 협조 한것은 인정함.... 너나 전광훈 같은 극우 새끼들만 빼고.........
@sanpark4734
@sanpark4734 3 года назад
@@user-si3hy4vp6n 무슨 자료를 바탕으로 말씀하시는 모르겠지만 일단 업종별 발병률이 중요한게 아니라 아예 열면 안돼는 교회에서 발병을 했다는것 자체가 문제입니다. 살아가는데 필수적인 업종을 제외하고서 영업을 하면 안되는 상황에서 영업을 하니까 욕을 먹는 겁니다.
@user-cl3bu8ht5c
@user-cl3bu8ht5c 2 года назад
19살 때 경기보고 김득구 선수의 경기 후 사망 및 약혼녀에게 유복자가 있다는 신문기사를 보고 많이 마음이 아팠던 기억이 나네요. 아들은 커서 홀륭한 사회인이 되고 어머니의 노고가 느껴집니다 한국인의 우수성을 널리 알려주어 감사합니다.
@user-bm6pp9iv8o
@user-bm6pp9iv8o 3 года назад
경기후 사망소식에 임신한 약혼녀가 너무나 안타까웠습니다 혹 결혼전이라 얘기를 지우진 않을까 낳아서 키운다면 혼자서 어떻게 역경을 이겨나갈지 당시엔 참으로 먹고 살기 힘든 시절이라 정말 많은 걱정을 했었는데 아버지 얼굴 한번 못본 그 아들이 휼륭히 자라 의사가 되었다니 홀로 키운 어머니의 노력이 얼마였을지 그 어머니의 노고에 감사를 표합니다
@user-tm4cs7hu1m
@user-tm4cs7hu1m 3 года назад
약물
@user-tm4cs7hu1m
@user-tm4cs7hu1m 3 года назад
맨시니
@TV-jl8oe
@TV-jl8oe 3 года назад
아마도, 글쓴이만의 걱정이 아니었지요. 기억해요. 우리모두 아들이 잘 자라기를.....감사합니다. 아드님이, 잘 이겨내고 잘 건강하게 자랑스러운 아버지를 기억하며, 살기를....^^
@chachagoon
@chachagoon 3 года назад
얘와 애...오타는 아닌듯 한디...
@user-fg7vx5fc3y
@user-fg7vx5fc3y 3 года назад
하 김득구 선수의 죽음은 그 당시 국민적 아픔이었지요 그런데 그 어머니 소식은 몰랐는데~ 하늘에서 편히 지내시길~~
@user-dw2ky2ri2g
@user-dw2ky2ri2g 3 года назад
눈물이 나네요.어머니도 심판도 얼마나 힘들었으면 스스로 먼길을 떠났을까요. 김득구 선수도 가난없는 좋은 곳에서 편히 쉬시길.
@user-ly8vo2fe8d
@user-ly8vo2fe8d 3 года назад
나이를 먹어가니 눈물이 많아지고 추억이 소중해지네요. 당신은 너무도 훌륭한 권투선수였습니다.
@aoyama3chome518
@aoyama3chome518 3 года назад
지금으로 따지면 오스카델라호야 같은 미국 백인 스타 선수랑 붙는거랑 같은거니 엄청 대단한거죠 그것도 알려지지도 않은 작고 가난한 나라의 젊은이가...
@user-hk1970
@user-hk1970 3 года назад
저도 ᆢ
@beastar901
@beastar901 3 года назад
@user-ui4zq3ct7m
@user-ui4zq3ct7m 2 года назад
못보겠네요~ ㅜ
@oppressodelibre1518
@oppressodelibre1518 3 года назад
내가 미국이민온지 2년만에 이경기가 있어서 TV 중계방송을 보며 소리소리 지르고 응원했는데.. 정말 이국땅에서 죽기살기로 잘싸웠는데 그만.. 지금생각해도 슬프다. 김득구씨의 명복을 빈다
@user-ng5gb1wq8d
@user-ng5gb1wq8d 2 года назад
이영상만보면 자꾸 눈물이 멈출수가 없네요...당시 초딩때 시합본기억이 나고 뉴스에 한국최고의 침술사가 미국으로 김선수를 치료하러 갔다는소식에 맘속으로 일어나시길 빌었지요..아드님이 의사가 되셨다니 기쁩니다..
@user-bv7wx8pz5u
@user-bv7wx8pz5u 2 года назад
링위에서 모든 것을 걸고 싸웠던 불굴의 복서 김득구. 당시 중계방송을 봤던 복싱팬인데 지금 봐도 정말 대단합니다. 남편없이 아들을 훌륭하게 키우신 부인과 아드님의 앞날에 늘 행운이 함께 하기를 응원합니다.
