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트남전 에서도 한국군이 베트남 어린이와 여자들 일가족 몰살은 물론 온마을을 몰살시킨게 한두개가 아니라 아직도 인정하지 않고 사과도 안하고 있음 일본 욕할거 하나도 없음 한국도 똑같음 베트남 입장에선 외세를 물리친 자주독립전쟁 통일전쟁을 했을 뿐이고 미군이나 한국군은 엄연한 자국의 영토를 침략한 침략군임
기회가 된다면 ᆢ전쟁같은 상황이 온다면 우리가 ᆢ 내가 ᆢ 일본진영에 투입되서 최후에 한 놈까지도 몰살시킬것입니다 ! 지금의 정치인들ㆍ옛날에 임금의 귀를 현혹시키는 기생충들이 있었기에 ᆢ민중들은 관심이 없고 지들 자리차지만 앞세우는 것들때문에 한국이 이 꼴 저꼴나는 것이지요
식민지배의 피해국인 대한민국을 분단시킨 넘들은 누구일까요? 나찌 독일이 아닌 프랑스가 분단됐나요?. 지금이라도 구교도와 신교도로 나누거나, 정통이네 이단이네, 악마교네 하며, 까톨릭 개독교 불교 등으로 진영 갈라 전쟁 일으키면 또다시 동족들 죽고 죽이는 겁니다. 집안 내에서 서로 잡아 죽이는 꼴 재미있죠.. 남들 보기엔 우습지..
우리의 후손들에게 명확한 역사를 가르쳐 줘야할 의무가 기성세대에겐 있을것이며, 다시는 이러한 역사의 비극이 없도록 나라의 힘을 키울 뿐만 아니라 정치꾼들의 올바른 정치 행보가 그릇되지 않도록 현명한 외교를 하길 바랍니다. 또다시 역사의 대역죄인이 되지 않기를... 역사는 반드시 심판이 있기 때문입니다
빨갱이들의 만행 영광군 피살자 名簿를 보면 사망일시가 1950년 6월에서 1951년 2월까지 분포돼 있다. 영광에 인민군이 진입한 시기는 1950년 7월23일이다. 인민군이 진입하기 전에도 빨치산 등 토착 좌익에 의한 학살이 자행됐음을 알 수 있다. 빨치산이 완전 토벌된 때는 1951년 2월20일이다. 여성 피살자 1만5956명 가운데 1만3946명이 전남 지역에서 피살됐다. 피살자가 집중된 전남 지역에서도 특히 靈光郡(영광군)의 피해가 가장 컸다. 전남 지역 피살자 4만3511명 중 절반에 가까운 2만1225명이 영광군에서 피살됐다. 영광군에는 좌익들에 의해 일가족이 몰살한 경우가 많다. 영광축산업협동조합 백종옥 전무는 4촌 이내 일가 26명이 좌익들에게 학살당한 가운데서도 天佑神助(천우신조)로 살아났다. 바로 손위 형(종인)도 운 좋게 목숨을 부지할 수 있었다. 학살당한 일가친척 중 성인은 15명이고 어린이가 11명이다. 학살로 잃은 직계 가족은 양친 부모님과 형님 두 분, 누님 두 분이다...
임진왜란당시 선조실록에 보면 왜군의 반이 조선백성이었다는 기록이 있다.조선은 동족을 노예로 부린 인류사에 유례가 없는 노예국가였다. 노예는 사고팔고 매매 됐으며 대물림 되었고 맘대로 노예를 죽일수 있었다. 이순신 덕분에 조선백성들이 노예로 400년을 더 고통 받았다. 일본에의해 노예해방될 당시 조선백성의 70프로가 성이 없었다고한다.노예들의 이름은 개똥이 등으로 불렸다. 또한 일제시대가 조선시대보다 훨씬 살기좋았다...
