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도 영화를 봤는데 전투 장면에서 거북선이 나오는데 거기에서는 또 열심히 싸우다가 거북선이 침몰 당한 장면이 나와서 깜짝 놀랐습니다.. 이 영상을 보니까 팩트 체크도 잘되어 있고 이번 영화 노량에 대한 궁금증 해결 답변들이 여러가지로 나와있고 내용을 자세 하게 다루고 있어서 좋은거 같습니다.
거북선은 과장 된 것임. 실제로 저런 거북선 모형을 만들어 보면 전혀 움직일 수 있는 배가 아닙니다. 무게 중심이 너무 위로 올라가서 물에 띄우면 바로 뒤집어 져 버려요. ㅎㅎ 그냥 배앞에 거북이 목이나 용머리 조각을 붙인 것을 거북선이라고 한 거 같네요. 거북선 찾는 다고 아무리 뒤져 봐도 안나오는 이유가 거북선이란 자체가 없기 때문임.
그렇게 대단했다면 임진왜란 끝나고 크게 알려져야 하는데 100년 지날 때까지 존재 조차 몰랐어요. 알게 된 것은 류성룡이가 자기 공적을 내세우기 위해서 쓴 징비록이 100년 후에 일본으로 건너가면서 일본에서 일본식으로 이순신을 과장 부풀려서 다시 책을 만들었고 그것이 다시 역수입 되면서 알려진 것임. 명나라 기록에도 이순신에 대하여 별로 쳐주지도 안했어요. 그냥 이제독이라고 기록 해놓았고 선조는 이순신을 아주 싫어 했어요. 임진왜란 전에 일본이 쳐들어 온다는 정보를 입수하고 이순신에게 대비해서 왜장인 가토가 쳐들어오니 잡으라고 명령을 내렸는데 왕명을 거역하고 아무 대비도 안하고 있다가 임진왜란을 맞이해서 나라를 위기에 빠뜨렸지요. 이순신하고 류승룡은 이이의 왜군 침공설에 반대하는 세력이었어요. 게다가 부산왜군 진지를 습격해서 왜군배 20척 왜군 화약과 식량을 불사르고 주거지 1천개를 불지른 공을 세운 군관이 있었는데 이순신은 나중에 도착해서 아무 짓도 안했는데 이것을 자기가 한 것으로 조정에 보고 했는데 선조와 대신들이 크게 기뻐했는데 나중에 이순신이 한 것이 아니라 다른 군관이 한 것이라는 것이 밝혀져서 선조가 진노해서 이순신을 좌천 시키고 그 후로 신뢰를 안했습니다. 이 사건은 이순신의 편이었는 류성룡 마저도 이순신을 아주 질책 했습니다. 역사는 영화나 소설로 배우면 안됩니다.
내가 알기론 당시 일본이 우리나라보다 서양과의 교류가 활발해서 불랑기포, 오오즈츠 (대조총)도 존재해서 분명히 대형화기에대한 숙달이 없진 않을텐데 그리고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왜군도 몇년간 전쟁을하면서 공략법을 점차 깨닫게 되는데 좀 전문가라고 하는 분들의 주장이 뭔가 저한텐 신빙성이 느껴지지 않네요 (지극히 개인적인 생각입니다.)
