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amuelahn 청산가리는 맹독입니다 일곱덩이만 있어도 전인류의 치사량이라고 합니다 많이 먹어야만 죽는것이 아닙니다 아무리 적은 양이라도 먹게되면음 사망입니다 마음에 죄가 많아야 지옥에 가는것이 아닙니다 호로라도남아있다 라면은 지옥에 간다 라고 성경은 기록되어 있읍니다 호리라도 남김이 없이 다 갚기전에는 결단코 거기서 나오지 못하리라
다들 데모가 아니다 예배다 회개다 얘기하는데… 주위를 돌아보십시오… 적어도 과반 이상이 우리의 세를 보여줘야 한다. 악법은 막아야한다. 싸워야한다. 라는 얘기를 하며 모이자는 사람이 많으며, 심지어 모이지 않으면 마치 매국노 혹은 신앙에 대해서 잘못된 신앙이라도 가지고 있는양 말하는 모양이 보입니다. 물론 다 같이 모여 한 마음 한 뜻으로 회개하며 우리가 소금과 빛 되지 못했기에 이렇게 되었다는 자복의 장소가 된다면 얘기는 달라질 것입니다. 그러나… 심히 우려가 됩니다. 전광훈 때에도 봤거든요. 이 얘기를 다른 사람들에게 해 봤더니 그 때는 전광훈이 자기 정치질을 위해서 일이 그렇게 된거란 식으로 말을 하는데 그 때에 일어났던 대환장 파티는 결코 전광훈이라는 한 인간으로 인해 일어나지 않았습니다. 물론! 하나님의 사람들이 똘똘 뭉쳐 일어난다면 기백명일지라도 수만의 대적을 물리칠 수 있습니다. 하지만 200만의 수많은 사람들이 모였을 때… 그저 우매한 군중이 될까 두렵습니다. 부디 그 예배에 나가시는 분들은 기억하셨으면 좋겠습니다. 우매한 군중이 되지 마십시오. 혹 그리스도의 이름을 내걸고 모인 장소에서 군중의 위세를 빌려 합당치 않은 일을 마치 대의를 위해 희생하고 어쩔수 없단 식으로 얼버무리지 마십시오. 그 예배가 인간이 드릴 수 없는 정녕 내주하시는 성령님으로 머리되신 그리스도의 주관 아래 드려지는 합당한 예배가 되기를 간절히 바랄 뿐입니다. 문정부 시기 전광훈의 때에 이런 저런 성경의 사건들로 이름지은 기도회 예배 집회 등으로 나갔으나 그 자리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걸고 잘못된 행위를 하는 사람들 사이에서 나도 그 군중 중에 하나였고 깨닫고는 이건 잘못됐다며 얘기했을 때 도리어 좌파 뿌락치라며 욕먹고 손가락질 당하고 내쳐졌습니다. 이미 지금도 스스로 깨닫기를 바랍니다. 1027에 나가지 않으면 마치 차별금지법안을 찬성하는 사람인거처럼 보시는 분들 있습니다. 동성애를 찬성하는 사람인거처럼 보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러지 마시고 부디 깨닫기를 바랍니다. 십자가를 들고 나가서 눈물의 예배 안타까운 현 세대를 위한 회복을 바라는 예배 이 모든 악랄한 현실이 우리 때문임을 인정하며 죄를 자복하는 회개의 예배 드리고 오시길 바랍니다. 그리고 1027에만 국한되는게 아니고 삶으로 그 정신이 흘러 나가길 바랄 뿐입니다.
