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도 제일 아깝게 여기는 삼국인물중 하나가 비의였는데, 그를 암살한 곽순(수)의 내력과 사유까지 언급해 소개해주는 채널은 처음 봤습니다. 넒은 지식을 담은 영상을 만들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정말 어지간헤선 구독 안하는 녀석인데 이번 영상에 감탄하여 구독남기고 갑니다. 한가지 비의가 얼마나 초천재 재능덩어리였는지도 언급해주셨으면 햇습니다만... 제갈량도 과로사한 업무를 놀면서 다 무결점으로 끝내고 술도 먹고 도박도 매일 놀고 한 미친 역량의 인물... 결코 무능한게 아닌 동윤이 비의 하던 일 맡아보고 '어떻게 인간의 능력이 이리도 차이가 나냐' 부르짖으며 결국 과로사하게 되지만, 비의는 놀거 다 놀면서 간단히 소화했다는... 방통이 하루만에 밀린 업무 다 본 삼국지 일화도 실은 비의가 모델이엇다고도 하고, 정말 아까운 인재입니다.
@@yunyun5244 제갈량이 자신 살 깍아먹어가며 100중 100을 행하려했던것은 자신의 공명심과 이익에 유비의 명이 함께해 자신을 알아줘서도 인것 같아 감동적인것 같아요. 비의정도로만 했어도 좀더 살았을텐데 과거 한신이 돌아 물길로 빠르게 접수해간것과 다르게 삼국지시절 지형은 많이 달라졌을것이니.. 초 오 월도 그때와 다르게 개발이 되었다곤하나 지형 바껴 물길 잃고 상용도 잃고.. 조바심이었을까나.. 비의도 한명의 장수 한명의 병사를 얻는것도 좋지만.. 너무 호방해서 아쉬운것 같습니다
비의의 암살이 촉한에 치명타가 되었던 이유 - 후임인 진지는 황호를 적극적으로 기용하였기 때문 가뜩이나 동윤이 비의의 일을 이어받은 뒤 과로사해서 황호를 견제할 사람이 없었는데 여기에 비의까지 암살당하고 진지도 오래가지 못했기에 황호가 나라를 망쳐버리는 헬게이트가 열려버렸죠
자세한 종회전 그리고 비의전 감사드려요! 정신 없는 한주가 끝나고 모두 두번씩 봤습니다. 곽순이 강유가 심어둔 가능성이 있을 사람인지는 어렸을때부터 한번도 생각 못 했네요. 나중에 삼국지가 끝나면 여러 견해가 많으실 것 같은데 천천히 고구려, 발해, 다른 중국 역사 등 다양한 역사 내용으로 가주셔도 채널에 좋을 것 같습니다. 왕평전 기대됩니다! 감사합니다!
매번 후원 넘 감사드립니다!! 엇 안그래도 중국 24사를 모두 컨텐츠화 한다면 4사vs20사로 묶을지, 5사vs19사로 묶을지 고민하고 있었습니다. 국내 고대 역사는 사료가 부실하여 차라리 그 몇 안되는 사료를 바탕으로 편년체 소설을 써보고자 하는 마음은 있습니다. 어느 쪽이 되든, 분류하여 보시기에 불편함이 없는 방향으로 짜임새 있는 채널 만들어가도록 하겠습니다!! 다시 한번 감사합니다!!
아 까막눈좌 예고편까지 올려주시다니. 백마처럼 시원시원하십니다. 저도 강유가 충의지사이고 멋지기는 한데, 성공적인 장군이었냐? 그건 아니라고 보거든요. 성공적인 장군은 왕평입니다. 보국을 실현하고, 평생 전장을 누비다 세상을 떠나고. 후반기에 인물이 없다지만, 장료같은 장군이라 봅니다. 왕평의 방어체계를 상상해보면요. 종심방어와 적 별동대의 차단 섬멸, 후퇴하는 적을 섬멸이런게 떠올라요. 고구려 이후로 우리역사에 이어지는 청야와 존버, 통수의 메타는 촉한도 비슷했을 것 같아요.
