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리석은 사람은 눈을 감고 세상이 어둡다고 아우성이다. 이떄는 지금 당장 내눈을 뜨는 것이 먼저다. 눈을 뜨고도 세상이 어둡다면 불을 밝혀야 한다.. 이렇게 먼저 자신의 눈을 뜨고 세상을 위해 불을 밝히는 노력이 붓다가 오래전에 우리에게 전한 가르침의 근본이다..꼭 기억하시라.. 내가 시사를 모르고 부정한 권력을 모를떄는 눈뜬 소경이나 다름없었다, 먼저 내가 눈을 뜨고 그다음에 세상사 잘못 돌아갈때 촛불이라도 들어야하고 먹고살기 바빠 눈을 감고 또는 눈앞의 밥그릇만 쳐다보는 중생들에게 눈을 뜰수있게 작은 역할이라도 해야하지 않을까싶다..
사찰의 깃발이 나부끼는 것을 보고, 한 스님은 깃발이 움직인다 했고, 다른 스님은 바람이 움직인다고 했다. 이때 혜능선사가 듣고, "깃발도 바람도 아닌, 그대의 마음이 움직이는 것이다."는 명쾌한 설법을 했죠. 인생은 고난의 연속이지만 이것 또한 마음의 끝없는 욕망에서 생기는 게 아닌지 돌아 봐야 겠네요.
눈으로 형상을 보되 그 대상에 집착하지 말라 그대가 눈의 감각 기능을 바르게 제어하지 못하면 탐욕과 근심과 해로운 법들이 물밀듯이 흘러들어올 것이니 절제하는 법을 닦고 눈의 감각 기능을 지키고 단속하라 귀로 소리를 듣거나 코로 냄새를 맡거나 혀로 맛을 보거나 몸으로 감촉을 느끼거나 의식으로 법을 지각할 때에도 그 대상에 집착하지 말라 그대가 각각의 감각기능을 바르게 제어하지 못하면 탐욕과 근심과 해로운 법들이 물밀듯이 흘러들어올 것이니 절제하는 법을닦고 눈의감각기능을 지키고 단속하라 바라문이여 그 제자가 감각기능의 문들을 잘지키게 되면 그때 여래는 말합니다 비구여 음식의 적당량을 알라 지혜롭게 숙고하면서 음식을 섭취하라 음식을 먹는것은 즐기기위한것도 취하기위한것도 아름다움을 위한것도 아니며 단지 이몸을 지탱하여 청정한 수행을 해나가기 위해서이니 예전의 고통을 끊고 새로운 고통을 일으키지 않으며 건강하고 편안하게 머물 것이라는 생각으로 음식을 받아들이라
깨달음은 하늘이 내려주는 은혜입니다. 깨달음은 마음의 눈을 뜨는 것과 같지요. 깨달음은, 선천적인 맹인 나라에서, 기연으로 눈을 뜨게 되는 것과 같습니다. 아무도 맹인의 눈을 뜨게 할 수 없습니다. 설사 기연으로 눈을 뜬 사람이라도 다른 맹인의 눈을 뜨게 할 수 없습니다. 부처님이나 부처님의 제자들이나... 혜능선사 같은 분들도.... 스승의 가르침으로 깨달음을 얻은 것이 아니라, 거의 대부분 하나님의 은혜로 스스로 깨달음을 얻었으며, 스승은 단지 그것을 인가하는 역할밖에 없는 듯 합니다.
신수 대사도 큰스님입니다. 측천무후도 가까이 하면서 가르침을 받았지요. 신수의 사상은 점오이고 혜능은 돈오입니다. 강북은 점오 강남은 돈오. 남돈북점이라하지요. 또 혜능의 게송이 깨달음에 더 가깝다고는 하지만 뭐든지 처음 시작이 어려운법 입니다. 신수의 게송을 비판하기는 쉽지요. 그것을 비판하는 게송을 짓는것은 신수의 게송보다 더쉽다고 봅니다. 혜능의 게송은 신수의 게송 구절을 하나하나 비평한것 아닙니까. 스스로 새로운 게송을 지은것은 아니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