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이날 선물 한번 받아본 적 없고, 비오는 날 데리러온 적 단 한번도 없고, 유치원때부터 스스로 버스타고 다니던 80년대생입니다. 그런데 엄마의 사랑은 넘치게 받았습니다. 어린 시절 엄마의 뽀뽀로 잠에서 깨고, 항상 예쁘다는 소리 듣고(절대 아니지만), 찢어지게 가난했지만 밥 한번 굶은 적 없었어요. 부모의 사랑은 이벤트로 오는게 아니라, 일상의 모든 행동, 말투, 눈빛으로 오는거죠.. 8살짜리 아이가 비를 맞고 집에 왔을 때 그 일이 비극적으로 느껴졌다면, 아이가 미숙해서가 아니고 평소 부모로부터 충분한 인정과 사랑을 못받고 있던 와중에 크게 사건이 일어난거죠...
저도 비가 많이 올 때 오셨으면 했지만.. 한번도 안오셔서 실망한 기억이 있어요. 님 어머님처럼 사랑스러운 말들은 없었지만 학교보내겠다고 여름에 홍수나서 다리가 떠내려가면 자기 가슴 깊이 물살을 헤치고 건너 주셨고요. 농사일도 많이 시키셨었어서(고등학교 3학년인데도 중간고사 전날 휴일까지 논 농약하고) 서운했던건 많아서 나 주워왔나? 그런 어릴적 철없는 생각도 했어요.40이 넘은 지금은 저라면 부모님과 같은 상황에서 그럴 수 있었을까 생각하니 정말 대단하고 본인들 만의 방식으로 저를 사랑으로 키웠다고 생각합니다. 어른이 된 눈으로 부모님을 보면 장점, 단점 있지만 부모님으로 보면 감사한 마음이라 서운했던 일들을 떠올려도 슬프지 않아요.
학교 다니는 내내 엄마는 단 한번도 비오는 날 우산을 들고 오지 않았다. 홀딱 젖어 집에 가면, 엄마는 늘 집에 있었어. 어유 비 많이 맞았네! 라는 말조차 없던 엄마. 아빠와 시댁에서 받은 스트레스를 내 작은 잘못에 옴팡 퍼부우며 때리고 욕했던 엄마. 칭찬과 격려 응원은 한번도 들어보지 못하고 자랐다. 저는 곽정은씨처럼 날 버리지 않고 키워줘서 고맙다고 말하지 못하겠어요... 그냥 아직도 여전히 원망스럽고 이해하지 못하겠어요...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아보니 왜 낳아주는 것 만도 감사하단 말이 있었는지 알 것 같아요. 임신과 출산 그것 만으로도 세상에서 겪어본 적 없는 희생과 고통이 수반된 것이라... 부모님 보다 더 많은 나이에 아이를 낳고 기르면서 부모님이 이해가 되더라고요. 아이를 기르면서 내가 우리 부모님께 받은 만큼은 못해주겠더라고요. 그래서 더 감사했어요.
저는 그맘 이해해요...억지로 용서하려고 나를 괴롭히지 마세요 용서가 안되면 안되는데로 내 삶을 살아가는것도 괜찮아요 자식 낳고 키우면 부모가 이해될거라 하던데 막상 제가 자식 낳고 키우면서 오히려 맘의 화와 미움이 더 증폭했네요 자식에 대한 책임은 있었지만 사랑이 빠졌다는걸 느꼈거든요 그냥 지금은 제자식에게 사랑을 주려 노력중입니다 자식이 이쁘게 커나가는게 저에게는 치유의 방법이 아닌가싶네요
@@user-nr9fm1xk6i 애초에 사랑을 많이 받으셨으니 부모님에게 감사한 마음을 갖게 된 겁니다. 부모에게 사랑 받지 못한 사람에게 '애 낳은 것만으로도 엄청난 일이에요' 라는 식으로 '부모를 사랑해보시죠?' 라고 해석되겠끔 말하지 않으셨으면 합니다. 부모에게 사랑 받지 못해 불안정 애착을 형성한 사람에게 이딴 말은 2차 가해라고 봅니다.
87년 비오는 날 저도 비슷한 경험을 했어요.. 그날 비맞고 돌아오던 날의 정서가 지금도 남아있네요.. 님의 말씀처럼 어떤 씨앗이 뿌려진 것 같아요.. 그날 집에 와서보니 엄마가 안계셨는데 엄마도 나처럼 비를 맞고 있을까봐 비를 피하지도 못하고 공터에서 내리는 비를 다 맞고 며칠을 앓았어요.. 그런데 엄마는 우산을 쓰고 있었죠.. 그날 엄마를 걱정한 마음을 혼자 짝사랑하다 버림받은 것으로 여기고 있었는데.. 다시 생각해보니 내가 사랑받지 못하는 존재라는 생각을 했을 것 같아요..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저는 비오는 날에 마음이 편안해져요.. 비오는 날의 공기의 색깔과 냄새도 좋고요.. 저를 온전히 사랑하지 못하고 회피형 남편을 만나서 남편의 무심함에 스트레스를 받고 있는 것도.. 어린 시절의 나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것 같아요.. 그렇지만 6살 딸에게 좋은 엄마이고 싶어요..
큰 애가 대학교 3학년인데 아이를 키워본 경험으로 저는 엄마가 아이를 사랑하는 그 사랑보다 아이가 엄마를 사랑하는 그 마음이 더 찐하고 뜨겁다고 생각합니다. 아이는 정말 온 존재를 다해 엄마를 사랑하지만, 엄마는 그 정도로 맹목적으로 아이를 사랑하지 못하는 것 같아요. 우리 엄마도 너무 어릴 때 저와 동생들을 낳아서 키우시면서 고생도 많이 하셨겠지만 늘 그렇게 바쁘기만 하셨어요. 그래서 오히려 아이를 낳고 키우면서 엄마가 이해가 되지 않았고, 평생 넌 너대로 알아서 살아라고 키우신 엄마가 나이 들어 저에게 자꾸 기대시려고 하자 제 스스로에게도 놀랄 정도의 강한 분노가 올라왔어요. 도대체 그런 분노가 어디에 숨어 있었는지 저도 잘 이해가 안되더군요. 늘 공부도, 직장도, 결혼도 알아서 잘 하던 믿음했던 큰 딸이 오십이 넘어서 사춘기를 겪고 있어요. 엄마를 미워한다는 것을 고백하기란 쉽지 않아요. 죄의식을 무릅쓰고 고백한 곽정은님을 응원합니다.