구원이란 예수님의 피가 내모든죄를 영원히 흰눈처럼 사하셨다라는 맣씀를 마음에 그대로믿어서 내마음의 모든죄가 흰눈처럼 사해지고 성령이 임재하셔서 영원히 함께하게된 상태를말합니다 마음이 죄에서 분리된 상태 를말하는것입니다 죄와상관없이 자기를바라는자들에게 두번째 나타나시리라 그런데 마음에 죄를가지고 있으면서 구원받았다 라는 성각을 착각을 하고 있읍니다 물에 빠져서 죽어가면서 나 물에서 구원받았다 라고 주장을 하는 사람과 동일합니다 먹보다도 더검은 죄로물든 이마음 흰눈보다 더희게 깨끗하게 씻겼네 이상태가 성경이 말하는구원을 받은겁니다 이사람에게 한하여 기뻐하라 라고 말씀하시는것입니다
구원이란 예수님의 피가 내모든죄를 영원히 흰눈처럼 사하셨다라는 맣씀를 마음에 그대로믿어서 내마음의 모든죄가 흰눈처럼 사해지고 성령이 임재하셔서 영원히 함께하게된 상태를말합니다 마음이 죄에서 분리된 상태 를말하는것입니다 죄와상관없이 자기를바라는자들에게 두번째 나타나시리라 그런데 마음에 죄를가지고 있으면서 구원받았다 라는 성각을 착각을 하고 있읍니다 물에 빠져서 죽어가면서 나 물에서 구원받았다 라고 주장을 하는 사람과 동일합니다 먹보다도 더검은 죄로물든 이마음 흰눈보다 더희게 깨끗하게 씻겼네 이상태가 성경이 말하는구원을 받은겁니다 이사람에게 한하여 기뻐하라 라고 말씀하시는것입니다
구원이란 예수님의 피가 내모든죄를 영원히 흰눈처럼 사하셨다라는 맣씀를 마음에 그대로믿어서 내마음의 모든죄가 흰눈처럼 사해지고 성령이 임재하셔서 영원히 함께하게된 상태를말합니다 마음이 죄에서 분리된 상태 를말하는것입니다 죄와상관없이 자기를바라는자들에게 두번째 나타나시리라 그런데 마음에 죄를가지고 있으면서 구원받았다 라는 성각을 착각을 하고 있읍니다 물에 빠져서 죽어가면서 나 물에서 구원받았다 라고 주장을 하는 사람과 동일합니다 먹보다도 더검은 죄로물든 이마음 흰눈보다 더희게 깨끗하게 씻겼네 이상태가 성경이 말하는구원을 받은겁니다 이사람에게 한하여 기뻐하라 라고 말씀하시는것입니다
타교회 신도입니다.제가 참석하는 이유는 회개하자고해서입니다.에스겔도 조상의 죄,,민족의 죄를. 회개했습니다.세력,데모등의 시각을 갖는것에 대해서는 저도 반대합니다.요나의 전도에 니느웨가 회개하여 살았습니다.예레미야의 끊임없는 회개하라는 야호와의 말씀에. 불순종한 이스라엘은 멸망했습이다.매일 개인적으로 교회단위로 나라를 위한 기도를. 할겁니다.바울이 자기만족을 위해 죽어도 좋다하듯이.미스바에 모여 회개하였듯이 혹시 하나님께서 이 악법들을 멈춰주시기를 바라는. 마음뿐입니다.
지지합니다!! 우린 정치적 권력에 편승하려고 하는것이 아니라, 말씀 하신것과 같이 이 나라를 좀 깨울 수 있을까 함이고, 혹여 그렇지 못하더라고 하나님께 긍휼함을 부르짖기 위함이며 이로써 우리가 보편적 십자가 전달자가 아니더라도 바울이 시기와 질투에 주를 전파할지라도 그 목적이 주님을 전파하는 것이 맞다면 그것 또한 하나님 일이라 하셨음도 있으니, 우리는 그 나아갈 바를 모르고 나아가나 주님께서 만드시고,이루시고, 결국은 성취 하심을 믿고 나아가는 것입니다. 부디, 부정적으로 생각하기보다는 같이 할 수 없다면 기도로 동역 해주십시요!!
