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에 빠진다" "시랑에 눈이 멀었다"는 우리말의 관습적인 표현은 사회와 제도, 사회와 언어의 상징계를 벗어나 있으며 불가항력적으로 우리를 지배하는 에로스적 사랑의 힘을 잘 표현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신화학자 조셉 캠벨은 사랑을 몇 단계로 나누면서 그 최상의 단계의 하나로 불륜을 꼽고 있습니다. 불륜은 사랑에 빠진 사람들이 도덕적 지탄, 사회적 지위의 상실 등 온갖 불이익을 감수하고서도 미쳐 있는 맹목적인 사랑의 몰아의 상태를 보여주기 때문입니다. 말하자면 불륜은 사랑엔 주체가 없다는 명제를 가장 확실하게 검증할 수 있는 리트머스 시험지인 셈이죠. 몇 년전 기혼의 유명한 중년의 영화감독과 미혼의 젊은 여배우가 사람들의 손가락질과 모멸을 받으면서도 미친 짓을 감행한 것이 사랑엔 주체가 없다는 걸 시사하는 그 정확한 사례가 될 것입니다. 그들은 기성의 사회 질서 밖에다가 둘만의 사회를 구축한 것이고, 그들의 세계는 기성의 상징적 질서에 붙잡혀 있는 대중의 눈으로 보면 혼돈이고, 공포스러운 것입니다. 거기엔 도덕과 상식을 해체해버리는 무시무시한 무의식적인 힘이 작동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성의 꾀죄죄한 계산이 무력화 되어버리는 상태입니다. 흔히 맹목적인 사랑에 빠진 사람을 두고 "바람이 났다"고 하는데 성경에도 "바람은 불고 싶은대로 분다"는 표현이 있듯이 통제할 수 없는 신적인 힘인 프뉴마(pneuma)는 바람이자 숨, 생명력이어서 주체에게 임하는 것으로 나타나고 있습니다. 주체는 피동적으로 그 힘에 지배당하지만 새롭게 태어난 것처럼 활기에 차있습니다. 혹시 남편이나 아내가 평소와 달리 이상하게 들떠 있다면 이는 성령이 임해있는 상태이므로 미쳐서 집 나가지 않게 잘 감시해야할 것입니다. 위대한 영화 '올드보이'에서 "누나하고 난 다 알면서도 사랑했어요. 너희도 그럴 수 있을까?"라고 묻는 우진의 마지막 말에는 인간의 이성적 주체를 넘어서 있는 무시무시한 사랑의 세계가 강렬하게 드러나고 있습니다. 우라나라 국기만큼 음란한 국기도 없을 것입니다. 태극기 중앙에는 교미하는 남녀를 쉽사리 알아차릴 수 없는 추상적 형상으로 집어넣고 있습니다. 우주적 차원의 에로스의 역동적 충동이 중심에 있고 그로부터 심지어 하늘과 땅, 물과 불이 생성되고 있으니 우리 민족처럼 야한 민족도 없을 것인데, 인도 사원의 노골적인 성행위 조각상과 달리 교활하게도 고상한 철학적 상징으로 위장하고 있기 때문에 여간 음란한 사람이 아니고서는 이 엽기적인 국기가 숨기고 있는 음란성을 눈치채지 못할 겁니다. 주렴계의 태극도설에 "무극이태극"(無極而太極: 무극이면서 태극)이란 말이 있는데, 태극의 배면에는 극이 없는 무극이 도사리고 있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에로스라는 우주적 충동은 태극의 차원에서는 분별의 대상이지만 무극의 차원으로 넘어가면 극이 없기 때문에 분별할 수 없는 세계가 됩니다. 태극에서는 남녀 분별이 있어서 시집도 장가도 가지만 무극에서는 시집도 장가도 갈 수 없습니다. 극이 없어서 카오스라고도 볼 수 있는 여기서는 주체가 없어졌다고도 할 수 있고 붕괴되었다고도 할 수 있겠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