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ser-ir6hi6yy4k 는 말하고, 방언을 못하면 구원이 없다는 말하고는 내용이 전혀 틀린데요.... 말인즉, 당연히 구원이 먼저인데, 방언의 은사를 아직 받지않은 사람들 중에서 방언에대한 오해를 많이하는 경우를 봅니다. 구원의 확신이있다면, 방언의 은사를 포함한 은사들은 하나님의 때에 각자에게 주어진다고 생각하죠.
성경에서 말하는 방언은 외국어를 말하는 것이지 알아듣지도 못하는 이상한 소리를 내는게 아닙니다. 그 방언의 경험이 사탄의 거짓 경험이 될 수 있고 말씀이 곧 생명일턴데 이런 경험으로 성경과 하나님의 말씀을 멀리하고 경험적인 신앙만 추구 할 수도 있습니다. 사단은 분명하게 영광스러운 천사의 모습으로 우리를 미혹한다고 하였으며 마지막 시대에 살아가는 지금 악의 영은 다른 곳이 아닌 교회에 있음을 예언을 통하여 너무나 명백하게 예언하고 있고 그 시대에 놓여 살고 있습니다. 성경을 보며 기도함으로써 정말 참된 진리를 가진 교회와 목회자를 판단하셔야 하고 마지막 시대에 살아가고 있는 지금 예수님의 재림을 코 앞에 둔 지금 하나님의 계명과 예수의 증거 즉, 대언의 영을 가지고 하나님의 사랑과 성품을 온 세상에 드러내야 할 사명이 있는 교회에서 거짓되고 이상한 소리의 방언으로 예수님을 찾으러 온 백성들을 놓치는 경험이 없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교회에서 일어나는 이 모습들이 악의 영들의 세력일 수 있음을 언제나 조심하고 또 조심해야 됩니다.
위에 두분말씀에 동의합니다. 방언은 타국 언어입니다. 일자 무식한자도 성령이 임하시면 타국언어로 예언과 복음을 전할수있는 능력을 방언이라합니다. 사도 바울이 권한 예언을 우선시 해라는 지혜의 말씀은 지금의 교회가 빨리 받아들여야합니다. 예언은 시간이 지나면 진짠지 아닌지 알려지기에 아무도 '하는척'을 못한다.
저는 방언을 너무 사모했어요. 그당시에 하루 두시간씩 기도생활을 했습니다. 그러던 어느날 새벽기도 시간이었습니다. 목사님 설교 끝나고 개인기도 시간이 돌아오니 아버지 하며 나지막히 불렀는데 그 순간 갑자기 제가 뒤로 팍 넘어지려하니 방석이였기에 무릎 꿇은 상태라 얼른 중심을 잡았습니다. 기도자세였기에 당연히 고개를 앞쪽으로 숙인상태인데 갑자기 제몸이 뒤로 팍 넘어지려하니 성령님의 터치하심 지금도 너무 생생합니다. 중심잡고 보니 바로 혀에서는 진동이 있어서 진동대로 그대로 하니 랄라라 이렇게 소리가 나오더군요 1년정도 후에 언어처럼 들리는 다른 방언도 받았습니다 사모하는 자에게 주신다더니 어찌나 감격스럽고 감사한지요 기도를 더 많이 할수록 응답의 기쁨과 주님의 임재를 더 느낄수가 있었습니다. 다른 방언도 주셨는데 랄라라 방언이 넘 은헤스러워서 자주 더 많이 합니다. 랄라라 방언할때 혀에서 진동 떨림이 있어요. 정말 받아본자만 압니다. 성령님께서 주신 은사인데 안타까워서 제 경험을 올립니다. 지체님들 날마다 평안하시고 날마다 승리하시길 기도합니다. 샬롬~❤
저는 하물며 ’방언을 하지 않으면 영안에서 기도하는 것이 아니다, 성령을 체험하지 않은 사람이다, 교회 리더 모임에서 다 방언으로 기도하라‘는 목사를 만나서 엄청 영적 고난을 받은 적이 있습니다. 그것이 저를 말씀공부로 이끌었습니다. 잘못된 신학은 성도에게 해를 끼칩니다. 말씀을 맡은 목회자가 성경을 모르면 일어나는 일이라 생각합니다.
@@user-ir6hi6yy4k 고린도전서 13장 8절 사랑은 언제 까지나 떨어지지 아니하되 예언도 폐하고 방언도 그치고 지식도 폐하리라. 예언과 방언과 지식이 왜? 폐했을까요? 10절에서... 온전한 것이 올 때에는 부분적으로 하던 것이 폐하리라. 온전한 것은 무엇 입니까? 예언과 방언과 지식은... 그리스도의 말씀을 전하는 방편 입니다. 사랑은... 사도시대에 (서기 40년-70년) 예언과 방언과 지식을 통해서... 그리스도를 믿고 구원 받은 사람들이... 육신이 죽고 그들의 영혼이 천국에 갈 때까지... 어려운 신앙생활을 하면서 필요했던 것 입니다. 그래서 결국... 구원받은 영혼들이 천국에서... 하나님과 얼굴과 얼굴을 대면하여 본 것 입니다.
고린도 교회가 방언을 무질서 하고 초신자에게 배려없이 했던것 때문에 쓴 서신이죠 알아듣지 못하는 방언으로 복음을 전하면 무슨 의미가 있으며 누군가에게는 방언이 미친사람처럼 보일수 있죠 하지만 사도바울은 "너희 모든 사람보다" 방언을 많이하는 것을 하나님께 감사한다고 말했습니다. 방언에 아무런 능력이 없다면 사도바울만큼 의미없는 기도에 시간을 낭비한 사람도 없을겁니다 또한 감사한다고 했습니다 방언하는게 왜 하나님께 감사할까요? 의미없는 소리고 능력없는 소리를 내는 거라면 하나님이 일하실것이 없으니 감사할것도 없어야 할텐데 말입니다. 방언을 교회라는 공동체 안에서 무질서하고 성숙하지 못하게 공동체 안에 덕이 되지 못하는것을 말하는 것이지 방언의 은사는 저급한 은사라는 의미가 아닙니다. 방언을 나쁘게만 생각하시는 분들이 있어보여 씁니다.
@@user-oy3mu5qj4v 네 맞습니다 방언을 한다고 구원받는다고는 성경 어디에도 없습니다. 말씀을 깊이 묵상하고 우리말로 기도해도 돼죠. 성경에 쓰여진 모든은사를 모두 받는다고 구원받는건 아니죠. 단지 은사는 말그대로 선물입니다 선물을 소중하게 잘 사용하면 신앙생활에 유익이 된다고 생각합니다. 하나님은 경험되는 분이지 학문이 아니니까요
@@user-ol5jk3dm7n성경에서 말하는 방언은 외국어를 말하는 것이지 알아듣지도 못하는 이상한 소리를 내는게 아닙니다. 그 방언의 경험이 사탄의 거짓 경험이 될 수 있고 말씀이 곧 생명일턴데 이런 경험으로 성경과 하나님의 말씀을 멀리하고 경험적인 신앙만 추구 할 수도 있습니다. 사단은 분명하게 영광스러운 천사의 모습으로 우리를 미혹한다고 하였으며 마지막 시대에 살아가는 지금 악의 영은 다른 곳이 아닌 교회에 있음을 예언을 통하여 너무나 명백하게 예언하고 있고 그 시대에 놓여 살고 있습니다. 성경을 보며 기도함으로써 정말 참된 진리를 가진 교회와 목회자를 판단하셔야 하고 마지막 시대에 살아가고 있는 지금 예수님의 재림을 코 앞에 둔 지금 하나님의 계명과 예수의 증거 즉, 대언의 영을 가지고 하나님의 사랑과 성품을 온 세상에 드러내야 할 사명이 있는 교회에서 거짓되고 이상한 소리의 방언으로 예수님을 찾으러 온 백성들을 놓치는 경험이 없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교회에서 일어나는 이 모습들이 악의 영들의 세력일 수 있음을 언제나 조심하고 또 조심해야 됩니다.
@@user-ol5jk3dm7n추가적으로 마지막 시대에 교회내에서 표적과 이적들이 넘치고 넘쳐날텐데 성경은 분명하게 경고하고 있습니다. 이런 이적과 표적, 그리고 온 세상이 영혼불멸을 믿고 있는 지금 강신술과 같은 일들이 교회내에서 펼쳐지고 있으며 이러한 것들에 절대 미혹되지 말라고 하나님께서 신신당부하고 계십니다. 성령의 역사와 함께 저희는 말씀을 들고 기도를 하며 예수 그리스도의 남은 자손으로써 사명을 완수하기 위해 저희는 교회에 있는 것입니다. 그 사명은 온 모든 사람들에게 하나님의 사랑을 전파하는 것이 저희의 사명이고 마지막 선악의 대쟁투 역사가 될 것 입니다. 그러므로 성경의 진리를 바로 알고 이적과 기적, 거짓 방언의 경험 의존하지 마시고 말씀과 기도로 마지막 시대에 마지막 경고와 초청인 세천사의 기별을 온 땅에 전파하는 하나님의 백성이 되길 간절히 바랍니다.
성경에서 말하는 방언은 외국어를 말하는 것이지 알아듣지도 못하는 이상한 소리를 내는게 아닙니다. 그 방언의 경험이 사탄의 거짓 경험이 될 수 있고 말씀이 곧 생명일턴데 이런 경험으로 성경과 하나님의 말씀을 멀리하고 경험적인 신앙만 추구 할 수도 있습니다. 사단은 분명하게 영광스러운 천사의 모습으로 우리를 미혹한다고 하였으며 마지막 시대에 살아가는 지금 악의 영은 다른 곳이 아닌 교회에 있음을 예언을 통하여 너무나 명백하게 예언하고 있고 그 시대에 놓여 살고 있습니다. 성경을 보며 기도함으로써 정말 참된 진리를 가진 교회와 목회자를 판단하셔야 하고 마지막 시대에 살아가고 있는 지금 예수님의 재림을 코 앞에 둔 지금 하나님의 계명과 예수의 증거 즉, 대언의 영을 가지고 하나님의 사랑과 성품을 온 세상에 드러내야 할 사명이 있는 교회에서 거짓되고 이상한 소리의 방언으로 예수님을 찾으러 온 백성들을 놓치는 경험이 없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교회에서 일어나는 이 모습들이 악의 영들의 세력일 수 있음을 언제나 조심하고 또 조심해야 됩니다.