구원이란 예수님의 피가 내모든죄를 영원히 흰눈처럼 사하셨다라는 맣씀를 마음에 그대로믿어서 내마음의 모든죄가 흰눈처럼 사해지고 성령이 임재하셔서 영원히 함께하게된 상태를말합니다 마음이 죄에서 분리된 상태 를말하는것입니다 죄와상관없이 자기를바라는자들에게 두번째 나타나시리라 그런데 마음에 죄를가지고 있으면서 구원받았다 라는 성각을 착각을 하고 있읍니다 물에 빠져서 죽어가면서 나 물에서 구원받았다 라고 주장을 하는 사람과 동일합니다 먹보다도 더검은 죄로물든 이마음 흰눈보다 더희게 깨끗하게 씻겼네 이상태가 성경이 말하는구원을 받은겁니다 이사람에게 한하여 기뻐하라 라고 말씀하시는것입니다
세상의 잘못됨을 보고도 눈감으면 세상은 악으로 가득차서 넘칠것입니다... 너희는 세상의 빛과 소금이되라고 하셧고 소금이 짠 맛을 잃으면 버려져 사람들에게 밟힐뿐이라 하였습니다.. 권력이 되는것이 아니라 잘못되어 부폐하는 것을 막는것입니다... 믿는자는 영적 전사로 싸우라고 부른것... 우리의 씨름은 혈과 육을 상대하는 것이 아니요 통치자와 권세들과 이 어둠의 세상주관자들과 악한영을 상대함이라... 하나님 말씀에 반대로 법을 만드는 자들과는 목슴걸고 싸우는것이 믿는자들의 마땅히 할일....세상의 잘못됨을 보고 눈감는자는 짠맛을 잃어버린 소금과 같아서 말씀과 같이 될것입니다...
지금까지 목사님의 설교를 일부러 찾아보며 은혜도 받고 위로도 받고 때론 삶의 문제가 있을때 힘을 얻기도 했지만 오늘은 물음표만 가지고 갑니다! 그들과 공감을 하라구요?? 세력도 공갈도 공포를 조성하려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창조질서를 무너뜨리는 자들 앞에 하나님이 진리임을 보여줄 수 있기를 바라는 맘으로 태어나 처음으로 1027에 참여합니다! 목사님…그동안 존경했던 마음은 변치 않치만 이 후로는 목사님 설교 찾아볼일은 없을것 같습니다~뜻이 다르다 하여 틀리다 할 수는 없습니다! 보내시는 이도 부르짖게 하시는 이도 잠잠히 기도하게 하시는 이도 하나님이십니다!
@@조준래-s4d 개인적 회개도 각자의 신앙에 따라 필요하고 우리 교회와 우리 민족이 지은 죄에 대한 회개가 필요한 때라는 것입니다.교회 목사의 세습 폐지안이 헌의되는 현실이고 총회장 선거에서 돈을 주고 받고 심지어 총회장인 목사였던 자가 불륜을 하고 그 교회는 감옥에 보내도 시원찮을 자를 전별금으로 10억을 준다고 합니다 그것도 대출을 하든지 해서요 공동의회를 주일에 하면 안될것 같으니 수요일에 할려고 한다는 소식이 드립니다 그 교회에 아는 사람이 없으니 정확한것은 모르겠습니다만 사실이 이렇다면 참으로 한심한 지경입니다.이런일은 지교회에도 있습니다.그러니 당연히 회개의 기도가 나옵니다.주님께 부끄러울 뿐입니다.