@anotherperson9621
@anotherperson9621 3 года назад
그냥 비운의 복서라고 알고 있었는데, 와~ 그게 명승부였네. 더 오래 살았으면, 멋진 경기들 많이 만들었을 대단한 분이네요.
@joinsky2883
@joinsky2883 3 года назад
어렸을때 저 경기를 보았었지... 마지막 순간 주저 앉았다가 드러눕는 장면이 기억에서 사라지지 않는다. 죽을때까지 싸우는 민족이라는 말이 다시한번 상기된다. 그 강인하고 훌륭한 민족성에 부끄럽지는 않게 살아야지...
@user-dm2qh3xp7m
@user-dm2qh3xp7m 3 года назад
김득구선수가 자랑스럽습니다. 비록 지금은 없지만 우리에게 영원히 기억되기를... 아드님께서 훌륭한 의사가 되어 무척 기쁩니다
@user-iq8jb9hf2n
@user-iq8jb9hf2n 3 года назад
군대 복무때 중계방을 보며 너무 안타까웠는데 아드님을 훌륭하게 키워주신 모정에 감사 드립니다 아울러 김득구 선수의 사망 충격에 고인이 되신분들께 명복을 빕니다.
@jhk-hp1bk
@jhk-hp1bk 3 года назад
눈물 나네요....권투가 아니고 살기 위한 처절한 몸부림 같습니다.김득구 선수 어머님에게 그런일이 있다는건 처음 알았습니다. 삼가 고인에 명복을 빕니다.
@user-zr7tl6nr7m
@user-zr7tl6nr7m 3 года назад
항상 김득구 선수 생각하면, 제 영혼이 정화되는 느낌입니다. 아드님이 잘 되셨다니, 이보다 더 기쁜일이 있을까요. 정말 기쁨에 눈물이 한없이 흘러 내릴거 같습니다. 아드님도 더 훌륭한 아드님 낳으셔서, 아버님에 훌륭한 정신을 후손대대로 이어가시기 바랍니다. 김득구 선수 존경합니다.
@Ambitious189
@Ambitious189 2 года назад
힘든 경기라는 것을 알고도 끝까지 피하거나 포기하지 않은 불굴의 의지를 보여준 훌륭한 선수입니다. 저는 국민학교 4학년때 이 경기를 보았는데.. 아드님이 잘 성장하였다니 정말 고마운 일이지요.
@user-jr6jj2lt7t
@user-jr6jj2lt7t 3 года назад
김득구선수가 싸우든 모습이 지금도 눈에 선하게 보이는것 같아요 ~ 김득구선수를 생각하면 지금도 내눈에 눈물이 맺혀요 김득구는 내마음속에 영원한 챔피언 입니다 그의 영면을 기원합니다
@user-cm7wm8wr9o
@user-cm7wm8wr9o 3 года назад
김득구. 맨시니 정말 두선수는 대단한 선수들입니다. 목숨걸고 사력을 다해 경기한 김득구선수나 마음에 충격받고 죄책감에 은퇴한 맨시니. 귀감이 가는 안타까운 시합이었네요.
@user-oi6fg6sn5l
@user-oi6fg6sn5l 3 года назад
법적으로야 맨시니가 하자있는 일을 하지는 않았으나 누구든 그입장이 되면 충격을 받겠지요.
@user-ou6bq8uq8w
@user-ou6bq8uq8w 3 года назад
자랑스러운 복서 김득구... 타이틀보다 더 강한 자긍심을 갖게하는 대한민국의 멋진 사나입니다
@bps7838
@bps7838 3 года назад
하늘에서도 아드님의 치과의사 소식에 기뻐하실겁니다. 김득구 선수의 안식과 그 가족분, 그리고 맨시니 선수 모두 행복하시길 기원합니다.
@eddiek4217
@eddiek4217 2 года назад
김득구형 얼굴에서 파퀴아오가 보입니다 당신은 위대한 복서 입니다 미국에서 그렇게 화이팅한 선수를 본적이 없었습니다 형은 우리들 기억속에서는 영원히 살아 숨쉬는 파이터 입니다
@user-fh4gz3iv3c
@user-fh4gz3iv3c 3 года назад
한국복서 원정 사상 가장 잘 싸웠다! 지금까지 유효하다.
@user-bm6pp9iv8o
@user-bm6pp9iv8o 3 года назад
아니 앞으로도 영원히
@user-fh4gz3iv3c
@user-fh4gz3iv3c 3 года назад
@@user-bm6pp9iv8o 저는 개인적으로 동의합니다!