@@MultiByh 비의 다음엔 진지가 정권을 이어받았죠 진지도 능력 하나만은 비의랑 비슷한 천재과라 일은 잘했죠 인품이나 가치관은 뭐 그냥 범인수준이였지만 문제는 진지가 황호를 비호해줘서 황호 세력이 커졌는데 진지도 얼마뒤에 죽어버려서 황호가 권력을 꿀꺽 해버리게 만드는 판을 깔아줌
위나라 군대들이 변방이라 싸우고 오나라 싸우고 날랜 병사들인데, 위나라 버티면서 변고시에 병을 일으킨다? 만약 유비 살아생전에 그랬으면 몰라도, 사후 촉군대는 경험이없엇 정예일수없고, 강유가 병을 일으키지 않더라고 그전에 촉은 구축점 인물이 없어서 내분으로 더 망했을거임 임용한 박사가 이런말햇음 순삭밀톡 강유 회차 , 시도하는자에게 희망이 있다.
사영이란 표현엔 동의하지 않는 편인데.. 사상 중 영이란 표현은 제갈량과 비의에만 해당된다고 판단하기 때문임.. 장완, 동윤이 좋은 재상임은 동의함.. 좋은 행정가였다는 말임.. 다만 사상가나 선구자는 전혀 아니였음.. 제갈량에는 절대적으로 못미치나... (제갈량은 동시대 인물이 맞는지 의구심이 들 만큼.. 그 시대 모든 영웅보다 한 차원 높은 선견지명이 있는지라.. 비교대상도 아님 사실..) 삼국지 바운더리 그 어떤 행정수반과 비교해도 남다른 혜안이 있었음.. 순욱이나 진군과 비해도 모자람이 없는 인물이라 생각함.. 저도 오빠에 가까워 사실 촉의 인물에 박한 평가하는 편인데.. 유비 사후에 세 손 안에 꼽는 인물임.. 머 어렵지도 않지....ㅋㅋ 공명.. 비의.. 강유임..ㅋㅋ
To손찬형님> 이 영상과는 관계 없지만 관우 북진 편을 보고 약간 의문이 남아서 상소를 올립니다. 관우의 북진은 한중전과 시기적으로 거의 일치 합니다. 많은 매체에서 이를 별개의 챕터로 나누지만 사실상(2차대전 동부전선과 서부전선처럼) 같은 전쟁으로 봐야하지 않을까요? 즉 '계륵'을 이끌어 낸 상황을 사실상 관우가 어그로 끌어서 (우금 서황) 만들어 냈다고 보는게(사서에 남은 근거는 없을지라도) 합리적인 해석일 것 같습니다. 유비군이라고 대전략이 없었을까 싶고 관우 북진 + 한중전이 사실상 1차 융중대 혹은 한중방면의 공격을 약화 시키기 위한 양동 아니었을까요. 형주 상실은 사실 오의 배신이라는 돌발 상홤 아니었을까, 즉 관우는 번성 시위하면서 먹으면 좋고 아니라도 후퇴 가능한 상황 이었죠 충분히 어그로 끌어 줬는데 오의 배신이라는게 (그럴 가능성이 있는걸 예상했다 하더라도 어쩔수 없는 도박수) 돌발 상홤 이었던거 아닐까. 관우가 어그로 안끌고 조조가 온전히 한중 방항으로 전력을 집중 했다면? 그냥 제 의견인데 손찬 주공의 고견으로 이 괸점을 생각 안 해주시면 살아서 무엇하리
소중한 후원 및 고견 감사합니다! 댓글 재미있게 잘 읽었습니다!! 형주가 날아간 사건은 전쟁에 대한 유비의 명이 있었는지, 또는 유비와 관우의 최소한의 상호간 교감이 있었는지에 따라 유비책임설과 관우책임설로 관점이 나누어지는데, 일단 한중에서의 전쟁과 관우의 북진이 연계된 계획된 것이라 보긴 어렵다 봅니다. 조조가 한중에서 퇴각하고 유비는 한중왕에 오르며 문무백관을 임명, 보급로를 정비합니다. 군사적 측면에서 이 두 사건은 단절되어 있으며, '유비의 한중 탈환-한중왕 등극(관우 전장군 및 가절월) - 관우의 북진'의 시간적 순서로 봤을 때, 관우의 가절월도 그 결과물 즉, 한중탈환과 관우의 북진은 사전 계획된 일이 아닌, 인과관계라고 보는게 합당하다 봅니다. 동시에 관우의 북진 이후 그 어떤 지원도 하지 않는데, 이는 유비가 사전에 형주와 최소한의 교감이 있었다면 설명이 되지 않는 부분이죠. 재밌는 의견 다시 한번 감사드립니다! 화창한 주말 저는 가족여행 끌려나왔는데 부디 재밌게 보내시길..