구원이란 예수님의 피가 내모든죄를 영원히 흰눈처럼 사하셨다라는 맣씀를 마음에 그대로믿어서 내마음의 모든죄가 흰눈처럼 사해지고 성령이 임재하셔서 영원히 함께하게된 상태를말합니다 마음이 죄에서 분리된 상태 를말하는것입니다 죄와상관없이 자기를바라는자들에게 두번째 나타나시리라 그런데 마음에 죄를가지고 있으면서 구원받았다 라는 성각을 착각을 하고 있읍니다 물에 빠져서 죽어가면서 나 물에서 구원받았다 라고 주장을 하는 사람과 동일합니다 먹보다도 더검은 죄로물든 이마음 흰눈보다 더희게 깨끗하게 씻겼네 이상태가 성경이 말하는구원을 받은겁니다 이사람에게 한하여 기뻐하라 라고 말씀하시는것입니다
기독교인은 protestant 입니다 악에 저항하는것이 성경적입니다 악에 대하여 침묵하는것은 하나님의 뜻이 아닙니다 교회를 지키고 가정을 지키기 위하여 목소리를 내는것을 폄하하지 마십시오 짖지않는 개와 같이 살면 안됩니다 하나님나라를 위한 파수꾼들은 깨어있어 외치며 악에 저항해야합니다
구원이란 예수님의 피가 내모든죄를 영원히 흰눈처럼 사하셨다라는 맣씀를 마음에 그대로믿어서 내마음의 모든죄가 흰눈처럼 사해지고 성령이 임재하셔서 영원히 함께하게된 상태를말합니다 마음이 죄에서 분리된 상태 를말하는것입니다 죄와상관없이 자기를바라는자들에게 두번째 나타나시리라 그런데 마음에 죄를가지고 있으면서 구원받았다 라는 성각을 착각을 하고 있읍니다 물에 빠져서 죽어가면서 나 물에서 구원받았다 라고 주장을 하는 사람과 동일합니다 먹보다도 더검은 죄로물든 이마음 흰눈보다 더희게 깨끗하게 씻겼네 이상태가 성경이 말하는구원을 받은겁니다 이사람에게 한하여 기뻐하라 라고 말씀하시는것입니다
정의를 행함은 제사와 예물을(새번역엔 예물이 사라짐) 드림보다 하나님을 기쁘시게 한다는 잠언 21:3절 말씀. 너희는 세상(사회)의 빛(어둠 제거)과 소금(부패 막는)이니. 하나님 나라이임하옵시며 뜻이 하늘에서 이루어진 것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이다. 하나님께선 우리가 교회 담안에서 종교놀이 찬양놀이 기도놀이하라고 부르신 것이 아닙니다 교인들 불신자들 모두 하나님의 정의와 사랑이 통하는 거룩한 사회에서 모두 존중받고 사는 것입니다 이를 위해 목소리를 내고 뭉쳐야 합니다
이 목사님 설교를 집회 가까울때 올리는 이유는 무엇인가요? 이 설교는 이번 집회의 열의를 차겁게 만드네요. 우리는 하나님의 나라를 위해 살아야 하지만 나라가 이렇게 악으로 갈때는 피켓만 아니라 이사야가 벌거 벗고 손벽을 치면서 나라의 죄를 단죄하고 하나님앞에 돌아오라 한것처럼 우리도 그 열정이 필요하다고 봅니다. 거룩한척 세련된것처럼 살면서 나라를 위해 동성애 반대 집회에 참석하지 않고 그 집회를 반대하는 사람들. 주님앞에 섰을 때 과연 주님이 내가 너를 안다 할지 궁금합니다. 말씀 한구절을 실천하고 싶어 당신들은 죄와 피흘리기 까지 싸우십니까?
간통법, 낙태 금지 등 인간의 존엄성과 도덕의 문제에는 모른채 하고 있다가. 자기들은 절대로 동성애란 죄는 지은 적이 없는 의인으로서 마치 바리새인들이 병자들을 죄인으로 몰아 쫓아내듯 하겠다는거죠. 사실 한국에서 동성애는 미국이나 유럽처럼 공공연하게 드러낼 수도 없는 강력한 사회적 분위기를 잘 이용해서 프로파겐다를 쥐고 정치세력화 하고자 하는 것은 분명하죠. 저희는 그런 악한 일에 이용 당하고 싶지 않습니다. 대형교회들은 마지 못해 나가는 것 같은데, 소규모교회들은 참여하지 않을 겁니다.