@user-ys7yw1tt4h
@user-ys7yw1tt4h 3 года назад
아 저도요
@user-sm1jc9vc1g
@user-sm1jc9vc1g 3 года назад
저도 한표
@user-sg9no8mm2x
@user-sg9no8mm2x 3 года назад
저도 한표드립니다
@Titisarang
@Titisarang 3 года назад
어렸을적에도 울었는데 40년이 지나도 눈물이 나는군요 이 경기 때문에 복싱 경기가 12라운드로 변경됫죠
@Bo_GGn
@Bo_GGn 2 года назад
04군번인데요..김득구 선수 아들분이랑 같은 부대 나왔어요 20년 좀 안된 당시에도 이미 부대내에서 김득구 선수 아들이란 소문이 있었는데 대놓고 물어볼순 없었어요 전역하고 나니깐 영화 챔피언이 개봉하게돼서 아..그게 저 분들 얘기였구나 적잖이 충격 먹었던 기억이 나네요 아들분 인상 너무 좋고 선하고 군생활 잘했었어요 후임들 괴롭히고 그런 사람도 아니였고 그냥 선하고 똑똑한 그런 스타일..부대내 병과가 화학병이였는데 ㅎㅎ암튼 옛날 생각 나네요
@user-lw9kx7jv6h
@user-lw9kx7jv6h Год назад
제가 02년도 군번인데 제가 군생활때 챔피언 영화 개봉했습니다. 휴가때 나가서 봤던 기억이 있습니다. 그나저나 김득구선수 아드님이랑 같이 군생활하셔서 감회가 새로우셨겠어요
@innovator108
@innovator108 Месяц назад
좋은 인연이시네요..
@kimkt7471
@kimkt7471 3 года назад
세계타이틀이란 정말 어마어마한거죠 한반도인이 인내에강하고 투지가넘치죠 그래서 더욱 한국인이란것에 자부심을가집니다.
@mooncgk1674016
@mooncgk1674016 3 года назад
그당시 임신중이었던 약혼녀께서 낳은 아들이 훌륭히 자라셨군요....좋은 의사선생님이되시길
@jlpal8532
@jlpal8532 3 года назад
잘. 자라준 아들님 그져 ᆢ 감사 합니다
@user-sz3bl1jr3y
@user-sz3bl1jr3y 3 года назад
의사가 안됐으면 훌륭하개 자란개 아닌건가요?
@hooniminamchoi6583
@hooniminamchoi6583 3 года назад
@@user-sz3bl1jr3y 그 취지가 아니잖아요
@user-sz3bl1jr3y
@user-sz3bl1jr3y 3 года назад
@@hooniminamchoi6583 뉘앙스가 그런데요?
@user-sz3bl1jr3y
@user-sz3bl1jr3y 3 года назад
@@hooniminamchoi6583 그냥 훌륭한 사람이 되시길...이랬음 되는데
@user-mu5mq2iw7k
@user-mu5mq2iw7k 3 года назад
한참을 망설이다가 그 장면을 다시 봤어요. 당시 중계를 봤던 내게도 큰 충격이었죠. 정말 죽을 각오로 싸운다고 하더니 죽을 때까지 싸웠어요. 진정한 영웅입니다.
@user-yv4fw9ti7q
@user-yv4fw9ti7q 3 года назад
훌륭한 복서의 아들답게 의사로서 아버님 명예를 지켜드리세요 모친ㆍ할머님도 칭송받을 자격이 있는분입니다ㆍ 김득구선수는 한국인의 기질을 가장 잘 드러낸 훌륭한 파이터입니다ㆍ
@user-nr6nm4ug7m
@user-nr6nm4ug7m 3 года назад
아..... 김득구선수.. 최고의전사! 명복을빕니다...
@odinkim2767
@odinkim2767 3 года назад
5060에게는 잊을수 없는 경기였습니다 힘들었던 시절 살기위해 뮈라도 해야했던 사람들의 표본 김득구선수 수많은 생각을 하게했던 경기, 잊을수 없습니다 김득구는 영원히 복싱역사에 투혼의 상징입니다
@user-xi1pc8ee7l
@user-xi1pc8ee7l 3 года назад
네. 참으로 안타까웠죠~ 아들이 훌륭한 아버지 뒤를 이으셨군요~~사랑합니다.♡
@user-uw3jj7ip2u
@user-uw3jj7ip2u 3 года назад
실제로 tv 에서 저경기을 본 1인 어린나이에 일어 나라고 외쳣던 기억이납니다 내나이 50 살넘어 불우한 삶을 포기하지 않고 도전하는 김득구 선수을 다시 한번 생각해봅니다 ..
