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용과 자비, 사랑 모 든 것 들 을 포 용 한 다 이 말이 가슴에 닿아 눈물이 납니다. 포용하고 자비롭게, 진짜 사랑을 하고 싶었는데 제가 가진 잣대와 세상의 관념에 가로막혔던 것을 뼛속 깊이 뉘우칩니다. 새롭게 다시 태어나는 심정으로 받아들임합니다. 그래서 들어서 아는 것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심안이 깨어나야한다고 하는 말에 깊이 공감합니다.
허수인 내가 없으면 세상도 없다. 허수인 내가 있어야 세상도 있다. 세상이 있으려면 반드시 허수인 나가 존재해야만 한다. 참 나는 인식하지 못할 뿐 존재하며 태어난 적도 없고 죽을 수도 없다. 이때 허수인 나, i가 등장하며 의식이 탄생한다. 나 가 등장하며 너도 등장하고 세상도 즉시 등장한다. 이원성의 시작이다. 에고의 탄생이다. 내가 세상 그 자체이다. 나는 모든것이다. 모든 것은 나이다. 따라서 나, 너 구분이 없다. 나, 너 구분이 없으므로 우리는 근원의식인 하나다. 나의 소망과 나는 둘이 아닌 하나다. 내가 생각하는 미래에 소망이 이루어진 나 는 지금 여기에서 미래의 소망을 상상하고 바라는 나 와 공간적, 시간적으로 분리되지 않은 하나다. 영원한 지금여기의 근원의식에 인식되어진 같은 상일 뿐이다. 결국 하나다. 내가 소망 그 자체이다. 내가 소망일까? 믿기지 않아. 라는 생각이 지금의 당신이다. 그러니 그대로 이루어져서 당신은 당신의 소망을 바라만 보고 누리지 못한다. 노력하면 언젠가 되겠지라는 믿음대로 당신이 늙어서 이루어질 수도 있다. 당신이 믿는 것은 곧 당신이 된다. 당신이 부정성을 믿는 만큼 그대로 부정성이 당신이 된다. 당신이 가능성을 허용하지 못하는 만큼 성공은 멀어진다. 당신이 지금 곧장 당신과 당신이 바라는 소망은 하나다 라고 믿으면 영원한 지금여기속 당신의 현실에서 당신의 소망은 이루어진다. 제일 제일 중요한 사실은. 당신이 믿든, 믿지 않든, 지금 당신의 믿음이 곧 지금 당신의 삶이고. 때문에 당신은 지금 당장 세상이 될 수도, 세상 속에 존재하는 아주 작은 존재인 지금의 당신이 될 수도 있다. 지금 여기는 무한하며 영원하다. 그러므로 영원한 지금여기에만 존재하는 당신이 무엇을 믿는가는 당신의 선택이다. 자유의지는 우주에서 가장 중요한 권리이기 때문에 무한한 지금 여기에서 당신의 선택 권한은 무한하며 영원하다. 당신은 언제든지 선택할 수 있다. 소망과 하나가 된 당신을 믿든, 믿지 않든 믿은 그대로 이루어질 것이다. ㅡ성경ㅡ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너희가 바라고 구하는 것이 무엇이든 이미 받은 줄로 믿으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그대로 이루어질 것이다. ㅡ마가복음 11장 24절ㅡ
빅쿠들이여, 나는 세상의 끝을 발로 걸어가서 알고보고 도달할 수 있다고 말하지 않는다. 빅쿠들이여, 그러나 나는 세상의 끝에 도달하지 않고서도 괴로움을 끝낸다고 말하지도 않는다. 이렇게 말씀하신 뒤 세존께서는 자리에서 일어나서 거처로 들어가셨다. 세존께서 들어가신지 오래지 않아서 빅쿠들에게 이런 의논이 생겼다. 벗들이여, 세존께서는 우리에게 빅쿠들이여, 나는 세상의 끝을 발로 걸어가서 알고보고 도달할 수 있다고 말하지 않는다. 빅쿠들이여, 그러나 나는 세상의 끝에 도달하지 않고서도 괴로움을 끝낸다고 말하지도 않는다. 라고 간략하게 개요만 말씀하시고 상세하게 그 의미를 분석해 주시지 않고 자리에서 일어나 거처로 들어가셨습니다. 