솔직히 말해서 조선은 지금의 북한 보다도 훨씬 더 지옥같은 나라였습니다 그래도 북한은 최소한의 법치의 형식이라도 갖추기라도 하지만 전형적인 고대노예제국가로서 서기50년 경의 중국후한보다도 훨씬 수준이 낮았던 조선은 법치의 법자도 모르고 야만적인 통치를 하던 나라였기에 노비도 마음대로 때려죽여도 아무런 제재를 받지않았고 노비세습제가 1885년까지 유지되었기에 (노비제도 자체가 폐지된 것은 1894년 노비가 실질적으로 사라진 것은 1950년대) 후기가 되면 면세계층인 노비숫자가 차고 넘쳐서 재정이 파탄에 빠지게 됩니다 그래서 징세수입으로 관료들의 봉급을 제대로 지불하지 못하는 지경에 이르렀습니다 덕분에 관료가 백성을 직접 등처먹는 현실인데 나중에는 등처먹을 백성이 없어서 같은 양반끼리 등처먹는 상황이 됩니다 그래서 일어난 것이 바로 1862년에 일어난 진주민란인데 퇴직한 전직 관료가 현직관료의 과도한 수탈을 참지 못하고 난을 주도한 것입니다
마지막에 처럼 오랜시간이나 엄청먼 타지가는거 진짜 큰잘못이나 진짜 정권에 찍힌거 빼고는 거이다 멀리 교도소 가는 개념이 아니라 그냥 근신정도라고 하던대;;;심지어 한양에서만 살짝 벛어난 자기 친가나 외가로 가서 한달정도 쉬다가 다시 복직되는 경우도 있다고 하고 심지어 그냥 넘어가기 머하고 그렇다고 큰벌주기 머한 경우도 그냥 유배시키고 얼마후에 복직시키는 경우도 있다고;;;;
돈이 많은 양반들은 유배를 가도 현지에서 첩거느리거나 관기와 사흘이 멀다하고 빠구리하고 노비부리고 가족들과 자주 편지연락하고 아주 호화판 생활을 하고 잘먹고 잘살았습니다 (그 대표적 인물이 바로 정약용) 다만 그 고을을 벗어나지 못하고 살아야하니까 답답하긴 했겠죠 경우에 따라 10~30년 가까이 유배를 산 경우도 있고 죽을때까지 유배를 산 사람들도 있습니다
동서고금 막론하고 관직숫자는 정해져있고 하고싶어하는 사람은 많으니 같은 나라안에서도 끊임없이 지도층들은 암투를 벌이게 되어있다.역사속에 수많은 내전,모략,음모가 거의다 이런 이유에서 벌어지지.민주주의 국가에 선거가 단순히 시민이 정치에 참여할수있어서 좋은 제도가 아니고 바로 이런 정해진 관직을 두고 벌이는 엘리트들에 투쟁이 쓸데없이 인재를 피로 소모시키는 결과를 보지않고 평화적으로 벌어지기 때문이다.엘리트중 15퍼센트만이 사형도 아닌 유배경험이 있다는건 그 시대치고 상당히 온건한거다.동시대 서양에선 귀족중 집안에 장남을 제외한 아들들은 성직에 몸을 담지않은한 거의다가 전쟁터에서 죽어나갔다.
태형, 장형, 도형, 유형, 사형 다섯 형벌을 소개하는 영상을 보면 유형을 받은 죄인에게 장형을 먼저 집행한다고 했던 것 같은데 영상을 보면 원래 대명률 규정은 그런지 몰라도 조선에서는 유배형을 받은 죄인에게 따로 장형을 집행하지는 않은 것 같네요. 관료 중에 유배형을 받는 사람이 많아서 대부분은 영상에 나온대로 귀양길에 올랐겠지만 조정에 찍혀서 삼엄한 감시하에 사극의 장면과 비슷하게 끌려가는 사람도 있지 않았을까요?
조선 자체가 멜서스트랩(땅은 그대로인데 인구는 증가해서 일할수록 더 가난해짐 이걸 타파하려면 무역이나 전쟁 공업인데 훈구파가 사림선비들한테 밀려나면서 무역 공업 다 x가 되버림) 이것때문에 월급 자체를 아전급한테는 10원도 돈이 없어서 못줌 한마디로 감시시키고 싶어도 돈도 밥도 못주니 감시 시킬수가 있나 ㅋㅋㅋ 사또들조차도 연봉잉 쌀한가마 땡이고 나머지는 수탈해서 먹든가 굶어죽던가 하는 쓰레기나라가
22:13 저게 그렇게 별미라고 하지요.. 무슨 죄인이 먹는 밥처럼 묘사해놨는데 실제로 정말 맛있는 메뉴입니다. 당시의 전통식으로 담근 장 한종지는 지금하고는 비교할수없는 감칠맛이 있었어요. 간장게장 같은거 좋아하시는 분은 아마 전통식 장 한종지면 그냥 몇그릇 드실정도고. 덜 쓰른 보리밥도 가마솥으로 지은 밥이라서 지금 먹는 밥보다 훨씬 맛이 있습니다.
요즘으로 해석하면 정치적인 적을 제거하는 목적이었지요 당시에는 민주주의란게 없었으나 이긴자가 권력을 잡고 정치하려다 보니 반대파는 철저히 응징하는 방법의 하나이지요 그리 생각해 보면 유배자의 뼈아픈 맘이 어떻했을까요 세상이 민주주의로 잘 바꿨다, 다행중 다행이다. 하긴 지금도 정권을 잃은자에게는 무슨 죄를 물어서라도 처벌하고 있다. 사람사는 곳이란게 다 이런건가 인간이란게 생각이 다른 사람들과는 함께할수 없는것인가? 원래부터 인간은 파벌을 만들어야만 살수 있는 것인가
광해군은 유배생활 동안 아랫것들이 윗목을 차지하고 자신은 아랫목에서 지냈으며 나중엔 종들조차 어이 영감이라고 부르며 막 대했죠. 왕이었던 사람도 그러할진대 일반인이너 낮은 벼슬아치나 돈 없는 자들은 진짜 지옥같은 생활이었겠죠. 조선시대 통털어 수천명은 유배를 갔을텐데 그나마 유배지에서 대접받고 산 사람운 소수겠죠. 예를 들자면 선조대의 정철이나 순조대의 정약용 등 몃명이나 될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