@user-md3yo5nd7h
@user-md3yo5nd7h 3 года назад
그때 TV시청하면서 너무나 가엾어서 가슴 아팠던 기억이 나네요~ 열악한 환경에서도 열심히 노력하고 체력의 열세에도 불구하고 끝까지 팔을 뻗던 모습이 눈에 선합니다 삼가 고인의 명복을 늦게나마 올립니다 김! 득! 구! 그분의 유복자 아드님이 치과의사가 되셨다니 너무나 기뻐네요~ 아버님께,어머님께,할머님께 큰 효도하셨네요! 아버님의 투지를 이어 받으셨으니 분명 세상에 선한 영향력을 베푸시는 의사가 되실겁니다 감사합니다!-할렐루야-
@user-lb6nj9zj2p
@user-lb6nj9zj2p 2 года назад
강원도 고성군 거진읍 반암리 친구 태경이의 외삼촌이였죠.... 85년도에 이계인씨가 주연으로 찍은 호랑이는 울지 않는다 보러 갔던 기억이....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talih3610
@talih3610 2 года назад
초등학교 2학년 때 TV 생중계로 봤던 기억이 납니다😢승패를 떠나서 정말 마지막 순간까지 자신의 모든것을 아끼지 않으며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투혼을 불살랐던 김득구 선수의 모습이 아직도 눈앞에서 생생합니다😭
@user-lq4rr9ur9p
@user-lq4rr9ur9p 3 года назад
아들을 멋지게 농사지으신 아내분도 김득구씨 못지 않게 대단하시네....대단하다고 밖에~~,
@jssuh2461
@jssuh2461 3 года назад
정말 좋은 소식입니다. 김득구 선수 경기 어렸을 때 본 기억이 또렸하고 영혼결혼식 뉴스까지 들었던 기억도 또렸합니다. 저 경기로 프로복싱 12라운드로 줄어들었지요 훌륭한 어머니입니다. 김득구 선수의 명예 국민들 가슴속에 있습니다.
@user-be8yi4sc7l
@user-be8yi4sc7l 2 года назад
당시 세계 랭커를 줄줄이 외울 정도로 복싱에 열광했던 내가 복싱에서 점차 멀어지게 된 계기는 바로 이 경기였다. 그리고 여느 한국 복서가 지거나 처참한 KO를 당해도 그냥 울화만 치밀었지만, 이 경기에선 그가 쓰러지는 순간 고개를 파묻고 울었다. 난 그의 인생 스토리를 알고 있었고, 이길 가능성 거의 희박한 이 경기를 그가 꼭 이기길 바랬기 때문이다. 챔피언이랑 영화를 볼 때도 그랬고, 지금 이 순간 이 영상 쓰러지기 전 모습만 봐도 눈물이 맺힌다.
@user-ws2gi6kg1m
@user-ws2gi6kg1m 3 года назад
한국 복싱역사상 가장 아름답고 슬펐던 비운의 복서 김득구.당시의 시합은 누가 보더라도 맨시니가 힘과 기량에서 한수 위였지만 김득구는 한치의 물러섬 없이 투혼으로 맞섰지만 끝끝내 비극적인 죽음을 맞이했지. 가슴저린 명복서들의 레전드시합이었어.
@user-oz4jg5gz3t
@user-oz4jg5gz3t 3 года назад
제 중학교 1학년때 제 생일날 아침에 보았던 엄청난 경기였고, 평생 잊을 수 없었던 경기였습니다. 김득구 선수의 죽음을 각오한 최선을 다한... 그 활활 타오른 찰나의 시간을 진심으로 존경하며 기념하고 ... 명경기와 투지를 선물해 주신 그에게 감사드립니다
@user-nl6hp4hb2c
@user-nl6hp4hb2c 3 года назад
오랫만에 눈물이 흐르네 오래전에 잊혀진 이름 김득구선수... 경기후에 이런 비극들이 있었는지 처음 알았네요 모든게 슬픈 드라마같아서 더욱 더 뇌리에 남을거 같습니다
@hagmlkim9097
@hagmlkim9097 3 года назад
기억난다.한국에 살때 뉴스에 이 선수의 약혼녀 뱃속에 애가있다고 ..., 벌써 세월이 흘러 치과의사라니 정말 하늘에서 지켜보는듯 합니다
@tubmark1655
@tubmark1655 2 года назад
저 투지를 봐라. 죽을힘을 다해 싸우는.. 정말 가슴이 뜨거워진다.
