확실히 왕이라는 한 사람에 권력이 몰빵된 요즘 사람들이 봤을땐 비정상적인 권력체계를 계속 유지하려면 계속 뒤에서 음모를 꾸미면서 살 수 밖에 없는듯 어렸을때는 왕이되면 누릴거 다누리고 마냥 좋겠다고 생각했는데 지금보면 부모님도 형제도 친척들도 그놈의 권력이라는것 때문에 믿지못하고 어찌보면 참 피곤하게 인생 살았을듯
이해가 되지 않는게 이정도 규묘의 무덤이면 어딘가에 분명히 기록이 되어 있어야 하는데 그게 없다는게 더 신기함. 어쩌면 문화혁명때 그 기록들이 다 사라졌을지도 모르지만, 중국의 문화와 역사는 문화혁명때 끝난거라고 생각합니다. 스스로 자기 문화와 역사를 부정했다는게 가장 중요한 증거라 생각합니다.
ㅇㅇ.수은도 사천지역에서 가져옴.진시황때 거상 과부가 있었는데 사천 촉나라에서 주사라는 광에서 수은채취해서 진시황에게 공급했다는 기록이 있씀. 진시황릉 내부에 거대한 바다랑 하천등이 있다고 전해지고있는데 거기 바다랑 하천을 채우고있는 것이 전부수은임.그리고 진시황은 자신의 시신을 실은 거대한 배를 만들어서 기계로 하천이랑 바다를 끊임없이 떠다니게 만들어났다고 함.
중국땅이 아닙니다.낮에는 해가뜨면 은빛처럼 반짝이는 강과 바다가 만나는 곳.. 밤에는 밤하늘에 별이 무수히 보이면서 빛나는곳.. 중국땅이라고 오래전부터 찿아서 회손할걸 염두에 두고.. 러시아쪽 추운지방의 강과 바다가 눈이 덮혀 얼어있는 지대가 높은곳.. 또는 동해바다같이 강과 바다를 만나면서 유난히 빛나고 밤하늘이 반짝이는곳.. 명당자리를 찿아서 거기에 묻혔을 것이다.
젊은 장군 = 이신 노장군 = 왕전(전쟁의 신) 통일하고도 토사구팽 당한 한나라 한신과 다르게 왕전은 진시황이 의심이 많고 통일에 대한 공적 노력보다 그 힘으로 자기를 위협할걸 알아서, 먼저 진시황에게 전쟁에 이겼으니 땅과 보물을 하사 해달라고 그런 모습을 보이면서 진시황에게 권력욕이 없다는 모습을 보이며 자기의 오야붕의 어떤 사람인지 파악하고 오래오래 살았다구 하다고 들었어요
왕전의 영통한거보다 그냥 진시황의 자신감과 패기가 대단했던거죠. 왕전 정도로 공을 세웠다면 그 통솔력은 더할나위없이 증명됐다고 볼수있고, 그 통솔력 아래서 부하장수들과 병사들이 그를 엄청 따랐을것이다, 이런 상황에서는 왕전 스스로가 권력욕이 완전히 제로이지않은 이상 권력욕이 조금이라도 있다면 그것이 환경의 영향 즉 자신의 통솔에 부하장수들과 병사들이 절대적으로 따르는 상황에 둘러싸이면 권력욕이 점점 팽창할수도 있고 절대권력에 도전할수도 있고. 그리고 무엇보다 중요한건 왕전이 그런 권력욕이 있냐없냐의 문제가 아니라 최고권력자의 입장에서 진시황의 입장에서 충분히 의심할수있고, 만에 하나의 실수도 용납하지않는다, 조금의 후환도 남기지않는다는 생각을 가지고있다면 가차없이 죽이죠. 다시말해 진시황의 자신감, 패기가 대단했다. 호랑이, 사자도 어릴때부터 사람손에 길러지게되면 크고나서도 그 주인앞에서는 본능적으로 수그리는 느낌, 진시황과 그의 신하들은 그런 관계였지않았을까, 진시황의 권력보다는, 내뒤에 100만군대가 있고 저쪽에 진시황이 혼자 서있어도 진시황의 위엄에 본능적으로 무릅 꿇게되고 진시황에 반기를 든다는건 아예 생각도 못하게되는 상황이 아니였을까, 그 정도였기때문에 토시구팽 할 필요도 없었다라고 생각되건요.
@@user-vy2fh6kj6y그거 진시황 묘 맞음. 고구려왕 아니고 위대한 중국 한족의 조상임. 조선 사람들은 그릇이 한반도가 딱 적당함 자기들 역사 알려주면 비꼬기나 하고 공부 많이 한 사람들은 병신 취급하면서 깎아내리기 바쁜데 고대사 뭐 하려 하는지 몰라... 누가 그래? 네가 공부해 누가 그러긴... 수사 엘람 안식국 대하 파르티아 아르삭 아르사케스 쿱다 구다라 이 단어들이 어디서 나오는지만 알아도 알아볼 사람들은 다 알아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