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신부님. 라트비아에 대한 상식과 함께 백만송이 장미를 배경으로 한 민중노래에 대해 잘 배우고 갑니다. 저희나라도 오래전부터 구전민요가 끼치는 영향은 대단했는데..음악은 어떤 것보다 강한 힘을 가지고 있는 듯 합니다. 서태지의 Come back home 을 듣고 방황하는 길거리 많은 청소년들이 집으로 돌아 갔다고 하는 전설적인 이야기도 있구요 대중가요,클래식,민요등을 막론하고 음악이 역사에 끼치는 영향은 대단한 것 같아요.ㅎ 감사합니다
확실히 '백만송이 장미' 라는 곡은 대단했기에, 많은 나라에서 다양한 가사와 곡으로 재탄생 하게 된 것 같습니다. 세상에 있는 모든 '백만송이 장미' 노래를 이 영상에서 다루진 않았지만, 한결 같이 사랑을 주제로 노래를 부르는 것은 공통적인 것 같습니다. 댓글 남겨주심에 감사드리고 평안한 하루 되세요.
라트비아, 리투아니아, 에스토니아 이 세 나라를 우리는 발트 3국이라고 부릅니다. 이들은 오랜 기간 러시아 식민지로 있다가 2차 대전이후에 독립국가가됩니다. 1차 대전과 2차 대전 사이 베르사이유 조약에 따라 잠깐 독립국가였든 적이 있습니다. 유럽의 북쪽에 있어 한겨울이면 어둡고 음침한 날씨가 계속되며 백야 현상도 볼수 있고 러시아 처럼 추운 겨울을 겪을 수 있습니다. 이 나라는 지평선이 보이는 넓은 평야에 위치하여 수많은 외적의 침입을 받았고 바로 옆에 존재하는 거대한 제국 러시아에 의해 수없이 짓밟힌 슬픈 역사를 지니고 있습니다. 백만송이 장미라는 노래로 번역된 이 노래가 사실은 러시아가 아니라 라트비아 노래라는 것에 그리 놀라지 않았습니다. 프랑스제국과 독일 제3제국에 짓밟혀 수백만 수천만의 러시아인들이 희생된 전쟁을 치룬 것처럼 이들 발트 3국의 역사도 슬픔과 눈물로 얼룩진 그런 것입니다. 발트 3국의 역사는 우리가 생각하는 것 보다 훨씬 복잡합니다. 가난한 약소국이 살길을 찾아 여기저기 양다리 걸치고 기회주의로 놀다가 여기저서기 밟히는게 이 들의 역사입니다. 나폴레옹의 러시아 침공 때 발트 3국이 나폴레옹의 러시아 침공의 베이스 캠프역활을 해주었습니다. 당연 나폴레옹이 폐퇴하고 나서 러시아가 와서 완전히 짓밟아버렸습니다. 이 정도로 당했으면 정신 차렸어야 하는데 이것들이 독일 나치가 쏘련 침공하는 바르바로사 작전에서도 또 베이스캠프를 했습니다. 당연히 쏘련이 독일 나치들 물리치고 와서 완전히 밟아 버렸습니다. 그런데 이번에는 완전히 밟아 버린 정도가 아니라 아주 가루를 만들었습니다. 수 많은 리투아니아 인들을 시베리아 정도가 아니라 아틱 써클(극지방)에 강제 이주시켜 거의 다 죽였습니다. 이때 강제이주당한 리투아니아인들의 참상은 영화 Ashes in the snow www.imdb.com/title/tt3759298/ 라는 영화에 잘 나와있습니다. 이때 쏘련군은 두 번에 걸친 발틱 국가들의 배신을 근본적으로 해결하기 위하여 엄청난 짓을 합니다. 발틱 3국의 남자들을 거의 다 죽입니다. 지금도 이들 국가의 성비가 여초인게 이런 이유가 있습니다. 그래서인지 발트 3국의 국가들에 남자들은 음주율이 높고(이 들 세 나라 중 하나가 한국보다 더 술많이 먹습니다.당근 세계 1위죠) 자살율 세계 1위인 나라 (라트비아 인것으로 알고 있습니다.)입니다. 살아남는 것이 이기는 것이라는 말이 있는데 꿈도 희망도 없이 살아 남기만 하면 발트 3국처럼 된다라고 이야기 해주고 싶네요. 슬픈 나라들입니다. 이런 슬픈나라가 만든 노래가 이 백만송이 장미라는 노래의 원곡이고 라트비아 민요라고 합니다. 슬픈 곡조가 있는 역사가 슬픈 나라입니다.