엄마가 우산을 가져다 줄거란 기대조차 않하고 어린시절을 살았습니다. 나이가들어 사는 것 그 자체의 무게가 어떤건질 알아가고 어느덧 허리굽고 머리하얀 노인이 된 엄마를 한 사람의 인생으로 바라보게되니 어릴적 가졌던 사랑받지 못했다는 서운함 모질고 차가운 말들로 상처주던 순간들이 주던 미운감정들이 무뎌지기도 하네요. 부모에게 기대감이 없으니 아주 독립적인 사람이 되어 씩씩하게 살아가는 인생이 되어 있긴합니다 ㅎ 아직까지 엄마를 사랑한다는 따뜻한 표현들은 못하고살지만 그래도 남은 여생 조금은 더 편안하셨음 좋겠다는 도리는 하고 살아야지 하곤 나 스스로를 인간으로 성숙시키려 노력하게 됩니다. 지금 부모님께 사랑 많이 받고 살고 있다고 느끼시는 분들 정말 인생에 가장 큰 복 받으신 부러운 분들 입니다!
우산이 중요한게 아니라... 평소에 매 순간 얼마나 사랑받았냐가 더 중요해요. 댓글보니 우산을 이해한다는 분들도 있고 우산을 안 가져와서 상처라는 분이 있는데... 우산이 사랑의 상징인것 뿐이죠. 저는 다른걸로 사랑 듬뿍 받아서 우산 가져오신적 한번도 없었는데 서운하지 않았거든요.
저 시대가 진짜 그랬음ㅜㅜ그 흔한 투정조차 사치였던...어린시절 혼자 외로웠을 나를 너무 위로해주고 싶음..책을 통해 위로받고 유트브강연들 등등 많이 들어서 좀 치유됐음❤내 부모세대는 전쟁에 형제를 잃었을 정도로 더 먹고 사는데 급급한 더 극한상황이였으니ㅜㅠ나를 버리지 않고 키워주신걸로 감사함..
우리어머님 몇 번이나 보따리 싸셨지 몰라요.그때마다 우리는 불안했죠..어머니는 안간힘으로 그시절을 버텨내신것을 아니까,,많은 자식 하나도 버리지않고 끝까지 책임져주신것만으로도 감사합니다,우리엄마는 우리를 정말 사랑하셨구나,이제야깨닫습니다,받은것은기억몫하고 못받은것만 기억해내고 불평하고 상처라고하니까요.
그냥.. 당연히 오지않았기 때문에 기다려 본적도 없고 슬프단 생각조차 못해봤던거 같음. 우산없으면 하교하자마자 나와서 신발주머니 머리에 받치고 뛰다가 에라 모르겠다 라고 흠뻑 젖어서 들어갔던거 같음. 그러한 상황보다도 평소 따뜻한 말한마디와 눈빛이 있었으면 사랑받는 느낌이 들었을텐데.. 그게 아니었겠지. 어릴때 부모와의 애착이 없으면 평생 공허함과 고통을 안고 살게됨.. 30이 되고 40이 되어도 8살짜리 그 아이가 내안에 웅크리고 살고 있는거 같음. 버리지 않아줘서 고맙다는 말조차…너무 안타깝고 힘이 듦. 사회생활에선 똑부러지는 그런 사람이 사탕달라 조르는 어린아이처럼 사랑을 갈구하고 버리지 말아달라고 애원하는 모습이…..내 모습 같아서 꼭 끌어안고 토닥토닥 해 주고싶음…괜찮아..네 잘못이 아니야..괜찮아…너는 그 자체로 충분히 소중해
가정이 온화하지않았다. 지금이야 부모들이 사랑에 표현도 해주고 육아에 많은시간을 보내지만 이렇게 변화한지 오래되지않았다. 내나이48 살 온전히 내 자신을 사랑한지 얼마안됐다.지금은 내자신을 누구보다 사랑하고 기특하다. 그러다보면 서운한 순간들이 조금씩 녹는다. 나 자신을 소중히 여기며 사랑하자.
지금 곽정은님 썰 듣고 눈물을 흘리며 이 글을 씁니다. 처음이예요 글을 남기는건요.마치 제 얘기를 남에게 듣는 기분이어서 놀라면서 들었습니다. 이야기가 너무나 공감되면서 아직도 제 마음속에 그 어린날의 응어리가 풀리지 않아서 힘들었던 저에게 너만 그런 건 아니었어.. 하시는듯 정말 엄청난 응원이 되었고 마지막에 엄마에게 하신 말씀도 최근에 엄마에게 마음을 열려는 저라서 들으면서 펑펑 울었습니다. 더 놀라운 건 저도 인도 철학에 관심이 많았는데 그 부분까지 비슷한 곽정은씨를 보며 예전보다 더 많은 관심과 애정과 격려를 보내게 되었습니다.무릇 자극적인 예능으로만 끝날 수 있는 프로그램을 이렇게 깊은 울림을 주는 프로그램으로 격상시켜주셔서 감사드리고 어쩌면 끝까지 마음의 불행속에 살 저를 살리셨어요. 다시 한 번 감사드리고 곽정은씨의 앞으로의 삶을 응원합니다!
