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ser-qm9nx7mz3e 유서를 쓰고 산 속으로 들어가서 행방불명됐지만 당시에는 시신은 발견되지 않았고...최근에는 산속에서 유품으로 추정되는것이 나와서 일단 사망처리는 된 걸로 알고 있습니다... 그리고 자실에 대한 구체적인 이유는 본인이 밝히지 않았기때문에 알 수 없습니다..
팩트) 조선 왕실은 이왕가라는 신분을 얻고, 일본의 극진한 비호 아래 일본 황족 다음가는 부를 축적하며 개꿀 인생을 살아갔다. 피지배국의 왕족이 지배국의 황족 다음가는 부를 쌓은 것이다.일본이 이왕가를 얼마나 챙겼냐면, 2차 세계대전으로 지들 나라 경제가 박살나는 와중에도 이왕가에 퍼주기를 해서 일본 내에서도 불만이 나올 정도였다. 특히, 덕혜옹주는 일본 황족, 화족 자제들이 다니는 가쿠슈인에서도 특별 대우를 받았고, 황족과 화족 자제들인 학우들조차 '~님' 자를 붙여 예를 갖추었따.ㅋㅋ 심지어 덕혜옹주는 독립 운동과 전혀 관련이 없는 인물이다. 등신같은 조선 왕족들의 말로와 역사왜곡 영화 보고와서 역사가 어쩌고 동정심이 어쩌고 하는걸 보면 우리나라 역사 교육은 한참 멀었따ㅇㅇ.
여러분들은 잘 모르겠지만 덕혜옹주의 남편 소 다케유키는 덕혜옹주와 세기적인 로맨스를 벌인 사람이죠..심한 조현병에 걸린 덕혜옹주를 25년간 지극정성으로 돌본 사람입니다...아무리 그 여자를 열렬히 사랑한다해도 정말 일어나기 힘든 일이죠..덕혜옹주와 이혼한 이유는 일본의 2차대전 패망으로 귀족들한테 부여되었던 혜택이 전부다 사라지자 덕혜옹주의 치료비를 감당하기에는 경제적으로 힘들어서였습니다..덕혜옹주의 치료비를 대기위해 재산을 다 팔고 자그마한 집으로 옮겼지만 더이상은 병원비를 댈 여력이 없자 그나마 재력이 조금은 남아 있었던 영친왕 부부에게 덕혜옹주를 맡기기 위해서 이혼한 겁니다..이일로 소 다케유키씨는 한국 사람과 일본 사람들로부터 엄청난 비난을 받았지만 전혀 변명을 늘어 놓지 않았습니다.. 덕혜옹주가 한국으로 돌아갈 때 한국 언론에서 소 다케유키씨에 대해서 천하의 나쁜놈으로 연일 매도를 했지만 그거에 대해서 불평불만도 전혀 하지 않았구요..동경대 영문과를 나온 엘리트에 훤칠한 키에 아주 미남이셨던 분이시죠..거절당할 걸 알면서도 마지막으로 덕혜옹주 얼굴이라도 보려고 한국을 방문했다가 매몰차게 거절당하자 아주 허탈한 모습으로 일본으로 돌아갔다고 합니다..소 다케유키씨는 말로는 사람들에게 덕혜옹주에 대한 애정 표현을 전혀 안했지만 시로서 구구절절히 덕혜옹주에 대한 애정 표현을 했고 세상을 떠나기 직전 마지막 시집에서도 덕혜옹주에 대한 애틋하고 안타까운 마음을 시로써 표현을 했습니다..실제 덕혜옹주와 소 다케유키씨의 사주를 보면 덕혜옹주의 병만 아니었으면 정말 둘이서 행복하게 살 수 있었던 사주라고 하더군요..똑같은 나이에 하루 차이로 두분이 세상을 떠나셨습니다..정말 존경할만한 분이십니다...