어느 한사람의 애절한 사랑이있었군요,~~~ 그래도 살아야되는데,..집도팔고.모든것 다 팔아서 그녀를 향했던들, 가난한 이에게는 기회가 주어지지않을텐데요,..그래도 살이야지요,사람이기때문에요, 어쩔수없이요,...모든재산 그녀를위해 다 쓴다한들,무엇이 내게 오리오,...아무것도, 내겐오지 않을것을요,...ㅉ 가슴아픈 사연이 숨어있으니 이리 장대한 흐름의 음악이 나올수 있었다는것을 알수있네요,...그렇지만. 오늘의이야기와 먼 옛날은 또 다르겠지만요,.....
가수 심수봉이 외국곡을 번안해서 부른 것으로 알고 있었는데 한국에서도 먼저 부른 가수가 있었고, 이렇게 라트비아와 구소련에 얽힌 사연이 있는 줄은 몰랐습니다. 예전 학창시절에 황진이에 대해 공부하다 선생님에게 들었던 황진이를 너무 사모해 상사병으로 사망했다는 한 청년의 이야기가 생각나네요. 실제 있었던 이야기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오늘도 좋은 영상 잘보고 갑니다. 정말 수고하셨고 감사합니다^^
@@fr.carolokim 헐럴...오히려 생각이 느려 터져서 몇 박자 멈추고 쓰는 편인데, 그리 느끼셨다니 감사하고 신기합니다! 글은 생각할 시간이 있어서 좋은데, 즉석에서의 말은 오우..대본 없이 화면 보실 수 있으신게 부럽습니다. 타고난건지...실시간 방송은 색다른 모험이되겠네요~ ㅋㅋㅋ
단군임금은 우리들에게 나라를 세워 주셨지만 행복을 주시지는 못하셨습니다. 우리는 늘 외침에 시달렸고 중국과 일본, 그리고 나중에 나타난 러시아와 미국까지 합쳐 네 나라에 의해 지금도 고통을 받고 있습니다. 그러나 오늘도 우리들은 열심히 모으고 있습니다. 언젠가는 우리도 "행복"이라는 여신의 품에 안길 것이라는 희망을 잃지 않고 그 여신의 창문아래 들고가 그 여신을 놀라게 할 장미송이 들을...
라트비야의 사람들이 감성이 많아서 음악적 소질이 뛰어나죠. 현세기 최고의 바이올리니스트였던 기돈 크레머도, 아쟁총각 비타스도 라트비아 출생이죠. 여튼, 이 노래를 들으면 생각 나는 사람이 있어요. 2002년도 월드컵 시기에 발트 3국의 전통 국립극단팀들이 공연을 하러 왔을 때에 가족들과 함께 보러갔었는데 라트비아 전통극을 공연하던 중 남자주인공 배우가 우릴 자주 쳐다보느라,, 조카 아이가 남자주인공이 우리 쳐다보다가 대사를 놓친 것 같다며 웃더라구요. 공연이 끝나고 나서 조카아이들 학교에 낼 레포트때문에 사인 받아 주러 무대 뒤편에 가서 같이 사진도 찍고 그랬엇는데 그날 저녁, 순대국 사먹으러 동네 식당가 나왔다가 길에서 우연히 그 남자 주연배우랑 마주쳤죠. 먼저 저를 알아보고는 얼굴이 발그래지면서 웃길래 삼결살 먹으러 가자면서 고기집으로 데려갔죠. 낮에 공연중 왜 우리 가족을 쳐다봤어요? 라고 묻고 싶었지만 언어가 안 통하니 손짓 발짓 해가면서 억지 소통을 하고 있었는데 .. 술이 들어가니 그 친구가 울먹이면서 이 노래를 불러주더라구요. 그때까지 저는 이 노래가 그루지야(조지아) 공화국의 노래인줄 았았었는데 그제서야 라트비야 노래인 걸 알게 되었어요. 정확히 그 친구가 어떤 사연이 있는지는 모르지만 저보다 두어살 어렸고, 제가 낮에 조카 아이들하고 같이 공연을 보고 있는 모습을 보고는 자신의 개인사를 투영한 것이지 웬지 측은해서 울먹이며 노래를 불러주는 그를 한참 토닥거려주었었던 기억이 떠오르네요. 아마도 제가 이 노래 각 나라별로 여러 가수별로 다 들어보았지만 노래 실력을 떠나서 그 친구의 노래가 가장 애잔하고 구슬펐다는 느낌이 드는 ..
라트비아의 혼을 뭉갠 쏘련의 '백만송이 장미' 가사는 금지 시켜야 함. 우리나라의 '울밑에선 봉선화'를 일본어로 '백만송이 사꾸라'로 바꿔서 일본 뽕짝으로 유행시켰다면 개탄할 노릇이 아니겠는가 ? 앞으로는 라트비아 원곡 가사를 한국어로 번안해서 부르도록. 헌데, 라트비아는 지금이라도 왜 항의를 하지 않는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