구원이란 예수님의 피가 내모든죄를 영원히 흰눈처럼 사하셨다라는 맣씀를 마음에 그대로믿어서 내마음의 모든죄가 흰눈처럼 사해지고 성령이 임재하셔서 영원히 함께하게된 상태를말합니다 마음이 죄에서 분리된 상태 를말하는것입니다 죄와상관없이 자기를바라는자들에게 두번째 나타나시리라 그런데 마음에 죄를가지고 있으면서 구원받았다 라는 성각을 착각을 하고 있읍니다 물에 빠져서 죽어가면서 나 물에서 구원받았다 라고 주장을 하는 사람과 동일합니다 먹보다도 더검은 죄로물든 이마음 흰눈보다 더희게 깨끗하게 씻겼네 이상태가 성경이 말하는구원을 받은겁니다 이사람에게 한하여 기뻐하라 라고 말씀하시는것입니다
구원이란 예수님의 피가 내모든죄를 영원히 흰눈처럼 사하셨다라는 맣씀를 마음에 그대로믿어서 내마음의 모든죄가 흰눈처럼 사해지고 성령이 임재하셔서 영원히 함께하게된 상태를말합니다 마음이 죄에서 분리된 상태 를말하는것입니다 죄와상관없이 자기를바라는자들에게 두번째 나타나시리라 그런데 마음에 죄를가지고 있으면서 구원받았다 라는 성각을 착각을 하고 있읍니다 물에 빠져서 죽어가면서 나 물에서 구원받았다 라고 주장을 하는 사람과 동일합니다 먹보다도 더검은 죄로물든 이마음 흰눈보다 더희게 깨끗하게 씻겼네 이상태가 성경이 말하는구원을 받은겁니다 이사람에게 한하여 기뻐하라 라고 말씀하시는것입니다
구원이란 예수님의 피가 내모든죄를 영원히 흰눈처럼 사하셨다라는 맣씀를 마음에 그대로믿어서 내마음의 모든죄가 흰눈처럼 사해지고 성령이 임재하셔서 영원히 함께하게된 상태를말합니다 마음이 죄에서 분리된 상태 를말하는것입니다 죄와상관없이 자기를바라는자들에게 두번째 나타나시리라 그런데 마음에 죄를가지고 있으면서 구원받았다 라는 성각을 착각을 하고 있읍니다 물에 빠져서 죽어가면서 나 물에서 구원받았다 라고 주장을 하는 사람과 동일합니다 먹보다도 더검은 죄로물든 이마음 흰눈보다 더희게 깨끗하게 씻겼네 이상태가 성경이 말하는구원을 받은겁니다 이사람에게 한하여 기뻐하라 라고 말씀하시는것입니다
지금교회는 세상의 잘못은 눈꼽도 대들보만하게 보고 본인들의 대들보만한 타락엔 한없이 관대한데 백날천날 나가서 외쳐본들 세상사람들이 듣나 욕이나 한바가지 안먹으면 다행이다. 장로회 통합 총회장이 여성도와 무인모텔에가고도 당당하고 그걸 한국 최고의 권위가 있는 명성교회 원로목사가 두둔하고 교회세습에 ㅉㅉ 이번 10 27집회가 또 얼마나 정치적으로 흘러갈지.. 참 대한민국 기독교 한심하다.