@@sooko5848 그렇죠 하나님만 알아들으시는, 사람이 알 수없는 소리라고 성경이 분명히 말씀하시는데 굳이 자기 생각을 성경보다 더 높이 두는 선생이 많네요 고전14:2 14:10 하나님이 알아들으신다는데 사람이 알아듣지 못한다고 하지말라는게 성경적일까요 전혀~!너무나 비성경적인 지식을 버리고 말씀대로 믿어야 믿는 자에게 따르는 표적이 따르지요 하나님이 알아들으신다는데 사람이 알아들어서 머하게요~~~???^^ 알아들어도 하나도 해결할 능력도 없는 무능한 사람들이 알아서 머하쥬?? 하나님께 영의 비밀을 말하는 것이 방언이라하셨으니 사람이 못알아듣는게 당연합니다 교회 예배시는 공중예배시 설교나 대표기도를 방언으로 하는 경우를 할씀하시는 것으로 합심기도등 기도시간에 하는 기도언어인 방언을 금지하신게 아닙니다(고전14:19:가르칠 때 알아듣는 말로 하라는 것) 내 집은 만민의 기도하는 집이라 하셨는데 기도하라고 주신 언어인 방언을 기도하는 집(교회)에서 못할 이유가 없습니다 알지못하면 알지못하는 겁니다
김교수님은 성령체험이 있으신지요? 그리고 방언의 은사를 받으셨는지요? 기도하다 보니까 성령체험을 하였고 기도하다가 방언이 터져서 방언을 하게 되었는데... 누가 시켜서 따라하다가 했던 방언이 아니었답니다. 내 의지와 상관없이 방언을 하게 되었다는 말씀을 드립니다. 진짜 성숙해지면 방언을 무질서하게 하지 않습니다. 바울은 방언을 누구 보다 더 방언을 많이 했습니다. 방언기도를 많이 하세요. 교회에서...골방에서.. 산기도 할 때 많이 합시다.
( *중얼중얼 헷소리는 방언 아님* ) 코린트는 항구 무역도시고 아주 번성했어요. 여러 지역 출신들이 있었고 언어도 다양했죠. 교회에 다양한 언어가 있었는데 대화나 기도할 때 통역도 없이 각자의 언어로 하니까 질서가 없고 화합도 안 되고 엉망이었죠. 그래서 바울 사도가 지방 언어를 질서있고 품위있게 하라며 지침을 알려주는 것이 고린도전서 14장입니다. 아무 뜻이 없는 중얼중얼 헷소리 주절거리라는 뜻이 아닙니다. 글 내용 파악을 잘하세요
¡믿고 보는 잘잘법! 저는 방언을 중학교때 처음 접했는데(그 당시 교회 분위기상 '방언을 안받으면' = '믿음 부족'으로 통하던 때라ㅜ) 하나님을 알아가면 갈수록 내가 하는 방언에 의구심이 생기기 시작했고, 그 생각이 들면서부터는 이 것이 은사인지 아닌지 알 수없지만, 더 확실하고 정확한 언어로 기도하기 시작했고 그 것이 저의 기도생활에 더 나은 방향성을 제시해주었습니다. 결론은. 우리가 하나님을 믿고 나아갈 때, 확실과 불확실 사이에 놓여질 때, 그 것이 아무리 거룩해보이고 근사해보일지라도.. 확실한 것을 쫒는 것이 정답이지 않을까.. (그 것만 쫒아 살기도 쉽지않다는..ㅎ) 김학철 목사님을 통해 일하시는 하나님께 감사합니다♡
ㅂ 진정한 방언을 해보 못해본 사람이 비판이 많습니다 나도 언제부터 방언을 했는지는모르지만 수십년부터 방언을 하고있는데 깊은기도를 할수있고 하고나면 찬송이나면 정말기쁨니다 나도모르게 단어가 주기적으로 다르게 나타나게 되네요 하나님 이 주신은사는 신앙에 큰 도움이 된니다 특별히 조금할 부분이있습니다
성경에서 말하는 방언은 외국어를 말하는 것이지 알아듣지도 못하는 이상한 소리를 내는게 아닙니다. 그 방언의 경험이 사탄의 거짓 경험이 될 수 있고 말씀이 곧 생명일턴데 이런 경험으로 성경과 하나님의 말씀을 멀리하고 경험적인 신앙만 추구 할 수도 있습니다. 사단은 분명하게 영광스러운 천사의 모습으로 우리를 미혹한다고 하였으며 마지막 시대에 살아가는 지금 악의 영은 다른 곳이 아닌 교회에 있음을 예언을 통하여 너무나 명백하게 예언하고 있고 그 시대에 놓여 살고 있습니다. 성경을 보며 기도함으로써 정말 참된 진리를 가진 교회와 목회자를 판단하셔야 하고 마지막 시대에 살아가고 있는 지금 예수님의 재림을 코 앞에 둔 지금 하나님의 계명과 예수의 증거 즉, 대언의 영을 가지고 하나님의 사랑과 성품을 온 세상에 드러내야 할 사명이 있는 교회에서 거짓되고 이상한 소리의 방언으로 예수님을 찾으러 온 백성들을 놓치는 경험이 없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교회에서 일어나는 이 모습들이 악의 영들의 세력일 수 있음을 언제나 조심하고 또 조심해야 됩니다...
좋은 말씀 감사합니다. 어느때부터인가 유사과학 단체인 창조과학에 영향받아 과학을 부정하고, 그릇된 십일조 인식과 지금 올라온 방언, 배려따윈 없는 노방 전도, 무지성 정신승리 등등…여러가지로 실망하면서 교회를 떠난지 오래됐는데… 가끔씩 목사님 말씀 잘잘법에 올라온거 보면서 감동받고 있습니다.
성경에서 말하는 방언은 외국어를 말하는 것이지 알아듣지도 못하는 이상한 소리를 내는게 아닙니다. 그 방언의 경험이 사탄의 거짓 경험이 될 수 있고 말씀이 곧 생명일턴데 이런 경험으로 성경과 하나님의 말씀을 멀리하고 경험적인 신앙만 추구 할 수도 있습니다. 사단은 분명하게 영광스러운 천사의 모습으로 우리를 미혹한다고 하였으며 마지막 시대에 살아가는 지금 악의 영은 다른 곳이 아닌 교회에 있음을 예언을 통하여 너무나 명백하게 예언하고 있고 그 시대에 놓여 살고 있습니다. 성경을 보며 기도함으로써 정말 참된 진리를 가진 교회와 목회자를 판단하셔야 하고 마지막 시대에 살아가고 있는 지금 예수님의 재림을 코 앞에 둔 지금 하나님의 계명과 예수의 증거 즉, 대언의 영을 가지고 하나님의 사랑과 성품을 온 세상에 드러내야 할 사명이 있는 교회에서 거짓되고 이상한 소리의 방언으로 예수님을 찾으러 온 백성들을 놓치는 경험이 없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교회에서 일어나는 이 모습들이 악의 영들의 세력일 수 있음을 언제나 조심하고 또 조심해야 됩니다.
저는 어릴 때 아주아주 시골 촌에서 할머니 손을 잡고 개척교회를 다녔는데요. 성인이 되어 도시로 나온 후 아주 큰교회를 가게 되었어요. 새벽예배였는데 주변 사람들 방언기도를 첨 듣고 제가 혼란스러워서 이게 뭐지..사이비인가 그런 생각을 했었어요. 그 방언 울림이 엄청 났거든요;;게다가 새벽이었으니 성령충만하지 않았겠어요?;; 그 소리에 제가 기도가 하나도 안되더라구요.귀마개라도 끼고 올걸 그랬나 가톨릭도 방언이 있을까 그런 생각하면서ㅋㅋㅋ 하나님과 1대 1로 대화하는 건 영광이지만 다른 사람 기도를 방해할 정도로 방언하는 게 과연 옳은 신앙인가, 넘 이기적인 게 아닌가, 다른 사람에 대한 배려가 없다, 그런 걸 원하시는 게 하나님이라면 분명 잘못되었다 뭐 그렇게 생각한 후로 교회를 거의 나가지 않았는데 우연히 저를 이 영상으로 인도해 주셔서 그때의 제 의문에 답을 받은 것 같네요.
방언… 그래 좋다 이겁니다. 하지만, 방언은 반드시 독방에서 홀로 기도할 때만 사용하여야 합니다. 다함께 모여소 통성기도를 하는 시간에 방언으로 그것도 큰 소리로 기도하면 다른 지체들에게 큰 방해가 됩니다. 더군다나 초신자들에겐 어떻겠습니까? 그리고 방언 못 하면 성령을 못 받았다? 이단입니다.
성경에서 말하는 방언은 외국어를 말하는 것이지 알아듣지도 못하는 이상한 소리를 내는게 아닙니다. 그 방언의 경험이 사탄의 거짓 경험이 될 수 있고 말씀이 곧 생명일턴데 이런 경험으로 성경과 하나님의 말씀을 멀리하고 경험적인 신앙만 추구 할 수도 있습니다. 사단은 분명하게 영광스러운 천사의 모습으로 우리를 미혹한다고 하였으며 마지막 시대에 살아가는 지금 악의 영은 다른 곳이 아닌 교회에 있음을 예언을 통하여 너무나 명백하게 예언하고 있고 그 시대에 놓여 살고 있습니다. 성경을 보며 기도함으로써 정말 참된 진리를 가진 교회와 목회자를 판단하셔야 하고 마지막 시대에 살아가고 있는 지금 예수님의 재림을 코 앞에 둔 지금 하나님의 계명과 예수의 증거 즉, 대언의 영을 가지고 하나님의 사랑과 성품을 온 세상에 드러내야 할 사명이 있는 교회에서 거짓되고 이상한 소리의 방언으로 예수님을 찾으러 온 백성들을 놓치는 경험이 없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교회에서 일어나는 이 모습들이 악의 영들의 세력일 수 있음을 언제나 조심하고 또 조심해야 됩니다.