일본은 부족간의 대결 전투가 너무나 오래동안 있었고, 잔혹한 학살이 있었기에 한국에게 또한 똑같은 잔인함을 했고, 더 나아가 2차대전때에는 중국인 학살, 싱가포르인 학살, 미군 포로에게 했던 극강의 잔인함, 심지어 인육을 먹기도 했죠. 그런데 그런 잔인한 일을 했던 일본제국의 대본영의 지휘관 쓰지 마사노부은 패전 후 숨어 있다가 공소시효 끝나고 나타나 중의원, 또 참의원까지 당선 되고 영웅까지 되어 동상도 있습니다. 지금 일본은 주일미군이 있어 민주주의 하는 척하는 것이지 주일미군 철수하면 순식간에 중공 북한 처럼 변신할 겁니다.
항상 나라위해 힘없는 민중을 위해 싸웠던 장군들은 처참하게 역모로 몰리거나 귀향으로 ᆢ 쓸쓸히 여생을 마감한 분들이 계시는거에 비해 ᆢ 저 친일파같은 정치놈들은 세치혓바닥으로 임금의 귀를 꼬셔 나라망치게 한 기생충들이었지 ᆢ 기회가 된다면 일본과 전쟁이 발발하게 되고 일본진영에 우리가 ᆢ내가 ᆢ들어가 최후에 한 놈도 빼놓지않고 몰살시키겠습니다 ! 기회만 주신다면 ᆢ!
빨갱이들의 만행 영광군 피살자 名簿를 보면 사망일시가 1950년 6월에서 1951년 2월까지 분포돼 있다. 영광에 인민군이 진입한 시기는 1950년 7월23일이다. 인민군이 진입하기 전에도 빨치산 등 토착 좌익에 의한 학살이 자행됐음을 알 수 있다. 빨치산이 완전 토벌된 때는 1951년 2월20일이다. 여성 피살자 1만5956명 가운데 1만3946명이 전남 지역에서 피살됐다. 피살자가 집중된 전남 지역에서도 특히 靈光郡(영광군)의 피해가 가장 컸다. 전남 지역 피살자 4만3511명 중 절반에 가까운 2만1225명이 영광군에서 피살됐다. 영광군에는 좌익들에 의해 일가족이 몰살한 경우가 많다. 영광축산업협동조합 백종옥 전무는 4촌 이내 일가 26명이 좌익들에게 학살당한 가운데서도 天佑神助(천우신조)로 살아났다. 바로 손위 형(종인)도 운 좋게 목숨을 부지할 수 있었다. 학살당한 일가친척 중 성인은 15명이고 어린이가 11명이다. 학살로 잃은 직계 가족은 양친 부모님과 형님 두 분, 누님 두 분이다.//
임진왜란당시 선조실록에 보면 왜군의 반이 조선백성이었다는 기록이 있다.조선은 동족을 노예로 부린 인류사에 유례가 없는 노예국가였다. 노예는 사고팔고 매매 됐으며 대물림 되었고 맘대로 노예를 죽일수 있었다. 이순신 덕분에 조선백성들이 노예로 400년을 더 고통 받았다. 일본에의해 노예해방될 당시 조선백성의 70프로가 성이 없었다고한다.노예들의 이름은 개똥이 등으로 불렸다. 또한 일제시대가 조선시대보다 훨씬 살기좋았다.,,
빨갱이들의 만행 영광군 피살자 名簿를 보면 사망일시가 1950년 6월에서 1951년 2월까지 분포돼 있다. 영광에 인민군이 진입한 시기는 1950년 7월23일이다. 인민군이 진입하기 전에도 빨치산 등 토착 좌익에 의한 학살이 자행됐음을 알 수 있다. 빨치산이 완전 토벌된 때는 1951년 2월20일이다. 여성 피살자 1만5956명 가운데 1만3946명이 전남 지역에서 피살됐다. 피살자가 집중된 전남 지역에서도 특히 靈光郡(영광군)의 피해가 가장 컸다. 전남 지역 피살자 4만3511명 중 절반에 가까운 2만1225명이 영광군에서 피살됐다. 영광군에는 좌익들에 의해 일가족이 몰살한 경우가 많다. 영광축산업협동조합 백종옥 전무는 4촌 이내 일가 26명이 좌익들에게 학살당한 가운데서도 天佑神助(천우신조)로 살아났다. 바로 손위 형(종인)도 운 좋게 목숨을 부지할 수 있었다. 학살당한 일가친척 중 성인은 15명이고 어린이가 11명이다. 학살로 잃은 직계 가족은 양친 부모님과 형님 두 분, 누님 두 분이다...
