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가 우라국민학교 다녔는데 1987년도에 봄 소풍을 생식마을로 갔었는데 당시에는 마을에 사람들도 많이 있었고 기억으론 여자분들 그리고 애들만 있었던 기억이 납니다. 머리는 다 삭발하신 상태였고 엄청 신기한 듯 바라보시던 기억... 집 주위에 약초가 엄청 많았고 특히 고사리가 많았던 기억이 있네요. 당시에는 사람들 반기고 엄청 좋아하던 분위기였는데 얼추 35년 지난 지금은 분위기 부터가 다르네요. 갑자기 옛 추억이 생각나서 검색했더니 생식마을에 대한 영상은 이것 하나 뿐이네요. 덕분에 좋은 옛추억 잘 회상하고 갑니다.
십여년 전에 한번 가서 차도 마시고 애기도 나눴어요 그때 할머니계실때 지금 살아계실란지 약간 으스스하지만 막상 들어가면 괜찮아요 친인척이 많아요 원래 주인분은 충북단양이 고향이고 서로 다들 잘 알고들 있어 괜찮아요 각자 생활하며 공기좋고 생식하며 생쌀 솔잎등 생으로 하며 밥은 아예 없다고 합니다 입산 허락되면 집도주고 그런답니다 오래된 애기 입니다 알고 나면 아무것도 아니지요
@@TV-ph7wi 숙희님? 죄송하지만 긴문장 한번만 읽어주십시요? 본래 저의 첫사랑이자 첫여자의 이름이숙희엿습니다, 단 성만 달랏지요 강씨엿지요, 그런데 제가 사는 이곳은 겨남 진주인데 제가 하던 직업이 자동차 외형 도색 이었답니다, 하루는 진주인근에 학원 버스를 도색해서 산청 부근 문익점 시베지에 어린이들이 견학을 갔기에 먼저 버스로 어린이들을 오전에 견학장소에 내려주고 그사이에 버스를 제가 몰고 내려와서 수리를 마치고 문익점 시베지에 다시 버스를 도착시켜서 그날은 차를 수리도 시베지에어 하원도 시켜주는 일을 같이 하는데 맨 처음 경남 창원에서 만났던 말숙햇던 숙희 그녀가 그날 문익점 시베지 바로 근처 밴치에서 꼬질꼬질 흙뭍은 헐렁 몸베바지에 머리엔 수건을 두르고 벤치에 다른 여성 한분과 앉아서 계시길래 한마디 그동안 어찌 지냇더냐? 반갑고 여기로 시집 왓냐고 물어 보지도 못하고 먼발치에서 바라만 보다가 진주로 아이들을 태우고 내려 와야만 햇던 10년전쯤이 생각나네요, 너무도 저람 함께 있으면 먼저 스로를 지켜주고 아껴주고 사랑햇던 나의 사랑 숙희 웃을때가 매력적이던 숙희 지금도 그곳 어디선가 잘 살아가겟지요, 그동네는 작아서 찿고싶으면 찿을수가 있지만 지금 와서 무슨 이유로 찿을까요? 이미 맘떠나고 몸떠나버린 사람인데요. 아침부터 죄송합니다.
일반 사람들에게 개방을 하는 것 자체가 사이비 같지는 않네요. 카톨릭은 아닌 것 같지만.. 뭐 불상은 없고 예수님 동상도 있고 성모님 동상이 있는 거와 성경 말씀이 곳곳에 새겨져 있는 거 보니 크리스트교를 믿고 존중하는 것 같네요. 크리스트교와 생식이 무슨 관계가 있을까 싶은데. 요즘같은 시대에 자연 친화적인 면에선 신뢰가 가구요. 화려한 건물이 없고 그저 깔끔하고 소박해 보이는 건물도 신뢰가 가고요. 보통 사이비들은 돈으로 막 거창하게 꾸미잖아요. 일반 교회도 그런 곳 많지만요. 그저 굴러다니는 돌로 돌담도 하나하나 쌓은 거 보니 나름 정성스럽게 마을을 가꾸려 한 듯하네요. 다른 마을 사람들이 소풍도 오고 역사도 오래되었다니 참으로 신기하고 신비스럽네요. 사람들이 반기지 않음은 의식이 좀 다르기에 무언으로 대처하는 것 같기도 하고요. 별별 곳도 많고 위험할 수도 있는데 찾아다니며 영상제공해 주셔 감사합니다. 가보고 싶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