@user-tu2bk3ys4x
@user-tu2bk3ys4x 3 года назад
머나먼타국땅에서 외로운싸움 패배와 죽음 어머니자살 참 슬픈 영화의한장면같습니다 가슴울컥 그시절에는 먹을것이없어서 운동하는사람들이힘들었을것같은데요
@jojaehyun3438
@jojaehyun3438 3 года назад
..날 여기로 데려다 준 알고리즘 과 김득구 선수 그리고 마음 따뜻한 위로를 해준 멘시니 선수 에게 감사드립니다 김득구 선수의 어머님 과 경기 심판께도 ... 이 순간 마음 다해 애도 와 명복을 빕니다 - 그리고 또한 영상 참으로 감사 드립니다
@user-kv9zp4vi3g
@user-kv9zp4vi3g 3 года назад
공부든 운동이든 모든것에 최선을 다하는고 김득구 선생님 존경합니다
@brave4086
@brave4086 3 года назад
저경기 직접 티비로 봤었는데 대단한 경기였습니다... 뉴스에 병원에서 귀쪽신경만 살아있고 신체모두 식물인간 상태라했었는데 결국 하늘나라로 가셨어요... 그의 헝그리정신은 모든분야의 스포츠선수및 관계자들이 각성해야할것임을 잊지않으셨으면 합니다...
@user-lr3qe8ph5f
@user-lr3qe8ph5f 3 года назад
김득구 선수는 한국인의 정신력을 전 세계에 떨친 위대한 스포츠맨입니다. 이런 분의 이야기는 초중고 교과서에 반드시 실려야 합니다. 세월이 흘러가면 사람들의 기억에서 사라지는 일이 없도록 제발 나라에서 조치를 해주기 바랍니다
@user-mb2qw8cq9p
@user-mb2qw8cq9p 2 года назад
그정신력 때문에 어머니가 죽었다 그는 불효자다
@user-ol2qz5bc6j
@user-ol2qz5bc6j 3 года назад
최고의 인파이터 복서 둘이 한치 물러섬도 없이 한계를 넘어선 극한의 투쟁을 보여준 명경기
@user-ju7lm5hz3e
@user-ju7lm5hz3e 3 года назад
헝그리복서 김득구선수 지금도 경기할때 모습이 생각나네요 정말대단한선수이고 멋진명승부였는대 경기종료후 쓰러지는모습보고 불길했는대 그후로 일어나지못하고 운명을달리하셨습니다 너무나 가슴아팟던 기억이납니다 정말이지 복싱역사상 최고의선수로 제기억속에남아있습니다 그곳에선 평안히 쉬시고계시겠죠
@youngnamsohn9055
@youngnamsohn9055 3 года назад
중학교 학생일 때 나도 보았다 학교 영어 선생님도 김득구에게 훈장을 줘야 한다고 했다 또 내가 미군부대에 있을 때 한 미국인 병사가 득구김을 기억한다고 하면서 그렇게 잘 싸운 복서는 없을 것이라고 한 것도 기억난다
@user-yv1pk4mx9u
@user-yv1pk4mx9u 3 года назад
조또아닌 더꾸
@subwsin4359
@subwsin4359 3 года назад
ㅈㄹ
@user-bs2eh6jj7v
@user-bs2eh6jj7v Год назад
잘싸웟다면 왜졋나 졋잘싸같은거야?
@user-et5zw5kz2m
@user-et5zw5kz2m 2 года назад
울지 않는 호랭이 김득구다 !! 이영상을 보니 감회가 새롭습니다. 가슴이 뭉클 해오네요.
@sangmunoh4638
@sangmunoh4638 3 года назад
맨시니는 더 좋은 성적을 남길 수 있었지만 김득구 선수 경기 트라우마로 선수 수명이 짧아졌죠. 경기를 보면서 정말 둘 중 하나는 큰일 나겠다고 걱정했는데 안타까운 사고로 이어졌죠. 대한민국 최고의 파이터를 고르라면 저는 김득구 선수를 꼽습니다.
@user-oi6fg6sn5l
@user-oi6fg6sn5l 3 года назад
그것이 격투가들의 운명인듯 하오.
@qmffkdzkzktk5727
@qmffkdzkzktk5727 3 года назад
멘시니도 인간성이 올바른 사람이네요.
@gooloommm
@gooloommm 2 года назад
장정구 김태식
@huisungjeon6723
@huisungjeon6723 3 года назад
단순한 복싱경기가 아닌 목숨을 건 싸움이였죠. 김득구 선수는 단숨에 가난을 벗어날 최고의 기회이자 명예였고 멘시니 선수역시 절대 질수 없었던 강대강의 경기. 전세계 역대 최고의 경기중 하나였으나 두 선수에게는 안타까운 경기였습니다. 아드님이 잘 되서 다행입니다.