저도 우산 한번, 따뜻한 말 한마디 못듣고 자랐어요. 하지만 이젠 제가 어른이 되서 제 아이에게 비올때 우산들고 기다려주고, 간식 만들어 주고, 소풍갈때 도시락 빵빵하게 챙겨주고, 늘 이부자리 정리해 주는 엄마역할을 제가 할 수 있어서 좋아요. 우리는 어른이에요. 어른인 제가 저보다 더 어렸을 엄마를 이해하고, 그 기억에서 벗어나 제 아이를 더 사랑해주려고 노력합니다. 우리는 이제 어른이니까요 ♡
나는 비오는 날 초등학교 교문에서 큰 나무 밑에서 빗방울을 피하며 서 있었다. 난 첫째였고 슬프거나 서운한 적은 없었다 손에 찰흙칼에 배여 피가 나도 그냥 나혼자 휴지로 꾹꾹 눌러가며 며칠이 지나면 상처가 아문다는 것을 그 누구보다 잘 알았고 내 상황을 비관적이라고 생각하기엔 넘 순수했고 어렸던거 같다. 나이가 들어 부모는 매일싸웠고 엄마는 내가 고1이 될때 집을 나갔다가 고3즘 다시 들어왔다. 고 3때 매일 가던 길에 성폭행 사건이 있었는데도 항상 밤길을 혼자 걸었다. 집에 가면 다들 자고 있었다. 야자를 늦게 까지 했다 봉고차가 안오는 날은 연락없는 아빠를 2시간 기다렸다. 둘다 힘들었겠지만 조금 더 나에게 사랑과 관심을 줄수는 없었을까? 나는 엄마가 비가 오는데 왜 안오냐 불평도 서운해하지도 않을정도로 그렇게 자랐다.커서 객관적으로 돌아보니 그렇게 방치되어 자란 내가 너무 가여울때가 있다.
눈물이 나네요 나의 모습이 보여서 너무나 익숙한 상처에 관성이 되어가는 인생이 남은 시간은 그 관성에서 깨뜨리고 싶어서 교회를 찾습니다 왜냐하면 내가 지겨줘야할 아이들이 있기에 내안에 주님이 끝없이 밖으로 끄집어 내어보려 하지만 내가 또 승리하고 또 낙담하지만 반복의 힘을 믿습니다 힘내요😊
아이였고, 지금은 어른이 된 많은 이들의 경험, 감정이 묻어있는 이야기네요. 어른이 되어서야, 부모가 되어서야, 우리 부모들이 살아내야했던 삶을 진정으로 이해하게 되면서 치유를 하는 것 같아요. '당신 가족 구성원들, 부모님 또는 양육 과정에 많은 영향력을 끼쳤던 사람들과의 관계의 어려움은 당신 삶에 평생 가지고 다닐 일종의 댐을 만든다. 이 댐은 당신의 의식을 제한하고 현재 관계에 영향을 미치며 다른 사람에 대한 애정과 신뢰를 방해하고 마치 당신이 먼 과거의 어떤 일에 갇혀 있고 묶어있는 것처럼 해를 입힌다....이것이 인간 관계에 있어 근본적인 문제점이며 사람들에게 알려지지 않은 문제가 아니다. 많은 치료와 정신 건강의 초점이 되고 있다....여기서 당신은 진정한 용서가 무엇인지 이해해야 한다.. ..용서는 다른 사람을 명료하게 볼 수 있게 하고 그 경험과 관계로부터 배움을 끌어낼 수 있는 것이여야 한다....당신의 어린 시절에 영향을 끼치고 양육에 영향을 미친 부모나 다른 주요한 사람들과 관련하여 그들이 살았던 환경과 그들이 투쟁해야했던 힘과 압력들을 살피는 것이 필요하다. 저는 마샬 비안 서머즈가 쓴 책 , 사랑과 관계 Love and Relationships] Healing Relationships ,관계 치유하기 Healing Relationships라는 글을 읽고 평생 마음의 가시처럼 박혀있던 아버지에 대한 오해와 원망을 다 씻겨낼 수 있었습니다. 지금은 그저 감사함과 사랑만 남았고요.
저도 비오는 날 엄마가 날 위해 우산가지고 데리러 온 적이 없네요. 여름 소나기 엄청 내리던 날 엄마 안올거라고 지레 짐작하고 비 쫄딱 맞고 집에 가는 길이 엄청 잼나서 기억에 남아요. 그 때 이미 엄마에게 기대감이 없었던 나. 연년생 남동생과 애정 경쟁에 질투에 매일 짜증만 내던 딸이었을거에요. 엄마는 평소에 말투나 행동이 상냥하고 다졍한 편이지만 항상 애정은 부족했고 고팠으나 포기했지요. 지금 45세. 지금까지 말 잴 듣던 착한 딸인데 변했어요. 이제야 가까이 오려는 엄마를 밀쳐냅니다.
어린마음이 아니라 그냥 서운한마음이 컸네요 집에가서 큰소리로 울며 엄마는 안오고 뭐하는거냐고 소리쳤네요 초등학교 1학년이었는데 비를 맞는게 화난게 아니라 혼자 기다리는 마음이 얼마나 쓸쓸했는지.. 서운했는지.. 친구들한테 오지않는 엄마를 기다리며 핑계를대며 얼마나 멋쩍었었는지.. 엄마는 그냥 아무렇지도 않게 친구랑 같이쓰고 오지 남일처럼 말하는 엄마를 보며 30대가된 지금도 생각이나요. 이런 비슷한 쓸쓸한일이 졸업식 입학식에도 계속 됬거든요..