세존께서 이처럼 간략하게 개요만 말씀하시고 상세하게 그 의미를 분석해 주시지 않았는데 누가 참으로 그 의미를 상세하게 분석해 줄 수 있겠습니까? 그러자 다시 빅쿠들에게 이런 의논이 생겼다. 아난다 존자는 스승께서 칭찬하셨고, 지혜로운 동료 수행자들이 존중합니다. 세존께서 간략하게 개요만 말씀하시고 상세하게 의미를 분석해 주지 않으신 것을 아난다 존자가 참으로 상세하게 그 의미를 분석해 줄 수 있을 것 입니다. 이제 우리는 아난다 존자에게 다가가서 이 의미를 질문합시다. 그래서 아난다 존자가 우리에게 설명해 주는 대로 그렇게 새깁시다. 벗 아난다여, 세존께서는 빅쿠들이여, 나는 세상의 끝을 발로 걸어가서 알고보고 도달할 수 있다고 말하지 않는다. 빅쿠들이여, 그러나 나는 세상의 끝에 도달하지 않고서도 괴로움을 끝낸다고 말하지도 않는다. 라고 간략하게 개요만 말씀하시고 상세하게 그 의미를 분석해 주시지 않고 자리에서 일어나 거처로 들어가셨습니다. 아난다 존자가 말씀하셨다. 벗들이여, 예를들면 속재목이 필요하고 속재목을 찾는 사람이 속재목을 탐색하여 돌아다니다가, 속재목을 가지고 튼튼하게 서 있는 큰 나무의 뿌리와 줄기를 제쳐놓고는 잔가지와 잎사귀에서 속재목을 찾아야겠다고 사유한다고 합시다. 지금 벗들에게도 이런 일이 벌어졌습니다. 스승께서 면전에 계셨음에도 불구하고 그분 세존을 제쳐놓고 제게 이 의미를 물어야겠다고 판단하고 있습니다. 벗들이여, 참으로 그분 세존께서는 알아야 할 것을 아시고 보아야 할 것을 보는 분이시며, 우리의 눈이 되시고, 지혜가 되시고, 법이 되시고, 으뜸이 되시며, 사성제를 말씀하시는 분이시고, 오래 진리를 꿰뚫으시면서 선언하는 분이시고, 의미를 밝히는 분이시고, 죽음없음을 주는 분이시며, 법의 주인이시며, 여래이십니다. 그러므로 그대들은 그때 바로 세존께 다가가서 이 의미를 질문했어야 했습니다. 그때가 적절한 시기였습니다. 벗들이여, 그렇다면 이제 그것을 들으십시오. 듣고 가슴에 잘 새기십시오. 나는 설명할 것입니다. 아난다 존자는 이렇게 말했다. 벗들이여, 세존께서는 빅쿠들이여, 나는 세상의 끝을 발로 걸어가서 알고보고 도달할 수 있다고 말하지 않는다. 빅쿠들이여, 그러나 나는 세상의 끝에 도달하지 않고서도 괴로움을 끝낸다고 말하지도 않는다. 라고 간략하게 개요만 말씀하시고 상세하게 그 의미를 분석해 주시지 않고 자리에서 일어나 거처로 들어가셨습니다. 벗들이여, 세존께서 간략하게 개요만 말씀하시고 상세하게 그 의미를 분석해 주시지 않은 것을 저는 이렇게 이해합니다. 벗들이여, 이 세상에서 세상을 인식하는 자와 세상을 지각하는 자는 그 어떤 것을 통해서 인식하고 지각하는데, 그것을 두고 성자의 율에서는 세상이라 말합니다. 벗들이여, 그러면 어떤 것을 통해서 이 세상에는 세상을 인식하는 자가 있고 세상을 지각하는 자가 있습니까? 벗들이여, 눈을 통해서 이 세상에는 세상을 인식하는 자가 있고 세상을 지각하는 자가 있습니다. 귀를 통해서, 코를 통해서, 혀를 통해서, 몸을 통해서, 마노(정신기관)를 통해서 이 세상에는 세상을 인식하는 자가 있고 세상을 지각하는 자가 있는데, 이것을 성자의 율에서는 세상이라 말합니다. 빅쿠들은 다시 세존께 가서 아난다 존자는 이러한 형태와 이러한 단어들과 이러한 문장들로 그 의미를 잘 분석해 주었다고 말했다. 세존께서 말씀하셨다. 빅쿠들이여, 아난다는 현자다. 빅쿠들이여, 아난다는 큰 통찰지를 가졌다. 만일 그대들이 나에게 다가와서 이 의미를 물었다면 나도 그와 같이 설명했을 것이다. 아난다가 설명한 것이 바로 그 의미다. 그러니 그대들은 그것을 잘 새겨야 한다. 상윳따니까야 세상의 끝에 도달함 경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