저는 다섯음절쯤 반복해요. 세번째 바뀐것이구요. 저도 의문이 많았는데. . 얼마전 통역받을 기회가 있어서 받았었는데 평소에 제가 늘 하던 기도내용이라서 깜짝 놀랐어요. 통역해주시는 분 말씀으로는 꼭 한국말처럼 또렷하게 들린다 하셨어요. 같은 음절의 반복이라서 뜻도 같은 내용의 반복이 아닐까 생각했었는데 모두 다른 문장으로 해석되고 평소에 제가 가장 반복적으로 품고있는 기도더라구요~
관심가지고 정성스런 댓글로 의견을 알려주셔서 감사해요. 영상 12분에 보면 방언의 두가지 종류에 대한 내용이 언급되고 16분 10초쯤에 보면 두번째에 관한 방언에 대한 설명이 있어요. 저의 방언은 두번째인듯 해요. 그리고 같은 반복임에도 다르게 해석되는건 신기하고 또 평소에 제가 하던 기도라 감동되었었는데. . 세상의 지혜로 알 수 없는 부분 아닐까 생각되어져요. 좌로도 우로도 치우치지 않기 위하여 노력하지만 인간이기에 불완전한 저 입니다. 하지만 한쪽으로치우치지 않기위해 늘 깨어있기를 기도하며. . 중심을 보시는 하나님이기에 하나님의 마음에 관심을 가지며 살아갑니다. 오늘도 모든것이 은혜임을 감사하며. . 샬롬~
( *방언은 지방언어의 줄임말, 헷소리가 지방 언어임?* ) 코린트는 본토와 펠로폰네소스 반도를 잇는 지협에 있는 항구 무역도시인데 매우 번성했어요. 코린트만에서 지협(地狹) 건너편의 사로니코스만으로 배를, 통째로 옮기기도 했어요. (코린트만 쪽에서 아테네로 가려면 펠로폰네소스 반도를 멀리 돌아가야 했거든요. 지금은 운하가 있습니다) 여러 지역 출신들이 있었고 교회에도 다양한 언어가 있었는데, 예배 때나 대화할 때 각자가 자기만 아는 언어로 하니까 질서가 없고 화합도 안 되고 엉망이 된 거였어요. 그래서 바울 사도가 그 무질서를 바로잡을려고 쓴 글이 고린도전서 14장입니다. 교회에서 언어 사용을 질서있고 품위있게 하라는 내용입니다. 아무 뜻도 없는 중얼중얼 헷소리 주절거리라는 거 아닙니다. 바울 사도가 14장에서 처음부터 지방언어에 대해 말하고 언어와 관련된 단어를 계속 씁니다. 방언을 언어라고 분명히 말합니다. 고전14:11. 14:21. 방언으로 말할 때는 ① 순서를 정해서 ② 많아야 세 사람만 ③ 통역하고 ④ 통역 없으면 교회에서는 하지 마라 (고전14:26~28) 이러잖아요. 헷소리 하는 사람들 어떻게 하는지 보세요. 순서고 뭐고 없이 떼거리로 와글와글, 통역도 안 합니다. 바울 사도가 '하지 말라는 짓' 다 합니다. 아무 뜻 없는 헷소리 중얼중얼은 방언 아닙니다
성경에서 말하는 방언은 외국어를 말하는 것이지 알아듣지도 못하는 이상한 소리를 내는게 아닙니다. 그 방언의 경험이 사탄의 거짓 경험이 될 수 있고 말씀이 곧 생명일턴데 이런 경험으로 성경과 하나님의 말씀을 멀리하고 경험적인 신앙만 추구 할 수도 있습니다. 사단은 분명하게 영광스러운 천사의 모습으로 우리를 미혹한다고 하였으며 마지막 시대에 살아가는 지금 악의 영은 다른 곳이 아닌 교회에 있음을 예언을 통하여 너무나 명백하게 예언하고 있고 그 시대에 놓여 살고 있습니다. 성경을 보며 기도함으로써 정말 참된 진리를 가진 교회와 목회자를 판단하셔야 하고 마지막 시대에 살아가고 있는 지금 예수님의 재림을 코 앞에 둔 지금 하나님의 계명과 예수의 증거 즉, 대언의 영을 가지고 하나님의 사랑과 성품을 온 세상에 드러내야 할 사명이 있는 교회에서 거짓되고 이상한 소리의 방언으로 예수님을 찾으러 온 백성들을 놓치는 경험이 없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교회에서 일어나는 이 모습들이 악의 영들의 세력일 수 있음을 언제나 조심하고 또 조심해야 됩니다..
@@remyyy9075 고전 14정 2절 쉬운성경으로 적어보면 방언을 말하는 사람은 사람에게 말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 말하기 때문에, 그가 하는 말을 알아들을 수 있는 사람이 없습니다. 그 사람은 성령으로 하나님의 비밀들을 말하는 것입니다. 외국어 방언이면 통변은 구글이 더 잘하겠습니다. 구글도 알아듣는 외국어 방언이라면 하나님의 비밀이라 할 수 있을까요? 알아 들을 수 있는 사람이 없다는데요.
■14:2 "알아듣는 자가 없고" 는 뜻이 아닙니다. 14:28절 보세요. ●~자기와 하나님께 "말할" 것이요. 기도하는 사람이 알아듣습니다. 언어를 말하는데 자기가 하는 말을 모를까요? 언어는 두뇌에서 언어 규칙을 따라, 뜻이 정해진 발음의 단어들을 조합하여 소리를 내는 것이기에 사람은 자기가 모르는 언어를 할 수가 없습니다 기도는 내 마음을 말로 하나님께 하는 것인데 내 마음과 내 생각을 내가 모를 수가 있나요? 14:28 "말할 것이요"의 "말"인 λαλείτω (랄레이토) 와 λαλῶν (랄론). λαλεῖν (랄레인) λαλεῖ (랄레이) 등은 기본형이 λαλεω (랄레오)인데 말씀하다(마9:18. 눅1:70. 요3:34) 말하다 (마10:19. 막14:19. 딛2:15. 계10:3~4) 이르다 (마14:27. 눅2:20) 이야기하다 (누가 9:11) 전하다 (요한 11:19. 14:25.) 가르치다 (마가복음 4:33) 화답하다 (에베소서 5:19) 말을 하다 (유다서 16절) 등으로 번역됩니다. 이 구절들 찾아서 헷소리를 뜻하는 경우가 있는지 확인해보세요. 성경의 방언은 일상생활에서 쓰는 언어입니다. '뜻 없는 소리'가 아님. ............................................... 남이 모르는 외국어로 기도하면, 기도하는 사람과 하나님만 알기에 다른 사람에게는 "아리송?"이 되는 겁니다. '비밀'로 번역된 것은 '미스테리아'입니다. 면 그게 기도인지 아닌지를 어떻게 알 수 있을까요?
■지방언어를 말하는 (고전14:2) (λαλῶν γλώσσῃ 랄론 글로쎄) "외국어를 말하는" 뜻입니다. (한국어 "사투리를 말하는") ὁ γὰρ λαλῶν γλώσσῃ 호 가르 랄론 글로쎄 그 자. 왜냐하면. 말하는. 방언으로. 이 γλώσσῃ(글로쎄)가 헷소리? ● 다른 언어들로 말하기를 (행2:4) λαλεῖν ἑτέραις γλώσσαις 랄레인 헤테라이스 글로싸이스 말하다. 다른. 언어들 ● 우리의 각 언어로 (행전2:11) ταῖς ἡμετέραις γλώσσαις 타이스 헤메테라이스 글로싸이스 그 우리 자신들의 언어로 γλώσσα(글로싸)는 "통용하는 언어"의 뜻으로 쓰이지 헷소리가 아닙니다. ............................................... λαλῶν 랄론. λαλεῖν 랄레인 λαλεῖ 랄레이 λαλεω는 기본형이 랄레오인데 말씀하다 (마9:18. 눅1:70. 요27:25) 말하다 (마10:19. 막14:19. 딛2:15. 계10:3~4) 이르다 (마14:27. 눅2:20) 이야기하다 (누가 9:11) 전하다 (요한 11:19. 14:25.) 가르치다 (마가 4:33) 화답하다 (에베소서 5:19) 말을 하다 (유다서 16절) 등으로 번역됩니다. 이 구절들 찾아서 언어인지 헷소리인지 확인해보세요. 성경의 방언은 통용하는 언어인데 무슨, 주절주절 헷소리가 방언일까요! .............................................. 한국어 번역도 방언(지방 언어. 사투리) 으로 번역하는데도, 아무 뜻도 없는 헷소리를 < 사람이 아는 언어가 아니다. 기도하는 자도 모르는 소리다. 하늘의 언어다. 성령의 은사요, 성령세례의 표징이다. 성령 훼방하지 마라...> 목사들 중에도 이런 소리를 하는 자가 있네요... 사람이 아는 언어가 아니라면 그게 지방언어인지 아닌지를 어떻게 알 수 있죠? 글 내용 파악만 잘해도, 시도행전 및 고린도전서 방언이 사람들이 일상생활에서 쓰는 언어임을 알 수 있습니다. 방언은 지방언어의 줄임말입니다. 주절주절 헷소리는 언어가 아니라서 방언이 아닙니다. 아무 뜻 없는 헷소리일 뿐입니다.