당시 불랑기는 오히려 명나라 측에서 대량 운용했고, 조선이 이를 받아 수전에서도 일부 사용한 바 있습니다. 중원 세력이 서역하고 더 오래 교류를 해왔기 때문에 일본보다 먼저 데드 카피해서 쓰게 되었음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일본에도 전래는 되었지만, 그건 임진란 직전 시기인 듯하네요. 지금과 같은 완성형 일본 성채가 아니라 대부분 구릉의 평지마다 별도의 방어 초소를 쌓아놓고 울타리로 보호하는 행주산성 같은 목책 성곽 느낌이 많았던지라 대포까지 운용하기에는 썩 좋은 상황도 아니었다 합니다. 이시가키石垣를 보고 감탄했다는 임진난 참전 장수의 말이 남아 있을 정도이니 말 다했지요. 석축성이 늘어났던 시기조차 백제 멸망 직후 잠깐이라서, 임진난 직전 지어진 교두보인 카라츠시의 히젠 나고야말고는 거의 없다시피 하다가, 전후 주변 지역 영주를 시작으로 석축을 많이 시도했다더군요. 그 사이가 임란에서의 축성 경험이었고요. 대포를 많이 활용할 수 없는 선체 구조 역시 한몫 했다는 건 유명하죠. 그냥 그들한텐 대포는 그 당시까진 별 재미를 못 보는 무기였던 겁니다.
노량은 잘 모르겠지만 다른 전투에선 먼 거리에서 곡사로 공격하기 보다는 100~200미터 정도의 거리에서 직사로 공격했을 가능성이 가장 높다고 하더군요. 그렇게 하는게 명중률이 가장 높고 화약소비량이 적어지니 그런게 아닐 지? 그리고 전투종료후 왜선을 파괴시킬 땐 화포보다는 불을 질러 태워버리는 방식을 택했다고 하구요. 실제 그 당시 조선의 화약생산은 상당히 열악했으며 그 중에서도 가장 중요하다고 할수 있는 염초(화장실 근처의 흙에서 채취)는 따로 구하러 다니는 인력이 상시로 있어야 보충이 된다고 할 정도였으니 이는 수많은 선조님들의 피고름과 고통까지 결합되어 이룬 업적!
그러게요. 정확히 알고 계십니다. 출연하신분들 영화는 재대로 관람하시고 해석하신건지 의아합니다. 차라리 픽션과 논픽션을 명확하게 구분하는 방식보다 픽션에 논픽션을 더해 사실은 이런식이었겠지만 영화에서는 이런 느낌으로 표현하고자 한것 같다. 라는 식으로 해석을 했다면 더 나았을거라고 생각이 드네요.
@@dvisionadam1983 영화에서처럼 준사를 보내 진린을 구했다는 얘기는 사료에 나오지 않는다는 얘기가 핵심이고 진린을 구하고 잡힌 준사가 의를 위해 싸워왔다라는 말을 영화에서 이순신이 직접 했으면 더 좋았을 것이다라는 뜻으로 이순신이 해야할 말이었다 라고 말한 것 아닌가 합니다. 제 생각도 직접했으면 좋았을 것 같습니다. 하지만 이렇게 말하는 이순신의 모습은 등장하지 않습니다.
@@vj7456 영화 제대로 보셨나요. 불의와 싸워왔다라는 말은 이순신만의 전매특허가 아니었습니다. 즉 이 전쟁은 불의와 의의 싸움이라는 겁니다. 의로서 불의와 진정으로 싸워 온 모든 사람들에게 해당하는 겁니다. 영화 속 조선육군의 깃발에도 의라는 글자가 분명하게 세겨져 있었던 것으로도 알 수 있습니다.
전문가라는 사람들이 라이브 녹화도 아니고 녹화 방송인데 사전 준비도 안해왔나 싶을 정도로 성의가 없어서 실망스럽네요. 다들 기록에 나와 있는 내용을 ~라고 했던가? 아마 ~ 같습이다. 아마 ~ 했을겁니다. 오사카에 있다고 했던가? 말았던가? 시종일관 이런 자세인데 이게 이순신 전문가라는 사람들이라면 이순신 장군님께 실례 하고 있는거 같습니다.