맨 앞부분 진솔하게 시작하는 부분 와닿고 공감되고 좋네요. 방송이 업이지만 모르는 사람들 앞에서는 자리에서는 위축된다.. 이 안에 나를 싫어하는 사람이 몇이나 있을까 라는 이야기. 특히 방송처럼 대중에 드러나는 직업을 가진 사람이라면 누구든 그럴 수 있을것같아요ㅠㅠ특히나 익명성을 방패로 말도안되는 말을 칼처럼 찔러대는 세상이니😢 방송인도 결국 사람인데 이런 상처들로부터 더 보호받을 수 있는 세상이 되면 좋겠어요
곽정은님이 많이 달라진 느낌이 드네요. 여러 모습에서 말에서 눈빛에서 정말 자기자신의 진짜 모습이라고 해야할까요? 예전의 모습도 좋았지만 지금의 모습은 더욱 더 자연스럽고 새로운 느낌으로 다가옵니다. 나는 왜 엄마에 대해 어떤 감정의 기억도 없는지 그게 더 아쉽기도 하고요.. 우리 모두가 모든 날 모든 순간에서 행복할수 있길 바래요♡
우리엄마는 비오는날 우산 갖다준적도 없고 이쁘다는 말도 안했고 뽀뽀도 받아본 기억없어도 난 엄마가 나를 사랑하지 않을거라 의심해본적이 없다. 지금도 가장 사랑하는건 우리 엄마. 그런데 생각해보면 우리 엄만 나에게 한번도 짜증을 내거나 모질게 화를 낸적이 없다. 그래서인걸까.
공감 터지고, 눈물도 터졌다. 엄마랑 같이 우산을 쓰고 가던 아이들.. 그 뒷모습은 기억의 언저리에 고스란히.. 비가 그치길 기다려도 아무도 오지않던 학교앞.. 비는 더 세차게 내렸고, 나는 온몸으로 그 비에 맞서 나갔던 기억.. 서운하지만, 나이드니, 이해하게 된다. 지금처럼 아이도 한둘이 아니고, 7남매 였으니... 유교문화는 지금처럼 자녀를 크게 사랑하는 마음들은 많이 부족하지 않았나...
사랑했지만 표현하는 법을 모르는 세대에게 사랑받지 못했다고 믿으며 자라난 세대로서,결혼해 아이들을 키우니 시행착오를 많이 겪었네요...하지만 내 안에 사랑받지 못한 세월에 면역이 생겼듯이 부족한 엄마밑에 아이들이 밝게 잘 자라줘 고마워요. 사랑한단 말도 따스한 포옹도 없었지만 힘든 시절 겪으며 엄마의 자리를 지켜준 엄마 사랑합니다♡
엄마가 우산만 안가져다준게 아니였겠지. 그 어린마음에 상처가 되었으면, 평소에도 당연히 먹고 사느라 바빠서 표현하지 못한거지 사랑하셨겠지만, 어린이가 느낄 사랑을 직접적으로 표현하기는 어려운 시대였으니. 비오는 날 우산이라는건 표현되는 사랑이니. 평소에는 직접적으로 표현될 기회가 없어도 비 오는날 30분이나 걸리는데 폭우가 오면 직접적으로 오시면 사랑한다는게 드러나죠. 평소에 사랑한다 내새끼 또는 사랑받는다는 것을 직접 느낄 수 있던 기회가 많았으면, 뭐 하루 우산안가져왔다고 뭐라할게 있을가요. 씩씩하게 걸어오면 되는 일이죠 . 커서 먹고 사는게 힘들어서 밥 안굶기고 옷 입혀보내는걸로 사랑을 표현한것이라는 것을 이해해도, 이해와 상처는 다른 일이죠. 어렸을때 충분히 직접적으로 느끼지 못한 느낌은 자존감, 자신감과도 연결되어 있어요. 어린이날 설문 조사에 따르면, 받고 싶은 선물 1위가 가족과 함께 보내는 시간이었다고 하네요. 어린이날 돈 있다고 혼자 놀이공원가고 공원가서 맛있는거 먹는다고 즐겁지 않잖아요. 그 시절에는 너무 밥한끼 먹는것도 주 6일이나 일해야 겨우 가능한 시기였긴 했어도, 그 밥한끼의 소중함을 알고 직접적인 사랑 표현을 안해줘도 이해할 나이는 아니였으니깐요. 그래도 씩씩하게 살아가고, 우리의 부모님들이 만드신 그 시절 보다 풍요로운 세상에서는, 어린이에게 더 따뜻한 세상이 되면 좋겠습니다.
나 어릴때 비가 무척오는 날이였다 한참을 기다리는데 친구들은 가고 친구한명과 나만남았다 선생님이 나오고 그친구에게 우산을 내밀며 엄마에게 전화가 왔다고 못오신다고 선생님의 우산을 쓰고 가라며 건내주고는 나에게 싸늘하게 얘기했었다 손으로 등을밀며 넌 어서 가라며 나를 밀었다 비가 주적주적 오고 가는 길 곧곧마다 물웅덩이가 있었다 애써 괜찮다며 그 물웅덩이마다 들어가서 젖은 옷을 더 젖을때까지 그냥 "우산없어도 괜찮아 그래서 물속에 첨벙 뛰어들수 있어" 하며 한참을 그렇게 빗속에서 놀다 집에 가니 가족들이 집에 있었다 엄마 집에 있으면서 데릴러 오지......엄마의 대답은 기억나지 않는다...그냥 주적주적 내리는 비를 한없이 봤던 기억 친구들을 데리고 가는 뒷모습...선생님이 등을 떠밀던 기억...친구가 같이 쓰고 갈까? 하는걸 거절하고 빗속을 뛰다가 물웅덩에 장난치던 기억...그냥 좀 서글펐던 기억....
@@user-fw9hs5wj2s 댓글을 남기신 분도, 또 이 답글을 쓰신 분도 너무 반가워서 글을 안쓸 수가 없네요... 저에게도 88년의 그 비오던 날은 평생 마음 한구석에 남아있는 그런 날이었어요.. 그리고 몇 십년이 흐른 후에 저는 심리학을 공부하면서 스스로 그날의 저에게 찾아가 저를 꼭 안아주었습니다. 그날 밤도 저는 잊을 수가 없네요.. 정말 오열하긴 했지만 그날 이후로 많이 좋아졌으니까요~ 영상 다시 보고 선플 남기러 들어왔는데 또 한번 힐링하고 갑니다!❤
사라님 현진님 헤이님의 글을 읽고 잠시동안..여덟 살의 저를 떠올려봅니다. 엄마품이 아닌 할아버지 할머니손에서 삼촌들의 양말을 빨아가며 등교하기 전에는 내 몸보다 큰 리어커를 끌고 쥐치공장에 가 포를 뜨고 남은 뼈들을 한가득 싣고 끙끙대며 집으로 가다 만난 친구들의 말들 ' 학교안가고 뭐해~~~두 눈 가득 차오르는 눈물을 닦아가며 무거운 리어커를 끌고 집으로 내달리던 여덟 살의 나를 안아주고 싶습니다.
