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모로 유명한 베트남의 마지막 황후 남프엉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물론 다 그런 것은 아니지만 영국 다이애너비의 동양 버전같다는 생각이 들게 하는 부분도 있습니다. 부와 미모와 지성, 모든 것을 갖춘 황후였지만 49세로 마감한 그녀의 삶에는 뭐라 설명하기 힘든, 슬픔과 쓸쓸함이 있습니다.
역시 부자는 전쟁통에도 평화롭게 사는구나.. 저시절 일반 국민은 전쟁으로 배곪고 하루하루 지옥으로 살다 죽고 해도.. 태생이 부자여서 프랑스에 가서 호화저택에서 조용이 꽃 가꾸고 책읽는 하루를 보내며 살고...사후에는 사람들이 좋게 기억해주고 ㅎ..인생이 참 온실속 화초같은 사람이네
온실 속 화초라니 말도 안되는 생각입니다 폐위당한 왕비가 홀로 자식들의 미래를 위해서 얼마나 고민하고 힘들어 했을까 싶은데 입장을 바꿔 생각을 해보세요 권력찬탈자가 장악한 나라 안에 여자가 자식들 데리고 거주하고 있는 것인데요 언제 어떻게 정치상황에 변수가 생겨서 어떤 방식으로 목숨을 잃을지도 모르는 겁니다 새로 들어선 정권의 입맛대로 활동해주러 떠난 남편을 제어하는 수단.. 인질로서 베트남 국내에 자식들과 남아있을 수 밖에 없었을텐데.. 영상 내용에 바람 난 남편의 내연녀에게 보냈다는 편지내용이나 결국 본인과 자식들의 목숨과 재산을 지켜내고 프랑스로 가서 살 수 있었던 것을 보면 정말 똑똑하고 지혜로운 여자라는 생각이 드네요
재력과미모, 교양를 다 가진 베트남의 황후가 남편의 바람기에도 끝까지 황후로서의 품위를 지키며 삶을 산것에 존경심을 표합니다. 아마도 왕인 남편이 평소에도 재력과미모, 교양을 다 갖춘 황후에 대해 주눅이 들었을꺼라는 생각이 듭니다. 왕의 자리에서 물러난후에는 더이상 황후에게 내세울것이 없어서 돌아가지 못했을꺼라는 생각도 드네요. 남프엉이 프랑스에서 미모와 재력으로 맘대로 살 수도 있었을텐데도 끝까지 품위를 잃지 않은것에 정말 대단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솔직히, 왕족도 결혼을 귀족하고 하거나 부자들하고 한 사람 부럽지 않다. 살아보니, 내 셩정대로 내 의지대로 뭔가를 이뤄내면서 하루하루 사는 삶이 좋더라. 다른 타인이 인정하고 미모네, 부자네, 대단하네...하는 말, 다 필요없다. 그저, 내가 태어난 삶이 충실하며... 재밌게 내가 하고픈 의지를 가지고 독립적으로 이끌어가는 삶이 제일 잘 사는 삶이더라.. 50넘으니, 더욱 분명해진다. 누구에게 인정받고 사랑받고...그런거 보다, 내가 내 스스로를 아끼는 삶이, 좋은것이라는!
@@choichoice129 여자도 하이퍼가미(상승혼) 속성이 있는 게 사실이잖아요? 게다가 남자들이 아내를 떠받들어야 한다고 계속 가스라이팅. 이제는 여자가 우월한다는 페미니즘 헛소리까지 떠들죠. 그러니 바쁘게 사는 남편들 몰래 다른 남자 만나는 여자들이 부지기수. 친자 불일치율 세계 1위가 대한민국이죠~
슬픈인생을 살았네요..., 여자는 결혼과 동시에 새삶을 산다고 하지요.... 부모복 보다 남편복이 없었음에도 존경받을만한 삶은 살았지만, 같은 여자로서 마음이 씁쓸하군요.... 다른 남편을 만났더라면 더 행복한 삶을 살수있지 않았을까요? 프랑스에서 유학했다해도 고국은 아니라..., 속마음을 터놓고 지낼만한 친구라도 몇있었더라면 위로가 되었을텐데..., 💔💔
@@개시키 명성황후가 시해당한 이유는 일본 침략야욕이 좌절되자 일본을 강력하게 막고 있었던 명성황후를 시해한것이라고 일본기록에도 있다 명성황후는 일본군 주둔을 강력하게 막고 있었고 조선정치가중 가장 일본에 방해되는 인물이라서 시해당한거다 일본이 아무이유도 왕비를 죽이진 않아
영상 잘 봤습니다^^ 예전부터 베트남에 굉장한 미인인 마지막 황후가 있었다는 건 알고 있었는데 자세한 스토리는 이번에 처음 알았네요. 저 시대엔 성형은 당연히 없었을 텐데 지금 기준으로 봐도 상당히 세련된 미인이네요. 전신 샷을 보면 심지어 키도 당시 여성으로선 꽤 커 보이고 체형은 가늘고 팔다리도 길고 가늘어요. 그녀를 제외하고 생전에 황후 칭호를 받은 사람은 누군가 했더니 그건 초대 황제의 정비랍니다. 아무래도 초대라는 상징성 때문에 황권 강화 차원에서 바로 황후로 봉한 거 아닌가 싶어요. 다만 개인적인 삶이 그렇게 행복하지만은 않았네요. 남편이 처음에는 죽어라 쫓아다녀서 결혼했는데 성격이나 가치관이 맞지 않아 결국 소원해지고 남편은 다른 부인 들이고... 참고로 당시엔 바람은 아니었을 겁니다. 일부다처제가 합법이고 남편은 원하는 여인은 모두 취할 수 있는 황제였으니 후궁 들이는 건 남편만 원한다면 합법이었을 거에요. 하지만 끝내 장례식장에도 나타나지 않았다는 점에서 그녀에 대한 마음이 완전히 식어버렸다는 것을 알 수 있네요... 비슷한 예로 오스트리아의 시씨 황후가 생각나네요. 유럽 최고 미녀로 이름 높았었고 남편이 귀족 치고는 한미한 집안이라 그다지 그녀를 탐탁치 않아 하는 어머니를 설득해서 기어이 결혼했는데 막상 결혼하고는 고부 관계, 남편과의 성격 차이 등으로 소원해지고 남편은 다른 여인 찾고 그다지 행복하지 못하게 살다 갔다는 점에서요. 이런 거 보면 타고난 외모와 신분(재력)만이 전부는 아니군요...