박종평님 외에는 제대로 설명하시는 분이 없네요. 충파도 충파전술이 아님을 잘 설명(충파는 대충 때려잡았다.정도 의미지 배로 들이받아서 구멍내고 침몰 시켰다가 아닙니다)해주셨고, 선박구조만 봐도 판옥선 구조 자체가 충파할 구조가 아닙니다. 거북선 침몰이 큰 문제인건, 이순신장군의 함대는 단 1척도 침물하지 않았습니다. 근데 가장 강력한 거북선이 침몰한다? 이걸 칠천량해전 원균과 엮어서 본다고요? 믹스커피도 아니고.. 뭔 믹스입니까? 명량해전 이후 거북선이 만들어졌다는 기록은 없지만 만들지 않았다는 기록은 없으니 등장하더라도 문제는 없다. 단, 침몰해서는 안 된다. 정도가 정확한 멘트 같습니다. 군사편찬연구원분은 조총 설명이 너무 부정확하시네요. 가까이 왔을 때 집중사격, 탄막이라니요? 조총 유효사거리가 활보다 길어요. 왜군, 조선군 둘 다 조총 운용이 같습니다. 우선 조총을 가장 먼저 발사하고, 그 다음 활입니다. 수조규식에 총통 200보(240미터), 조총 100보(120미터), 활 90보(100미터)로 활보다 조총이 유효사거리가 더 긴걸 알 수 있습니다. 탄막이라는 일본식용어(화망사격)는 그렇더라도, 조준사격이 기본이었지, 전열보병처럼 단체로 50미터에서 화망사격한게 아닙니다. 당시 뎃포가 화승방식도 순발식이라 명중률에 더 도움이 되는 방식일 뿐더러, 전체병력 중 대략 10%정도 되는 가장 유능한 아시가루가 사용했습니다(당시 신식무기를 아무 잡병에게나 쥐어주고 쏘게 했을까요? 무려 일본전국시대를 끝낸 무기인데요?) 더욱이 그 종류, 구경도 다양합니다. 조선군의 주무기가 화포와 활이라고 말하는 것도 부정확합니다. 총통과 활이라고 말하면 모를까.. 더욱이 정유재란이면 상당수가 조총으로 무장해야 합니다. 임진왜란 중 정철총통 제작에 성공하니까요(기존 총통처럼 청동주조가 아닌 철로 단조한 뎃포를 복제한 것이니) 물론 영화(명량, 한산, 노량) 3편 모두 승자총통, 소승자총통 은 물론이고 조총 따위를 든 조선수군은 등장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화포와 활이라고 말하면 대형총통류 인식되고, 개인화기용 소형총통류는 전혀 사용하지 않는 것으로 인식되지요. 대장군전 같은 경우, 소모되는 화약이 너무 많고, 천자총통이라는 큰 화포로 쏴야 되는 점. 대장군전 자체도 커서 재장전도 느리다는 점. 이런 다양한 이유로 주력으로 쓰기는 부담스러울 뿐, 안골포 해전처럼 포구에 짱박혀서 싸우려고 하지않은 왜선들은 고정표적이기 때문에 잘만 써먹었습니다. 개인적으로 지적하고 싶은 점은 신기전 장착한 화차등장? 문종화차만 봐도 화살쏘는 화차는 도태장비였고, 신기전은 신호용으로 활 없이 불만 붙이면 사용할 수 있어서 탐망선들이 왜수군을 발견하면 쏘아서 위치를 알리는 용도였습니다. 영화에서는 화공에 쓰이네요.. 등선을 허용하면 조선수군이든 명수군이든 갈려 나갔습니다. 교전비가 말도 되지 않습니다. 영화에서는 박빙으로 싸웁니다. 이순신 장군님께서도 칼질 하시구요.