74년생이고 80년대에 부산에 있는 국민학교 다니다가 시골로 이사와서 다녔는데 그 시절에는 부모가 데려다 주고 데리러 오고 그런건 없었다 너무 챙겨주면 아이가 나약할까봐 강하게 키우던 시절이었다 태풍 불때도 시골 강길을 울면서 걸어갔다 그때는 그렇게 혼자서 씩씩하게 다녀야 된다고 생각했다 그런 체험들이 나를 더 단단하게 만들었던거 같다 이래도 나는 학교 갈수 있어 라고 다부지게 컸던거 같다 강하게 키우는 것도 맞는거 같음
친구와 우산을 같이 쓰거나 친구 어머님께서 우산을 빌려주시기도 했었던 비 오던 날의 따뜻하고 정겨운 기억들...고맙습니다. 그 때 마다 가족이 아닌 사람들에게도 사랑 받고있구나~ 나는 괜찮은 사람이구나~ 라는 생각을 어럼풋이 했던 것 같아요. 타인의 조건없는 배려를 자주 접하는 아이들이 높은 자존감을 갖는다는 정신과닥터의 진단이 떠오릅니다.
곽 정은님 연애상담 프로에서 조언 할때 제일 신경써서 봤네요 사연자의 내용에 공감 하듯 조언하는 멘트들... 어느날 조언 하고있는 곽 정은님을 보는데... 맘속깊이 슬픔이 있다는걸 화면 모습으로 느끼게 됐어요 그 슬픔의 존재가 드러 나는것 같네요 듣다가 겨속 눈물이 나네요...
저도 고딩때 야자끝나고 비오는 날 똑같은 경험있어서 넘 공감하면서 봤어요.. 정말 크는동안 예쁘다,잘했다 단한번 칭찬 들어 본 적도 없고ㅋㅋ 어린이날 선물,새뱃돈 당연없고 생일은 미취학일때만 생필품으로 받아봤음..어릴땐 오히려 엄마를 이해했어요 아빠외벌이로 4남매 키워준것만으로 대단하다고..그래도 애들 밥 안굶기고 살림혼자 다 하시면서 엄마도 힘들었겠다고..근데 또 제가 결혼해서 자식 낳아보니 달라지네요ㅋㅋ 정말 너무 이뻐죽겠는데 물질적인거 떠나서 사랑한다는 표현에 인색할 수가 없는데..우리 부모님은 왜그러셨을까..손주 이뻐하는 거보면 그땐 여유가 없어서 그랬을까.. 이제와서 원망하는건 아니지만 정말로 궁금하네요..
저도 맞벌이 집안이라서 엄마가 우산을 갖고 올 수가 없었지만 비 흠뻑 맞고 하교해도 집에 와서 엄마가 만들어놓고 나간 간식을 먹으며 엄마의 사랑을 느꼈기에 아무렇지도 않았던것 같아요 물론 다른 친구들 엄마들이 데려오면 부럽긴 했지만 어쩔 수 없었으니까 그냥 넘어갔던것 같아요 그냥 매사에 엄마의 사랑을 느끼지 않았으면 그게 서러운 기억으로 남았을지도 모르겠네요..
우리엄마도 한번도 학교에 오신적이 없어요 모든 것은 어린제가 스스로 해야했죠 고등학교때는 제가 아침차려먹고 제가 도시락싸서 다녔어요 엄마가 오랫동안 아프셨었거든요 저를 낳고 세상에 모든걸 해주고싶었다는 엄마는 고딩때 돌아가셨어요 지금 날버리지않아 고맙다는 말씀을 할수있는것만으로도 충분히 부럽습니다. 전 제손으로 밥한끼 사드린적도 선물하나 사드린적도 없어서요
이거 보면서 같은 상황에 받아들이는 사람에 따라서 이렇게나 큰 상처로 남는구나 또 한번 생각해 봅니다.. 정은씨랑 꼭 같은 얘기는 아니지만.. 저희 엄마는 단 한번도 비오는 날 우산을 갖고 오신적이 없었고 사랑 표현도 거의 안해주시는 분이셨죠.. 형제 많은 집안에서 부모님이 바쁘신줄 알고 살았기에 부모님께 특별히 바라는게 없어서 그랬나봅니다. 근데 저희 언니가 성인이 된 후 자긴 사랑 못받고 자랐다.. 정은씨처럼 우산 안갖다 주신걸 이야기 했을때 저는 뭔가 띵하더라고요.. 부모님 그때 먹고 살기 바쁘셨잖아..우리 많은 형제 키우시느라 힘드셨는데.. 이런 말을 한적 있습니다.. 제가 성인이 되고 결혼해서 딸 아이를 키우는데 저희 아이는 10가지를 해줘도 1가지 부족하게 뭔가 못해주면 그걸 서운해하고 맘에 담아둡니다.. ㅠ 부모에게 너무 많은것을 바라고 센서티브하고 주변하고 비교 잘하는 기질을 가진 아이는 솔직히 키우기가 어렵더라고요.. 내 딴에는 최선을 다해 키우고 있는데 엄마에 대한 이해는 커녕 서운함 마음만 표현을 하니 저도 좀 지쳐가네요. 우리딸이 남과 비교 안하고 욕심 좀 내려놓고 성숙한 어른으로 성장했으면 하는데 아무리 가르쳐도 타고난걸 바꾸긴 힘든거 같아요. 저는 크게 욕심이 없는 편이라 딸을 이해하기 힘드네요.. 뭐가 그리 남에게(부모포함) 바라는게 많은건지. 자기 행복은 자기 마음 다스리는거부터 시작인데요...ㅠㅠ
저도 님 생각에 공감해요. 최선을 다해도 어쩌면 그아이 성향에 많은것이 좌우되는 경우를 두아이를 키우며 항상 보거든요.. 백번을 데리러가다 어느날 데리러 못 가는 게 서운하다 울기도하고. 때론 너무 미안한 상황인데 의연히 대처하기도 하지요. 결국 탄력성을 길러줘야하는데 참 어렵다 느낄때가 많습니다. 아이들이 커갈수록 더더욱요..
