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keekeyo3092 고려 왕실에서 이종사촌간 혼인한 적은 없어요.... 태조 왕건이 왕위 계승 순위 1~2위까지는 족외혼을 3위인 광종은 족내혼을 시켰는데.... 광종의 부인이 황목씨라 이종사촌으로 착각한 듯 한데.... 광종의 부인 역시 태조 왕건의 딸임........ 다만 고대~조선 초기까지 딸에게 외가의 성을 이어 받을 자격을 주어져서 그런거 뿐이지.. 고려왕실에서 이종사촌간 혼인 사례는 전혀 없음.. 그리고 족외혼을 하더라도 외척 억제책으로 겹사돈을 회피한 왕실이 고려왕실임.. 이자겸이 그것을 무시하고 세딸을 아버지와 아들에게 혼인 시킨것이 문제여서 그렇지
왕건이 수많은 가문과 정략결혼 한거랑 같은 맥락이지만 반대상황임..고려시대 지방호족들은 사병을 키울 정도로 막강한 권력을 가지고 있는데, 왕후의 가문 혹은 왕의 외가가 되서 왕권까지 나눠주면..통제불능 혹은 왕권을 위협 할 수도 있기에 근친결혼을 해서라도 권력을 나눠주지 않으려는거죠..
ㄲ ㄲ ㄲ 까악 지금 우리 엄니 인생이네 울아부지한테 숨기고 아가씨로 시집온 !! 그래서 내위아래로 수십명의 혼외자덜 바깥에서 키우며 울아부지 빵빵한 연줄로. 넝마주이 내연남을 3대 재벌 그룹 회장까지 만들었드만 몇년전 세상뜬 ㅇ 리 엄마는 얼굴 전체 성형으로 갈아끼워 회장 사모로 구십대를 즐기고 있드만 난 아직도 맨붕 트라우마 공황장애로
우리나라는 칼같이 8촌 이내는 금하고 있고 부모가 재혼했다가 이혼한 남매조차 전혀 피가 안통해도 결혼 불가인 걸로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나라 사람들은 놀랄 일이긴 한데 해외로 눈돌려보면 4촌끼리 결혼 가능한 나라가 꽤 있습니다. 옆나라 일본만 해도 4촌끼리 결혼 가능해요. 뭐, 남매 결혼에 그 자식이 또 남매끼리 결혼하거나 손녀랑 결혼하는 그런 막장은 현대에선 볼 수 없지만.
광종에 부인이 왕욱에 누나임. 두자매의 아버지 이며 고려 초기 고려에서 왕씨 가문을 제외 하면 가장 세력이 큰 가문이였음. 그래서 왕권 강화를 위해 결혼을 통해 광종이 욍욱집안 들과 정략결혼 한것이지 근친이라고 하지만 고려시대 왕족 결혼은 왕의 명 없이는 결혼을 할수가 없었음.
권력과 재산 분산 막기 위해서요. 유럽도 비슷하게 사촌끼리 결혼많이 했음. 즉 한 왕조 안에서 사촌끼리 결혼 시키는 이유가 그래요. 그래서 합스부르크왕가에서 다른 유럽의 왕들을 배출한 이유가 .. 계속 사촌끼리 근친하면서 이라서 나중가서 심해지니까 장애, 기형아로 후계자가 없거나 일찍 죽는 문제 생길정도 였음. (신라도비슷하게 나중가서 성골 남자없어지는 문제) 고려의 경우 그나마 바로 근친혼 문제 적었던게 짧게 근친했고... 왕건이 혼인정책과 사성정책 으로 왕건.. 친 자닉 아닌 자식들도 섞였을 수도 있다보니. 덜했음..
@@은우-m3q 드라마 보셨음?? 김치양이 경주김씨도 아닌데 마의태자 손자 - 김치양과 사이에서 낳은 아들 나중에 야율아보기 조상 / 작중에 계속 강조하는 남성우월주의 + 걸스캔두 애니띵 / 뭐 중무장한 병사들 이쁘장한 여전사가 썰고 날라다니는 거야 그렇다 치지만 실제 보면 매우 심각한 수준임 그런걸 "역사는 승자의 기록" 이 지랄로 다 퉁치니까 문제임
고려시대가 현종의 거란전쟁 이후로 고려 예종까지는 그래도 제후국을 거느리고 요나라 송나라에 사신보내는데 위세가 대단해서 갑질하고 다녔고 왕권이 굉장히 강한편인데 이거의 원동력이 근친혼임 근친혼을 통해 기존 있던 외척들도 왕이 된 이후에도 자신의 힘으로 끌어들일 수 있었음, 고려 숙종이 근친혼을 폐지했으나 자기 아들 예종은 근친혼을 하게했고 고려 인종때 예종에 비해 근친혼이 덜해짐 다만 이로 인해 경원 이씨의 입김이 예종 때보다 강해졌고 이자겸의 난, 묘청의 난 이후로 고려의 대외국력이 약해졌고 동시에 왕권도 약화됨 그래서 왕권강화를 위해 무장들을 대우하기 시작했고 의종때 이어지고 기존 문벌귀족들이 기득권을 쥔 편이라 무신을 경계한 과정에서 생긴 차별로 인해 무신정변이 일어나고 100여년간의 무신정권의 실정으로 고려의 국운이 기울어짐 오히려 근친혼이 더 이어졌다면 문벌귀족의 득세와 무신정변이 일어나지 않아 기존 역사에 있는 몽골항쟁보다 더 잘 버틸 확률은 있음
@@썸머나이트하긴…조선왕실도 폐쇄적인 혼맥을 유지했고, 태종과 원경왕후 민씨의 3남 세종의 아내 소헌왕후 심씨의 가문은 원경왕후의 조카를 며느리로 들어서 소헌왕후와 원경왕후의 조카는 서로 올케와 시누이 관계였고…세종의 8남 영응대군이 2번 결혼했는 데 첫 부인은 조카 단종의 아내 정순왕후 송씨의 조카이고, 두번째 부인은 경혜공주의 시누이였음…
고려는 무슨 ㅋㅋㅋ 울나라는 부계 성씨를 따르기 때문에 최근까지도 근친혼 많았음. 족보까지 따져도 모계까지 다 따져가며 접붙이지 않았으니까. 아주 열심히 따져봐야 부인 족보인데 할머니대, 삼사오촌 사돈들 다 따질 능력이 있다고 보냐? ㅋㅋㅋ 그나마도 이젠 족보조차 취급 안하다 못해 친인척도 안보고 사는 애들 많아서 결혼식때 사돈에 팔촌 마주칠 비율은 훨씬 높지.
고려는 태혜정광..... 태조 왕건의 장남인 혜종이, 왕으로 있을 때 자신의 맞딸을 이복동생인 광종에게 시집을 보낸다. 신라 법흥왕,,, 자신의 딸을 친동생 갈문왕에게 시집을 보내고 그 둘에서 태어난 아들이 진흥왕이다., 갈문왕은 일찍 죽었다,,, 그 갈문왕은 신라 무슨 바위에 사촌 여동생과 놀러왔다고 새긴 그 남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