@user-cw4hc8rv6y
@user-cw4hc8rv6y 2 года назад
어떠한 언어로 나의 감정을 표현해야 할지 선뜻 나서지 못하겠으나 마음 저편에 가슴이 저려 눈시울이 적셔집니다
@user-yv1pk4mx9u
@user-yv1pk4mx9u 2 года назад
강대강은아니고
@metamoph4810
@metamoph4810 3 года назад
님은 세상을 떠나셨지만, 사실 그 모습은 그 시절 한국인들의 실제 삶이었습니다. 나라 전체가 가난에서 벗어나기 위해 피터지게 싸우는 그 모습 자체였조. 그래서 지금의 자랑스런 대한민국이 있게 되었습니다.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hanuseo5518
@hanuseo5518 Год назад
어릴때 이경기는 트라우마였는데. 아버지랑 같이 보면서~~. 눈물이 나네요. 내년이면 반백년인데. 이때 생각하면 지금도 마음이 아프고 눈물이 납니다.
@junhojeung4111
@junhojeung4111 3 года назад
너무 가슴이 아프지만 한국이 낳은 최고의 복서로 기억하겠습니다!! 아드님도 훌륭하게 성장하셨네요!!
@cityheronew1765
@cityheronew1765 3 года назад
서로 승리를 위해 싸워야 했든 두 사람 하지만 김득구의 죽음과 맨시니의 승리한 뒤에 죄책감에 마음 아프하고 김득구 선수의 아픔 사연 그리고 맨시니의 사연들이 잔잔한 감동을 주네요
@user-xf4pw5yz1y
@user-xf4pw5yz1y Год назад
82년 김득구선수의 눈물젖은 투혼을 보고 별밤에 투고를 올려서 상을 받았었는데.. 그때 mc였던.. 서세원씨가 내 투고를 읽어주다.. 끝에 감정이 겪해져 울먹이며 마지막으로 했던..그말이 40년이지난 지금도.. 아직도 귓가에 선합니다 " 멀리 이국에서 불꽃같은 투혼으로 장열하게 산화한 우리 김득구선수의 영원한 안식을 빕니다 "
@user-ru4in5of3w
@user-ru4in5of3w 3 года назад
복서로서 링위에서 후회없이 싸우다 죽었다 그의 죽음을 비운이라 말하지 말라 명예로운 죽음이다
@user-yk5fj2cj4o
@user-yk5fj2cj4o 3 года назад
울지않는 호랑이ㅠㅠ 당신을 영원히 기억하겠습니다ㅠㅠ
@user-vq3wh3bg1q
@user-vq3wh3bg1q 3 года назад
잘 싸웠다는 건 알았는데 이정도로 박빙의 명승부를 펼쳤다는건 몰랐어요. 안쓰럽고 자랑스럽고 멋있는 분이었군요
@zlmy80
@zlmy80 3 года назад
난 당시 중계봤는데 이길 수도 있겄다 생각했다..저 당시는 프로복싱이 엄청 호황기라 보는 내내 저런 선수가 한국에 있다는 거에 엄청 뿌듯했음..난 지금도 그당시 국내 중량급 최고의 선수라 말하고 싶다..극락왕생하였으리라 본다.
@user-kf1pt3bj2x
@user-kf1pt3bj2x 3 года назад
그 당시 대한민국 전체가 충격과 슬픔에 빠졌었죠 우리 엄마도 임신 중이라 어떻하냐고 걱정을 했었는데 훌륭히 잘 자랐군요 아버지처럼 멋진 사람일 거 같네요
@sangchulshin2037
@sangchulshin2037 3 года назад
지금 알게되니 살아있는 맨시니의 고통이 더 심했을꺼 같다..
@justice6580
@justice6580 Год назад
우리의 5~60년대 인생들은 가난과의 싸움이었지요 김득구 선수의 몇년 더빠른 선배 복싱인으로서 그의 투혼은 대한민국의 정신 그자체였습니다 부디 하늘에서 어머님과 함께 훌륭히 자란 아들의 모습을 지켜보고 있다고 느낍니다. 김득구 선수 영면하시길 기도합니다
@user-fo9lp9je7m
@user-fo9lp9je7m 3 года назад
이경기 보려구 손꼽아 기다려는데 그당시 생 방송 중계라고 했는데 MBC녹하 중계였다 벌써39년 지낫네요 그당시 김득구 어머님이 생각나네요 맘이 엄청아팠는데 세월이 후탁 지나가네요 유복자 치과의사 되엇다는 뉴스 보가 김득구 부인 절은 시절에 얼마나 맘 고생 했는지 알것 같네요 인생무상
@maybacheqs7559
@maybacheqs7559 3 года назад
나 이거 국민학교 5학년인가 그때 흑백티비로 봤음... 뉴스에 김득구선수 사망소식에 어린나이에도 얼마나 눈물나던지...
