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그리운 것들은 시가 되고 바람이 되고...
‘시 한 편이면 상처도 꽃이 된다.’는 말이 있습니다.
그 꽃 위에 향기와 노래를 얹습니다.
바쁜 일상이지만 잠시 마음을 내려놓으시고
시와 음악 그리고, 아름다운 영상과 함께
평안한 시간 보내시길 바랍니다.
귀한 걸음 해 주신 모든 님들 감사합니다.
늘 행복하시길요^^~
봉경미 손모음^^♡
시낭송 문의
이메일-bong7073@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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낭송:봉경미
음악:손방원팬플룻
제목:별리
내 가슴에 내리는 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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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만규시인 약력
경북 청송 출생, 대구에 거주 중이다. 대한문학세계 시 부문으로 등단하였으며 (사)창작문학예술인협의회 회원, 대한문인협회 대구경북지회 정회원, (사)한국문인협회 정회원이다. 한국문학 올해의 시인상, 한국문학 향토문학상, 짧은 詩(시) 짓기 전국공모전 장려상 등을 받았으며, 이달의 시인, 좋은 시, 명인명시 특선시인선, 조세금융신문 [詩가 있는 아침] 시 등에 선정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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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어머니 (思母曲) / 풍류 민만규
언젠가 어머니 모시고 노래방에 간 적이 있었습니다
당신께서 아시는 노래라고는
"앵두나무 우물가에 동네 처자 바람났네…."
딱 이 노래 한 곡입니다.
그것도 박자 없는 음치에 가사도 끝까지 모르십니다
우리 어머니께서
아시는 글자라고는 '박난이' 당신 이름 석 자밖에 모르십니다
그것도 내가 학교 방학 때 한 달간 가르쳐서 터득한 글자입니다.
우리 어머니
학교 근처도 못 가보신 무학의 일자무식이십니다.
그래도 슬기로운 세상살이에는 그 누구보다도 뛰어나신 어머니가
나는 세상에서 제일 자랑스럽고 한없이 존경하고 사랑합니다.
신랑 얼굴도 안 보고 시집와서
겉보리 한 되로 신접살림을 시작하시면서
일평생 육 남매 자식 뒷바라지에 새벽달 보고 들에 나가셔서
온종일 뙤약볕에 일하시다 지친 몸 이끄시고
비 새는 흙담집에 그저 누울 곳 찾아
늦은 밤 별 보고 들어오신 우리 어머니
그렇게 죽자사자 부지런히 일한 보람으로
일천구백칠십 년 대 시골에서 대궐 같은 기와집에
남들이 부러워하는 부잣집 마나님으로
겸손과 베풂으로 인심을 얻으시며
힘들고 어려웠던 한 시절을 보상받으셨습니다.
또한 무학에 일평생 농사일밖에 모르셨지만
논리정연한 말솜씨는 스피치 강사 뺨칠 정도며
촌 골짝 여인네지만 교양과 품위가 남다르셨습니다.
한평생 당신의 못 배운 한을 자식 교육에 열정을 쏟으시며
자식들 대학 교육하는 것이 유일한 소원이셨습니다.
좋은 시절에 태어나셨다면
아마도 교육부 장관은 거뜬히 하셨을 우리 어머니이십니다.
까만 교복에 까만 베레모 쓰고 까만 007학생 가방 들고
방학 때 집에 내려가면 환한 미소로 반기며 버선발로 뛰쳐나오셔서
나의 손 꼭 잡으시며 기뻐하시던 모습이 지금도 눈에 아른거립니다.
공부하다 말고 어머니 일손 도우려고 나서면
고운 손 상한다고 구정물에 손도 못 담그게
자식 손 부여잡고 애지중지하시던 우리 어머니
그때는 당신의 자식이 대학 다닌다는 것이
대통령이나 된 줄로 아셨을 순진무구하신 우리 어머니
지금은
금쪽같은 자식들 육 남매에 열 손주 두시고
멀쩡한 집 두고 구순의 연세에
치매로 인생 종착역인 노인 요양병원 신세를 지고 계시니
이게 웬 말입니까? 어찌해야 하나요!
그저 애달픈 서러움에 눈물이 앞을 가릴 뿐입니다.
코로나 시국에 면회도 안 되고
어쩌다 가끔 센터장님의 배려로 영상통화 할 때면
"야 야 보고 싶다" 이 한마디에 억장이 무너져 내립니다.
온종일 병실 침대 구석에 쪼그리고 앉아 오로지 자식 생각에
텅 빈 콘크리트 천장만 바라보고 계실 불쌍한 우리 어머니
너무나 죄송하고 또 죄송합니다.
행복과 사랑 푸르름으로 가득 찬 가정의 달 오월
오늘따라 어머니가 애타게 보고 싶습니다
지금 집 앞마당 화단에는 장미꽃이 흐드러지게 피고
뒷산에는 진달래가 만발하였는데
불쌍한 우리 어머니는 아시고 계실는지
불효막심한 소자 목이 메고 또 메이고 눈물이 앞을 가리고 또 가립니다.
부디부디 오래오래 만수무강하시옵소서 어머니
오는 어버이날
집 앞 화단에 곱게 핀 장미 한 송이 따서 찾아뵙겠습니다.
사랑합니다. 어머니!
5 окт 20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