솔직히 난 통일 안됐으면 좋겠다고 생각함... 통일되면 사람 고문하고 임산부에게도 저런 가혹한 짓을 했던 놈들이 교육이나 상담 몇 번 받고 우리 주위에 섞여 살 수도 있다는 생각하니 끔찍함. + 그리고 한북 통일되면 더 이상 전쟁 상태가 아니기 때문에 주한미군이 한국에서 떠나야 됨··· 이제 미군 도움도 못 받고 자기네들 보다 군사력도 약한 데를 북한이 가만두겠냐 상식적으로
6. 25 전쟁전에 대한민국 경찰관이던 삼촌이 38선 에서 순찰을 하시다 북괴군에게 납치되어 아오지 탄광에서 3년간 강제노역을 사셧 습니다 그 당시 3년간 강제노역의 임금 으로 황해도 재령까지 기차 탑승비를 받았다고 합니다 3년간 강제노역을 하면서 식량은 주먹밥에다 반찬으로 소금을 먹었다고 합니다 깅일성 생일에는 돼지 비게가 1점 둥둥뜬 국물을 먹엇다고 합니다
@@ripple7605 납치되었던 당시 삼촌은 21살 청년이었읍니다 소위 인민재판을 받았다고 합 니다 인민위원장이 동무는 남조선에서 경찰관으로 근무한 악질반동이니 사형에 처한다고 판결했는데 마지막으로 할 말 해보라 해서 남조선에 살다보니 경찰을 해라해서 한것 뿐이니 살려주면 강제노역 후 인만군에 입대해서 조국을 위해서 목숨을 받치겠다 하니 강제노역 형에 처해진 것이고 3년 노역후 고향에가서 군에 입대 하라며 고향인 연백까지 차비를 준 것 이라 합니다 당시는 연백군이 38선으로 갈려 있었고 삼촌이 막내로 큰형은 남쪽에 작은형은 북쪽에 살았는데 북에 사는 작은형 한테 간다 차비를 주었는데 모자라서 재령까지만 기차를 다고왔고 재령서 붙어 연백까지 걸어와고 나중에 남쪽에사는 큰형님이 엎어서 데려 왔 습니다
3년간 주먹밥에 소금으로 연명 했으니 24세 청년이 걷기가 힘들어 지팡이를 짚고 걸었는데 당시만 해도 밤에는 몰래 38선을 넘나들었다고 합니다 북에사는 둘째가 남에사는 큰형에게 연락이와 밤에 업어서 데려 온 것입니다 참고로 연백군의 내 고향은 한 동네가 38선으로 갈라져 습니다
할아버지가 훌륭하신분 이시네요 아오지언니 이 분도 오늘 이 영상으로 처음보는데 예사롭지않네요 대한민국에서 태어났다면 정말 큰 인재가 되셨을듯... 최소 연예인... 12살 여자아이가 아빠,가족을 위해 밤에 그 먼거리를 나가 소를 되훔쳐오다니... 이제 자유롭게 누리며 사세요
아오지 하면 뭔가 감옥처럼 가둬두고 물이랑 감자만 주다가 일할시간에 일시키고 채찍질하고 다시 철창에 쳐넣는걸 생각했는데... 안에 중국인들이 들어와서 장마당에서 물건도 팔고.. 감옥 개념이 아니라 약간 마을 같은 느낌이군요.. 마음대로 나갔다 들어갔다는 할수 없는... 열악한 환경인건 맞지만 제가 생각했던 그런데는 아니군요
우리나라도 80년대까진 형제복지원이라 해가지고 반정권인사나 부랑인, 심지어 무고한 민간인 아동이나 성인까지 잡아들여서 강제노역한 흑역사 가 있었죠... 게다가 그 사건의 피해자들은 사건 끝나고도 차별대우에 시달렸었고 정작 가해자들은 호의호식하다가 몇몇이 자연사한걸 보면 진짜...
아무리 험한 땅이라도 고향은 고향이죠. 같이 뛰어 놀고 같이 배고파 콩 한조각도 나눠먹던 친구들이 있는곳..어린시절 아픈 추억일랑 뒤로 하고 외갓집 외할머니.이모랑 함께 살며 누렁이와 뛰어놀던 산과들이 어찌 그립지않을까요? 못나도 내고향 잘나도 내고향.. 누구에게나 고향은 엄마품 같은 곳 아닐런지요
일제 시대 조선인 징용 지도를 보면 북한 사람들이 남한 사람들보다 키가 더 큽니다. 어느 나라나 북쪽이 남쪽보다 덩치, 키가 평균적으로 더 크죠. 북한은 못 먹어서 우리 남한보다 작은 거고, 참고로 내가 먹은 음식이 손주 세대까지 영향을 줍니다. 한 세대를 최소 30년으로 잡고, 통일 후 30~40년이 지나야 북한이 남한보다 더 크겠죠.
북한식 연좌제가 얼마나 개좆같냐 하면 장인어른의 죄를 사위가 받아서 아오지, 시어머니의 죄를 며느리가 받아서 역시 아오지, 외숙모의 죄를 조카가 받아서 이것도 아오지. 아니, 피도 안 섞였는데 아오지냐? 그냥 강제로 이혼시키면 끝날 일을 왜 같이 처벌하는지 정말 노이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