( *지방 언어, 외국어가 방언임* ) ■ 지방언어를 말하는 (14:2) (λαλῶν γλώσσῃ 랄론 글로쎄) "외국어를 말하는" 뜻입니다. ὁ γὰρ λαλῶν γλώσσῃ 호 가르 랄론 글로쎄 그 자. 왜냐하면. 말하는. 방언으로. 이 γλώσσῃ(글로쎄)가 헷소리? ● 다른 언어들로 말하기를 (행2:4) λαλεῖν ἑτέραις γλώσσαις 랄레인 헤테라이스 글로싸이스 말하다. 다른. 언어들 ● 우리의 각 언어로 (행전2:11) ταῖς ἡμετέραις γλώσσαις 타이스 헤메테라이스 글로싸이스 그 우리 자신들의 언어로 γλώσσα(글로싸)는 "통용하는 언어"의 뜻으로 쓰이지 헷소리가 아닙니다. 로마 시대에는 *지방언어였고,* 그 때 각 지방이 지금은 각각의 나라로 되었으니까 *현재는 외국어죠.*
지'방 언'어의 줄임말이 방언. *방언은* 사도행전에서나 고린도전서나, *사람들이 일상생활에서 쓰는 '언어' 입니다.* 한국 교회에서 질러대는 아무 뜻이 없는 중얼중얼 헷소리는 방언도 아니고 성령님의 은사도 아닙니다. 바울 사도가 14장에서 처음부터 *지방언어에* 대해 말하고 언어와 관련된 단어를 계속 씁니다. 방언을 *외국어라고* 분명히 말합니다. 고전 14:11. 14:21. 14:27.
좋은 말씀 감사합니다. 창피해서 말 한적 없는 일인데 제가 중학생때 부흥집회, 기도원, 경기장에서 하는 찬양대회?, 새벽기도 다니면서 방언하는 어른들을 많이 봤고 그 나이에 제가 '알랄랄라' 이런 소리로 크게 소리내며 기도했던 기억이 있어요. 스스로도 방언을 하며 믿음이 크다 생각했죠. ㅎ 그런데 분명한 건 마음 한편에 내가 그 분위기에 동화되어 예배당에 크게 울리는 그 소리를 따라하게 되는 생각이 들었고 또 우쭐해하는 기분이 들 때도 있었습니다. 잘못된 기도였죠. 그 후 암울한 고등학교, 20대 중반을 예수님을 멀리라며 지내다 다시 예수님을 찾았을 때 중언부언하는 방언이 아닌 내가 진정으로 하고싶은 기도를 또박또박 말로 드리는 중입니다. 영상에서 마지막부분에 말씀하셨듯 내 마음으론 할 수 없는 일을 성령님께서 해 주셨다는 확신을 가지는 경험을 하면서 더 믿음이 굳건해지기도 했고요. 방언이 믿음의 크기와 상관이 없다여기며 다 나와같지는 않겠지만 경험 상 예배 중 기도 시작과 함께 큰 소리로 방언하시는 분들보면 사실 경건한 분위기가 갑자기 귀신들린 사람들이 있는 그런 분위기로 느껴지곤 합니다.
방언 받으셨던것이 확실 하네요 우리 말로 또박또박 기도 하시는것도 귀한 일이지만 하나님이 주신 귀한 선물인 방언으로 계속 기도하시면 말할수 없는 하나님의 은혜가 있으실거에요 처음에는 의심이 들지만 계속 기도하다 보면 그뜻도 알게된답니다 하나님이주신 귀한 선물을 서랍에넣어두고 꺼내어 보지도 않으시면 하나님이 굉장히 섭섭해 하실거 같아요 방언기도를 주셨을때에는 많이 하라고 주신거 아닐까요
성경에 모든 영이 다 하나님께로 온게 아니다라는 말씀이 있자나요. 불교 이슬람 천주교 여호와증인 및 기타 종교나 이단의 예배에서 절대로 빠지지 않는게 염불 주문과 같은 이 제 2형의 방언과 같은 것입니다. 그들은 모두 자신들이 전능자와 교통을 한다고 믿고 있겠지만 실상은 다른영 혹은 귀신에게 예배를 한다는것입니다. 그렇기때문에 이 두번쟤 유형의 방언은 홀로 다락방이나 아무도 내가 그곳에서 기도하는걸 듣지못하는 장소에서 하나님께 1대1로 기도를 드리때만 혼돈, 무질서가 아닌 창조와 생명의 시작이 되는것이라고 이영상에서 목사남께서 정확히 말씀해주십니다.
성경에서 말하는 방언은 외국어를 말하는 것이지 알아듣지도 못하는 이상한 소리를 내는게 아닙니다. 그 방언의 경험이 사탄의 거짓 경험이 될 수 있고 말씀이 곧 생명일턴데 이런 경험으로 성경과 하나님의 말씀을 멀리하고 경험적인 신앙만 추구 할 수도 있습니다. 사단은 분명하게 영광스러운 천사의 모습으로 우리를 미혹한다고 하였으며 마지막 시대에 살아가는 지금 악의 영은 다른 곳이 아닌 교회에 있음을 예언을 통하여 너무나 명백하게 예언하고 있고 그 시대에 놓여 살고 있습니다. 성경을 보며 기도함으로써 정말 참된 진리를 가진 교회와 목회자를 판단하셔야 하고 마지막 시대에 살아가고 있는 지금 예수님의 재림을 코 앞에 둔 지금 하나님의 계명과 예수의 증거 즉, 대언의 영을 가지고 하나님의 사랑과 성품을 온 세상에 드러내야 할 사명이 있는 교회에서 거짓되고 이상한 소리의 방언으로 예수님을 찾으러 온 백성들을 놓치는 경험이 없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교회에서 일어나는 이 모습들이 악의 영들의 세력일 수 있음을 언제나 조심하고 또 조심해야 됩니다.
정리 11:55 방언의 종류 1. 인간이 이해할 수 있는 말 2. 하나님을 향한 말 1. 인간이 이해할 수 있는 말 13:07 오순절 방언 : 다른 언어를 쓰는 사람이 이해할 수 있는 말. 소통을 위한 언어. 2. 하나님을 향한 말 15:59 고린도전서 14장 2절 사람에게 말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 말하는 것. 바울은 여기서 말하는 방언은 시간과 장소에 따라 적절하게 사용되어야 한다고 말함. 예배라고 하는 것은 '공동'으로 하는 것이라서 개인이 하나님께 알 수 없는 말을 해서 그 예배에 참여하는 다른사람이 소외되거나 무질서하게 될 수 있기에 바울은 이를 경고함. 개개인의 소통이 불가능한 형태의 기도(즉, 2번째 의미의 방언)를 받으라고 강조하고 무질서하게 사용되는 것을 경계함. 19:16 그럼 왜 한국교회에서 방언이 강조되었는가? 20세기 초 은사주의 운동에서 기초. 삼위일체 하나님 중에서 '성령님'을 다시 주목하게 된 노력이 있음. 그러나 질서의 하나님, 성령님을 보고, 바울이 방언을 어떻게 사용했는지 본다면 우리의 신앙이 다른 사람들에게 열광주의적이라고 생각이 들만큼 무분별하게 사용해서는 안되고, 시기와 상황에 맞춰 절제하면서 사용해야한다. 결론 21:54 성령님이 함께 한다는 건 방언의 유무로 판단할 수 없다. 일상 생활을 하면서 같은 상황을 보더라도 내 마음가짐이 전환되는 일을 경험했을 때, 그 때가 성령님이 나와 함께 하시는 것이다.
( *'지방언어, 외국어'가 방언임* ) 코린트는 항구 무역도시고 아주 번성했어요. 여러 지역 출신들이 있었고 언어도 다양했죠. 교회에도 여러 언어가 있었는데 대화나 기도할 때 통역도 없이 각자의 언어로 하니까 질서가 없고 화합도 안 되고 엉망이 된 거였어요. 그래서 바울 사도가 그 무질서를 바로잡을려고 쓴 글이 고린도전서 14장입니다. 언어를 질서있고 품위있게 하라는 내용입니다. 아무 뜻이 없는 *중얼중얼 헷소리는 방언 아닙니다.*
( *헷소리는 방언이 아닙니다* ) "내가 질러대는 괴소리를 나도 모른다"고? ● 내가 영으로 기도하고~ (14:15) 영으로 기도한다는 것이 "내 영혼이 나도 모르는 괴소리로 기도한다"는 뜻 ?? 내 몸 안에 '나도 모르는 괴소리로 기도하는 영혼'이 따로 있나요? 중얼이 방언파 신자님들의 영과 혼과 님은 서로 다른 존재며, 서로 다른 인격인가요? 아니, "방언 은사 내가 받았다"고 할 때는 언제고, 그 은사를 써먹는 것은 님들이 아니라, 님들의 영? 혼? 또는 *님들의 마음?* 님들의 영혼이 하는 기도가 있고, 또 마음이 하는 기도가 따로 있나요? '그 마음'도 님들이 모르는 언어로 기도를 하나요? 바울 사도가 " 인간 안에 자기의식, 영, 혼, 마음 등이 각각 따로 노는 인격적 존재고, 그 인격들이 나도 모르는 괴소리로 기도한다" 고 하는 겁니까? 16절 보세요. 내가 영으로 축복하는 데 말을 한대요. 말. 언어. 다른 사람이 *알아듣는 말로* 축복을 하라네요. 괴소리 주절거리지 마세요. 그거 방언(=지방언어) 아닙니다. 글 내용 파악 못 하는 것은 자랑 아니거든요.
원한과 증오에 매달리지않고 희망의 활력이 샘솟는것이 성령이 함께하는것이라는 말은 위로 일수도 있으나 한편 절망이네요...마음이 힘든 성도는 나에게 성령의 보살핌이 없는건가 하는 회의감을 줄수도 있으니까요...그런 부정적인 마음은 마귀의 속삭임 이라고 하지는 말아주세요ㅠㅠ
방언에 대한 부정적인 선입견을 갖지는 마세요. 성경을 자세히 읽어보세요. 방언이 주는 유익은 정말 크답니다. 방언은 하나님의 선물입니다. 하나님의 선물을 거부할 이유가 없겠지요. 그렇다고 방언을 한다고 하여 우월감을 가질 필요도 없습니다. 그것은 교만입니다. 방언은 우리 영혼을 강하게 하고 우리를 영적전쟁의 승리를 돕습니다. 경험해봐야 아는 것 입니다. 방언의 은사를 진정으로 사모하세요.