임진왜란당시 선조실록에 보면 왜군의 반이 조선백성이었다는 기록이 있다.조선은 동족을 노예로 부린 인류사에 유례가 없는 노예국가였다. 노예는 사고팔고 매매 됐으며 대물림 되었고 맘대로 노예를 죽일수 있었다. 이순신 덕분에 조선백성들이 노예로 400년을 더 고통 받았다. 일본에의해 노예해방될 당시 조선백성의 70프로가 성이 없었다고한다.노예들의 이름은 개똥이 등으로 불렸다. 또한 일제시대가 조선시대보다 훨씬 살기좋았다...
빨갱이들의 만행 영광군 피살자 名簿를 보면 사망일시가 1950년 6월에서 1951년 2월까지 분포돼 있다. 영광에 인민군이 진입한 시기는 1950년 7월23일이다. 인민군이 진입하기 전에도 빨치산 등 토착 좌익에 의한 학살이 자행됐음을 알 수 있다. 빨치산이 완전 토벌된 때는 1951년 2월20일이다. 여성 피살자 1만5956명 가운데 1만3946명이 전남 지역에서 피살됐다. 피살자가 집중된 전남 지역에서도 특히 靈光郡(영광군)의 피해가 가장 컸다. 전남 지역 피살자 4만3511명 중 절반에 가까운 2만1225명이 영광군에서 피살됐다. 영광군에는 좌익들에 의해 일가족이 몰살한 경우가 많다. 영광축산업협동조합 백종옥 전무는 4촌 이내 일가 26명이 좌익들에게 학살당한 가운데서도 天佑神助(천우신조)로 살아났다. 바로 손위 형(종인)도 운 좋게 목숨을 부지할 수 있었다. 학살당한 일가친척 중 성인은 15명이고 어린이가 11명이다. 학살로 잃은 직계 가족은 양친 부모님과 형님 두 분, 누님 두 분이다...
널리 알려서 후손의 알려주시고.. 제발.. 우리나라가 내적으로 붕괴되지 않도록 서로 단합, 화합하면서 힘을 합치도록 해야합니다. 지금처럼 여야의 끄없는 논쟁을 끊어 버리도록 제도 개선해서.. 건설적인 비판이 되었어면 좋겠네요! 일본차를 타고 다니는 분들 이왕이면 국산 고급차를 사세요! 애국이 달리 애국아닙니다.
먼저,그전에 100만대군양병설씹고 왜가 쳐들어올거라고 경고했음에도 씹어버린 그당시 개놈들에게 분노하고 다신 적들이 우리나라에 쳐들어올 생각 못하게 국방과 국력에 힘써야하겠다는게 옳은 생각 아님??? 서로 죽이고 죽이는 약육강식의 세상에서 멍청하게 있는 것은 남에게 저좀 잡아드세요 라는 말과 같은거 아님???
학창시절에 역사공부를 하면서 처음에는 일본에 대한 증오심과 적개심을 가졌으나 나중에는 일본보다 무능했던 군주와 신료들이 더욱더 미워졌다 살면서 생각도 달라졌다 아마 대한민국 국민이라면 숙명처럼 가져야 될 반일이라는 트라우마에 벗어나 극일을 해야 한다는 것을 요즘 일부 정치인들이 정치적 셈으로 반일감정을 이용하는데 개인적으로는 굉장히 못마땅하게 생각한다
부산 진구 부전동에 송상현 광장이 있고 그 분의 동상과 함께 글이 있지요. 깔끔하게 잘해놓아서 좋은 공원이 되었음. 여러분이 알고 계신 임진왜란 위인 중에 곽재우와 같이 성을 버리거나 돕지 않은 자들이 꽤 있지요. 특히 제2차 진주성 전투에서 황진장군을 버린 자들이 위인이라 칭송 받는게 역겨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