일단 귀선은 칠천량 이후로 재란이 끝날 때까지, 《난중일기》에서조차도 안 나왔기에 노량 자체보다는 그 장면을 칠천량과 오버랩 시킨 것으로 보는 해석이 잘못된 것은 아닙니다. 이미 재란 발발 이후 기록에서 칠천량에서 살아남은 건 배설의 판옥선 12척 뿐이라고 나오기에, 철갑선으로 잘못 알려져 있는 날붙이가 설치되어 있을 뿐인 목재전함인 거북선은 해당 시점에선 없다고 보아야 합니다. 경상우수사 배설은 귀선 지휘 권한도 없었는데 어떻게 끌고 나오겠습니까. 그러니 원균의 칠천량 해전에 마지막으로 참전했다가 사라진 것을 이 영화에 믹스(실재론 오버랩)시킨 것 아니냐는 개인적인 의견이 나온 거지요. 지금 이 자리는 《노량:죽음의 바다》의 배경이 되는 노량해전을 기반으로 이야기1ㅣ는 자리입니다. 그래서 박 연구가께서 하신 말씀은 대전제를 충분히 고려하지 않은, 반만 맞는 말씀입니다. 더군다나 임진난 당시 건조된 것과는 다른 거북선이 있었을 것으로 파악되는 문헌 기록(점차로 판옥선이 커져서 이를 덮기엔 부담이 된다는 식의 이야기로 알려져 있늡니다)이나 재란까지 끝난 17세기 초중엽의 것으로 보고 있는 수군영 포구에 정박 중인 거북선 그림 등이 있긴 하지만 정확히 전라좌수사 시절에 만든 그 거북선과 같은 함이라고 보기엔 조금 모호합니다. 나대용이 개선점을 적었다는 것도, 그걸 적용해서 건조했다고 하기에는 미심쩍고요. 그 사례로 나온 해조선은 오히려 해골선으로 보이는데, 소형화 시킨 겁니다. 그래서 온전한 의미의 후계기라고 하기 보다는, 갑판을 덮은 배라는 대략적인 개념만 살아남은 수준의 다른 무기 체계를 운용한 함선이라고 봐야 할 것입니다. 수군에서의 천차총통은 임난 발발 직후만 잠씨 썼다가, 화약의 낭비가 너무 심해서 재란기에는 전혀 쓰지 않는다는 게 중평입니다. 따라서 관통탄두인 대장군전도 그 쓰임이 적어집니다. 지자포, 지자포보다는 현자포와 별황자포 같은 소형 대포를 주무장으로 썼지요. 따라서 관통탄두 또한 체급이 낮은 장군전이나 차대전을 주로 썼을 것임을 짐작할 수 있습니다. 나머지는 확산탄인 조란환이 대부분이었을 테지요. 물론 활의 유효 사거리가 조총보단 짧죠. 그런데 제시하신 기록은 잘 알려지지 않고, 대부분 애기살을 가지고 따지던 게 굳어져서 비등하거나 약간 우수한 것으로 오해가 깊어져 있습니다. 그리고 오오즈츠 같이 대형 총포도 있긴 했지만 그걸 수전에서 적극 활용했다고 하기엔 기록이 별로 없는 것으로 압니다만. 조선에선 총통이라고 불렀지만, 총통이 현대에 와서는 화포류로 분류되는 걸로 알고 있습니다. 조총은 오오즈츠 같은 대형화 빼고는 아주 확실하게 총포류예요. 총통이 자칫 총포류와 용어 사용상 헷갈릴 수가 있어서 캐논 타입으로 분류한다는 이야기지요. 화기로 이야기한다면 승자총통이 소형화기로서 쓰이긴 하지만, 핸드캐논 유형이지 엄밀하게 말할 때의 건 유형이 아닙니다. 개인용이되 소형화기로서의 대포였던 거죠.
@@user-by6xz8eg3u 노량: 죽음의 바다(영화)와 현실과 차이(고증)을 말하는데, 님의 의견은 무슨 소리를 하는 것인지 이해가 가지 않습니다. 제 의견은 고증이 부족하다이며, 패널들도 제대로 된 지식을 전달하지 않았다.입니다. 승자총통이 '건 유형'이 아니라는데.. '건 유형'이라는 단어도 희안하게 느껴지지만.. 님의 표현으로 말을 유추해보면 가늠자와 가늠쇠로 조준사격을 하는 직사화기를 의미하신거 같은데? 그 의미로 보면 승자총통은 '건 유형'입니다. 소승자총통 보시고 가늠자 가늠쇠를 확인하실 수 있을겁니다.