절대 부정적으로 생각하지 않는데 다만 교회안에서 온성도가 다같이 방언하는것은 아직 믿지 않는 새신자가 처음 교회에 왔다가 이질감을 느껴 더 마음에 문을 닫을수 있으니 장소와 때를 가리라는 뜻으로 받아들였습니다.예를 들어 내가 하나님을 모르는 친구를 전도하여 처음 교회를 데리고 갔는데 온성도가 방언을 하고 있고 데리고 온 나마저 큰소리로 방언을 한다면 교회가 처음인 그친구는 무슨 마음을 갖게 될까요 다른 사람들을 배려할줄알고,귀한 방언의 은사는 혼자 기도할때도 충분히 누릴수 있으니 그렇게 하는것이 성숙한 신앙의 태도인것 같습니다.
사도바울은 방언이 신앙에 유익하며 자신이 누구보다 방언으로 기도를 많이하며, 방언하는것을 금하지 말라고 하셨고 예언 은사를 사모하고 받으라고 고린도 전서에 나옵니다. 안타가운건 방언이나 예언 은사를 받지 안고 개인이나 어느 개신교 "보수파"교리로 성령의 은사들을 풀이하는거가 과연 진짜 성서적인지 생각해봐야겠습니다.
방언 하시는분은 방언하시는대로, 안하시는분은 안하시는대로 기도 많이 하시기 바랍니다. 방언을 하여 주님께 더 가까이 나아갈수 있다면 그것이 미친사람처럼 보인들 무슨 상관이 있겠습니까? 아무 열매도 없는 종교적 논쟁과 이론에 휘둘리지 마시고 각자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시기 바랍니다..
@@Maria.usang.sungbae 굳이 바로잡지 않으셔도 됩니다.. 방언기도 하시는 분들이 배교자들도 아닌데, 뭘 바로잡으시겠다는 건지.. 몇 시간씩 방언기도 하면서 다들 신앙생활 잘 하고 있습니다.. 방언기도가 거짓인지 아닌지는,, 방언기도를 해 보면 압니다. 그러므로 방언기도를 안하시는 분들이 방언기도에 대해서 판단할 자격은 애초부터 없는 겁니다. 경험해 본 적이 없어 잘 알지 못하는 것을 무슨 근거로 판단할 수 있겠습니까? 방언기도를 부정적으로 판단하는 사람들의 공통점은,, 그들 모두 방언기도를 해본 적이 없다는 사실입니다...
배우지 못한 예수제자들이 갑자기 여러 외지에서 온 유태인들이 "알아듣게 말한 방언"이란 다름아닌 현지언어.외국어를 지칭하는 것이고 이것이 본래의 방언 제대로 뜻. 성령 받아 누구도 알 수 없는 말을 하는 것은 方言(地方언어)이 아니므로 神語. 혹은 靈語라고 하는 게 맞아. 성경의 방언은 神語. 靈語로 바꾸는 게 적절.
■지방언어를 말하는 (고전14:2) (λαλῶν γλώσσῃ 랄론 글로쎄) "외국어를 말하는" 뜻입니다. (한국어 "사투리를 말하는") ὁ γὰρ λαλῶν γλώσσῃ 호 가르 랄론 글로쎄 그 자. 왜냐하면. 말하는. 방언으로. 이 γλώσσῃ(글로쎄)가 헷소리? ● 다른 언어들로 말하기를 (행2:4) λαλεῖν ἑτέραις γλώσσαις 랄레인 헤테라이스 글로싸이스 말하다. 다른. 언어들 ● 우리의 각 언어로 (행전2:11) ταῖς ἡμετέραις γλώσσαις 타이스 헤메테라이스 글로싸이스 그 우리 자신들의 언어로 γλώσσα(글로싸)는 "통용하는 언어"의 뜻으로 쓰이지 헷소리가 아닙니다. ............................................... λαλῶν 랄론. λαλεῖν 랄레인 λαλεῖ 랄레이 λαλεω는 기본형이 랄레오인데 말씀하다 (마9:18. 눅1:70. 요27:25) 말하다 (마10:19. 막14:19. 딛2:15. 계10:3~4) 이르다 (마14:27. 눅2:20) 이야기하다 (누가 9:11) 전하다 (요한 11:19. 14:25.) 가르치다 (마가 4:33) 화답하다 (에베소서 5:19) 말을 하다 (유다서 16절) 등으로 번역됩니다. 이 구절들 찾아서 언어인지 헷소리인지 확인해보세요. 성경의 방언은 통용하는 언어인데 무슨, 주절주절 헷소리가 방언일까요! .............................................. 한국어 번역도 방언(지방 언어. 사투리) 으로 번역하는데도, 아무 뜻도 없는 헷소리를 < 사람이 아는 언어가 아니다. 기도하는 자도 모르는 소리다. 하늘의 언어다. 성령의 은사요, 성령세례의 표징이다. 성령 훼방하지 마라...> 목사들 중에도 이런 소리를 하는 자가 있네요... 사람이 아는 언어가 아니라면 그게 지방언어인지 아닌지를 어떻게 알 수 있죠? 글 내용 파악만 잘해도, 시도행전 및 고린도전서 방언이 사람들이 일상생활에서 쓰는 언어임을 알 수 있습니다. 방언은 지방언어의 줄임말입니다. 주절주절 헷소리는 언어가 아니라서 방언이 아닙니다. 아무 뜻 없는 헷소리일 뿐입니다.
교수님이 목회를 하신다면 꼭 가보고 싶어요. 대부분의 교회가 제 믿음의 결과 다르고 율법적이어서 하나님을 믿어도 출석 하고픈 교회가 없거든요… 지방은 더더욱 ‘아무튼 믿습니다‘ 신앙이 강해서 꺼려집니다. 잘잘법으로 예수님을 더욱 알게 되어 기쁩니다❣️ 용서하고 사랑하는 마음이 하나님으로부터 왔다는걸 최근에 절실히 깨닫는 사건이 있었는데 성령의 역사는 전기충격 같은 것이 아니라 은근하고 따스하다는걸 알게 되었거든요ㅎㅎ 지금 준비중인 창업도 오해가 쌓인 ‘예수님‘ 겉 이름을 전하는 복음이 아니라 그 핵심인 사랑을 전하고 싶다는 취지로 시작하게 되었어요. 제게 성령이 역사하신다니 기쁘고 감사해요!
방언이라고 하면 무조건 씨끄러운 통제 안되는 소리라고 생각하시는데, 통성기도할때보다 더 작은 소리로도 할수 있는게 방언입니다. 옆에서는 그게 방언을 하는건지, 통성기도의 흐느낌인지 구별이 안될정도로 작게도 할수도 있는게 방언입니다. 근데, 통역하는 자가 없으면 교회에서는 하지 말라고 했으니... 저 시대에 비해서 요즘 대부분 교회에는 통역하는 사람이 거의 없을테고....게다가 마귀방언이란 굴레를 씌워서 주변에 방언하는 사람조차 찾기 힘든마당인데. 김학철 교수님이 말씀하시는 저건 잘못 된겁니다. 사도 바울이 방언 말하는건 금하지말라고, 모든걸 질서 있게 품위 있게 하라고 했습니다. 교회에서 하더라도 톤 조절하면서 질서있게 하면 됩니다. 요즘 교회에 방언하는 사람도 극히 찾기 힘든마당인데, 통역자가 저 시대 만큼 그렇게 쉽게 찾아 지겠습니까? 그리고 방언기도 하시는분들 대부분이 방언기도 + 육성기도 + 마음으로 하는 기도 여러가지로 다 합니다. 방언한다고 해서 저 사람이 오로지 방언으로만 기도할꺼라 생각지 마세요. 방언도 1~2시간 하면 체력이 딸려서 입 다물고 기도 했다가 육성으로도 기도했다가......기도할꺼 더는 생각안나면 그때는 또 방언으로 하다가..번갈아 한다는거....잊지마세요. 다들 그렇게 합니다.
@@cdi1028 ( *헷소리가 방언?* ) 코린트의 사회적 배경을 알면 고전 14장 내용은 아주 간단하죠. 항구 무역도시라 여러 지역 출신들이 있었고 교회에도 다양한 언어가 있었어요. 자기 출신 지역의 언어들을 쓰니까 교회가 질서가 없고, 엉망인 거였어요. 그래서 그 여러 언어들을, 교회 안에서 어떻게 써야 하는지에 대한 지침이 고전 14장입니다. 중얼중얼 헷소리에 대해서는 한 마디도 안 해요. 헷소리를 방언이라 하면서 그거 받았다고 은근 자랑하고, 뿌듯해 하는 꼬라지들 차암 가관이더군요.
(방언은 지방언어의 줄임말) 코린트는 본토와 펠로폰네소스 반도를 잇는 지협에 있는 항구 무역도시인데 매우 번성했어요. 코린트만에서 지협(地狹) 건너편의 사로니코스만으로 배를, 통째로 옮기기도 했어요. (코린트만 쪽에서 아테네로 가려면 펠로폰네소스 반도를 멀리 돌아가야 했거든요. 지금은 운하가 있습니다) 여러 지역 출신들이 있었고 교회에도 다양한 언어가 있었는데, 예배 때나 대화할 때 각자가 자기만 아는 언어로 하니까 질서가 없고 화합도 안 되고 엉망이 된 거였어요. 그래서 바울 사도가 그 무질서를 바로잡을려고 쓴 글이 고린도전서 14장입니다. 교회에서 언어 사용을 질서있고 품위있게 하라는 내용입니다. 아무 뜻도 없는 중얼중얼 헷소리 주절거리라는 거 아닙니다. 바울 사도가 14장에서 처음부터 지방언어에 대해 말하고 언어와 관련된 단어를 계속 씁니다. 방언을 언어라고 분명히 말합니다. 고전14:11. 14:21. 방언으로 말할 때는 ① 순서를 정해서 ② 많아야 세 사람만 ③ 통역하고 ④ 통역 없으면 교회에서는 하지 마라 (고전14:26~28) 이러잖아요. 헷소리 하는 사람들 어떻게 하는지 보세요. 순서고 뭐고 없이 떼거리로 와글와글, 통역도 안 합니다. 바울 사도가 '하지 말라는 짓' 다 합니다. 대체 누가 "헷소리 중얼중얼이 방언"이라는 주장을 시작했을까요?