저 일 때문만이 아니었을거에요 성장기 내내 저런 일들을 계속 반복하며 겪었기 때문에 자신도 모르는 사이 자존감이 낮아지는겁니다 그런 환경에서 자란경우가 아니면 공감이 어려우시겠죠 비슷한 환경에서 자랐던 1인으로 매우 공감가요 성적을 아무리 잘받아도 부모님께 칭찬이나 할수있다는 이야긴 거의 들어본 적 없고 / 넌 안된다 꾸지람만 받았던 기억만 자리잡게되니까요 난 뭘해도 안될것같고 사랑받지 못한 느낌에 무너져내리게 되는거죠 부모님이 사랑을 하지 않아서가 아니라 표현하는방법을 몰라서라는걸 저도 어른이 되어 알게됐어요 그들의 사랑방식은 가족을 위해 힘들어도 자녀를 버리지않고 열심히 일하시는것 그것 자체가 자식을 사랑하는 방식이었다는 몰랐어요 가난하고 불화가 있는 가정이었음에도 끝까지 버리지않고 지키려하신것 자체가 사랑이었던거죠 나중에 책에서 읽고 저도 알게되어 부모님을 용서했답니다 곽정은씨도 극복해나가고 있는 모습이 멋지시네요 저도 계속 노력중입니다 같이힘내요❤
나도 국민학교1학년때 18kg정도였는데 비바람이 세차니 우산을 쓰면 바람에 부웅 떠지는 날도 있었고, 다른 아이들은 할머니든 부모 등이 기다렸다가 데려가면 많이 부러웠지만 그때시절 엄마를 떠올리면 힘들고 슬픈 얼굴만 떠올라서 세 자녀를 두고 희생해주신게 죄송하고 감사하다. 다행히 65세인 지금의 엄마를 떠올리면 몸은 좀 불편하셔도 환희가 느껴지셔서 감사하다. 나이들어가며 멋진 인생을 살아가주시는 것 같아서 고맙습니다
교사인 엄마를 둔 나두 초딩때 우산없이 쫄딱 비맞고 집으로 뛰어간기억~~ 정말로 이 기억이 너무나 싫어서 우리 세자매들은 결혼후 그 좋은 직업을 모두 내팽개치고 아이 하나씩만 낳아 키웠던것 같다~~ 너무나도 발랄하게 사랑듬뿍 받으며 키운 내 딸이 부럽긴 하지만~~ 내 삶을 따라살라고 하고 싶진않다. 결혼 안해도 되니깐 너 하고 싶은 거 하면서 훨훨 날길 ^^
나도 저 시대 맞벌이 부모님, 항상 바쁘고 바쁘고 바뻤었는데... 난 형제. 자매도 없었고 비가 오는 날 학교에 우산을 같이 사는 이모나 조부모님도 들고 오시지 않았었다. 그러나 그걸 슬프다고 생각한 적이 단 한번도 없다. 즐겁게 비 맞으며 웃으며 뛰어왔던 기억이 있다. 참 나는 이런 부분에는 무뎠나보다. 어느 부분에서 느끼는 감정은 사람마다 다르고 가슴에 담고 있는 부분도 참 다르다는 것을 느낍니다.
난 한 번도 비가 온다고 엄마가 올 거라는 기대를 하지 않았던거 같다. 학교가 집에서 멀기도 했고 설사 학교가 집 앞이라해도 우산을 들고 나와 있을만큼 엄마는 부지런하지도 나에 대한 애정이 넘치지도 않았음을 그 어린 나이에도 알고 있었다.그래도 그 때는 환경오염이 심할때가 아니라 같이 집에 오는 친구들하고 비 맞으며 장난치고 깔깔거리며 왔던 기억이 난다.
제 얘기인거 같아요. 저도 어릴때 가난하고 부모님사이도 안좋은 집이었는데 생일날 선물 받아본 적, 어린이날 놀러간 기억, 비오는 날 우산을 가지고 데리러 온 기억이 없어요. 친구엄마들이 학교 앞에서 우산들고 기다리고 계시던 모습이 너무 부러웠고 혹시나 오실까 했지만 역시나였죠. (우산 가져간 줄 알았다며 변명같은 당시 학교까지 걸어서 30분이니 안오셨을지도..) 엄마는 희생하시는 분도 아니시고 나에게 따뜻하게 안아주며 사랑한다 니가 최고다 해주신 기억도 없어요. (저는 공부를 잘했지만 칭찬은 덜받고 관심이 덜하셨죠. ) 그래두 어릴땐 엄마가 없을 땐 옷장속 엄마 옷 가운데 어떤옷이 엄마냄새가 가장많이 나는지 언니랑 대결도 할 만큼 사랑에 굶주렸었나봐요. 나이가 들어 결혼을 하고 아이둘을 키우면서 내 아이들에겐 우산은 갖다주고 기다려주는 엄마지만 친구같은 엄마. 표현많이 하는 엄마가 되진 못하네요. 그리고 아직까지도 주는 사랑보단 받는사랑을 원하고 있어요. 하지만 얼마전에 엄마에게 원망보단 어려운시절 보육원안보내고 키워주셔서 감사하고 맛난음식 주셔서감사하다고 했네요. 엄마를 이해하게 되더라구요.