전투 후 항상 꼼꼼히 기록을 남겨 놓았던 다른 전투와 달리 노량전은 이순신 장군이 직접 기록을 남길 수 없었기에 정확한 고증은 사실상 불가능. 영화는 극적 효과를 위해 픽션과 논픽션을 혼재해 사용하는게 기본 상식. 영화에게 사실 고증을 다큐 수준으로 논하는건 웃기는 일. 시는 시로서 읽어야 하는데 시를 과학 논문으로 읽으면 말이 되겠나. 영화는 영화의 프레임 안에서 보고 논하자.
거북선은 칠천량이후로 수군 복원사업을 하면서 너무 비싸서 안만듬 근데 영화에서 내보낸건 괜찮아 그러면 한산에서처럼 쾅쾅쏘면서 배들 부수고 돌결하다가 장렬하게 배 안에 수군들 죽는 장면도 좀 넣고 해야지 너무 뜬금포로 일점사 사격에 바로 퇴장함 노량 전투신 다 좋은 데 거북선 뜬금침몰이랑 너무 지루하고 늘어지는 이순신 과거 회상씬이 오바였음
내가 보면서 느낀게 일본에 전국시대 가지고 영화랑 드라마 애니 게임 진짜 수천가지있음 그런데 거기에서 오다노부나가가지고 개뻥치고 올려치기하는거 보고 이건 역사왜곡이다~~ 라고 고나리질하는 일본인들 본적없음. 그리고 헐리우드에서도 여러 역사적 사건가지고 영화로 만드는거 한무더기이고. 그런데 거기에서도 영화에서는 어느정도 상상력은 오케이해줌. 기껏 공부한건 국사교과서 외워서 수능본거밖에 없는 것들이 이순신장군이 남긴 난중일기 류성룡 징비록 원서로 공부한 감독 팩트가지고 디스질하는거 보면 진짜웃김 ㅋㅋㅋㅋㅋㅋ
@@ohthgee8795 일본에서도 자기네들 창작품이랍시고 고증 무시하는 거 가지고 욕 바가지로 하는데 무슨 ㅋㅋ 어이 없는 소리를 하고 있네 은혼이란 작품에서 자기 선조 우습게 그리고 역사왜곡하지 말라고 개그물 고증 따위 무시하는 가벼운 작품인데도 그런 욕 들으면서 고소한다고 협박도 당했다는데 사람들 사는데는 다 똑같다 잼민아
@@ohthgee8795 그리고 류성룡의 징비록도 사학계에서는 반성이란 주제를 위해 너무 자학적인 사관으로 썼다고 평가한단다 사료 원본 읽는 것은 역사 관심 있는 사람들이면 누구나 할 수 있어 그 사료를 제대로 사료 비판하면서 교차 검증하며 보는 걸 얼마나 잘하는지에 따라 전문가냐 아니냐로 갈리는거란다
어제 노량보고왔는데 명나라도독 넘 많이 나와서 대사를 이순신보다 많이하는거빼곤 전투장면 진심 극강이었어요❤ 북소리가 아직도 들리는듯하네요. 그만큼 재밌었다는이야기. 이순신장군님 감사합니다. 또 울컥ㅜ 대신 북치기위해 다른이들이 다시 일어서는거 진심 울었어요ㅜ 거북선침몰할때 안돼하면서 한탄했음 난 북소리를 끝까지 들려준거 좋았다고생각함 영화에 사실만 들어갈수는없기에 그건 감안하고봐야지요 다시한번 이순신장군님 감사합니다.