구원이란 예수님의 피가 내모든죄를 영원히 흰눈처럼 사하셨다라는 맣씀를 마음에 그대로믿어서 내마음의 모든죄가 흰눈처럼 사해지고 성령이 임재하셔서 영원히 함께하게된 상태를말합니다 마음이 죄에서 분리된 상태 를말하는것입니다 죄와상관없이 자기를바라는자들에게 두번째 나타나시리라 그런데 마음에 죄를가지고 있으면서 구원받았다 라는 성각을 착각을 하고 있읍니다 물에 빠져서 죽어가면서 나 물에서 구원받았다 라고 주장을 하는 사람과 동일합니다 먹보다도 더검은 죄로물든 이마음 흰눈보다 더희게 깨끗하게 씻겼네 이상태가 성경이 말하는구원을 받은겁니다 이사람에게 한하여 기뻐하라 라고 말씀하시는것입니다
전성민 교수님 글 [길갈에서 엔돌까지 - 10/27 고민하기...] “오라 우리가 길갈로 가서 나라를 새롭게 하자” (삼상 11:14). 10월 27일 “예배” 홍보 포스터에 적힌 주제 말씀이다. 그런데 이 구절은 바로 다음에 사울을 왕으로 세우는 이야기로 이어진다. 그리고 길갈에서 왕으로 세워진 사울의 이야기는 엔돌에서 신접한 여인을 만나는 이야기로 그 몰락의 정점을 찍는다. 10월 27일 광화문은 길갈일까, 엔돌일까. 길갈이어도 문제다. 길갈에서 왕으로 세워진 사울은 우리를 당혹케 하는 “하나님의 후회”의 대상이 되고 마니 말이다(삼상 15:11, 35). 더우기 “길갈로 가자”는 외침 속에서 신접한 여인을 만나러 엔돌로 가는 사울의 그림자가 보이는 것은 왜일까. 사울이 엔돌의 신접한 여인을 찾아가는 이야기는 두 가지 배경 속에 시작한다. 하나는 사무엘의 죽음이고 또 하나는 신접한 자와 박수를 사울이 땅에서 쫓아낸 사건이다(3절). 신접한 자(현대 표현을 빌자면 “영매”)를 의존하는 것은 이스라엘을 더럽히며 하나님의 진노를 불러오는 용납받을 수 없는 일이었다(레 19:31, 20:6). 사무엘이 없는 불안함을 극복하려는 것인지, 예전의 불순종을 만회하려는 것인지, 사울은 신접한 자를 쫓아내는 나름의 개혁을 단행했다. 그러나 사울은 자기 자신의 정책을 부정하며 자신이 쫓아냈던 신접한 사람을 다시 찾아간다. 기묘한 역설이다. 예배는 예배당에서 드려야만 한다고 애쓰다 이제 예배는 어디서든 드릴 수 있다고 호소하는 모습에서 신접한 사람을 쫓아내었다가 다시 그들을 찾는 사울의 그림자를 보는 것은 나만의 불길함인가. 4절에서 본격적인 이야기가 시작된다. 사울의 두려움이 이 모든 사건의 뿌리다. 두려움(그리고 초조함)은 사울이 평생 매여 있던 정서였다. 사울이 아말렉과의 전쟁 후에 모든 것을 진멸하지 않고 좋은 것을 남긴 이유는 “백성을 두려워했기” 때문이었다(삼상 15:24). 다윗과 달리 사울은 골리앗의 말을 듣고 “놀라 크게 두려워했다” (삼상 17:11). 여호와께서 떠나신 사울은 다윗을 두려워하고, 더욱더욱 두려워했다 (삼상 16:14, 18:12, 15, 29). 이제 사울은 블레셋 군대를 보고 두려워한다. 마음이 크게 떨릴 정도로 두려워했다(삼상 28:5). 믿음이 없을 때 두려워진다. 소망이 없을 때 두렵다. 그러나 사랑 안에는 두려움이 없고, 온전한 사랑은 두려움을 내쫒는다. 그래서 두려워하는 사람은 사랑을 완성하지 못한 사람이다. 두려워하는 사람은, 사랑하지 않는 사람은, 하나님을 알지 못한다. 