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윤이 포용력을 갖추어서 양주출신들을 사면하고 포용해서 황실에 충성하게 했으면 . 원소는 몰라도 당시 조조는 바로 멸망당했을수도 . 게임이나 연의에서나 곽사 이각 이 ㅈ 밥이지 . 거기에 장수 가후도 있었고 기존 여포에 장료 고순 . 그리고 왕윤이 적어도 여포하고 쿵짝이 잘맞았으니 꽤 재미있는 역사가 만들어졌을수도
군주는 피로 정해진 시대였으니까 장수와 책사는 장수와 책사는 될수 있어도 군주가 될수 없는 시대 유선도 왕이 되는 시대 유비도 개뿔 암것도 없어도 진실인지 거짓인지 알수도 없는 한의 핏줄이라는거 하나로 먹고 들어갔고 조조도 관리의 핏줄이었으며 원소 원술 모두 관리의 핏줄이었고 손견 손책 손권 손씨들도 관리였의 핏줄 이었다. 조또 암것도 없는 백성 놈들은 능력이 제갈량이 되고 무력이 여포가 되어도 군주는 될수 없던 시대 그리고 그 배신을 일삼으면 군주들이 아 저거 배신할 놈이로구만 하니 쉽게 배신 하면 여포 신세 될것이 뻔하며 지금도 그렇지만 남자는 자기 자신의 능력을 알아 봐주는 사람을 주군으로 섬기는법 강유 또한 그랬고 전유 또한 그랬고 제갈량 또한 그랬고 여포의 됨됨이는 알수 없어도 장료와 고순을 잘 대해줬을지 우리는 알수가 없음 잘 대해줬으니 따랐겠지 뭐 역사는 승자의 입장에서 씌이는것이라 잘 대해줬어도 기록에 없을듯
많은 분들이 진궁에 대해서도 왜 하필 여포냐고 미스테리하게 여기시더라구요. 하지만 비슷한 스타일 항우의 행적을 제외하고 인간됨 자체만으로 보면 '진심'이란 단어에 진심이던 로맨티스트 진궁에게 최고의 파트너는 여포 말고는 없었던 거라 생각합니다. 유비는 이미 명성은 있었지만 왕에 오르자마자 술부터 없애려던 고결함만 추구하던 이상주의자, 조조는 지독한 현실주의자... 문무에 조예가 있고 사회를 바꿔보겠다던 여포를 타협적이면서도 나아가는 인물상이라 여겼던 것 같지만, 문제는 여포같은 호족들이 별로 없단 지독한 현실이 바로 앞이었으니까요... 결국은 호족들이 붙어줘야 세가 불어나는데
여포가 거품이었다?고 말하기엔 그 개인의 무는 거품 없이 진짜였다고 생각합니다. 장료와 고순, 특히 고순은 여포가 그렇게 아래에 두고도 챙기지 않으며 수하에 두었어도 여포에 대한 충성심이 어마무지했던것은 그만큼 여포의 무에 매료되었던게 아니면 설명하기 힘들다고 생각해요. 물론 무를 제외하면 똥멍청이에 판단미스가 일상이었던건 맞는거 같습니다 ㅎ
@@m880912 장료세력이 그정도는 아니고 아마 장패가 군벌로써 여포에 합세한게 클겁니다. 장패는 뭐 조조도 나중에 어쩌지 못한인물이고 사패 조비가 늙고 힘빠진 장패에게서 통치권을 뺏어버리고 병합해버렸을 정도니... 장료도 윗분말대로 비빌대 없이 걍 정원 ㅡ 여포 ㅡ 조조 에 붙어먹을수 밖에 없던 무장이었을겁니다.
무력 버프 통솔력 너프 들어간 케이스죠. 인중여포 마중적토는 전국구 인물평이 아니라 지역구. 비장 별칭은 산적떼 두목 장연 등에게도 붙었죠. 포사(활 쏴서 극 명중)는 정사 기록이지만 물리적(활 성능, 화살 품질 등) 한계가 빤한, 상당히 과장되었다 볼 수 밖에 없는 부분.
고순 별명이 함진영이라 그럴거에요. 함진영->현진영(최훈의 삼국전투기 웹툰에서 나오는 드립) namu.wiki/w/%EA%B3%A0%EC%88%9C(%EC%82%BC%EA%B5%AD%EC%A0%84%ED%88%AC%EA%B8%B0) 저 댄스는 현진영의 '흐린 기억속의 그대'에 나오는 댄스입니다.
무력은 칭찬할만 하지만,딱 그뿐인 인물이라 생각됩니다. 능력 좋은 책사(진궁),밑에 있는 좋은 장수(장료,고순)들이 있어도 활용할줄 모르고 의심많고 비록 난세지만 최소한의 신의(정원,유비통수)도 없고 인망(최후에 부하들에게 통수)도 없는게 그를 나타내는 말이 아닐까 합니다.
몇년전에 허난성 슈우현 순펑진 란평촌에서 여포의 무덤으로 추정되는곳을 찾았는데 이후 여러 조사끝에 여포의 무덤이라고 판명났다고 하네요 위치가 사례~병주 사이에 있어서 조금 의문이 들지만요 병주는 여포의 고향이지만 적이던 원소의 영역이여서 병주하고 가까운 사례쪽에 발견되었다고 하네요 중국쪽 영상에 여포의 무덤에 찾아가는 영상이 있고,지금은 현급 보호 구역이라고 나오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