감독이 이순신 장군을 너무 너무 존경해서 3부작 만든건 알겠는데.. 연출 각색을 잘했냐 하면.. 아닌 것 같음 우리같은 일반인들도 갸우뚱 만드는 연출도 많았지만 영화니까 각색으로 넘어갈 수 있겠지만서도 꽤 아쉬움이 남음.. 그래도 3부작 중에 노량은 좋았다고 갠적으로 생각이 듦 다만 한산은 여러번 시도해봤지만 완주를 못하겠음..
명량해전 1년 후에 노량해전이니 1년동안 판옥선 수십척 건조하는동안 거북선 2척을 건조한 건 충분히 있을 수 있는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실제로 이순신 장군님이 전략적으로 필요하다고 판단 했기 때문에 건조하고 한산해전에서 운용한거잖아요? 거북선 침몰 장면은 그만큼 전투가 만만치 않았다라는걸 보여주는 설정이라고 생각해요. 이순신 장군님이 치른 전투 중에 가장 많은 사상자가 나온 전투이기도 하구요.
@@gustave7223 명량해전 1597년 9월 16일 조수의 흐름에 의해 일시적으로 조선이 유리해져 일본군의 크루시마가 죽었지만 저녁이 되어 조수가 바뀌자 조선군은 철수했다. 일본에 쫓긴 이순신은 9월 21일에는 멀리 전라도 북단의 고군산도(군산 앞바다)까지 패주했다. 난중 일기에 쓰고 있다. 200km나 북쪽으로 도망친 이순신이 이겼다는 한국인의 주장은 잘못됐다.
@@hiroono1 선봉대의 과반이 괴멸당하고 선봉대장 구루시마 목이 베이고 총대당 도도다카도라는 몸에 총상을 두곳이나 입은 패전이며 조선수군이 먼저 후퇴한게 아니라 일본수군이 먼저 퇴각하고 조선군은 화약을 모두 소진해서 재보급과 재정비를 위해 추격하지 않고 물러난건데용?
종평님 연구가이신건 알겠는데 영화 얘기 하는겁니다. 영화 !!!!!농담을 다큐처럼 받아 들이시지 마시죠. 전투 장면이 고증과 일치 하지 않다 하더라도, 말씀하신대로 목숨을 바쳐 나라를 지킨 영웅이 초점입니다. 관람객들도 다 그점을 염두해 두겠죠, 그리고 당시 전투상황이 고증대로 되지 않았다 해서 그 부분이 문제대?? 라는 발언은... 큰 오류로 인한 혼동과 앞으로 책임져야할 일들이 아닌 이상 영화적 장치로 좀 놔두시고, 본인이 정 하시고 싶은 말씀이 있더라도, 좀 신중하게 단어 선택을 하시는게 좋겠습니다
1598년 10월12일 선조실록 4로의 군사기록, 또 연려실기술의 기록에 의하면 조선수군의 판옥선은 대락 30여척, 판옥선 보다 작은 배들, 포작선, 협선등을 포함해 100여척 규모였다. 핵심은 판옥선 30척으로 영화에서 처럼 백병전을 수시로 치루었다면 언제 그 많은 왜선들을 격파할 수 있었겠는가?
노량을 보고 어떤 불편한 불만족을 풀기위해 오랜만에, 2000년에 나온 리들리 스콧 감독의 영화 글래디에이터를 다시 보았다. 역시 명작이었다. 글래디에이터 영화 끝장면에 나오는 환영이 노량의 뒷부분에 나오는 환영을 떠오르게 했다. 글래디에이터의 환영은 자연스럽게 감동을 선사했다. 하지만 노량에서 본 이순신의 환영에서는 부자연스럼, 엉뚱함, 불편함을 느꼈다. 글래디에이터 초반의 전투신은 유명하다. 고증을 통해 로마식 전투를 잘 재현했다고 평가된다. 명작은 괜히 명작이 아니다. 이에 비하면 노량은 한참 멀었다. 이것이 수준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