촉은 그나마 소수의 좋은 인재들이 있었지만 그들 역시 병사하거나 암살당하거나 일찍 죽었다라는게 이미 촉의 운명이 결정난거라고 보여지네요 ㅜ 유비가 서주에 있을때 서주에도 꽤나 좋은인재들이 많았던걸로 기억하는데 그중에 전예 진등을 유비가 거두지 못한것도 아쉽구요 만일 촉에 방통 법정이 죽지 않았다면 제갈량이 후방에서 철저히 보급과 내정에만 신경쓰고 방통과 법정이 북벌했다면 과연 어떤결과가 나왔을지도 너무 궁금하긴하네요
개인적으론 유선과 강유 합작품이라고 생각함. 비의가 실권이 어마어마했으니 이젠 나이들고 친정을 하고픈 유선 입장에선 없애고 싶은 마음이 생겼을 수도 있다는 추론이 있음. 아니면 곽순이 강유가 데려온 작자인데, 이 사단이 났으면 강유는 어떤 식으로든 강등되거나 처벌을 피할 수 없음, 근데 되려 승진되었으니 뒤에서 그 논공행상을 하는 사람은 바로 유선.
@@ArtJoHistory위씨춘추에서 이르길 : 곽수(郭脩)의 자는 효선(孝先)으로, 본디 행실로써 서주(西州)에 이름이 알려졌다. 강유가 그를 겁박하였으나, 곽수는 굴하지 않았다. 유선이 (곽수를) 좌장군으로 삼자, 곽수는 유선을 찌르려 하였는데, 가까이 다가갈 수가 없어, 매번 경하(慶賀)할 때마다 절하며 앞으로 나아갔으나 유선을 좌우에서 모시고 있는 사람들에게 저지되어 일이 바로 이루어질 수 없게 되자 비의를 죽였다고 한다. (조방전 주석) 본인을 먼저 죽일려고 했는데 퍽이나 같이 도모했겠네요.