가치가 있을때는 볼모로 데려다가 이용 해 먹고 가치가 없어지니 양쪽에서 외면 받고 버려진 망국의 옹주.. 어린 나이에 끌려가 어머니 임종도 못지키고 원치 않는 강제 혼인에 하나뿐인 딸 실종에.. 정신적으로 버텨낼 사람이 과연 있을까.. 무엇하나 내 마음대로 할 수 있는 것도 없고 마음 둘 곳 하나 없었는데 옹주님이 느꼈을 그 무력감과 상실감이 얼마나 깊었을지.. 너무 슬프다
정말..... 덕혜옹주라는분께 관심을 가지며 책을 읽었는데 정말 긴책이었지만 몇번을읽어도 시원치가안고, 지겹지안았습니다 조선의 마지막황녀로서 황녀의삶을 제대로 살지못하셨지만 학창시절의 생각이나, 정신만큼은 제일의 황녀라고 생각이 되었습니다 낙선제에 오래살고싶어요...... 울컥했습니다 이유없이...... 그리고 일본학교에서도 거의 왕따인것처럼 느꼈습니다(책을 읽을때) 황녀의 삶을, 적어도 조선인으로서의 삶이라도 지금이라도 돌려드리고싶은 맘 뿐입니다
이런 태클걸어서 미안한데요 시비거는건 절대 아닙니다 일제 때문에 덕혜옹주와 덕온공주는 실록에 실리지도 못했습니다 그리고 중전의 자식은 공주 대군이라 불렸고 후궁의 자식은 군 옹주라 불렸습니다 품계는 직계라 전부다 무품이지만 차별은 좀 났다네요 그러니 마지막 황녀 즉 공주는 덕혜가 아니라 덕온공주가 마지막 황녀가 맞는거 같네요
@@Abkaijui 어디 써 있어? 고종이 초고도 비만 이었다고. 고종의 사진들을 봐도 비만 근처도 안갔구만. 어디 그렇다고 써있냐고. 고종황제가 사망한 때가 1월 한 겨울 인데 시체가 1-2일만에 살점이 썩어서 떨어지냐? 이빨이 몽땅 빠져있고 혀가 닳아 있냐고. 평소에 건강했고 아무 병도 없었는데 식혜를 마시고 30분만에 발작을 했단다. "..심지어 친일파 인물 중 한명이었던 윤치호의 1920년 10월13일자 일기에도 고종 독살설 이야기가 나와있을 정도다. 윤치호는 고종이 독살된 것으로 보이는 증거 5가지를 일기에 기록했다. 1) 이상적이라 할 만큼 건강하던 고종황제가 식혜를 마신지 30분도 안되어 심한 경련을 일으키다가 죽어갔다. 2) 고종 황제의 팔다리가 1~2일 만에 엄청나게 부어올라서, 사람들이 황제의 통넓은 한복 바지를 벗기기 위해 바지를 찢어야만 했다. 3) 민영달과 몇몇 인사는 약용 솜으로 고종황제의 입안을 닦아내다가, 황제의 이가 모두 구강 안에 빠져 있고 혀는 닳아 없어졌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4) 30센티 미터 가량 되는 검은 줄이 목 부위에서부터 복부까지 길게 나 있었다. 5) 고종황제가 승하한 직후에 2명의 궁녀가 의문사했다고 했다..."
ㅜㅜ 안타깝다 덕혜옹주님 자식분 어떻게 사실지 궁금 엄청 미인이신데 볼살도 통통하시고 어머니가 돌아가신 상실때문에 많이 힘드셨나보다 ㅠㅠ 주변에 기댈곳도없고 얼마나 무서웠으면 일본인들이랑 한마디도 안하고 웃지도 않고 물통도 챙겨다녔을까 ㅠㅠ 부모랑 조국이 얼마나 그리웠으면 낙성재에서 부모님이랑 살고 싶다고 할까 ㅜㅜ 비련의 마지막 옹주구만
에이피 정확히는 고종전 허수아비왕들을 봐야죠; 무슨 고종때문에 한번에 나라가 망해요ㅋㅋㅋㅋ 그당시 나라 상황은 알고 있습니까? 뜬금 영상과는 다른얘기 .. 그렇게 따지면 조상님들 중에서 편하게 살아오신분들 없어요.. 그리고 영상 눈감고 보신게 아닌가합니다.. 뭐 밥만먹고 살면 잘사는건가요? 어떻게 어렸을때 부모죽고 강제 일본행까지 가게됐는데요? 그때 웅주는 개인물통을 가지고 다녔어요 동급생이 왜물통을 가지고 다니냐 물어보니 자세히 기억은 안나지만 독살당할까봐 그런내용으로 기억나네요 그리고 억지로 일본귀족과 결혼 딸 정혜의 반항,가출 치매증상,정신병원감금 이게 잘먹고 잘살아요?
My respect to the Koreans, a great people, AS Japan I DESTROY THE LAST DYNASTY JOSEON, the best of all the empires and kingdoms of the world, we have much to learn from his legacy.
Ragna_Blade 왕족이 왜 힘드냐는 지 의견에 반박하니까 부들부들 시전해 높고 정작 너는 왜 덕혜옹주 힘들었겠다는 말에 고나리질임 요점은 1도 못 찾고 그냥 지 핀트 어긋난 대로 웅앵 ㅋㅋㅋ 꼰대 마인드에 공감능력이 결여돼도 한참 된 듯 어 맞어 니 인생 불쌍해 니가 세상에서 제일 불쌍해~
I could not fully understand the plight of the princess by just watching the clip even though I want to know more about the Korean history. Would you please add english or chinese subtitles to help foreigners knowing the culture and history of Korea .
Looking for english comments. BTW, got curious after I watched the movie titled “The last Princess”. It gave me a glimpse of the history of Korea during the Korean Empire. It’s just soo bad how the fate of Princess Deokhye came to an end.