7년전인가 제가 아주 힘든일이 있어서 거의 죽어갈때 교회에 가서 울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어 신앙심이 충만한 친한 언니에게 물어봐 소개를 받아 한 교회에 갔는데요.들어가서 앉았다가 도저히 안되겠어서 뛰쳐나온적이 있어요 온 교인이 다 방언으로 기도를 하는데 새신자 입장에서는 겁이 나더라구요.지금은 물론 하나님의 인도하심에 따라 교회를 다니고 있는데 저도 그때에 기억이 강렬하여 방언을 다같이 하는것은 처음 교회에 온 분들에게 너무 큰 이질감을 줄수 있으니 경계하는것이 좋다고 생각합니다.천하보다 귀한 그 한명의 새신자가 교회에 발 내딛는것 까지도 사실 상당히 용기를 낸 것일수 있는데 다시 도망가게 하는일은 좋은것 같진 않아서요.혼자서 기도할때 방언의 은사를 누리심이 맞지 않나 싶습니다
@@Maria.usang.sungbae님이 아는 범위는 우주의 물 한방울의 범위에도 못듭니다,어지간히 하세요. 우주전체가 하나님의 영이 있고 지구에도 충만한데 하나님이 예수님의 대속사역 이후로 인긴과 함께 하시는 방법중의 하나가 방언기도입니다. 님이 방언 못하시면 그냥 조용히 계시는게 지혜 같군요. 방언 못해도 구원 못받는 것은 아니지만 방언의 유익은 상상을 초월해요. 방언 만 하고 말씀에 대한 이해가 없으면 그 방언이 헛것이 될 수가 있는 부작용도 있구요.
[ *헷소리는 아무 뜻이 없어서 방언(= 지방언어)이 아닌 것임.* ] ■ 14:2 알아듣는 자가 없고 는 뜻이 아닙니다. 14:28절 보세요. ●~자기와 하나님께 "말할" 것이요. 기도하는 사람이 알아듣습니다. 언어를 말하는데 자기가 하는 말을 모를 수가 있나요? 언어는 두뇌에서 언어 규칙을 따라, 뜻이 정해진 발음의 단어들을 조합하여 소리를 내는 것이기에 사람은 자기가 모르는 언어를 할 수가 없어요. 기도는 내 마음을 말로 하나님께 하는 것인데 내 마음과 내 생각을 내가 모를 수가 있냐고요? 14:28 "말할 것이요"의 "말"인 λαλείτω (랄레이토) 와 λαλῶν (랄론). λαλεῖν (랄레인) λαλεῖ (랄레이) 등은 기본형이 λαλεω (랄레오)인데 말씀하다(마9:18. 눅1:70. 요3:34) 말하다 (마10:19. 막14:19. 딛2:15. 계10:3~4) 이르다 (마14:27. 눅2:20) 이야기하다 (누가 9:11) 전하다 (요한 11:19. 14:25.) 가르치다 (마가복음 4:33) 화답하다 (에베소서 5:19) 말을 하다 (유다서 16절) 등으로 번역됩니다. 이 구절들 찾아서 헷소리를 뜻하는 경우가 있는지 확인해보세요. 성경의 방언은 일상생활에서 쓰는 언어입니다. '뜻 없는 소리'가 아님. ............................................... 남이 모르는 외국어로 기도하면, 기도하는 사람과 하나님만 알기에 다른 사람에게는 "아리송?"이 되는 겁니다. '비밀'로 번역된 것은 '미스테리아'입니다. "기도하는 사람도 자기가 무슨 말을 하는지를 모른다"면 그게 기도인지 아닌지를 어떻게 알 수 있죠? @@Nicolai2024
방언을 말하는 사람은 사람에게 말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 말하기 때문에, 그가 하는 말을 알아들을 수 있는 사람이 없습니다. 그 사람은 성령으로 하나님의 비밀들을 말하는 것입니다. (고전14:2, 쉬운성경) 나는 내가 여러분 중의 어느 누구보다도 더 많이 방언을 말하는 것으로 인해 하나님께 감사드립니다. (고전14:18, 쉬운성경)
*중얼중얼 헷소리는 방언 아님* ■ 14:2 알아듣는 자가 없고 는 뜻이 아닙니다. 14:28절 보세요. ●~자기와 하나님께 "말할" 것이요. 기도하는 사람이 알아듣습니다. 언어를 말하는데 자기가 하는 말을 모를까요? 언어는 두뇌에서 언어 규칙을 따라, 뜻이 정해진 발음의 단어들을 조합하여 소리를 내는 것이기에 사람은 자기가 모르는 언어를 할 수가 없습니다 기도는 내 마음을 말로 하나님께 하는 것인데 내 마음과 내 생각을 내가 모를 수가 있나요? 14:28 "말할 것이요"의 "말"인 λαλείτω (랄레이토) 와 λαλῶν (랄론). λαλεῖν (랄레인) λαλεῖ (랄레이) 등은 기본형이 λαλεω (랄레오)인데 말씀하다(마9:18. 눅1:70. 요3:34) 말하다 (마10:19. 막14:19. 딛2:15. 계10:3~4) 이르다 (마14:27. 눅2:20) 이야기하다 (누가 9:11) 전하다 (요한 11:19. 14:25.) 가르치다 (마가복음 4:33) 화답하다 (에베소서 5:19) 말을 하다 (유다서 16절) 등으로 번역됩니다. 이 구절들 찾아서 헷소리를 뜻하는 경우가 있는지 확인해보세요. 성경의 방언은 일상생활에서 쓰는 언어입니다. '뜻 없는 소리'가 아님. ............................................... 남이 모르는 외국어로 기도하면, 기도하는 사람과 하나님만 알기에 다른 사람에게는 "아리송?"이 되는 겁니다. '비밀'로 번역된 것은 '미스테리아'입니다. 면 그게 기도인지 아닌지를 어떻게 알 수 있을까요?
@@Maria.usang.sungbae 13 그러므로 방언을 말하는 자는 통역하기를 기도할지니 14 내가 만일 방언으로 기도하면 나의 영이 기도하거니와 나의 마음은 열매를 맺지 못하리라 15 그러면 어떻게 할까 내가 영으로 기도하고 또 마음으로 기도하며 내가 영으로 찬송하고 또 마음으로 찬송하리라 (고전14:13-15) ==> 혼으로 알아듣지 못하기에 열매를 맺을 수 없고 그러므로 이럴 때 영 뿐 아니라 마음(혼)으로도 찬송해야 한다고 직접 설명해주고 있습니다. 고린도전서 14장을 깊게 묵상하세요. 부분 부분 가지고 훼방하려 한다 하여 진리가 바뀌는 것이 아닙니다.
성경에서 말하는 방언은 외국어를 말하는 것이지 알아듣지도 못하는 이상한 소리를 내는게 아닙니다. 그 방언의 경험이 사탄의 거짓 경험이 될 수 있고 말씀이 곧 생명일턴데 이런 경험으로 성경과 하나님의 말씀을 멀리하고 경험적인 신앙만 추구 할 수도 있습니다. 사단은 분명하게 영광스러운 천사의 모습으로 우리를 미혹한다고 하였으며 마지막 시대에 살아가는 지금 악의 영은 다른 곳이 아닌 교회에 있음을 예언을 통하여 너무나 명백하게 예언하고 있고 그 시대에 놓여 살고 있습니다. 성경을 보며 기도함으로써 정말 참된 진리를 가진 교회와 목회자를 판단하셔야 하고 마지막 시대에 살아가고 있는 지금 예수님의 재림을 코 앞에 둔 지금 하나님의 계명과 예수의 증거 즉, 대언의 영을 가지고 하나님의 사랑과 성품을 온 세상에 드러내야 할 사명이 있는 교회에서 거짓되고 이상한 소리의 방언으로 예수님을 찾으러 온 백성들을 놓치는 경험이 없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교회에서 일어나는 이 모습들이 악의 영들의 세력일 수 있음을 언제나 조심하고 또 조심해야 됩니다.
( *중얼중얼 헷소리는 방언 아님* ) ■ 지방언어를 말하는 (14:2) (λαλῶν γλώσσῃ 랄론 글로쎄) "외국어를 말하는" 뜻입니다. ὁ γὰρ λαλῶν γλώσσῃ 호 가르 랄론 글로쎄 그 자. 왜냐하면. 말하는. 방언으로. 이 γλώσσῃ(글로쎄)가 헷소리 ? ● 다른 언어들로 말하기를 (행2:4) λαλεῖν ἑτέραις γλώσσαις 랄레인 헤테라이스 글로싸이스 말하다. 다른. 언어들 ● 우리의 각 언어로 (행전2:11) ταῖς ἡμετέραις γλώσσαις 타이스 헤메테라이스 글로싸이스 그 우리 자신들의 언어로 γλώσσα(글로싸)는 "통용하는 언어"의 뜻으로 쓰이지 헷소리가 아닙니다. ............................................... λαλῶν 랄론. λαλεῖν 랄레인 λαλεῖ 랄레이 λαλεω는 기본형이 랄레오인데 말씀하다(마9:18. 눅1:70. 요3:34) 말하다(마10:19. 막14:19. 딛2:15. 계10:3~4) 이르다 (마14:27. 눅2:20) 이야기하다 (누가 9:11) 전하다 (요한 11:19. 14:25.) 가르치다 (마가복음 4:33) 화답하다 (에베소서 5:19) 말을 하다 (유다서 16절) 등으로 번역됩니다. 이 성경 구절들 찾아서 언어인지 헷소리인지 확인해보세요. 성경의 방언은 통용하는 언어인데 무슨, 주절주절 헷소리가 방언일까요! .............................................. 한국어 번역도 방언(지방 언어. 사투리) 으로 번역하는데도, 글 내용 파악 못 하고서 아무 뜻도 없는 헷소리를 < 사람이 아는 언어가 아니다. 기도하는 자도 모르는 소리다. 하늘의 언어다. 성령의 은사요, 성령세례의 표징이다. 성령 훼방하지 마라...> 참... 어이가 없어지네요 사람이 아는 언어가 아니라면 그게 지방언어인지 아닌지를 어떻게 알 수 있죠? 글 내용 파악만 잘해도, 시도행전 및 고린도전서 방언이 사람들이 일상생활에서 쓰는 언어임을 알 수 있습니다. 지방 언어의 줄임말이 방언입니다. 헷소리는 언어가 아니라서 방언이 아닌 것입니다. 아무 뜻 없는 소리일 뿐입니다.