하나님은 사랑이시기 때문이다 (요일 4:7-18). 사울은 왜 두려웠을까, 우리도 사랑 없는 두려움에 싸여 있는 아닐까. 전쟁 준비를 마친 블레셋 군대가 앞에 있는데, 하나님은 묵묵부답이셨다. 꿈으로도, 우림으로도, 선지자로도 대답이 없으셨다(6절). 초조해진다. 이 하나님의 침묵은 사실 사울의 자업자득이었다. 사울에게 기름 부어 왕으로 세웠던 선견자 사무엘은 사울의 불순종 이후 죽을 때 까지 사울을 보지 않았다(15:35). 한때 선지자 중 하나라고 여겨졌던 사울에게서 하나님은 이미 떠나가셨다 (삼상 10:11-12; 19:24 참고; 18:12). 우림은 제사장이 사용하는 신탁의 도구였는데, 사울은 놉의 제사장 아히멜렉이 다윗을 도왔다는 이유로 에돔 사람 도엑을 통해 놉의 제사장들 뿐 아니라 그 성읍의 “남녀와 아이들과 젖 먹는 자들과 소와 나귀와 양을 칼로” 쳤었다 (22:18-19). 사울을 떠나신 하나님이 그의 꿈에 나오실리 없었다. 하나님의 침묵은 남 탓을 할 일이 아니었다. 사울 스스로 자초한 일이었다. 그러니 해결 방법은 사울 자신이 이제라도 돌이키는 것이었다. 그러나 그는 자신에게 가장 익숙한 방법을 택한다. 순종 보다 “영적 경험”을 추구하는 것이 익숙하다. 자신을 부인할 필요 없이, 뭔가 확실히 보여줄 수 있기 때문이다. 결국 넘어서는 안될 선을 넘는다. 자신이 애썼던 것까지 부정하면서까지 선을 넘는다. 신접한 여인을 찾으라 명한다. 그리고 결국 엔돌의 신접한 여인을 찾아내 엔돌로 간다. 다행일까, 비극일까. 엔돌에 가려면 블레셋이 진을 치고 있는 수넴 근처를 지나가야 했다. 들키지 않기 위해 변장했다. 그리고 두 호위병과 함께 밤에 움직였다(8절). 마침내 신접한 여인을 만난 사울은 “나를 위해” 강령술을 요청한다. 영매는 거부한다. 사울이 신접한 자를 멸절시켰는데, 강령술을 행하라는 것은 자신의 목숨을 노린 함정이라 생각했다. 사울보다 더 사울에 충실한 영매였다. 불안하고 다급했던 사울은 또 한 번 선을 쎄게 넘는다. 여호와의 이름을 걸고 맹세하며 여호와가 금하신 일을 재차 요청한다. 자신이 벌을 결정하는 심판자가 된다(10절). 개역개정 11절에는 “나를 위하여”가 없지만, 히브리어 본문에는 다시금 사울의 “나를 위하여”가 반복된다. 블레셋과의 전쟁을 앞두고 하나님의 뜻을 묻겠다는 대의를 내세우지만, 결국 이 모든 일은 사울 자신을 위한 일이었다. 여인은 전혀 예상치 못했던 일이 벌어진 것 처럼 누군가 보이자 큰 소리를 지른다. 지금 나타난 존재가 진짜 사무엘인지 아닌지, 이 현상이 악한 영의 힘인지 아니면 하나님의 일인지 해석자들의 의견은 갈린다. 그러나 어떤 해석이든 한 가지는 분명하다. 사울의 몰락이다. 사울은 뭔가 새로운 돌파구를 마련하고 싶었겠지만, 순종치 않는 이상 사울에겐 몰락만 남아 있을 뿐이었다(18-19절). 하나님은 사울에게 제사(지금 말로 하자면 “예배”일까)가 아니라 순종을 원하셨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십자군이 아니라 십자가를 원하신다. 순종과 십자가가 아닌 제사와 십자군의 길 마지막엔 몰락이 있을 뿐이다. 자신의 몰락을 확정하는 “사무엘”의 말을 들은 사울은 두려움을 벗고 싶었던 원래 바람과는 달리 더 심한 두려움에 휩싸인다. 