[introductory part] All I fear is history - YeonSan GUN - January 26, 1962 Gimpo International Airport a woman who has appeared in the interest and welcome of many people However A unconscious body, no expression, no words... - "The Chosun Ilbo", January 26, 1962 - A 50-years old woman who could go to her homeland 38 years after she was forced to Japan Deokhye, OngJu (Princess) of Misfortune 'A child born in the year of the Parent's 60th birthday resembles the parent' In 1912, the year of Emperor(King) Gojong's 60th birthday The birth of a baby girl who resembles her father like a myth. Although she was a SeoNyeo(daughter of concubine), she was a precious only daughter to Kojong who lost all her daughters due to illness. She was the youngest in kindergarten, but she was quiet and dignified and intelligent. - DukIm Min(MinDukIm), the same kindergartener - OngJu(Princess) Deokhye, A child who was smart and talented and had a lot of cuteness. However, With the sudden death of Emperor(King) Gojong, her life is messed. "The royal family must be educated in Japan." - 1925, japanese imperialism - To make They( the royal family of Joseon )Japanese, the Japanese imperialism takes 13 - year - old OngJu to Japan. She was despair in her face, and I could not find the youthful, bright eyes that had fascinated me when I first saw her. - BangJa I( IBangJa )(Wife of YoungChin King) memoir [ The Years Past ] - a country of others who had fallen from their mothers at a young age and forced them to come. OngJu, who had no place to lean on, was always worried about poisonous killing and always carried his own water bottle. and she resisted the coercion of the Japanese imperialism with expressionless expression and silentness. She didn't answer anything, and she even also sat in the classroom when I suggested play. - SoMa YuKiKa(そま ゆきか), same female student - When OngJu was 17, her mother died, and Ongju became very mentally weakened. She didn’t go to school, she stayed in her room all day, and never came out to eat. She had a severe insomnia at night, and sometimes she suddenly popped out, and when we tried to find her, she was walking outside, and I asked the psychiatrist for a visit. - BangJa I( IBangJa )(Wife of YoungChin King) Autobiography [ As It Flows ] - OngJu's disease: premature dementia In addition, in a mentally difficult situation, the Japanese imperialism forced the marriage of the Japanese Count when she was 19 years old. Since then, the princess's illness has seemed to be recovering, but it recurs within six months of marriage. While continuing her unfavorable marriage without proper consciousness, she heard about the liberation of her country, but she went to the mental hospital the following year and spent about 15 years. OngJu, who could not easily return to his hometown because of the government's opposition to OngJu, who was going to her homeland while suffering from illness. In 1962, when she was 50 years old, she was finally stepped her country. but she had to stay in a hospital, not at home. She is in good physical condition for her age, but her mind is like a child, with her nerves so weak - OngJu(Princess) Deokhye's doctor - It was not until she was 56 that she returned to Changdeokgung NackSunJae Palace and spent the rest of her time. Twenty-one years later, in 1989, she ended her hard life. " I want to live in the NackSunJae for a long time. King, Queen, I miss you. Korea, our Korea." - In 1983, when her mind was clear, she wrote graffiti -
여기서 조선황족 욕하는 분들.. 일본이 의도한 것에 그대로 넘어가는것임 일본이 왜 자기네땅으로 데려가 호화롭게 지내게했겠어.. 훗날 이렇게 자국의 황족을 자국민들에게 밑보이게 하려고 그렇게 의도한거다. 뻔한 의도를 모르고 그렇게 욕하다니.. 생각해봐 너네가. 본인이 조선황족인데 조선에서 생활보내고싶지 일본서 보내고싶겠니? 으휴 하나만 알고 둘은 모르는놈들
전 그렇게 생각 안 해요 옹주의 탓은 전혀 안 합니다. 그녀는 힘겨운 삶을 살아온 게 맞아요. 다만 조선황족은 다릅니다. 조선 전기는 위대했으나 후기는 정조와 영조 빼고는 0이였다고 생각해요. 그리고 대한제국 시기에 고종이 광무개혁만 잘 이끌어갔어도, 국민보다 그깟 왕조를 유지하는 게 그렇게 중요했나 싶어요. 우리나라의 마지막 기회였는데 흥선대원군이 고집만 안 부렸어도, 민씨의 가문이 대립하지만 않았어도 국민들이 30년 넘게 고통 받는 시기가 안 왔을 텐데 말이죠
Where van I find documentarse about goseon dinasty and the war Corea - Japan in spanish or English? please I want to learn about corean history and society.
아직 진정으로 이 대한민국이 해방이 되지 않았고, 전쟁이 끝이 난 것도 아니고, 이 한민족이 자주독립한 상태도 아닌 것입니다. 여러분 세대에 친일을 몰아내고 전쟁상태인 이 한반도에서 남북이 과거를 따지지 말고 앞으로의 계획을 세우고 경제력을 기반으로 더욱 더 강한 경제력을 키워서 우리 후손들이 '홍익인간의 정신과 경천애인'의 정신으로 이 세상을 인간다운 세상으로 이끌 수 있기를 기원합니다.
가족의 보살핌이 필요한 10대 때에 부모님을 잃고 일본으로 끌려간 것이 평범한 일이 아니고 이런 일을 겪은 덕혜옹주가 너무 안타까웠다. 덕혜옹주 책도 읽고 관심이 많았는데 덕혜옹주가 살았을 적에 행복했으면 좋겠다고 생각이 들었다. 정신병에 걸리지 않는게 이상하리만큼 비운의 삶을 살다 간 덕혜 옹주가 너무 불쌍했다.