제갈량의 군략이 후대를 거듭할수록 저평가되는 부분이 있는데.. 비의같은 천재도 우리는 승상만 못해ㅠㅠ 하면서 수비에만 치중한 거 보면 제갈량 사후 군재로 그를 뛰어넘을 인재가 촉에는 없었다는 반증.. 한신이라고 모든 조건이 다 갖추어진 상황에서 하북을 평정한 게 아닌데, 그 부분이 촉빠로선 참 아쉽습니다
저는 반대로 보는게 제갈량 키즈의 장악이 과연 국익에 큰 도움이었을까 싶습니다 유비 시절 무관 중심에서 유비 사후 권력을 제갈량을 구심 삼아 문관 중심으로 이동시키는데 주력한 느낌도 들고요 관점에 따라 이릉 대패 이후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고 하지만 너무 기울어져버렸죠 인재 기아현상도 한몫했고요 오히려 오랜 억제기간으로 인해 강유가 칼춤에 미쳐버린 하지만 항장 출신이라 한계도 있었고요 문관 중심이라 황호가 날뛰어도 아무것도 하지 못한 부분도 있다고 봅니다
개인적으로는 비의가 살아있었다 해도 결국 위를 이기지는 못했을거라 생각은 함 이랬으면 어땟을까라는 if를 가정하며 안타까워하는거지 다만 강유보단 리스크는 좀더 적었을거는 맞다라 생각은함 촉이 좀더 오래가긴했을거임 다만 그렇다고 촉이 강대한 위를 점령시켰을 가능성은 희박하다고 봄 결국 위에 천하가 되는건 어쩔수 없었음
@@mkim7684 그렇다고 전재산을 단 한판에 다 꼴아박는건 영리하지 못한 처사죠. 강유는 딱 도박에 올인하다가 패한 케이스입니다. 위연,왕평처럼 진령산맥을 방어기지로 삼는 전략을 필두로, 뒤로 점차 밀리더라도, 가맹관,검각,백수관 등 험지나 요새에 지탱하여 지연방어를 하면서 점차 적을 소모시키는게 나았음.
강유의 한계를 그나마 잘 알아본 사람이 비의죠. 비의가 독하게 마음먹고 강유와 그 심복인 유은을 처죽였어야 했음. 필요하면 그 가족 전부. 어차피 촉한은 북벌은 해야하지만 현실은 ㄱ소리에 불과한 상황이였지만 방어에 있어선 원안의 작계대로만 움직였다면 스스로를 지키는 것은 최소한 가능했지. 애초에 촉한정벌 자체가 강유의 작계 변화, 음평에 주둔한 점에서 틈이 있는걸 보고 사마소가 덤빈거니까. 나름 계획하에 준비했음에도 등애는 처음에 반대할정도로 위연이 만든 방어시스템은 완벽했음. 그걸 뇌에 주름생겨서 조위의 장수들이 지 계획대로 움직일 줄 알고 작계 바꾼게 강유. 비의는 강유가 ㅁㅊ짓하리라는 걸 알았기에 군도 1만이상은 안주었던걸 보면 비의의 죽음이 강유의 폭거로 이어진 느낌. 꺼라위키에는 강유가 곽순의 비의 암살을 방조했고 통수권자를 잃은 군을 강유가 먹튀했다 식의 서술도 있던걸로 아는데 그건 ㄹㅇ 근거 있는건가? 아무리 강유가 뇌절했다고 해도 그건 좀 너무가는거 같던데. 물론 그게 근거가 있는 추론이라면 강유를 처음 중용한 제갈량도 책임 피해갈 수 없고 제갈첨부자는 당장 참수해야 하고 제갈량도 무덤 파내서 부관참시해야함. 유비가 이릉에서 개말아먹은 촉한의 존립근거를 그나마 만들어낸게 제갈량이지만 군권에 눈이 나가서 상관의 암살을 방조하는 형태까지 취한 강유를 거둔 책임을 져야지. 그 책임은 아무리 제갈량이라 한들 죽어서 편하게 누워있을 수 없는 일이지.
@modularsolarid2000 방어 기간이 길어지면 국력이 더 벌어짐.. 삼국지를 게임으로 접하신 분들이 많이들 간과하는 부분인데... 오랜 전쟁으로 황폐화되고 유출이 생긴 지역은 중원임.. 직접적 전쟁폐해를 입지 않은 곳이 오, 촉임.. 피난민 유입으로 국력이 더해진 상태였던 게 삼국 정립 초창기임.. 회복하게 놔두면 중원의 콩알만한 주 하나가 양주, 익주만한 생산력을 가지게 됨.. 그럼 진짜 13주 갯수대로 10 대 2 대 1 싸움 됨.. 아니 더 벌어짐.. 후한 환제말 영제초 시기에 13주 중 쌀생산량 1위가 연주였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