@user-dp2qq9mt2r
@user-dp2qq9mt2r 2 года назад
제가 유일하게 즐겨보는 스포츠가 복싱인데 아직도 저 당시 기억이 생생합니다. 아들이 잘 자라서 치과의사가 되었다고 하니 하늘에 계신 김득구선수께서도 환한 웃음을 짓고 계실거라 봅니다.
@user-re6nz4lq9h
@user-re6nz4lq9h 3 года назад
우리는 그가 얼마나 대단한 복서인걸 너무도 잘 압니다. 부디 좋은곳에서 잠들길 기도합니다.
@gyunro1573
@gyunro1573 3 года назад
멋진 아드님 ... 훌륭한 이룸을 축하 합니다~~ 제가 내년이면 환갑인데... 그 날이 어제 일처럼 선명 합니다. 약혼녀 이면서 복중에 아이를 잘 키우심을 두손으로 힘찬 박수를 보냅니다~~ 가족이 항상 행복 하시기를 기원 합니다. 하늘에서 김득구님이 환하게 웃으실 겁니다.. 제 마음에 따스함이 전해 오네요~~~
@jangoon4069
@jangoon4069 3 года назад
한국복서의 저력을 보여준 김득구선수. 고교때 천호상전에 다니던 김득구선수의 시합을 본적이있다. 물러서지않는 투지와 체력이 엄청났던 선수.쉴새없이 뻗는 주먹이 인상깊던 선수. 체급이달라 싸워보진 않았지만 분명 프로에서 KO율이 70%정도였다면 그당시의 라이트급은 다 씹어먹었을거라 장담한다.
@user-oz6wu2bj4b
@user-oz6wu2bj4b 2 года назад
김득구 선수가 천호상전 나왔군요. 지금에 위례...
@user-xz6lj1uo8j
@user-xz6lj1uo8j 2 года назад
와...진짜 주먹 한방한방에 거짓이없고 살기가 장난아니네...요즘 선수들은 절대 따라갈수없는 진짜 파이터네요!!
@user-kt2op6up2q
@user-kt2op6up2q Год назад
청소년 시절 이후 지금껏 이 경기만큼 나를 흥분시킨 경기는 없었다...이 패배에 너무나 슬펐다....나는 가난해서 라면만 먹고 운동해서 졌다고 생각했기에 가슴이 미어졌었다..... 죽었다는 소식에 그는 나의 영원한 영웅이 되었다.....그 투혼을 잊지 않을 것이다
@sunggonkim3989
@sunggonkim3989 3 года назад
군대생활때 내무반에서 전우들과 본기억이납니다 그때 다들 상대가되지않는 싸움이라고들했는데 그게 아니었습니다 지칠질모르는 불가능에 도전하는 김득구! 그를 사랑합니다 충성!!!
@newage3168
@newage3168 2 года назад
자타공인 대한민국 최고의 파이터 김득구 적지인 원정 경기에서 한치 꿀림도 없이 난타전을 주고받은 김득구 재수할때 봤던 경기니 벌써 40년이 가까이 되는군요 대한민국 최고의 복서 김득구 영원히 기억합니다
@user-ue4vk8gu2r
@user-ue4vk8gu2r Год назад
20살때 티비중계를 본게 엇그제 같았는데 나도벌써 60줄에 들어섰네요. 몆년전에 김득구선수 산소에 찾아가서 명복도 빌고했습니다. 반암리 해안가 도로 안쪽에 초라하게 있는 묘소를 보면서 불꽃같이 치열하게 살다간 인생을 안타까움과 존경심을 표하고 돌아왔습니다.
@ted5835
@ted5835 3 года назад
챔프는 챔프다.. 13라에 어떻게 저런 펀치러쉬를....... 그걸 끝까지 정신력으로 버텨내는 김득구 선수도..... 두분 다 존경스럽습니다.