엄마 10초동안 생각할때 이미 눈물.. 사실 존경과 원망, 연민이 모두 있는것 같아요. 저를 낳으셨을 때가 똑같이 27살이셨네요 생각해보니까요. 비협조적인 아빠에 외계세계 같았던 시댁식구들.. 견디면서 그래도 엄마는 저를 많이 예뻐하셨어요. 엄마 스스로 지치셔서 억압적인 아빠한테서 저를 지켜주시지는 못했어요.. 그건 아직도 원망스러워요. 그치만 어쩌겠어요?ㅎ 이제 저도 한 아이의 엄마가 될 예정이고, 저는 그런 다행이 그런 남편과 결혼하지 않았네요. 늘 최선을 다했다는 것은 알아요 엄마. 배운점도 정말 많고 엄마의 긍정적인 면도 많이 닮게 해줘서 감사하고 사랑해요.
저도 비 오는 날 엄마가 우산 가져오신 적 한번도 없었어요. 하지만 슬프거나 서럽거나 안 했어요… 방송보고 사람은 참 다르다 느꼈어요. 10초간 엄마 얼굴 생각하라는 말에 짜증과 화가 올라와요. 엄마와 정은 없어요. 엄마가 내 손을 잡으려고 할때마다 소름 돗아서 손을 뺍니다. 아마 어렸을때부터 애착관계가 형성이 안되서 서로 멀리 떨어져있고 거리두는게 마음이 편해요.
자식의 입장에서 사랑 받지 못하고 상처를 받았다는 내용이 요즘 주를 이루고 있네요. 하지만 모든 엄마의 입장에서도 한 번 생각해 보셨으면 합니다. 78년생 이전에 67년생 57년생 그 이전에 어머니 어머니들.......더 힘들도 고달픈 세상을 사셨습니다. 하지만 거의 모든 어머니들은 자식들을 사랑합니다. 자기 목숨처럼..... 투박하고 표현하는 법을 배우지 못해서 그렇지 다들 사랑하십니다.
80년대 초등학교때 학교수업을 마치니 비가 와서 학교에서 기다리고 있었는데 다른 아이들은 엄마가 와서 우산을 쓰고 갔지만 나는 결국 비를 맞고 집에 갔는데 집에 가니 엄마가 있었는데 비 왔어라고 만 했던 엄마 그당시 넘 서럽고 슬펐고 우리 엄만 왜 그럴까? 라는 생각을 했는데 나중에 어른이 되어보니 엄마의 삶도 녹록하지 않았다는것을 알았죠 이젠 그 힘든 삶속에서 가정과 자식을 지키지 위해 하루 하루 치열한 삶을 사셨던 엄마 정말로 나를 안버리고 끝까지 키워주셔셔 감사합니다라는 말을 엄마에게 하고 싶네요
정은씨랑 같은 나잇대인데…저도 비왔을때 우산 안 갖고와준 엄마가 아직도 그렇게 생각나요😂그러면서 드는 생각! 내애들은 무조건 비오면 꼭 데리러가야지!! 어릴때 기억이 이렇게 깊이 오래 가는거네요.아마 정은씨 엄마도 이기억이 사랑하는 자식에게 이정도의 큰 기억이 될수 있는걸 알았더라면 꼭 오셨을꺼에요 .근데정은씨 엄마도 ..어린시절 엄마에게 그런 생각을 아니 그런 방법의 사랑을 못 받고 자라셔서 모르셨을지도 모르겠어요…
비 오면 당연히 마중나오던 엄마. 고딩때까지. 어쩌다 엄마가 못오면 비 다 맞았다고 툴툴댔다. 유치원때 소풍 나만 엄마없이 간줄 알았는데 이미 엄마는 먼저가서 보물숨겨놓는 등 게임에 참여 중, 몰래 숨어서 내 사진도 다 찍으셨다. 산타도 초5까지 믿었던건 엄마의 이벤트 노력덕분. 옷장에 숨어 경찰에 떨며 신고해야 끝나는 부부싸움으로 상처많고 공황장애도 아무에게도 말안하고 혼자 극복한 나지만 우산 하나로 달린 댓글을 보며 사랑을 받았음에는 의심없는 것이 얼마나 큰 축복이었는지 깨닫는다. 우당탕 폭력이 난무했던 환경에서 자랐어도 난 안정형애착으로 나온다. 물론 나도 많이 노력했다. 감사합니다.
같은 시절에 살았던 80년대생이고, 저도 그렇게 살았습니다, 사랑받아 본 기억이 없네요..그런데 이제 애 셋 아줌마가 되서 조금 이해해보려 노력하고 있습니다..너무 슬퍼하지 마세요, 그 시절 엄마도 사람이었고 먹고 사는 것 만으로도 힘들었던 인생이셨으니까요..모두 이제라도 행복합시다요😂
내 나이 50가까운나이에 아침 출근길 버스안에서 갑자기 아버지가 떠 올랐다. 초6학년 이후로 나는 아버지의 손을 뿌리쳐왔고 증오했었고, 아마조네스 처럼 남자 없는 세상에서 살고자 했다. 그런데 그날 아침 갑자기 내 머리를 때란 생각은 아버지가 누군가와 바람이 났는데 왜 우릴 떠나지 않았을까 였다..만일 아버지가 떠났다면 우리는 4 딸은 학교는 끝, 공장에가서 돈을 벌어야 했겠지. 아버지는 바람은 바람, 가정은 지키신 분이었음을 알고 버스안에서 울었다. 그때 이후로 나는 더이상 아버지를 미워 하지 않는다.