그리고 땅에 완전히 무너지고 만다. 기운이 다 소진되기도 했다. 하루종일 음식을 먹지 못했기 때문이다. 두려움에 입맛을 잃었을까? 주술을 더 효과적으로 만들기 위해 종교적 금식을 했을 수 있다. 사울은 본질적인 순종 보다 이벤트적 종교 행위에 더 익숙했다. 사무엘상 13장에서는 흩어지는 백성들을 붙잡기 위해 스스로 번제를 드렸고, 14장에서는 블레셋과의 전쟁에서 승리할 때 까지 금식을 선포하기도 했다. 종교 이벤트 기획력은 당할 사람이 없다. 그러나 다시금 확인한다. 종교 이벤트가 아니라 순종이 본질이다. 십자군이 아니라 십자가가 본질이다. 이 사실을 무시할 때, 광화문은 길갈이 아닌 선을 넘은 엔돌이 되고 말 것이다. 그리고 그 후엔 몰락이 기다리고 있을 뿐이다. 주여 우리를 불쌍히 여기소서. [단상들] - 숫자를 이야기하는 순간 이미 정치가 시작된다. 정치는 선거고, 선거는 숫자이기 때문이다. 3만2천명으로 이룬 승리는 스스로 자랑이 될 뿐이라서 하나님은 승리를 주시지 않으신다 (삿 7:2). 그래서 그 수의 1%도 안되게 수를 줄이게 하셨다. - 다윗이 사람 수에 관심을 가진 것은 하나님이 그를 치기 위해 격동하신 것이자 (삼하 24:1) 사탄의 충동이었다 (대상 21:1). - 하나님의 구원은 사람의 많고 적음에 달려 있지 않다 (삼상 14:6). - 길갈에서 사울을 왕으로 세우고 백성들을 당장 기뻐했지만, 사실 왕을 원했던 것은 그들의 죄에 악을 더한 것이었다 (삼상 11:14-15, 12:19). - 벧엘과 길갈에서 드려지는 제사를 사람들은 기뻐했지만, 죄를 더하는 것이었다(암 4:4). 그래서 아모스는 “벧엘을 찾지 말며 길갈로 들어가지 말며 브엘세바로도 나아가지 말라”하며 “길갈은 반드시 사로잡히겠고 벧엘은 비참하게 될 것임이라” 경고했다 (암 5:5). - 큰 거리가 아니라 골방이 기도의 장소다 (마 6:5-6). - 구약의 대형 집회들은 “보여주는” 집회가 아니라 “돌아보는” 모임이었다 (신 31:9-13; 수 24장; 왕상 8장; 왕하 23:1-3; 느 8:1-18) - 신약의 대형 집회들은 담을 허무는 시간이었다 (행 2:11, 17-18; 3:11, 25; 5:12-16)
좋은 말씀 감사합니다. 요즈음 미국의 유대교인들이 예수님을 많이 받아들이는 것 같습니다. 기독교인으로 권력을 추구하는 것은 유다이스카리옷의 행위입니다. 물론 사회의 구성원으로 하고자 하는 말을 겸손과 선으로 표현할 수는 있다고 봅니다. 그런데 하나님을 알고자 아니하는 세상에서 정치적 힘을 획득하여 제도를 바꾸는 행위는 결코 예수님의 제자의 모습은 아니라고 봅니다. 예수님은 인간이 이세상에 제도의 변화로 천국이 이루어진다고 하시지 않았다고 생각합니다. 오히려 근본이 악한 이세상을 심판하시겠다고 하셨지요. 예수님을 믿는 유대인들은 2025년(히브리5785)을 심판이 시작되는 해로 보더군요. 이를 오히려 구원의 시작이라고 말하고 기쁨으로 기다립니다. 그들이 틀릴수도 있으나 저는 이들이 모습이 좋아보입니다. 만약 주의 크고 무서운 날의 징후가 시작된다면 기독인들도 기쁨으로 찬양하길 소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