[ *헷소리는 아무 뜻이 없어서 방언(= 지방언어)이 아닌 것임.* ] ■ 14:2 알아듣는 자가 없고 는 뜻이 아닙니다. 14:28절 보세요. ●~자기와 하나님께 "말할" 것이요. 기도하는 사람이 알아듣습니다. 언어를 말하는데 자기가 하는 말을 모를 수가 있나요? 언어는 두뇌에서 언어 규칙을 따라, 뜻이 정해진 발음의 단어들을 조합하여 소리를 내는 것이기에 사람은 자기가 모르는 언어를 할 수가 없어요. 기도는 내 마음을 말로 하나님께 하는 것인데 내 마음과 내 생각을 내가 모를 수가 있냐고요? 14:28 "말할 것이요"의 "말"인 λαλείτω (랄레이토) 와 λαλῶν (랄론). λαλεῖν (랄레인) λαλεῖ (랄레이) 등은 기본형이 λαλεω (랄레오)인데 말씀하다(마9:18. 눅1:70. 요3:34) 말하다 (마10:19. 막14:19. 딛2:15. 계10:3~4) 이르다 (마14:27. 눅2:20) 이야기하다 (누가 9:11) 전하다 (요한 11:19. 14:25.) 가르치다 (마가복음 4:33) 화답하다 (에베소서 5:19) 말을 하다 (유다서 16절) 등으로 번역됩니다. 이 구절들 찾아서 헷소리를 뜻하는 경우가 있는지 확인해보세요. 성경의 방언은 일상생활에서 쓰는 언어입니다. '뜻 없는 소리'가 아님. ............................................... 남이 모르는 외국어로 기도하면, 기도하는 사람과 하나님만 알기에 다른 사람에게는 "아리송?"이 되는 겁니다. '비밀'로 번역된 것은 '미스테리아'입니다. "기도하는 사람도 자기가 무슨 말을 하는지를 모른다"면 그게 기도인지 아닌지를 어떻게 알 수 있죠?
방언이란 신비주의에 빠져 방언이 다인것처럼 주장하고 성령받았다고 빠져 살아가는것은 위험한 일 이라 생각 됩니다 현재 내가 그리스도의 복음에 있느냐 없느냐가 더 중요한일 이라생각이 듬니다 방언을 하지말란것이 아니지만 다 내려놓고 하나님께 골방에들어가 기도하는 은밀한 기도와 같은 하나님과 사귐으로 기도해봅니다 ~
고린도 전서 13장 8절 사랑은 언제 까지나 떨어지지 아니하되 예언도 폐하고 방언도 그치고 지식도 폐 하리라. 10절 온전한 것이 올 때에는 부분적으로 하던 것이 폐 하리라. 12절 우리가 지금은 거울로 보는 것 같이 희미하나 그 때는 얼굴과 얼굴을 대하여 볼 것이요. 지금은 내가 부분적으로 아나 그 때에는 주께서 나를 아신 것 같이 내가 온전히 알리라. 이 내용은 사도바울이 2,000년 전에 고린도 교회에 써 보낸 편지 입니다. 그 당시 고린도 교회의 교인들이... 성령의 역사하심 으로... 방언과 예언과 그리스도에 대한 지식을 체험했습니다. 그리고 영혼의 구원을 받았습니다. 육신이 죽는 날까지... 형제사랑 하면서... 서로 돕고...믿음을 지켜냈습니다. 2,000년 전에 폐한 방언이... 어떻게 오늘날 다시 있겠습니까?
● 혀로써 알아듣기 쉬운 말을 하지 아니하면 (고전14:9) 알아듣기 쉬운 말을 하라는데, 왜들 그렇게 중얼중얼 헷소리 못 해서 안달을 할까요? '알아들을 수 없는 일만 마디 외국어'보다, "성경의 방언은 외국어지 중얼거림이 아니다" 같은, 알아들을 수 있는 이런 다섯 마디가 더 낫다는데(14:19) 왜, 방언도 아닌, '아무 뜻도 없는 중얼중얼 헷소리'를 그토록 하고 싶어들 할까요? 아마 자기 과시, 자랑하려는 것 같으네요. 이라는 헛소리를 누가 시작했을까요?...
인간의 생애는 항해와 같다 앞이 보이지 않는 망망 대해를 표류하며 정착 할 곳을 찾아 다닌다 사람은 존재하여 느껴지는 감정과 욕구들이 있다 이것은 파도와 바람 암초와 같은 것이다 그때 그때 기분에 따라서 휩쓸려 다닌다면 여러 장애들로 인해 결코 올바르게 항해를 할 수 없을 것이다 그러나 이것을 컨트롤 하며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방향을 가르쳐 주는 것이 있다 나침반과 망원경이다 이것은 마음의 근원으로 성령이라 한다 사람에게 그저 감정대로 움직이고 감정대로만 살아갈 수 없다는 것을 확인 시켜 준다 양심과 분별도 모두 여기에 속한 부수 영역으로 이 모두를 포함하는 상위의 영할을 성령이 한다 그리하여 성령의 개념을 이해하여 깊이 파고드는 이는 판단과 행동에 있어서 더 나은 판단을 할 수 있다 더 많이 고민하고 더 많이 생각하며 미래를 시뮬레이션 하며 분석을 하고 결정하기 때문이다 감정보다 더 높은 차원이다 하지만 나침반 만으로 항해를 할 수는 없다 항해는 기본적으로 가고자 하는 목적지가 있고 나침반은 그것을 보조해 주는 수단에 불과하다 내가 어디를 가고자 하는지 그 도착지를 정하는 것이 지도이다 내가 가고자 하는 곳이 어디인지 지금 내가 어디쯤에 위치해 있는지 나의 의지를 넘어서 그렇게 움직이게 기본적으로 설계되어 있는 프로그램 같은 것이다 영으로써의 세상에 태어난 목적 운명이다 이것은 자아나 성령 보다도 높은 상위의 영역이다 인간이 어느 것을 기준으로 하느냐에 따라서 삶또한 달라지기 마련이다 감정이라는 낮은 단계를 세상의 전부로 아는 이와 성령을 이해하고 감정보다 위에서 바라보는 세계는 다른 세상이다 그러나 스스로 이 세상에 온 그 목적을 이해하는 자는 그보다 더 높은 차원에서 세상을 바라 볼 수 있다 마치 타인이 나를 바라 보는 것처럼 내가 나를 관찰자의 시점으로 바라 보는 것이다 나의 행동 나의 목적 내가 할일 그 모든 것을 내가 아닌 3인칭으로써 바라 보기에 감정의 개입이 없고 공간과 시간 그리고 물리적인 개념도 없다 이것은 육체의 개념도 아니고 영혼의 개념도 아니고 꿈이나 현실의 개념도 아니다 모든 곳에 존재하나 인식하지 않는한 존재하는지 모르고 무의식 또한 이것의 부수 영역이다 그것은 존재했었으나 인식하지 않아 존재하지 않았고 스스로 존재한다는 것을 알면서 그로부터 유가 창조되었다 자기 스스로 창조한 것으로 이것이 신이다 그 신이 자기와 같이 스스로 존재함을 주었으니 우리는 창조되었으나 우리도 창조를 할 수 있는 신이다 이러한 개념에 있는자는 새로운 세계와 공간을 창조할 수 있고 또 영역의 구분이 없기에 모든 곳에 존재 할 수 있고 모든 것을 볼 수 있고 모든 것을 들을 수 있고 모든 것을 생각 할 수 있고 그로부터 어떤 것도 위배되지 않는다 마치 유령과 같이 모든 접촉 모든 대립 모든 것으로부터 통과하듯이 인간이 영을 보는 것과 같이 영또한 인간이 영을 보는 것처럼 존재하나 잡을 수 없다 자아는 있으나 자아가 너무 높아 마치 없는 것과 같고 실체는 있으나 스스로 실체를 만들지 않는한 없는 것과 같고 생각이 있으나 그것은 마치 생각이 없는 것과 같다 감정이 있으나 그것은 스스로 부여 할 때 발생을 하는 것이다 스스로 강해지고 싶으면 계속해서 더 강해 질 수 있고 우주를 만들고 싶으면 우주를 만들 수 있고 스스로 존재를 닫고자 한다면 다시 의식이 고동되기 전까지 존재를 사라지게 만들 수도 있다 나는 이것을 초신아 라 이름을 붙인다 석가는 무상을 말했고 나는 유상을 말했다 초신아에서 바라보니 어떤 것도 맞지 않고 어떤 것도 틀리지 않고 어떤 것도 위배되지 않는구나 맞다 틀리다 어떤 특성이 있다 말하는 것은 하고자 하는 자가 그렇게 정하는 것이고 그런 형식을 부여하는 것은 아무런 상관이 없다 무념 무형 무명 무계 무공 유념 유형 유명 유계 유공 그런 것을 정할 필요 없이 초신아는 그저 초신아일 뿐이다 그리고 지금부터 가장 낮은 단계부터 인간이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말할 것이다 1단계는 감정과 욕구 2단계는 성령 3단계는 존재의 이다 생각이 자기 자신안에 갇혀 있는 상태가 감정과 욕구의 1단계이다 고통과 괴로움 욕심 생각과 사고가 자기안에 갇혀 있기에 자기 중심적이고 그에 따라 큰 영향을 받게 된다 괴로워 하기 때문에 괴로운 것처럼 즐거워 하면 즐겁게 변할 것이다 슬퍼하기 때문에 슬퍼하는 것처럼 기뻐하면 기쁘게 변할 것이다 1념에 몰두하기 때문에 마음의 고통이 생겨나는 것이다 그러니 사랑하라 기뻐하라 감사하라 3념만 생각하도록 하여라 3념만 생각하고 그 안에서 살면 행복 할 것이다 생각이 자신을 벗어나 타인을 한 공동체의 영역과 개체로 벗어나 함께 생각하는 것이 성령이다 이것은 자신과 다른 모든 존재에 대한 배려심 그로인해 자신이 맞는지 틀리는지 여러 사고를 하며 옮음을 찾아내려 