초5때 홍수가 났었어요~학교 끝나고 집에가는길.. 거이 허벅지 넘어까지 물이 차는 상황.. 친구 엄마따라 집까지 갔는데.. 엄마는 홍수난줄 모르고 자고계시더라구요.. 하지만 그게 상처였던적은 없었던것같아요.. 평소 우산가지고 기다린적이 없었어도요.. 평소 말을 다정하게하는 스타일도 아니었구 사랑을 듬뿍 주는.. 느끼게해주지도 않았지만 그냥 지금까지 희생해주신것, 말보단 행동으로 지금까지 잘 케어해주신것에 감사드릴뿐이에요~ 저도 엄마가 되어 아이들에게 무뚝뚝?한 엄마같기도하고 세심하지 못할때도 있지만 아이들 늘 잘 케어하려하고 노력은 하는 엄마구요.. 말과 감정적인부분은 좀 서툴지만 행동으로 아이들에게 잘하려 노력하는 엄마구요.. 전 엄마가 되보니 부모님의 서툴렀던 부족했던 부분도 그럴수도 있지.. 하며 이해하게 되는 부분이 많은것같아요~
전 엄마아 어릴때 저랑 동생을 두고 없어진 적이 있어요. 그래서 엄마에 대한 애착이 없어요 엄마 잠옷붙잡고 엄마 냄새 맡으면서 울었다고 그랬는데 그거에대한 변명만 들어왔죠 엄마와 자식간의 할 얘긴아니였구요 지금 엄마는 반대로 나이가 드셔서 제거 필요할 텐데 엄마는 혼자가 자유롭고 행복하다고 하시더군요 우리나라는 너무 부모자식의 끈끈한 유대감에 미화되어 각자의 삶보다 우선시 해야한다고 보고 자라게되는 것 같아요. 엄마도 자신의 성정을 이기고 최선을 다했을 꺼라는 생각으로 삽니다. 각자 하고 싶은 일들이 있잖아요.
저의 어린 시절에도 비가 오면 엄마는 당연히 오시지 않는 거였어요 그냥 다른 저 같은 처지의 친구들과 신나게 비를 맞고 뛰어갔죠^^ 집에 가면 거의 엄마가 집에 계셨죠 그때는 좀 섭섭하기는 했지만.... 그냥 그런가보다 하고 자랐던것 같아요. 힘든 70년대와 80년대였으니까요^^~~~
버리지 않아줘서 감사하다는 말 글쎄요 제나이 58세인데 어릴적부터 말로 다할수없을만큼 상처가 너무 많네요..날 주워온 애니까 그러겠지하고 나자신 위로하며 지냈는데 친엄마라는걸 알고 충격을 받았어요..어떻게 친엄마가 나한테 이럴까?난 엄마의 화풀이감으로 태어났나보다 생각하며 지냈는데 지금은 2년전부터 아예 연락안하고 지냅니다.. 나이들어서까지 끝까지 다른형제랑 편애를 하길래 정말 변하지않는구나를 느껴서 연락안하고 지냅니다..너무도 많은 일들이 있지만 엄마하면 무섭다는 말이 떠오르네요
마녀사냥부터 봐왔지만 제가 연애할때 .. 헤어졌을때 .. 밖에도 안나갔던 저를 항상 띵 하게 나의 쟈존감을 알려주신 분이에요 이제 저는 연참 사연보낼것도 없는 남자랑 평생을 보고있답니다 너무 감사드려요 엄마는 항상 아픈 존재죠 저도 그랬어요 ㅋㅋ 저는 엄마의 감정쓰레기통 .. 그리고 남동생은 아픈손가락.. 여기서 이렇게라도 풀어주시고 말씀 주셔서 고마워요 정은님 대단하셔요 여튼 덕분에 건강한 연애하고있습니다 감사합니다 곽정은 곽박사님 사랑합니다
어릴 적 겪었던 내 경험과 닮아있어서 영상을 다 보고나서도 한참을 울었어요. 엄마는 전업주부셔서 집에 항상 계셨었지만 비 오는 날 한번을 데리러 오신 적 없었어요. 대부분은 일기예보 보고 우산을 미리 챙겨다녔지만 예상치 못한 비가 내리는 날엔 하교 시간 맞춰 학교 정문 앞에서 우산 들고 기다리시던 다른 어머니들 모습에 한없이 부럽고 씁쓸했어요. 유치원 다니던 시절엔 아파트 단지 내 놀이터에서 놀다가 제가 크게 다친 적이 있었어요. 피가 너무 많이 났고 그 때 생긴 흉터는 아직도 제 몸에 남아있을 정도로 크게 다쳤었죠. 저는 울면서 동네 언니들에게 집에서 엄마 좀 불러와 달라 부탁했고, 한참이 지나서 돌아온 언니들 곁엔 엄마가 없었어요. 언니들은 제게 "너보고 집으로 오래." ... 저는 눈물을 뚝뚝 흘리며 피가 철철 나는 상처를 부여잡고 집으로 갔어요. 그런 에피소드들이 쌓이고 쌓여 제가 중학생이 됐을 때였어요. 학원 수업 마치고 나와보니 비가 미친듯이 쏟아지고 있었죠. 갑작스러운 폭우에 엄마에게 데리러 와달라고 전화를 했는데 돌아온 대답은 "그냥 얼른 뛰어 와." 뭔가 내 안의 깊은 무언가 툭 하고 끊어지는 느낌이 들었어요. 어찌저찌 집으로 가서 제 방에 들어가 미친듯이 울었습니다. 정말.. 그 서운함은... 그날들을 떠올리면 아직도 사무치도록 가슴이 아파요. 엄마는 왜 그러셨을까요? .. 단순히 귀찮은게 너무 컸던 걸까요? 저는 그래서 성인이 된 이후로 엄마가 가끔 밖에 계시다가 비오는데 우산이 없다며 나와달라고 부탁하시면 너무나도 화가 나더라고요. 분노가 치솟는 느낌.. 엄마도 그걸 느낀건지 뭔지 요즘엔 비만 오면 제가 부탁 안했는데도 먼저 우산 가지고 마중 나가겠다며 그러시는데 .. 그럴 때마다 뭔가 알 수 없는 싱숭생숭한 기분이 들어요. 엄마도 아시는 걸까요. 당신이 내게 준 상처들.. 내 감정들. 아셔서 그러시는 걸까요.
어릴땐 왜 아빠는 나한테만 이렇게 엄격한지 오빠한테는 안그러면서 원망도 많이 했었는데 성인이 되니 알겠더라구요... 표현의 방식이 서툴렀을 뿐 어쩌면 제가 딸이라서 아빠도 나를 어려워 하진 않았을까 싶은.. 돌이켜 보면 아빠와 오빠에게 막내인 저는 정말 많은 사랑을 받고 자란 사람이였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