긴 댓글 감사합니다. ^^ 이 황후의 삶은 지금도 여러 모로 생각하게 하는 부분이 있습니다. 부족한 것이 없이 다 가졌는데 제가 보기에는 가슴에 한이 맺혀 병에 걸려 죽은 것같습니다. 프랑스에서 선진 교육을 받은 여인에게 달리 선택할 수 있는 것이 없는 황후의 삶은 불공정하기 짝이 없었으니까요. 오히려 프랑스 귀족하고 결혼했으면 마음에 맞지 않으면 이혼하고 재혼하는 것도 한 가지 선택이 될 수 있었을 것입니다. 그리고 바오 다이의 여자들은 후궁이 아니라 정부가 맞는 것이 왕실에서 후궁으로 들인 것이 아니라 말 그대로 폐위된 후에 여기 저기 돌아다니며 여러 여자와 관계를 가진 것이니까요.
@@user-remember777 처음 알았으면 님이 그건 역사 공부를 제대로 하지 않았다는 뜻입니다. 근대화 이전에는 일부다체제가 거의 합법이었어요. 동서고금을 막론하고요. 간혹 고려처럼 겉으로는 일부일처제를 표방하기는 했으나 고위직 남자들은 다들 딴 살림 차리는 경우가 많았죠. 오늘날 DB화되어서 관리하는 세상에서도 딴짓 하는 남자들 많으니까요. 님 고려 시대 충혜왕이랑 조선 시대 연산군이 누구였는지는 알아요? 폐비 윤씨 사건은 뭔지 아세요? 그런데 일부다처제가 뭔지 역사 조금만 공부해 보시면 이게 사실은 남자들 좋으라고 만들어진 법이 아니라 여자를 보호하기 위해 만들어진 법이였다는 걸 알게 되실 겁니다. 오늘날에는 고위직에 오르는 여자들도 많아요. 그게 왜라고 생각하세요? 태생적으로 여자는 육체적으로 남자보다 약할 수밖에 없어요. 과거 근대화 이전 전쟁과 샤낭이 주요 생계 수단이었을 수밖에 없었을 수 때 왜 일부다처제가 생겨났는지 역사 조금만 공부해 보시면 금방 이해하게 되실 겁니다. 전쟁과 사냥이 지배하던 시절에는 남성 사망률이 굉장히 높았거든요. 그런데 근대화 이전, 그러니까 공부해서 자신의 능력을 입증할 수 았게 되기 전까지, 육체 노동으로 생계를 이어나갈 수 밖에 없었을 때, 여자가 남자 없이 산다는 것은 몸 팔아서 먹고 살 수밖에 없었다는 걸 금방 아시게 되실 겁니다. 그 시대에 벼슬 나가는 남자들도 전체의 0.1%에 불과했는데 육체 노동으로 여자가 먹고 살 수 있었을까요? 성폭행당할 주막집 여주인이랑 천민 신분인 무당이나 노비 말고요. 궁녀는 모두 왕이랑 혼인한 것으로 간주하니 남자가 있는 직업이었다고 치고요. 지금 님은 뭐 해서 먹고 살아요? 비꼬는 거 아니고 작은 일이라도 합법적으로 사무직으로 일해서 먹고 사시나요? 남자들에 의해 만들어진 법이 일부다처제가 아닙니다. 서모 취수제, 형사 취수제가 왜 생겼는지 역사 조금만 공부해 보십시오. 님이 역사 조금만 공부해 보시면 이게 오늘날 잣대로 공부하기에는 막장 같아 보이지만 과거에는 왜 시행되었는지, 여자가 남자 없이 살면 할 수 있는 일이 몸 파는 일밖에 없었다는 것을 금방 이해하게 되실 거니까요. 전 님이 그렇게 이야기하는 것 자체가 역사 공부가 부족한 것 같아 이해가 안 가네요.
님 아빠가 엄마말고 부인을 7명 정도 데리고 살았다고 생각해 보세요. 엄마가 참 행복한 삶을 살았다고 할수 있겠습니까? 6.25때 죽어나간 사람 생각 하면 복에 겨운 삶이라고 일침 놓을수 있어요? 불행을 수치화 한다는게 참 미련한 겁니다. 원래 사람은 남의 중병보다 자기 손톱밑에 거스러미가 더 아픈 법이예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