하는 선의 지혜를 구하고 보여주고 가르치는 것이 성령이다 양심과 분별 종교도 성령의 영역 중 일부분을 각각의 형상화 작업을 한 것이다 양심 하나가 성령 전부와 같지는 않고 분별 하나가 성령 전부와 같지는 않고 종교 하나가 성령 전부와 같지는 않다 그러나 그 모두는 성령안에 포함된다 그리하여 그것은 성령이다 바름을 추구하는 것이 어떨때는 의도와 다르게 악한 행동을 한것이 되기도 하고 옳고 그름을 분별하는 것이 다름을 틀린 것으로 오판하게 하기도 하며 종교를 구분 하는 것이 내안의 청정함을 오인하고 일부만 바라보는 것이 되기도 한다 그리하여 그것은 성령을 말하는 것이긴 하나 성령 전부를 말하는 것이 아니라 성령에 포함된 일부를 말하는 것이다 그것은 기독교에서 말하는 성령의 개념보다 더 크게 보아야 하는 것이다 나의 성령만으로 해답을 내놓았다 생각하는 것은 성령을 작게 보는 것이다 너의 성령과 다른이의 성령이 합해지는 것은 성령즈 이다 집단의 지성과 바름 타인에 대한 배려를 모두 추구하는 것은 큰 규모의 성령즈 이다 모든 현자나 성인들은 세상에 도움이 될 지식이나 생각을 남겼다 이것은 좋은말만 한다고 다 그런 자라는 것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과학의 발전 의학의 발전도 인류에게 도움이 되는 그런 족적을 남겼다면 그 또한 성인에 부족함이 없을 것이다 그 이름높은 성인들이 페니실린을 발명한 알렉산더 플레밍 보다 많은 생명을 살리지는 못하였지 않은가 그 또한 성령의 개념인 것이다 예수만 보고 예수만 믿고 예수만 따르려 하는 것은 성령을 작게 보는 것이다 예수 이외의 수많은 이들을 함께 보고 함께 생각하고 함께 배우고 함께 가는 것이 더 큰 개념의 성령즈 이다 나는 석가는 무상정 등정각에 오른것이 아니라고 하였다 예수와 모든 자들이 함께 가는 것이 성령즈 인것 처럼 석가와 모든 자들이 함께 가는 것이 진정한 무상정 등정각이다 그러나 이또한 성령즈의 다른말일 뿐이다 함께 하자 그리고 함께 가자 함께 생각하자 함께 고민하자 함께 해결하자 이것이 진정한 성령의 참 모습이고 길이다 성령을 추구하는 것이 아니다 성령과 성령이 그리고 또 다른 성령이 만나 성령즈로 우리가 바름을 함께한 그 행적들이 목표의 기준이 되야 한다 이것의 다른 뜻은 구원이다
코린트는 항구 무역도시고 아주 번성했어요. 여러 언어가 있었죠. 교회에도 *여러 언어가 있었는데* 대화나 기도할 때 통역도 없이 *각자의 언어로 하니까* 질서가 없고 화합도 안 되고 엉망이었죠. 그래서 그 *무질서를 바로잡을려고* 쓴 글이 고린도전서 14장입니다. 헷소리 주절거림에 관한 내용이 전혀 아닙니다. 글 내용 파악들 좀 하세요.
오순절 운동 때처럼 부흥회 라는 특수한 환경에서는 방언받기를 권고할 수 있다고 봅니다. 그러나 영상에서 말하고자 하는 바는 방언을 "남용"하지 말자는 것 같습니다. 아무때나, 아무데서나 사용하지 말자는 것 같습니다. 때와 장소, 주변에 방언 때문에 도리어 시험에 들 사람은 없는지 등등을 잘 고려해서 방언을 사용하자는 취지이고 아울러 "방언만이 성령충만의 증거가 아니다" 로 요약할 수 있겠습니다.
성경에서 말하는 방언은 외국어를 말하는 것이지 알아듣지도 못하는 이상한 소리를 내는게 아닙니다. 그 방언의 경험이 사탄의 거짓 경험이 될 수 있고 말씀이 곧 생명일턴데 이런 경험으로 성경과 하나님의 말씀을 멀리하고 경험적인 신앙만 추구 할 수도 있습니다. 사단은 분명하게 영광스러운 천사의 모습으로 우리를 미혹한다고 하였으며 마지막 시대에 살아가는 지금 악의 영은 다른 곳이 아닌 교회에 있음을 예언을 통하여 너무나 명백하게 예언하고 있고 그 시대에 놓여 살고 있습니다. 성경을 보며 기도함으로써 정말 참된 진리를 가진 교회와 목회자를 판단하셔야 하고 마지막 시대에 살아가고 있는 지금 예수님의 재림을 코 앞에 둔 지금 하나님의 계명과 예수의 증거 즉, 대언의 영을 가지고 하나님의 사랑과 성품을 온 세상에 드러내야 할 사명이 있는 교회에서 거짓되고 이상한 소리의 방언으로 예수님을 찾으러 온 백성들을 놓치는 경험이 없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교회에서 일어나는 이 모습들이 악의 영들의 세력일 수 있음을 언제나 조심하고 또 조심해야 됩니다.
@@remyyy9075 주신 의견에 대부분 동의하는 바 입니다. 다만, 제가 오해하는 것일 수 있는데, 님 댓글의 도입부에 [방언은 그저 외국어를 말하는 것일 뿐이다] 와 같이 언급하시면서 방언이라는 것이 그렇게 이상하거나 기이한 현상이 아니다 라고 말씀하시는 것처럼 느껴져 한가지 말씀드리고 싶은 것은 방언을 외국어로 치환한다고 해도 기이한 현상은 맞습니다. 현대로 치면 한국말 밖에 몰랐던 크리스천이 한순간에 중국어가 능숙해지거나 한순간에 스페인어가 능숙해졌다고 볼 수 있기 때문입니다. 초중고 12년 동안 영어를 공부해도 한마디도 내뱉지 못하는 사람들이 대다수인데 기도하다가 한순간에 외국어를 내뱉게 되었다면 그 또한 초자연적인 현상이라고 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제 댓글은 논쟁을 하자고 드리는 댓글은 아닙니다 ^_^;;;
옹알이는 아이나 하는 것이지 어른이 하면 거짓방언이 됩니다. 성경에서 방언이란 각국의 언어입니다. 한국어인 경우 분명 한국어이고 단어도 알수있는데 그 뜻을 이해하지 못하는 경우 방언이라 합니다. "믿음으로 구원을 얻는다"라는 한국말이 있습니다. 이말을 이해하는 사람이 몇일까요? 먼저 기독교를 안 믿는 사람은 이해하지 못합니다. 또한 주여주여하는 자라도 자신의 행위를 살펴보는 자는 이 말뜻을 이해하지 못한 자입니다. 마지막으로 나는 믿는다는 사람 또한 이말을 이해하지 못한 사람입니다. 사람은 자신과 자기 가진 돈을 믿지 예수를 믿지 못합니다. 다만 자신과 돈 가족을 지키기 위해 예수를 동원합니다. 방언이 들리는 사람은 극히 적습니다. 지금 옹알이 하는 방언들은 100퍼 가짜입니다
( *헷소리는 방언이 아님* ) 코린트의 사회적 배경을 알면 고전 14장 내용은 아주 간단히 이해가 돼요. 코린트는 항구 무역도시라 여러 지역 출신들이 있었고 교회에도 다양한 언어가 있었어요. 자기 출신 지역의 언어들을 쓰니까 교회가 질서가 없고, 엉망인 거였어요. 그래서 그 여러 언어들을, 교회 안에서 어떻게 써야 하는지에 대한 지침이 고전 14장입니다. 중얼중얼 헷소리에 대해서는 한 마디도 안 해요. 누가 물어보지도 않았는데, 헷소리를 방언이라 하면서 그거 받았다고 은근 자랑하고, 뿌듯해 하는 자들 차암 가관이더군요. 자기 자랑, 자기 만족, 자기 도취.
다른 성도에게 방해가 되면 안되죠 다 각자에게 다른 은사를 주셨는데 그중의 하나가 방언이죠 은혜받았다고 말씀중에 일어나 찬송 하지않죠? 한가지 궁금한건 방언이 거의 똑같다는거죠 방언은 다른 언어인데 특징은 라라라라이러식으로요 전 방언의 은사는 받지않았고 그리 사모하지않아서인진 모르겠지만요 장로교회 다녔고 지금은 성결재단인데 여기도 방언을 많이하더라고요
성경에서 말하는 방언은 외국어를 말하는 것이지 알아듣지도 못하는 이상한 소리를 내는게 아닙니다. 그 방언의 경험이 사탄의 거짓 경험이 될 수 있고 말씀이 곧 생명일턴데 이런 경험으로 성경과 하나님의 말씀을 멀리하고 경험적인 신앙만 추구 할 수도 있습니다. 사단은 분명하게 영광스러운 천사의 모습으로 우리를 미혹한다고 하였으며 마지막 시대에 살아가는 지금 악의 영은 다른 곳이 아닌 교회에 있음을 예언을 통하여 너무나 명백하게 예언하고 있고 그 시대에 놓여 살고 있습니다. 성경을 보며 기도함으로써 정말 참된 진리를 가진 교회와 목회자를 판단하셔야 하고 마지막 시대에 살아가고 있는 지금 예수님의 재림을 코 앞에 둔 지금 하나님의 계명과 예수의 증거 즉, 대언의 영을 가지고 하나님의 사랑과 성품을 온 세상에 드러내야 할 사명이 있는 교회에서 거짓되고 이상한 소리의 방언으로 예수님을 찾으러 온 백성들을 놓치는 경험이 없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교회에서 일어나는 이 모습들이 악의 영들의 세력일 수 있음을 언제나 조심하고 또 조심해야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