@user-ky7gu5tt5h
@user-ky7gu5tt5h 3 года назад
이경기을 본사람 입니다.살아만 돌아 오라고 빌었는데,,,결국 내생에 최고멋진 투혼의 경기였다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user-pg7su6fh9w
@user-pg7su6fh9w 2 года назад
댓글을 쓰지 않을수 없네요 투혼의 화신인듯 최선을 다하는 경기는 어린저에게도 감동스러웠지만 그당시 복싱중계를 자주봐 흐름을 어렴풋이 알았던 맘으로는 초점이 흐려지는 눈. 힘없는 다리. 반대로 멘시니선수의 첼력과 지구력은 놀라울 정도ㆍ10회가 지나고서부터는 그냥 쓰러져 경기가 끝나거나 선수보호상 타올을 던져도 된다고 맘속으로는 다들 공감하면서도 한방이 터지겠지라는 기대료 진행되었던 안타까운 경기였죠ᆢ김득구선수는 어린 자녀도 있던걸로 보도두 되었는데ᆢ 김득구 선수 ㆍ 가족들 바라보며 천국에서 잘 있으리라 생각합니다ㆍ
@user-iv5cm7ln6d
@user-iv5cm7ln6d 3 года назад
우리김득구 선수 정말 너무 멋쟈요 진짜 멋진선수 세계챔피먼 김득구 입니다
@jimmykim3
@jimmykim3 3 года назад
제가 본 복싱중 최고의 경기중 하나 였습니다, 사자와 한국 호랑이의 싸움 이었습니다, 득구 선수 본인도 후회 없는 싸움 이었을 거라고 생각 함니다, 다만 득구 선수의 사망 이후 김 선수의 어머니가 행복하지 못한 생을 마감 하산거 같아 안타까웟던 기억이 있습니다, 링에서의 그 모습은 영화 제목처럼 울지 않는 호랑이 그대로 였습니다, 오랜 세월이 지났지만 다시 한번 그의 명복을 빕니다
@user-rx1vq4gz5o
@user-rx1vq4gz5o 3 года назад
첫글부터 끝글까지 흠이 하나도 없으십니다
@user-sy1cs8jw9g
@user-sy1cs8jw9g 2 года назад
역시 한국인은 전쟁을 즐기는 민족이다 절대로 싸움을 두려워 하지않는다 대한민국을 위하여 싸우고 또 다시 싸우자 대한민국에 도전은 죽음 뿐이다
@srlee59
@srlee59 3 года назад
내 기억에 영원히 남을 승부였습니다. 고 김득구 선수를 생각할 때마다 가슴이 미어져 왔는데... 그 아드님이 의사가 되었다니 정말 내 일처럼 기쁘군요. 훌륭한 아버지의 피를 물려 받았으니 훌륭한 의사 선생님이 되어 이 사회를 밝히는 큰 인물이 될거라고 확신합니다. 자랑스럽습니다. 그리고 이처럼 훌륭하게 키우신 어머니에게도 존경한다는 말씀을 전하고 싶습니다.
@subbuilder3563
@subbuilder3563 3 года назад
너를 기억한다. 우선 아까운 나이에 일찍 링위에서 죽어서. 그리고 그이름이 좀 유별나서. 김득구 명선수 맞다. 자랑스럽다.
@user-br7ph6dn8q
@user-br7ph6dn8q 3 года назад
그 당시 경기 생각 납니다. 안타까운 경기였으나 김득구 선수의 정신력과 맨시의 맵집은 대단했던거 같아요. 김득구 선수의 아들이 잘 자라 치과의사라니 좋은 소식입니다.
@heechoahn2769
@heechoahn2769 3 года назад
김득구 맨시니 둘다 휼륭한 선수였음. 홀로 아들을 키운 김득구선수의 미망인도 아들도 다 휼륭한 분이다. 다들 행복하시길.
@user-sk9ct1yp6n
@user-sk9ct1yp6n 3 года назад
김득구.한국아니 세계최고의 복서였다 가난과 바꾼복싱.그걸 이기고 화려한 생을 꿈꾸며 노력했지만 오호통재라.복서로서 최고의 경기를 남기고 그는 이별했지 만 그의 경기는 복싱사에 영원히 남을것이다 최고 best boxer 잘가세요
@user-bt7wd8cy8y
@user-bt7wd8cy8y 3 года назад
이경기 이후 프로복싱은 12라운드로 단축되고. 레프리 판단 TKO 를 늘려서 선수 보호에 노력하게 됩니다.
@user-xy1oc8ij9x
@user-xy1oc8ij9x Год назад
새벽에 영상을 보고 있는데 내내 눈물이 너무 흘러서 결국 펑펑 울었습니다 내가 살아온 인생도 슬프고 명복서의 명경기에 대한 아픔도 크고 자랑스런 대한민국의 민족 정신도 감동적이고 등등등 헤아릴 수 없는 많은 것들이 뇌리를 스치며 펑펑 울게 만들었네요 대한민국의 산업화를 이끌어 내신 애국 어르신들께도 감사합니다는 말을 남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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